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쯤 우리가족 남편과 아들과 나는 송도 유원지 근처 동네에 살았고 딸은 서울서 기숙사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만해도 송도 유원지 쪽은 별다른 시설이나 건물도 없었고 해변가가 그러하듯이
여름 한철 수영장만 붐비고 조그만 횟집들이 여럿 있을 뿐이었다.
얼마후에 비치 호텔이라는 큰 건물도 생기고 지금은 여러 종류의 위락시설과 모텔 큰 식당등이 줄비하여
그때의 모습 보다는 외형적으로 많이 발전 개발된 깔끔한 곳이되었고 더우기 가까운 곳에 송도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앞으로는 생활도 편리하여 선호하는 도시가 될 것이라는 말도 많은데...
내가 살던 그곳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 남동생네 집이 있었는데 동생네는 독일산 세파트 두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동생네는 조금은 한적하고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개를 기르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이해되었는데
그 개들의 이름이 돈 좋와 였다.
동생은 개를 무척 좋와해서 자주 그놈들을 데리고 가까운 산으로 운동도 다니고 하였는데
높은 쏘프라노의 음성이었던 올캐가 돈 좋와 하고 개들의 이름을 부를때면 우리 집 까지도 높고 특이한 그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독서를 하다 그 소리가 들리면 나도 나가 함께 개들의 이름을 부르며 합세 동조
하였는데 늘 왠지 멋적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왜 개 이름을 이렇게 지었서 좀 이상하네 아무리 돈이 좋와도...."하고 말하면 올캐말이"형님 그래야
부자가 되지요.돈이 좋다고 불러줘야 돈도 자기를 좋와하는 사람에게 오지 않겠서요?
물런 웃음 속에서 한 말이지만 개 이름을 돈과 좋와로 짓고 하루에도 여러차레 돈 좋와를 소리쳐 부르면서
그 마음속에 아마 부자되고 싶은 희망도 욕심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세상일이 어디 마음 먹은 대로 성사되는 법 없듯이 그후 사업에 손을 댄 동생이 두번의 부도를
내면서 가산만 탕진하고 그 여파로 가정마져 파탄된후 연로하신 어머니에게 어미없는 두 아이와 병든
몸으로 큰 짐이 되여 살다가 우리형제중 맨 처음으로 세상을 떠난지가 15년이 되여간다.
돈 좋와를 부르며 물질적인 풍요를 바랬던 그 올캐는 이혼후 맹열한 직업여성이 되어 꿈 대로는 아니겠지만 그런대로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지금은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고있는 조카들에게도 도음이 되여주고 영종도에서 혼자 조용히 살고 있는데 우연한 기회에 영종도에서 만났을 때,두마리의 햐얀 개를 데리고
있었다.
깜짝 놀란 내가 "아니 또 개 길러 두 마리나"하였더니"형님 돈 싫으세요? 나는 지금도 돈이 좋와서 돈 좋와를 부르며 돈 좋와를 데리고 살며 돌아다녀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하였습니다.
돈 좋와를 함께 부르며 풍요와 화목을 꿈꾸던 동생은 백석 하늘의 묘역에 잠들어 깨여날 길 없는데....
동생과 함께 뜻을 같이하든 그 여자(올캐)는 지금도 건강한 몸으로 돈 좋와를 부르며 살고 있구나.....
인생 길이 수천.. 헤아릴수 없이 많다고는 하지만 별란 생각과 별란 바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음을 느끼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으로 살고있는 사람들을 별란 사람이라 여기는
내가 혹시 별란 사람아닐까?하는 생각드니.....아! 머리아파 게보린이 어디있더라???
첫댓글 ㅎㅎㅎ 정말 옛날 생각 나네요~~ 그 셰파트 들 이름이 돈 좋아 였구나...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그런때가 있었지요*^^*
역시 기억해주네 그당시 우리집에서 기르던 세파드는 이름이 헤라 였섰지.....힘도세고 먹성도 좋고 국희는 가끔 보았겠지만.. 하교하고 집에들어오던 석인이 등에는 늘 크고 우람한 헤라의 발자국이 나 있섰는데....다 지나간 옛 이야기가 되버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