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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禮山] - 미래를 경영하는 산업형 전원도시
예산군(禮山郡)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중북부에 위치한 군이다. 대전당진고속도로가 지나고, 예당평야가 발달하여 사과 재배가 유명하다. 동쪽은 공주시, 서쪽은 홍성군과 서산시, 남쪽은 청양군, 북쪽은 당진시·아산시와 접한다. 예산읍이 중심지가 되어 온양방면, 당진방면, 홍성방면, 공주방면 등 네 갈래의 교통로가 이곳으로부터 펼쳐져 있어 충청남도 북서부지역 도로교통의 중심이자 분기점 역할을 한다.
예산 문화관광 http://www.yesan.go.kr/culture/
수덕사(修德寺) http://www.sudeoksa.com/
예산보부상유품전시관[禮山負褓商遺品展示館]
국가기록유산 걸으면서 쓴 눈물의 기록 - 보부상
http://www.memorykorea.go.kr:7779/mov/bobusang.html
예산 홍보영상
http://www.yesan.go.kr/usermovie/movieView.ht?sf=subject&sk=&id=2&pid=&start=0&seq=27
충의사(윤봉길의사)
http://www.yesan.go.kr/usermovie/movieView.ht?sf=subject&sk=&id=4&pid=&start=0&seq=65
예산8경
수덕사, 가야산, 충의사, 삽교평야, 추사고택, 예당저수지, 임존성, 예산사과
보덕사[報德寺] 덕산면 서원산(書院山)에 있는 사찰.
삼층석탑 문화재자료 제 175호. 보덕사 내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이다. 원래는 근처의 가야사터에 있었으나, 1914년 일본인이 몰래 반출하려던 것을 보덕사 주지의 항의로 돌려 받아 이 절에 남아 있게 되었다. 2층의 기단 위로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을 올려놓은 모습인데, 처음에는 5층이었던 것이 훼손되어 3층 까지만 남게 되었다 한다.
수덕사[修德寺 예산8경] http://www.sudeoksa.com/
수덕사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으로 남아 있는 기록은 없지만, 백제 위덕왕(威德王:554~597) 때 고승 지명이 처음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제26대 왕 고종(高宗) 2년(1865)에 만공(滿空)이 중창한 후로 선종(禪宗) 유일의 근본도량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덕사 대웅전(修德寺 大雄殿) [국보 제49호]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물 중 특이하게 백제적 곡선을 보이는 목조건축이다. 건물의 건립연대(1308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서, 다른 건물의 건립연대를 추정하는 기준이 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국내에 현존하는 목조건물 가운데 봉정사 극락전(鳳停寺極樂殿, 국보 15))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 국보 18)에 이어 오래된 건축물로서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덕사 범종각/법고각
종을 거는 부분인 용뉴의 용은 이름을 포뢰(상상의 동물)라고 하는데, 고래를 무서워해서 만나면 크게 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을 치는 당목은 고래 모양으로 만든다는 기록이 있는데, 수덕사 당목이 고래의 형상을 표현하고 있으니 의미를 살렸다고 봅니다
수덕도령과 덕숭낭자의 버선꽃
덕숭총림(叢林)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등을 모두 갖춘 사찰.
고려 공민왕(1330-1374) 신령한 오동나무를 얻자 악공을 시켜 거문고를 만들게 하였는데 신품(神品)이었다 . 1365년 노국공주가 죽자 공민왕은 그녀의 화상을 그려 걸어놓고 악사로 하여금 거문고를 타게하며 상심을 달랬다. 그러다가 공민왕은 신하에게 시해당하고, 거문고는 충신 길재의 손에 넘어간다.
고려가 망하자 길재는 고향 선산에 내려가 후학을 양성하며 달 밝은 밤이면 거문고를 뜯으며 망국의 한을 달했다. 길재가 죽자 거문고는 조선왕조의 가보로 세전된다.
대원군은 운현궁에 머무를 때에 악사에게 거문고를 타게하고 주흥을 즐기면서 저 소리를 들으면 공주의 환영이 떠오른다고 하였다 한다.
1895년 10월 8일 밤 일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했는데, 그 시신 옆에 피에 흥건히 젖은 거문고가 있었다한다. 그 후 거문고는 운현궁으로 되 돌아와 의친왕 이강이 즐기게 된다. 1930년대경 수덕사 임야의 소유권문제로 부당함을 따지러 온 만공(滿空)스님을 만난 의친왕은 불법에 귀의할 것을 맹세하고 만공스님을 스승으로 사제의 예를 올리고 그 신표로 거문고를 건네게 된다. 이때 만공스님은 그의 스승 경허스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염주를 주었다. 거문고를 가지고 수덕사로 돌아온 만공스님은 덕숭산 중턱에 소림초당을 짖고 한적할 때마다 거문고를 탔다고 전한다. 이 만공스님의 스승이 경허(鏡虛)스님이다. 700년이란 긴 세월을 살아오는 이 거문고의 생명력은 과연 무언인가.
