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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45회산우회 7인 히말라야 기를 받고 돌아오다 >>>
<< 오늘은 2017년 1월 13일(금) 밤. >>
귀국후 폐암1기의 집사람 수술사태 등으로 경황이 없었고 여독이 덜 풀려서인지 거사를 치른 지 3일이 지났으나 나로선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조금이라도 현실감이 있을 때 산행기(2016.12.30.~2017.01.10)를 써야 한다는 짓눌림에 펜을 들었으나 병상 간병인 침상에서 뭐가 뭔지 혼란스럽기만…. 허나, “장도를 축하하며 잘 다녀오기를 기원한다.”는 조은구 동기회장 등 여러 동문들의 뜨거운 성원을 입음과 동시에 히말라야 트레킹 산우들로부터 산행작가로 지정돼 산행기를 쓰라는 엄명을 받은 처지이고 보니 흐려져 가는 기억을 더듬어서라도 뭔가를 써야하니, 써보도록 한다.
병신년이 져물어가는 12월 30일(금) 13시 25분.
KE695편으로 네팔 카트만두를 향해 인천공항을 출발한 경복산우 우리 7인은 바야흐로 이제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 트레킹의 여정에 올랐다는 실감을 하며 장도의 비행을 시작한 셈이다. 금년 4월 미국과 카나다를 외손주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다녀온 지 8개월만에 평소 가고 싶었던 네팔에 가게 됐다는 설레임, 특히 이순(耳順)의 고교 친구들과 집단으로 안나푸르나를 가게 됐다는 흐뭇한 생각에 묘한 흥분이 일기도.
지난 10월 난 안종율 산우로부터 히말라야 트레킹 얘기를 처음 듣고 언젠가는 가봐야 하는 네팔이었지만, 고산의 트레킹코스라 망설임이 앞서기도 했으나 이때가 아니면 이러한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더구나 좋은 고교친구들과 함께한다는 말에 기꺼이 수락의사를 했었던 기억, 그러나 좀더 알고보니 이번 트레킹은 친구들에게 장(場)을 열어주곤 하는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전범(典範) 박찬용대장이 앞서의 일본알프스와 황산 등정 등 경복45산우회의 해외등정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서 치밀하게 사전 기획·추진된 사실 등을 알게 된 점, 그리고 기존에 알게 된 <주)산이좋은사람들>과 접촉해서 충실한 준비과정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 7인의 산우 중 박찬용, 어재선, 용희주, 이영노, 최영효 산우들은 베테랑이지만, 종율 산우와 나는 이번 트레킹참가를 누구나 의아해할 정도로 초보자로서 트레킹 진행중 예기치 못한 돌발사태나 나지 않을까 해서 다른 친구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스런 생각이 머리를 떠날 날이 없었던 점, 그래서 나는 남한산성을 한달동안에 7차례 오르내리는 나만의 비밀스런 과정을 치뤘던 일들로 상상의 나래를 펴보면서. 아마, 다른 친구들도 나름대로 비슷한 사전 준비를 했었으리라….
헌데, 나에겐 나만의 비밀이 또 있었으니.
12월 중순경 삼성병원에서 아내가 폐암1기로 판명돼 내년 1월 10일경 수술하기로 결정되게 되어 아픈 아내를 두고 나만 행복한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 것. 허나, 친구들과 이미 약속한 것을 파기하기엔 시기상 적절치 않았고 아내도 그대로 다녀오라고 하기에 실은 미안하고 무거원 마음으로 이번 트레킹 장도에 올랐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번 트레킹은 별탈없이 수행되어야 한다는 기원도 하면서, 이런 저런 상념으로 하늘의 비행기 안에서 마음의 공간을 채우다 보니 7시간의 비행일정이 마무리 되고 어둑해질 무렵 우리보다 3시간 15분 늦은 시차로 오후 6시 10분경 무사히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다.
처음 대하는 카트만두 공항은 규모가 작고 좀 덜 정리된 특유의 감을 풍겼다. 가이드 로산을 만나 준비된 차로 시내로 이동하여 그가 인도하는 대로 숙소인 야크 앤드 옛티 호텔에 도착한 바, 입구에서 아가씨로부터 꽃수레를 목에 일일이 걸어주고 이마에는 빨간 곤지를 찍어주는 환영행사를 당했다. 그뒤 체크인 하는 동안 제공해주는 오렌지주스로 목을 축이며, 숙소를 배정받고 여장을 풀었다. 헌데, 호텔 바로 인근에 한글간판의 평양아리랑식당이라는 북한식당이 크게 눈에 들어와서 모두들 의외로 깜짝 놀라기도.
조금 지나 호텔을 나와서 네팔식 전통가옥으로 안내되어 저녁 환영만찬 시간이 됐다.
