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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판> 보이지 않는 이의 손길‥ [3]
"크크큭……, 돈 좀 있냐?"
철수가 기분 나쁘게 조소를 띠며 세크메트에게 물었다. 그 모습에서는 불량함이 물씬 풍겼다.
"차림새 보아하니 돈깨나 많은 계집애인가 본데, 돈이 없을 리가 없겠지. 크크큭……."
철수의 빈정거림에도 세크메트는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다.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그저 묵묵하게 시선을 앞에 두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마네킹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우 섬뜩함과 동시에 얼어붙을 듯한 강한 살기가 느껴졌다.
철수는 거기에 전혀 개의치 않고 다시금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더도 말고 딱 10만 원만 줘라, 불량배한테서 구해준 값치고는 싸지? 응?"
"……."
"크크큭……, 이 계집애 완전히 쫄아서 얼었나 보네…….
너한테 해코지하려는 마음 없으니까 걱정 마라, 난 그냥 돈만 받으면 되니까……."
철수는 아무런 대꾸 없이 묵묵히 서 있는 세크메트를 보며 자신에게 말도 못할 정도로 겁먹은 거라고 단정 지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적어도 주변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을 공포에 대상으로 보고 있기에 그녀 역시도 예외가 아닐 거라 본 거다.
"철수야!!"
계단 밑을 힘겹게 뛰어 내려온 철수 아버지가 다급히 철수를 불렀다.
"아- 놔. 저 노친네, 그냥 집에 들어가 있지……."
철수는 다가오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면서 짜증이 밀려온 나머지 잠시 고개를 뒤로 젖힘과 동시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자기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아버지가 매우 귀찮았다.
"그만 들어가자, 철수야."
곁에 다가선 철수 아버지가 철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철수는 귀찮단 듯이 그걸 뿌리치더니 이내 앞에 서 있는 세크메트를 가리키며 입을 연다.
"이 계집애한테 사례비를 받아야 해."
"이놈의 자식아, 뭔 놈에 사례비를 받겠다는 거냐?! 아가씨 난처하게 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자. 응?"
철수 아버지는 철수를 빨리 집으로 데리고 가야겠다고 판단했다.
행여나 자기 아들이 그녀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걱정된 거다.
"아- 놔 쌍. 이 계집애 구해줬다면서?! 그럼 사례비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인마, 그런 걸로 생색내기냐? 사례비를 받든 말든 그건 내가 알아서 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아- 이 노친네, 나이는 많이 처먹었으면서 요즘 세상 돌아가는 사정 모르네.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이 녀석아, 제발 아비 말 좀 들어라."
철수는 아버지에게 해서는 안 될 심한 말까지 했지만, 이미 수백 번은 넘게 경험해온 듯 철수 아버지는 거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이! 계집애! 멀뚱히 서서 뭐 하고 있어?! 빨리 사례비를 내놓으라고!!"
철수는 잠시 고개를 돌려 바로 앞에 서 있는 세크메트에게 소리쳤다.
세크메트는 거기에 아무런 반응 없이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이 녀석아, 그만두지 못해?! 너 때문에 아가씨가 겁먹고 있잖아!"
"비켜! 난 저 계집애한테 사례비를 받아야 하니까."
철수는 곁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밀치고 세크메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철수 아버지가 그를 가로막으며 완강히 저지한다.
"내가 집에 가서 돈 줄 테니까 그냥 들어가자 응? 제발 철수야……."
"그건 원래 나한테 줘야 하는 거잖아. 그 돈은 그 돈이고, 저 계집애가 사례비를 주는 거랑은 별개야!"
철수는 자기 아버지에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늘어놓았다.
"철수야, 아가씨 보는 앞에서 이 아비 망신 좀 그만 시키고 그만 집으로 들어가자. 응?"
"아- 이 노친네가 정말……."
"제발 철수야, 아비로서 부탁이다……."
철수 아버지는 철수의 옷자락 붙들고 늘어지며 거의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그 모습은 매우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잠시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세크메트는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들더니 이내 그걸 철수 아버지에게 건네며 말한다.
"받아요……."
"이… 이러지 마세요, 아가씨! 제 자식이 괜히 억지 부리는 거라고요! 어서 그 돈을 지갑에 넣으세요!"
철수 아버지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의 표정에서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크크큭……, 주는 걸 왜 마다해? 남이 주는 성의를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철수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그녀가 건넨 수표를 잽싸게 낚아챘다.
