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번역의 「아가멤논」에 보면 줄거리 외에도 여러 주제에 대해 정리가 잘 되어있는데 그 중에서 민주주의를 가지고 얘기해 보고자 한다. 아가멤논의 저자 아이스킬로스는 그리스가 참주정에서 민주정치로 가는 과도기에 살았었다. 우리가 그렇게 들어왔던 그리스 민주주의가 시작된 시기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 민주주의를 얘기하자는 것은 아니고 왜 우리가 그토록 민주주의라는 정체(政體)를 갈구하냐는 것이다. 특히 아직도 박정희시대의 독재정치가 시도 때도 없이 희구되는 한국사회에서 도대체 왜 민주주의를 해야하는가 왜 옳은가를 논리적으로 따져봄이 괜찮을 것 같다.
민주주의는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정체(政體)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작동되다 보니 소수의 의견은 가치적으로 인정되지만 의사결정 사항은 되지 않는다. 때문에 종종 이런 부분에서 민주주의가 왜 옳은가라는 시비 꺼리가 생긴다. 역사적으로 다수가 그르고 소수의 의견이 옳은 적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은 직접민주주의를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루소는 4년에 한번 주인 노릇하고 나머지는 노예로 지낸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리고 막상 인민들이 피땀 흘려 세워놓은 이 민주주의에 현대의 인민들은 적극 참여하지도 않는다. 선진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투표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민주주의를 해야만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자존심상 문제이다. 원래 민주주의가 성립된 이유와도 같다. 돈 있고 똑똑한 자본가 계급들이 귀족들에게 평민취급 받는 게 아니꼬운데서 민주주의 바람이 분 것이다. "니는 하는데 나는 왜 못해", "니가 왜 우리를 리더해야돼?","너는 우리가 뽑아줘서 정치하고 있는 거야?"라는 고도의 자존심문제를 민주주의는 해결해 주고 있다. 4년에 한번 착각하고 살아도 좋으니까 우리가 니들 주인이다는 존심만은 갖고 살자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민주주의가 최고의 제도라기 보다는 현재의 인류가 지금까지 해온 정체중에 가장 훌륭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군주제도에서 세종대왕 같은 왕만 계속 나온다면 굳이 군주정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세종대왕이 붕어빵 찍듯이 계속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주제는 냉·온탕을 왔다갔다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최소한 최악의 상태는 방지할 수 있다. 정치를 하는 소수엘리트가 정책결정을 좌지우지하더라도 최악의 결정은 국민이 찬성하지 않는다. 다수결의 결정이 그를 수도 있지만 군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최악의 선택사항은 애초에 거론되지도 않기 때문에 그나마 안 망하고 진보할 수 있는 체제가 바로 민주주의 인 것이다. 「역사의 종언」을 쓴 후쿠야마는 헤겔이 말한 정반합은 이제 끝났다면서 민주주의라는 정(正)에 반(反)이 나타나 합(合)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민주주의로서 시대는 계속 갈 것이라 말했다. 그 만큼 현재까지는 훌륭한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 지말이 옳다고 하니 일단 말까지는 하게 하는 정체이다. 그렇다 보니 무슨 일 하나를 해도 영 시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독재시대에는 있을 수 없었던 부안핵폐기장, 새만금 문제 등이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하는데 드는 당연한 사회적 비용으로서 화끈하게 밀어 부치던 전두환이 좋았다고 하는 몇몇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인지를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