촛불이 켜진 꽤 넓은 은은한 홀에는 이미 외국인 몇팀이 와 있었고 나중에는 현지인도 모여들었다. 우린 예약된 중앙쯤에 자리 잡아 앉았는데, 시간이 되자 네팔 전통의상을 입은 네왈족 젊은 남녀들이 나와 가무를 하니 본격 만찬이 시작됐다. 호기심과 시장끼를 느낀 우리들은 그들이 제공하는 달밧(Dal Bhat)이라는 네팔 밥을 들면서 42.5도의 전통주인 럼주를 1m 높이에서 작은 잔에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따라 내리는 익숙한 묘기에 눈길을 빼앗기고 말았다. 더불어 한마음으로 에베레스트 네팔맥주로 내일부터의 트레킹장도를 자축하고 기원하는 건배 샷을 했고 가끔 박수도 치면서 스마트폰의 셔터도 눌러대면서 즐겁고 유쾌한 네팔과의 첫 만남의 시간을 보내기도.
기분이 업되고 네팔독주로 벌건해진 얼굴들이 되어 호텔로 되돌아왔다.
복4512모임으로 인연을 맺은 종율 산우와 같은 방을 쓰게 된 나는 이미 취기도 됐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트레킹에도 대비 일찍 취침할까 했는데, 웬걸 얼마 되지 않아 5인의 산우들이 우리방(517호)으로 몰려들어왔다. 아마도 연장자인 우리 둘을 적극배려(?)해서 사전 기획했던 것 같았다. ‘돈독한 충분맥주로 첫 종례를 치러야 내일부터의 트레킹일진이 잘 풀린다.’는 궤변으로 좌중을 사로잡는 특유의 재주를 지닌 용회장의 억지성 강한 주장에 떠밀려서, 모두들 벌건해진 환영만찬 음주에 이어 맥주와 양주 등으로 ‘위하여’하며 이차의 술을 마시게 됨으로서 보다 화기애애한 결속을 다지는 첫날의 늦은 종례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숙소에들 들었다. 이러한 종례비용 등은 사전에 각자 보시한 7인의 공통경비에서 충당되는 것으로서, 오늘의 종례가 용회장의 말대로 내일부터의 트레킹의 청신호가 되길 기대하면서.
숙소는 2인 1실로 Two Yong(박찬용, 용희주), Two Young(이영노, 최영효), Two Jong(안종율, 김종박), One Sun(어재선)이다. 잠을 청했으나 낯선 외국이어서인지 여느 산우들처럼 나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첫날밤을 보냈다.
〈트레킹 첫째날/12월31일(토) : 병신년의 마지막 날〉
호텔 조식후 카트만두 공항에서 국내선 타타에어를 탑승하여 고도 800여m의 포카라로 향했다. 약 40분의 비행중 하얀 설산 봉우리가 저만치서 보여왔다. 연속된 설산을 보다니 감동적이다. 어느 시골풍의 포카라 공항에 내리니 히말라야 설산들을 배경으로 한 멋진 유혹성 광고들이 벽에 즐비하다. 전용버스로 1070m의 나야풀(Naya Pul)에 다다르니 도로길 건너편의 「광주진료소」(GWANJU CLINIC)라는 한글간판이 우리들 눈앞에 첫손님으로 확 들어와 박혔다. 배달겨레라서인지 반가왔다. 우리의 카고 백을 트레킹 내내 날라다줄 순박한 포터들과 만났다. 우리는 배낭을 메고 두 손에 스틱을 든 트레킹인으로 변신하여 큰 도로에서 벗어난 곁길 고삿길로 접어들었다.
한 시간쯤 걸어서 휴식장소에 도착, 부가이드 레섬과 우리들에게 식사를 제공해줄 세프팀을 만났다. 그들이 그 장소에서 직접 만들어 제공한 배추쌈 등 한식으로 점심을 떼웠다. 배달겨레의 혼이 밴 한식, 맛있었다. 걸으니 맥주가 제격인데 맥주도 겸한 점심식사 대화중에서 달변인 용회장 등의 계획적인 각본에 의해 산행작가로 내가 지정되고 말았다. 뜻밖이자 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분위기이었다.
맛있는 점심을 마치고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됐다.
마음속으로 끝까지 견디어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좀 넓었던 길을 벗어나 좁다란 산행길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부터 오르막인데 돌판 길 곳곳이 말똥들이 보이고 노새도 더러 보인다. 노새, 말들이 중요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리라. 가끔씩 동네주민들이 이용하는 네모진 빨래터와 물이 흐르는 계곡들도 보인다. 천천히 걷다보니 땀도 나는데 놀른파티라는 붉은 꽃들의 반김을 받으며 비렌탄티(1050m)를 거쳐 오늘의 목적지 티켓퉁가(1540m)에 모두들 도착했다. 오늘은 첫날로서 준비운동 차원이지만 첫날 트레킹 일정을 소화한 것 자체가 나로서는 성공적인 출발이었다는 자평이 들었다. 우리들의 숙소는 롯지의 3층에 있었다. 첫날처럼 2인1조로 방을 배정받았고, 이런 방식은 내내 지속되게 됐다. 롯지는 2개의 침대가 간신히 놓인 작은 방이다. 카고 백을 풀고 오늘 가이드로부터 무상 지급받은 침낭을 침대위에 펼쳐 잠자리를 만들어 보았다. 정글법칙에서 화면으로만 보았던 나로선 침낭생활이 낯설고 어설펐다, 빨리 적응해야 할 텐데….
그러고 보니 오늘은, 오늘밤은 2016년 병신년의 마지막 밤이다.