"철수야……."
철수 아버지는 다 포기했단 듯이 꺼져가는 목소리로 철수의 이름만 부를 뿐이었다.
이미 철수의 손에 돈이 들어갔기에 그도 더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 철수가 세크메트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위협조로 말한다.
"너, 앞으로 나 만날 때마다 만 원씩 갖다 바쳐라.
안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여자라 봐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
세크메트는 마치 철수를 없는 사람 대하는 양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이 계집애 여전히 쫄아서 아무 말도 못 하네. 겁먹지 마라, 나 집으로 돌아가니까."
철수는 그렇게 말을 내던지더니 이내 몸을 돌려 계단 위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결국, 그 자리에는 세크메트와 철수 아버지만 남아있게 되었다.
"정말 미안해요. 제 자식이 워낙 경우가 없어서 이런 무례를 범하게 되었네요.
정말인지 아가씨한테 너무 죄송스러워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전 괜찮으니까 마음에 두지 마세요……."
세크메트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철수 아버지에게 안심하라는 듯이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녀가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이런 미소를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수 아버지는 혹시나 그녀가 화를 억지로 삭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한 점의 가식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순수했다.
"그럼 이만 실례할게요."
그녀는 가볍게 묵례를 하더니 이내 바로 앞에 주차된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새벽 2시 30분,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건물 중의 하나인 이곳에 종수와 종규가 들어왔다.
깔끔한 외관에 걸맞게 건물 내부 역시 백색의 대리석으로 치장되어 호화스러워 보이는 건물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차로 연구소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연구소 복도를 걷던 종수와 종규는 거대한 통유리로 막힌 실험실의 내부를 보았다.
이곳저곳에서 사복 차림이거나 흰색의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들이 보였고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모니터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그림과 공식, 그래프들이 정신없이 비치면서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정보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주위에는 수십 대의 컴퓨터와 더불어 각종 실험기구가 책상 위에 깔렸고 그 한가운데에는 사람보다 큰 거대한 시험관 수십 개가 자리 잡고 있다.
바로 그때 어느 나직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거기 멀뚱히 서서 뭐하는 거야?"
종수가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세크메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흰색 가운을 걸치고 있고 옆구리에 서류를 끼고 있는 그녀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세크메트, 여기 데리고 왔다.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
종수는 곁에 있는 종규를 그녀에게 떠넘기더니 더는 자신이 할 일은 없단 듯이 그대로 어디론가 가버렸다.
얼마 동안에 정적이 흐르고 세크메트는 고개로 신호를 보내며 종규에게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종규는 엉거주춤한 채로 설렁설렁 그녀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깔끔한 인테리어의 도시적인 공간이 나타났고 마치 카페를 연상시키는 방 한쪽 테이블로 종규를 안내한 세크메트는 자리에 앉자마자 들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 위에 펼쳐 보이더니 이내 입을 연다.
"안보가 중요한 상황이라 미리 실험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랄게.
우선 너의 동의를 얻어야 해서 그전에 가능한 범위 안에서 실험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할게.
일단 네가 동의를 함과 동시에 너의 신체는 나의 실험 대상이 되는 거야."
종규는 침을 꼴깍 삼키며 세크메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략 5~7회에 걸쳐 내가 실험 중인 약물이 혈관주사를 통해 너의 체내에 투여될 거야.
그 약물은 오랫동안 동물실험을 거쳐 효능이 입증되고 이제 마지막으로 인체 테스트를 하는 것으로써 어떠한 질병과도 연관되어 있지 않아.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은 치료제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인간의 신체에 변화를 주어 우리가 목표하고자 하는 효능을 가진 신체로 바꾸어주는 약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약물의 투여 반복에 따라 점차 너의 몸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날 거란 것을 미리 말할게.
물론 그 변화는 실험이 끝나면 다시 원상태로 복구할 수 있으며 현재로서 어떠한 종류의 영구적 신체 손상을 준다고 생각되지 않아.
하지만 실험 기간 상당한 불편함을 느끼게 될 거란 것이 예상돼.
그리고 그에 따라 피실험 대상자의 편의를 위한 일부 장치들이 임시로 몸에 삽입될 거야.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 나중에 동의 후에 차차 설명하겠지만 상상하는 만큼 고통스럽거나 위험한 일이 되진 않을 테니까……."
마치 평소에 준비해 두었던 말처럼 세크메트는 한 박자도 쉬지 않고 말했다.
