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군,소전리,후곡리에서
2003년 8월
입추가 니난 가을 문턱에서 월리산 길을 오른다.
도시 소음에 묻혀버리자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매미 소리와는 다르게
스님의 독경소리를 닮았는가 보다
오늘도 선방 댓돌에는 스님의 고무신이 보이질 않는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해남 녹우당(해남 윤씨 종가댁 사랑채) 은
수원에서 뱃길로 해남까지 이사를 갔다.
이 월리사 또한 염티고개 아래에서 이곳을 이사를 왔다고 전해진다.
목조건축은 조립식으로 만든 것이므로
기와를 벗겨내고 흙벽을 털어 내면 언제든지 이사를 할 수 있는
건축물이 된다.
방향도 바꿀 수 있고 몇 걸음 전후좌우로 옮겨가지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환경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곳은 오직 지구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이사 갈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할 텐데....
울리사 중창 때 마을 사람들이 마음을 모야 시주한 내력을 담은
초라한 비석을 뒤로 하고 소전리
돌탑(삼한시대 이후부터 이어진 마을신앙의 한 형태)이 안녕하신지
확인하였으니 발길이 후곡리로 향한다
수몰민의 간절한 마음이 사향탑 돌이 된 지금
비록 이곳이 고향은 아니지만 사향비 마음 만큼 또 이곳에
순정을 바치는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혹시 동네에 위화감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걱정도 많았던
그들은 얼마전 기르던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식구가 늘어 대청호를 오염시킬까 걱정이 앞선다며
빨리 새 주인을 찿아주어야 할 텐테... 한 마리 데리다
키울 수 있는지 필자에게 권하신다.
내가 공직에 있을 때 환경문제를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곳에 살아보니 내 생활 자체가 대청호 환경문제더라고,,,
수몰전 이 마을 주변에 구석기 유적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충북대로 옮겨진 고인들 자리를 아는데
혹시 가 보았는가요?
필자가 위치를 모른다고 하자 대청댐 수위가 낮아지면 다시
오라고 하신다.
기꺼이 안내를 해 주시겠다니 염치없이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려고 보니 이 집도 농가주택이다.
혹시 이사할 경우 해체하면 이사가 가능한 집이다.
필자가 어릴적 살던 집도 초가집을 기와(새마을 기와)집으로
수리할 적에 도로가 너무 가까워 얼마간 밀어서 옮긴 기억이있다.
물론 이동이 가능한 건물로 모두 대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영토의 한계도 있거니와 건물의 활용가치를 판단하면
더욱 그럴것이다.
그러나 작은 규모의 건물이라면 재사용이 용이한 조립식 건물을
요구하는 시대는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 아닌가 싶다.
월리사에서 절집을 옮겨지은 선현들의 지혜를 생각했던
필자는 오늘 우리에게 환경보호의 한 방향을 제시하였고
끝내 이름공개를 원치 않으셨던 농부의 생각과 실천은
늦여름 대청호반에 비친 햇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오감만족 대청호 체험 책자에 실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