세밑을 외국의 네팔 산간에서 보내다니!
간편복으로 바꿔 입은 우리들은 한식 저녁을 고기로 들었다. 저녁을 마친 식당에서 안교장(안종율 산우의 애칭)의 주례로 어젯밤에 이은 2차 술자리 종례를 가졌다. 주당들인 희주, 찬용, 종율, 나는 술을 비교적 진하게 마셔댔고 다른 친구들은 내일 트레킹을 위해선지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술에 취해 난생 처음 침낭의 잠자리에 들었으나 전립선이 약한 나는 여러 차레 소변을 보아야 하는 어색한 밤을 보내야만 했다. 그 보상으로 헤드렌턴 사용하는 방법을 완전히 익힐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트레킹 둘째날/2017년1월1일(일) : 정유년 새해의 서설〉
네팔의 티켓퉁가에서 맞은 정유년 새해!
만사가 형통하길 기원해본다. 우리의 트레킹이 성공하기를 기원해본다.
2000m 이상의 지대가 계속 이어지니 앞으로는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가이드의 주문에 따라 각자 1리터 물을 준비해 08:00 트레킹을 출발했다. 날씨는 맑다. 오르막을 익숙히 오르는 학교가는 어린 아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이해심 많은 박대장이 캔디를 선물하니 당연한 듯 잘 받아든다. 가끔 만나는 서양인들과 Happy New Year! 나마스테!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몸이 더워지고 땀이 난다.
약 2시간 걸어 울레리(1960m)를 거쳐 또 약 1시간 30분 걸어서 반단티(2210m)에서 바로 앞에 펼쳐진 산자락들을 완상하며 맥주에 비빕밥, 계란국으로 점심을 했다. 약간 추위를 느끼는 판에 문득 까마귀 두 마리가 허공을 날더니 검은 구름이 덮이고 흐려지기 시작했다.
점심을 마친 우린 오르막길의 트레킹을 이어간다. 오후가 깊어지자 비가 왔고 올라 걸어가니 싸락눈, 함박눈으로 바뀐다.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우비로 갈아입고 비탈길을 천천히 걸었다. 어느 휴게소에서 난로 옆에 모여 만장일치 맥주로 입가심하며 하아얀 옷으로 갈아입은 아름다운 뭇 나무들, 산들을 지척에서 쳐다보다보니 어느새 우리의 마음도 하얀 마음으로 순화됨을 느낀다. 우리의 역사적인 히말라야 트레킹을 축하해주는 암시성의 새해의 서실(瑞雪)! 오랜만에 기분이 마냥 즐거워진다. 몸이 축축해지고 힘들지만 조용히 약 3시간 30분 걸으니 고레파니(2860m)의 멋지 입구에 닿았다.
입구에서 모두 모여 인증 샷! 총 산행시간이 약 7시간에 산행거리 약 8km였다. 입구에서 지친 몸을 추스르며 한참 힘들게 오르막 돌계단을 걸어 숙소인 롯지에 도착 여장을 풀었다. 몸이 땀과 비·눈으로 젖어서 후줄근하다. 전력사정이 안 좋은지 전기가 나갔다나. 추워서 난로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젖은 옷가지를 말리기도 한 우리들은 저녁 식사후 닭고기 3마리로 술자리 3차 종례를 마치고 각자 숙소로, 헌데 이번 종례는 애주가 용회장도 구미가 떨어지는 듯 앞의 경우와 달리 참여도가 저조한 듯…. 다른 롯지에선 우리보다 규모가 큰 한국의 연합모임인 혜초팀이 무언가 마시고들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트레킹 세째날/1월2일(월) : 푼일(POON HILL) 전망대에서〉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난 05:15, 우리들은 05: 30분 캄캄한 새벽 푼일전망대를 향해 헤드렌턴을 차고 장갑낀 손으로 두 스틱을 잡고서 롯지를 떠났다. 우리와 같이 온 혜초팀도 보였다. 조심조심 눈덮인 길을 오르다 보니, 매표소 입구에 다다라 티켓팅을 하고 계속 오르니 눈덮인 산세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왼쪽가슴이 어슴프레 답답한 감이 왔는데 이거 고산병 시초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중에 들으니 다른 산우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어느 덧 정상인 푼일 전망대(3210m)에 당도했다. 세찬 바람 속에 만감이 교차한다. 이런 추운 새벽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다니! 우리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푸른 하늘아래 장중·우람하고 신비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다울라기리(8172m), 안나푸르나 남봉(7219m), 안나푸르나1봉(8091m), 히운출리(6441m), 네팔이 신성시해서 등정을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마차프츠례(6997m) 등의 연이은 신봉(神峰)들의 장관을 감탄음을 내밷으며 한참을 미동도 하지 않고 보며 감상하다가 즐거이 가이드의 사진 찍는 인증샷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신봉들을 배경으로 사진 박느라 한창들, 정말 정신없이 황홀했다.
좀 지나니 동쪽에서 부우였고 둥그런 눈부신 일출 장관이 펼쳐지는게 아닌가!
나는 그만 숨이 멎어지는 진한 감동을 느끼며 나도 몰래 눈감고 두손 모아 아내의 건강을 지켜주시옵소서 진심으로 기도하고 말았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소원을 빌어댔었다. 순간이 멈춘듯한 그러한 순연한 마음이 절로 되어졌다.