"설명은 알아듣겠는데 뭔가 알맹이만 쏙 빠져서 확신이 들지를 않아요.
적어도 저한테 무슨 실험을 하는지 미리 알려주실 수는 없나요?"
"미안하지만, 이곳은 비밀리 프로젝트들이 진행되는 곳이라 무엇보다 안보가 중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어."
"그렇군요, 그런데 숙식제공과 보수 문제는……."
종규는 최대한 욕구가 드러나지 않게 자제하면서 조심스레 보수 문제에 대해 그녀에게 물어봤다.
"일단 약물 1회 투여마다 6억 2,000만 원씩의 수당이 지급돼.
실험기간 내내 이곳 연구소 안에 머물러야 해서 당연히 숙식제공이 되고 실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그에 따라 약간의 돈이 더 지급될 수도 있어."
그녀의 말을 들은 종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너무나 놀라워서 믿기지 않았다.
며칠 약물이나 투여받으면서 이곳에서 편히 지내기만 하면 여태껏 상상치 못한 목돈을 만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나락까지 떨어진 그 같은 실패자가 그 상황에서 더 뺄 것도 없었다.
"좋아요. 실험에 참여할게요."
종규가 당당하게 동의 의사를 밝히자 세크메트는 서류철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어 들어 펜과 함께 그에게 밀어 보냈다.
"실험에 대한 동의서야. 일단 읽어보면 알겠지만, 미리 말한 내용에 관한 것들이 적혀 있으니 그리 신경 쓸 것은 없어.
다만, 여기에 사인하는 순간부터 모든 계약이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만 알았으면 해."
세크메트의 말속에는 왠지 모를 엄숙함과 함께 알 수 없는 긴장감마저 서려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를 미리 경고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당장 눈앞의 돈과 안락한 잠자리가 급했던 종규로서는 그러한 미묘한 감정의 떨림 같은 것은 쉽사리 감지할 수 없었고 설령 느꼈었다고 해도 의식의 어디선가에서 일부러 무시했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종규가 사인하면서 너무나도 쉽게 그녀와의 계약은 체결되었다.
종규는 한 달간의 실험 참여 이후 최종 정산된 금액을 현금으로 실험이 끝나는 시점에서 받겠다는 조건으로 이 건물 지하에 자리 잡은 실험실로 옮겨졌다.
실험실로 옮겨지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몸의 곳곳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길거리 생활을 하면서 몸 구석구석까지 꼬질꼬질한 때가 끼어있었던 게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연구원들이 요구하는 종규 몸의 세척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가장 먼저 연구원들은 종규의 머리털을 완전히 밀어버렸다. 그 이유는 머릿속의 기생충이나 불순물이 실험에 차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리를 다 밀고 완전히 반들반들한 백구가 돼버린 후에 종규는 사방이 커다란 하얀 타일로 둘린 욕실로 안내되었다.
욕실 한가운데 마련된 넉넉한 크기의 욕조에 발가벗겨진 채 뉘어진 종규의 몸을 곧이어 비닐로 된 방수복을 입은 사람 넷이 달려들어 구석구석 소제하기 시작했다.
마치 도살된 돼지의 껍질을 벗겨 내듯이 연구원들은 그의 몸 구석구석까지 부드러운 솔로 수차례에 걸쳐 깨끗이 닦아내었다.
그리고는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의 털마저도 머리털처럼 깨끗이 밀어버렸다.
그런 그들의 행동에 종규는 심한 수치심 마저 들었지만, 이 모든 것이 끝나면 수중에 들어올 거금을 생각하며 꾹 참고 그들 하는 대로 몸을 맡겨두었다.
몇 차례 그런 식으로 몸을 씻어낸 후에는 마무리로 시큼한 냄새가 나는 소독액을 종규의 전신에 분사해대기 시작했다.
소독 전에 그들이 작은 마스크를 종규에게 건네주기는 했지만, 사방에서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소독액을 막기에는 그것으로 부족했다.
얼마 후, 소독이 끝난 후에 종규는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로 병실처럼 생긴 개인 방의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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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더 써야 엔딩포인트인데, 일단 시간관계상 여기까지만 씁니다.
다음편 많이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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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좀 그런삘이긴하죠.ㅎ
싸웠으면 철수가 털렸을듯.. 종규는 무슨실험을 받는건가요? ?
재미있게 잘봤어요.
6억2천이라.. 누군가는 평생도 못벌 돈일텐데... 정말 엄청나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