정상에 오르면 내려가야 하는 법.
눈앞의 최망루는 주저되어 나는 포기, 각자들 하산길을 하는 데에 조용히 동참했다. 내려오다 보니 티켓팅장소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즐겁게 하산들 한다. 하산해 보니 같은방 산우 안교장이 보이지 않는다. 연속된 종례탓인지 하산중 다른 길로 내려와 늦게서야 숙소에 오는 고생을 좀 했나보다.
새벽 푼일전망대 관람으로 좀늦게 9시경 눈길속의 트레킹을 시작했다. 가파른 급경사 언덕길을 계속 오르니 바람도 불고 저멀리 새벽에 갔던 푼일전망대도 보인다. 우린 등산장비로 무장하고도 힘드는데 포터, 식재료 짐군들은 그 무거운 짐들을 몸만으로 운반하고 있으니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숲속의 오솔길로 접어드니 생을 다한 눈을 덮어쓴 아름드리 고목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노장의 안교장이 걷는데 좀 고생을 했으나, 모두 무사히 데우랄리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함. 그곳에서 어린애까지 데리고 온 6인의 호주가족을 만났는데 원만하고 강한 모성애의 소유자이리라는 생각이 일었다. 난로의 불을 쬐며 라면으로 점심을 떼우고서 이젠, 신경을 바짝 차려야 할 급경사 계곡을 내려가는데, 오후만 되면 일기가 변하는 것 같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니 최회장이 기지를 발휘해 미처 비옷을 챙기지 못한 안교장에게 즉석비닐 옷을 만들어 입히는 창조경제를 연출하기도 했다. 또한 안전상 아이젠을 꺼내 신으라는 가이드의 주문을 일제히 준수하며 이끼긴 나무들이 뒤덮인 계곡을 따라 하산하다 안전한 곳에 이르러 아이젠을 벗어 냇물에 씻기도.
땀흘리고 지친 몸으로 천천히 걷다보니 총 산행시간 약 6시간 산행거리 약 9km의 목적지 따다파니(2630m)에 도착하게 되어 오늘의 트레킹은 종료됐다.
저녁을 마치고 피로를 푸는 종례가 오늘도 이어졌는데, 이야기가 진전되는 와중에 이사장의 말에서 비롯하여 나의 아내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 되고 말아, 나는 할 수 없이 폐암판정을 받은 아내가 수술대기중에 있다는 얘기를 하자 모두 나를 위로해주는 상황이 되고 만 것. 모두 고마운 친구들임을 새삼….
〈트레킹 네째날/1월3일(화) : 시누와의 아침〉
설산이 저멀리 작게 보이는 곳에서 일출장면을 지켜보면서 조식을 취한 운 좋은 아침을 맞았다. 아침 먹기전엔 최회장이 우리방에 들러 등산장비와 관련, 유경험자로서의 참고할 만한 얘기를 들려주었는데 초심자들로서 도움이 됐다. 그런가 하면 최회장은 고도기를 스스로 앱으로 받아 스폰에 저장하고 필요시마다 고도의 정보를 우리들에게 솔선수범 알려주는 사람으로 자리 잡았다.
08:05 출발, 내리막 오솔길이다. 한 시간쯤 걸으니 더워지고 땀이 나기 시작하여 웃옷을 벗어 배낭에 넣게 된다. 출발하기 전 물 1리터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나도 이제 고참들의 지혜를 자연스레 배워가는 중인 것 같다. 킴롱(1800m)을 다 와가는데에도 충성스런 개가 한 마리 계속 환송나오는 거 아닌가. 어젯밤 눈 속의 롯지 우리숙소 옆문에서 웅크리고 잤던 검은 개인데 우리들을 알아보고서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 우리 앞에 길을 안내하고 있었던 듯, 불현 듯 못된 인간보다 나은 영물이라는 생각이….
킴롱에서 30분 이상 쉬면서 어화백 등은 쇼핑도 하면서 우린 맥주로 입가심함. 계단식 논들이 즐비한 산들을 보면서 점심으로 짜장밥을 먹고 의자에 두러누어 휴식을 취한 뒤, 오르막길을 걸어 촘롱(2170m)에 도착함. 맥주로 입가심한 우리들은 저쪽 산끝자락에 시누와가 보이는데 금방 갈 것 같았지만 실은 2시간 이상의 거리였다. 오르막길에 아들은 말을 타고 아버지는 짐실은 노새를 채근하는 모습, 떼들 지은 말들이 지그자그로 에너지를 절약하는 모습, 까만 물소들의 길비키기 그리고 부루카족이 건설했다는 출렁쇠다리를 보면서 힘들게 걸었다. 그리고 1인당 50불로 안나푸르나 보전지역관리청(ACA)에 출입신고를 하고 통과하기도.
맨먼저 출발하곤 하는 안교장, 이사장, 나는 마이너 그룹이라서 좀 앞서서 걷게 되는 등 걸어서 시누와(2360m)에 도착 여장을 풀었다. 시누와를 벗어나게 되면 개인 롯지는 없고 정부소유 롯지만 있단다. 오늘의 총 산행시간은 약 6시간, 산행거리 약 9km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름다운 앞의 선경에 취해 졸시를 한 수 지어봤다.
시누와의 아침
내 눈앞에
펼쳐진 켭켭이 싸여진 산, 산들
조용하고 찬란한 아침해가 저렇게 가까이 솟아오르니
파아란 하늘아래, 신(神)의 산 히말라야 산들이
더욱 더 또렷해지는구나.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그 장중함에 무아지경의 선경(仙景)에
저절로 빠져드는구료
또다시
새로움이 마음에서 시작되는
안나푸르나의 한 자락 시누와에서
무위불무위(無爲不無爲)를 그윽히 조망해 본다.
〈트레킹 다섯째날/1월4일(수) : 수제비로 점심함〉
09:05 시누와를 출발하니 오르막길이 펼쳐진다. 윗시누와에서 설산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하고 우렁찬 계곡물 소리가 산신(山神)의 음성으로 다가오는가 하면 작은 대나무 군락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런가 하면 박대장은 간단없이 영혼이 맑은 클라식이나 가곡을 틀어대 우리의 음악을 히말라야의 가슴속에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오르막 내리막의 오솔길을 물을 마셔가며 걷다 보니 길섶에 보라색 꽃들이 고개를 내밀기도 하는 경관도 감지된다. 최회장은 모양이 예쁜 노란 꽃을 발견해 스마트폰에 담기도. 어느새 우린 걷는자의 무아지경(walker’ high)에 빠지는 것 같기도 했다. 대나무가 많아서 이름지어진 밤부(Bamboo:2310m)의 어느 쉼터에서 차를 마시며 햇볕의 참 고마움을 철학자가 되어 이야기하기도 했다.
도반(2600m)에 이르러 물고기 꼬리모양이 선명한 마차프츠레를 우아하게 쳐다보면서 우리의 전통음식 수제비 점심을 먹었다. 국내에서도 일년에 한번 먹을동말동한 수제비를 미토(맛있게의 네팔어) 먹은 후 트레킹 절반을 소화한 기념으로 저멀리 마차프츠레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한 후 우리는 계속 올라간 바, 대나무숲과 우렁찬 계곡물소리가 우리와 함께 했다. 히말리아 롯지(2920m)의 휴식처에서 생강차를 마셨으나 맛은 없었고 로사 가이드가 부르는 우리노래 찬찬찬이 나에겐 더 솔깃했다.
오후가 깊어가니 으레 그렇듯이 또다시 날씨가 변동을 부리기 시작, 짓눈개비와 싸락눈발이 차디찬 바람결에 시작되더니 울퉁불퉁 올려다 걷는 길만 보이는 설해운(雪海雲)의 악천후가 앞을 가렸다. 안교장과 나는 후미에서 조심스럽게 천천히 고개를 넘으니 힌쿠 바위를 지나 어두워진 후 목적지인 데우랄리(3230m)에 왼쪽가슴이 약간 멍멍해지고 가쁜 숨에 힘들게 도착했다. 총 산행시간 약 8시간에 산행거리 약 10km의 강행군을 무난하게 치러낸 편이다.
누룽지로 저녁을 했는데, 맛이 좋았다. 헌데, 우리의 리더인 박대장이 속이 안 좋다며 저녁을 피하는 것을 보고 박대장이 무너지면 우리전체가 무너진다며 권유했더니 누룽지물을 좀 드는둥마는둥. 아마도 대장일을 하느라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 저녁을 먹으면서 석청야기가 나와서, 집사람한테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도 하나 신청했다. 식당에서 담소하는 중 어화백이 건너편의 미국인 여자를 스케치해 건넸는데 그쪽도 화가라서 어화백의 재능을 알아보고 앞으로도 서로 소통하기로 하는 수확을 생각지도 못하게 얻어내는 쾌거를 어화백은 만들어내기도. 고산지대라서 포터 등 현지 지원팀의 숙소가 별도로 없어서 우리가 밥먹은 식당의자 등에서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식당안에서 우리가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내일 MBC, 대망의 ABC를 대비해 추운 침랑속의 잠자리에 들었다.
〈트레킹 여섯째날/1월5일(목) : ABC에서 저녁피맥을〉
우린 마차프차레 영봉(靈峯)을 보면서 조식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박대장은 설사를 했다며 겨우 누룽지만 손댈 뿐…. 지상은 하얀 눈으로 뒤덮이고 하늘은 맑은 가운데 데우랄리를 떠나, 이번 트레킹의 피크지점에 도달하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속이 안좋은 지 메이저그룹의 박대장이 뒤에서 천천히 걸어온다. 이사장은 장갑 한짝을 잃기도 했으나 나중에 찾았는데, 나는 물을 마셔가며 천천히 걸었더니, Now you are in Machapchre.(당신은 바야흐로 마차프츠레에 와있습니다.)라는 안내판이 보이는 게 아닌가. 그리고 가까이에서 우뚝선 세계3대미봉(美峰)중의 하나인 삼각형의 마차프츠레 영봉이 또렷이 신비스런 자태로 영주(永住)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안내판 서있는 곳에서 좀 오르니 MBC(3700m)에 닿을 수 있었다.
태양은 가까워서인지 맑았고 바람도 거의 없는 좋은 날씨에 가벼운 마음으로 점심을 기다리며 가이드측이 제공해준 감자를 까먹고 있는데, 오를 때 만났다던 부산여인 둘이서 우리, 특히 최회장을 보고 나이든 고교동창들이 함께 이런데 오다니 대단하다며 반색을 해왔다. 우리로선 기분 좋은 일이다.
박대장은 겨우 누룽지만으로 떼웠으나 점심식사를 마친 우린 아이젠을 차는 등 완전 장비로 최종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오후가 되니 또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걷다보니 저멀리 ABC(4130m)가 보인다. 전선의 마지막 고지가 보이니, 이제 자신감이 생겨난다.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다. 천천히 걸어야 고소증의 무리도 없기 때문이다. 지척이 안보일 정도로 점점 날씨가 안 좋아진다. 다행히 박대장이 회복되어 정상화됐다. 역시 박대장다운 저력이 있는 산악인임은 불문가지이다.
드디어, 오후 5시경에 최종목적지 ABC에 도착했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의 서기(瑞氣)가 충만한 바로 그곳 말이다.
경복인 7인 모두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
우리 인생에 길이 남을 일을 해낸 것이다. 이제 좀 마음이 놓인다. 총 산행시간 약 6시간이고 산행거리 약 7km이다.
안내판 뒤를 보니, You might die tomorrow. So live today.(당신은 내일 세상을 뜰지도 모른다. 따라서 오늘은 살아야 한다.) 쯤으로 해석될 터인데 이 구절이 마음에 들어서 옮겨와 본 것이다. 안내판을 배경으로 몇이서 인증샷을 했다.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고 좀 쉬다가 식당으로 갔더니, 예고된 대로 박대장이 오늘을 위해 준비한 피맥파티가 열렸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특별히 만든 피자에 맥주를 마시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다들 그러한 것 같았다. 창밖은 잔뜩 짓눈개비로 지척분간이 어려울 정도, 헌데 자꾸 졸리고 머리가 띵해진다. 모두들 그런다니 자면 안 된다는 가이드의 조언이다. 10시까지 자지 않아야 잠자는데 문제가 없단다. 식사후 이사장이 남은 소주를 가져와 서로 아껴가며 마시며 시간을 벌려고 애썼으나, 결국 주당들만 남아서 9시에 각자 잠자리로 돌아갔다.
〈트레킹 일곱째날/1월6일(금) : ABC에서 절경을 감상하다〉
오늘은 우리 모두에게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최고의 날이다.
05: 15 모닝콜, 05: 30 대망의 안나푸르나 일출장관의 파노라마를 볼 시간이기 때문이다. 밤새 눈이 내려 세상은 온통 새하얀 나라가 되어 있었다. 짓눈개비로 지척을 분간 못했던 간밤의 형적은 전연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일기가 좋아졌다. 천만다행이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눈길을 걸어 갖가지 많은 롱덜이 나부끼는 곳, 빙하가 바로 보이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좀 지나니 저멀리 동이 터온다. 안나푸르나 남봉, 1봉,히운출리, 3봉, 마차프츠레의 힌 옷으로 치장한 영봉들이 신령스럽게 아주 가까이에서 대형영화 스크린에서 보는 것 같이 눈앞에 절경으로 다가온다. 정말 감동적이다. 팬터스틱하다고나 할까.
한참 보노라니, 태고의 파란 하늘 연못에 안나푸르나 순백의 봉우리들이 거꾸로 풍덩 빠져 있는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전연 오염이 없는 태고 순연의 진면목(眞面目) 그것이었다. 무위불무위(無爲不無爲)의 무위자연 바로 그것이었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에서 시작하여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로 끝나는 배달겨레의 성전(聖典)인 천부경(天符經)의 탄생지로도 보였다. 나아가, 태초에서 창출된 히말라야의 순수한 정기가 그대로 영주함을 온몸으로 감지하며 그 기(氣)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참모습을 우리 7인은 만끽했었다.
차츰차츰, 황금빛의 스카이라인이 봉두(峯頭)에 그어지니 그 장관을 놓치지 않고 어화백은 카메라에 잡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우리는 또한, 지척에서 거대한 웅장한 장엄한 신들이 산다는 영봉들을 몰아지경에 한참동안이나 넋나간 듯 바라보다 경복45회산우회 깃발을 앞세우고 벅찬 마음으로 인증샷을 했다. 그리고 빙하더미를 내다보며 감탄하며 사진을 박기도 하였다. 이 벅찬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트레킹비 본전을 완전히 뽑은 기분이다. 언제 또다시 올 수 있단 말인가…. 우리뿐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우리는 그곳을 벗어나서 가까이 있는 박영석(1963년생) 대장 추모비로 갔다.박영석, 신동민, 강기식 세 영웅에게 묵념의 예를 표하고 나왔다.
09:15 하산하면서 ABC 요소요소에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생기(生氣)를 온몸으로 받으며 즐겁게들 기념촬영을 했다.
온통 은백색의 세계를 날씨도 좋은데,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면서 MBC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로 만날 수 있었다. 왔던 길을 각자 도생하는 방식으로 내려갔다.
거대한 물소리를 들으며 나도 무릅보호대를 하고 조심조심 속도를 내면서 밤부까지 내려왔다.
메이저 그룹이 앞장서 내려가고, 안교장과 나, 이사장의 세 그룹으로 나뉘어 오후 5:30 모두 밤부(2310m)로 내려와 숙소에 묵었다. 헌데, 뒤에 들으니 누군가는 내려가는 길을 거꾸로 올라가다 다시 내려오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총 산행시간 약 7시간 걸리고 산행거리는 약 13km에 달하였다.
종례에는 모처럼 네팔의 럼주가 나왔고 카고 백을 정리하면서 나온 소주 한 병을 나도 내놓아 보태도록 했다.
〈트레킹 여덥째날/1월7일(토) : 노상온천욕과 모닥불파티〉
조식후 모두 어제에 이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밤부를 출발하여 하산했다. 내려오는 길인데도 거듭된 가파른 오르막에서 무리진 중국인들, 한국 대학생 2명, 그리고 EBS에서 주최한 학생 트레핑에 참가한 어느 한 고등학생이 길가에 주저 앉아 힘들어 하는 모습도 보였다.
윗시누와에서 마지막으로 설산을 맘껏 감상하며 사진을 찍기도, 촘롱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에서는 어린이 둘에게 초코렛을 선물하기도 했다. 가이드 얘기로는 출산 등 유사시엔 요소에 마련된 헬기장을 이용하는 데 네팔인 1300불 외국인 3000불이 들며 공교육이 없는 네팔에선 아이 교육비로 월 200불이라는 고액이 든다고 한다.
촘롱에서 점심을 했다. 우린 맥주 13개를 마시며 지나온 길을 감회에 젖어 마신 맥주캔을 모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기도. 내려오면서는 안나푸르나의 서기(瑞氣)를 받아서인지, 여유가 생겨서 트레킹하는 한국인들을 알아보고 안녕하십니까 하고 수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많이 안나푸르나를 오는 모양이다.
촘롱을 출발하니 얼마 되지 않아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몇 친구들은 우의를 챙겼으나 나는 그대로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오면서 로사 가이드와 대화했는데, 4남매중 막내인 그는 7개국어를 하는 맏형이 네가 하고 싶은 거를 하라고 해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우체국 공무원시험에 합격하고도 부정이 심한 공직에 입문하지 않고 지금의 직업을 택해서 10년째 즐겁게 일한다는 등 건실한 사람임을 알게 해주었다. 며칠 지켜보니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비는 그치고 오늘의 목적지 지누(1780m)에 도착한 바, 상당히 세련됐다는 인상을 받음. 총 산행시간 약 6시간 그리고 산행거리는 약 9.5km 걸렸다. 여장을 풀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가녀린 숲속길을 내려걸어서 계곡가에 설치된 노상온천장에서 즐거운 목욕을 했다. 시설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우리는 가이드측이 제공한 시원한 맥주와 삶은 달걀을 탕 안에서 먹고 마시며 유쾌하게 우리들만의 온천욕을 즐겼다. 피로가 일시에 저절로 쑥 가시는 듯.
온천욕후, 롯지로 돌아와 저녁특식 염소고기를 먹고 보트카도 마셨다. 그리고 서로들 67캔의 맥주를 마셔댔다. 15명의 스텝들과 어우러져 식사를 하며 릴립 세프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간에 쌓인 서로의 정을 교감했다. 일종의 송별회 형식의 파티가 진행된 것이었다. 박대장은 그들에게 수고팁을 전달하기도.
판이 무르익어가자 홀에서 모두 나와 바깥 마당에 마련된 모닥불 주위에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사회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이사장이 맡아 능숙하게 이끌어 갔다. 간간이 맥주도 마셔가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였던 바, 덴마크 젊은이도 2명 합류했다. 일종의 국제 송 페스티벌이 벌어진 것이다.
먼저, 우리측에서 노래를 하면 네팔측에서 그리고 덴마크 순으로 진행됐는데, 매우 화기애애했다. 우리측은 내가 오동추야를 시작으로 박대장의 황태자의 첫사랑중의 축배의 노래, 최사장의 뱃노래 등 모두다 한곡씩 불렀으며 특히, 안교장의 네팔인과 어우러진 춤사위 등이 좌중의 격이 없는 흥을 돋구었다. 네팔측은 자기의 전통노동요를 주로 불러댔고 로사 가이드는 한국 노래 만남도 불러 한국통임을 알렸으며 덴마크측은 자국의 전통노래를 불러 이색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어느 정도 흥이 절정에 이르고 장작불이 서서히 꺼져가자 자연 해산되어졌다.
〈트레킹 아홉째날/1월8일(일) : 마지막 나야풀에서〉
08:05 서로들 임무를 마쳤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큰 울림소리를 내는 강을 끼고 내리막길을 하염없이 내려오니 굵기가 굵은 왕대나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거리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마지막 남은 캔디를 주고서 몇 번 휴식장소를 지나 마지막 오르막길을 좀 힘들게 오르니 넓은 비포장 도로가 나타났다.
11:30 시와이에 도착했다. 여러 종류의 차량들이 옹기종기 있었다.
시원한 맥주로 입가심들을 하고 비빔냉면으로 점심을 하는데 애처가인 용회장은 마누라 생각이 난다고 고하는 것이 아닌가. 말은 않 해도 대부분 용회장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점심후 찝차 2대로 덩컹거리며 내려가기 얼마후 광주진료소가 낯익은 나야풀에 도착했다. 지누에서 나야풀까지 총 이동시간은 약 4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9일에 걸쳐서 약 80km 걷고, 약 70시간에, 약 3000m 고도를 올라갔었던 히말라야 트레킹의 대단원의 막이 성공리에 내린 것이다. 헌데 어화백은 또 스마트폰을 분실한 모양인데 수소문해서 다행히 찾았다니 다행이다. 어화백의 것에는 이번 중요장면 사진도 다수 들어있기 때문에 못 찾았으면 손실이 클 번했다. 어화백은 이번 트레킹으로 네팔에 묘한 매력을 느끼게 돼 향후 4번정도 더 네팔에 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가이드로부터 안나푸르나 트레킹 인정서를 우리 모두 받았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우린 스텝들과 악수로 작벽인사를 서로 나누었다. 눈들을 보니 모두 그간에 많은 정이 들었던 모습들이다. 같이한 스텝들의 앞날에 좋은 일이 많기를 기원해 보았다.
소형차 1대로 나야풀을 떠난 우리는 처음 왔던 길 등을 지나서 포카라에 도착했다. 페와호수에 갔는데 별로 보트탈 의향들이 없어서 되돌아와 시장구경을 하기로 한다. 레셈 부가이드와도 작별을 했다. 순간 피곤이 엄습했다. 움직이기 싫어져 길가 스탠드에 걸터앉아 물끄러미 주위를 보고 있는데 아직도 스태미너가 남아 있는지 어화백과 용회장은 쇼핑에 재미를 붙이는 모양이다.
얼마후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로 와서 석식후 각자 휴식을 취하면서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 1월 9일 포카라와 카트만두 >>
다음날은 호텔에서 조식한 후 정원에서 저멀리 보이는 익숙한 안나푸르나, 마차프츠레를 감상하고서, 포카라 공항으로 이동하여 국내선으로 카트만두에 도착, 첫날 보였던 평양아리랑식당에서 모두 점심을 먹었다. 용회장은 북한식당은 처음이라고 한다. 난 청와대 재임시인 2002년 항일투쟁전적지 답사팀의 일원으로 하얼빌을 방문했을 때 들른 적이 있어서 두 번째다. 점심때 우리가 일찍 들러서인지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우린 점심을 해결하려고 한 것이지 김정은의 일을 돕는 차원에서 그 식당을 들른 것은 물론 아니었다. 맥주13병을 마시고 돌림방식 식탁에서 김치 등과 평양냉면을 먹었는데 특히 백김치가 맛있었다. 세수간, 미모의 아가씨가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음주하는 동안 어화백은 줄곧 노래방에서 떠나가도록 자신의 노래실력을 뽐내기도….
점심을 해결한 우리는 왕궁을 지나 타멜시장을 방문하고 쇼핑도 했다.
외국인들이 많은 것을 보니 국제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룹별로 자유시간을 갖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카트만두 공항으로 이동중 나는 주문했던 석청을 받았고 러시아워라서 거리는 복잡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빌렸던 침랑은 되돌려주고 석청은 카고 백에 넣은 다음, 우린 정든 가이드 로산과도 아쉬운 마지막 작별을 했다.
1월 9일(월) 20:30 KE696편으로 카트만두 공항을 이륙한 뒤 1월 10일(화) 05:30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찾은 우리는 새벽이라 여독을 안은 체 1월 20일 해단식 때 보기로 하고 각자 그리운 자기의 집으로 향하였다.
글을 마치면서 몇 가지 소회를 덧붙이고자 한다.
- 이번 트레킹으로 돈독한 경복애(景福愛)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12일간의 힘든 일정 속에서도 경복인만이 가진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화합하려는 성숙된 마인드를 평소 가진 산우들이라서 자칫 오해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제와 인내심으로 포용심을 발휘하여 결국은 서로간에 결속력을 공고히 하게 되었던 동문간의 경복애를 말하는 것이다.
안교장의 와이담(談)을 분위기 전환용으로 이해해주고, 나의 ‘귀하’와 ‘현지처’의 돌발 발언에 대한 산우들이 유연하게 대처해준 예를 들 수 있다.
- 이번 트레킹의 성공은 경복45회 동문들의 전폭적인 성원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조은구 동기회장의 성원 등 경복45회동문 여러분의 합일화된 끈끈한 격려와 지대한 관심 덕분에 우리 7인은 힘을 얻는 계기가 되었고 대과 없이 이번 트레킹을 끝까지 완수해낸 것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 이와 같은 프로젝트는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순 년령에 처한 우리들은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기 때문에 외국산행 등의 프로젝트 참여가 점차 어려워질 것이므로 몽블랑 트레킹 등 계획된 프로젝트는 계속적으로 동문들에게 참여의 기회가 제공되도록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감사합니다. ♣ 김종박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