수덕사 견성암[見性庵]
일제강점기의 여류시인 김일엽(金一葉: 1896∼1971)이 1930년대부터 수도를 한 곳(환희대歡喜臺)으로도 유명하다. 1930년 도흡이 중창하였고, 1965년 벽초가 법당을 2층으로 세워 인도식으로 꾸몄다. 1980년대 들어 덕숭총림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칠근루(七斤樓)라는 현판의 글씨는 월면의 친필이다. 법당 내부에 산신탱화와 신중탱화·아미타불탱화·칠성탱화가 모셔져 있다.
수덕여관
예산군에 따르면 불교 조계종 수덕사는 충남도 지정기념물 제103호 이응로 선생 사적지(수덕여관) 맞은편에 숙박시설을 갖춘 '고암체험관'을 건립키로 하고 도 지정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신청했다.
수덕사는 체험관을 지하 1층, 지상 1층에 건물면적 138.24㎡ 규모의 전통 한옥 목조건물로 지어 방 6개의 숙박시설로 운영할 계획이다.
고암 이응로 화백의 본부인인 박귀희 여사가 운영했던 수덕여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림 공부를 하겠다며 21살 연하의 여성과 훌쩍 파리로 떠난 남편을 기다렸던 이곳은 여류화가 나혜석 역시 지친 몸을 누이던 곳이기도 하다.
예당국민관광지[禮唐國民觀光地]
720m에 이르는 산책로와 정자 2개소, 식당, 여관, 주차장 등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섰으며 중부권 최대의 낚시터인 예당저수지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찾아가려면 예산읍에서 버스를 타고 후사리에서 내리거나, 승용차일 경우 경부고속도로 천안인터체인지로 나와 21번 국도를 타고 예산 방향으로 가다가 619번 군도를 타고 간다.
예당저수지(예산8경)
예당호 예산군의 ‘예’와 당진군의 ‘당’을 한 글자씩 사이좋게 따서 이름을 붙인 예당호는 예산군과 당진군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63년에 완공됐다. 중부권 최대의 저수지인 예당호의 크기는 여의도의 3.7배에 이르는 무려 9.9㎢로 그 둘레만도 40km이다.
예당평야[禮唐平野] 면적 약 99 km2. 삽교천(揷橋川)과 그 지류인 무한천(無限川) ·곡교천(曲橋川)등 3개 하천 유역에 형성된 충적평야로 예산군과 당진시의 이름을 따서 예당평야라고 하였다. 토양은 해성토(海成土) 내지 하성토(河成土)로 비교적 비옥하며, 쌀을 비롯하여 보리 ·고구마 ·콩류를 생산한다. 또 예산지방은 잎담배와 사과의 산출이 많다.
<예당호조각공원>
예산보부상유품전시관[禮山負褓商遺品展示館]
국가기록유산 걸으면서 쓴 눈물의 기록 - 보부상
http://www.memorykorea.go.kr:7779/mov/bobusang.html
예로부터 이 지방에는 예덕 상무사라 하여 예산·덕산 지방의 부보상을 관리하던 정부 관서가 있었다. 부보상이란 상품집산지에서 구입한 일용잡화물을 지방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던 행상인으로 부상(負商:등짐장수)과 보상(褓商:봇짐장수)으로 나뉘었다.
의좋은 형제 테마공원(이성만과 이순)
의좋은 형제상 "동생 네는 새 살림이라서 돈이 많이 들겠지"라고 생각한 형과 "형님네는 식구가 많으니 돈이 많이 들거야” 라고 생각한 아우가 밤마다 몰래 볏짚을 서로 날라다 주는 이들 형제가 볏단을 지고 서로 만나는 모습을 형상화한 2.5m 높이의 형제상
대흥동헌은 조선 초인 태종 7년(1407)에 창건되었고, 1914년에 대흥면사무소로 개조하여 사용되다가 1979년 해체복원 정비되었다. 대흥동헌은 기본 구조가 잘 남아 있고, 예산지역에 현존하고 있는 유일한 관아건물이며 1405년에 건립된 대흥향교와 함께 대흥지역의 역사를 증명하는 건축물로서 역사적·건축학적 보존가치가 있다. <예산옛이야기축제>
임존성(예산8경)
추사고택(제예산8경)
고택은 영조의 부마이며 선생의 증조부인 김한신(金漢藎)이 건립한 18세기 중엽의 건축물로서 당시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다. 원래는 99칸집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면적 265㎡ 가량이며 안채와 사랑채·문간채·사당채가 있다. 현재의 고택은 1970년대에 복원되면서 규모가 많이 축소된(53칸) 모습입니다
유복량수(有福量壽) 많은 복과 한없는 수명이라는 뜻. 본래 "有大福" "無量壽"라고 써서 방문위에 붙여져 있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인하여 바탕지는 낡아 없어진 것을 1976년 고택복원시 떼어 표구한 것이라고 합니다.
신안구가(新安舊家) 성리학의 시조인 주희가 '신안인'이므로 이 집도 주자성리학자의 전통을 지닌 집이라는 뜻
이 나무는 1809년(순조 9) 10월에 이 마을에 살고 있던 완당(阮堂) 김정희가 청(淸)나라 연경(燕京)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와서 고조부 흥경(興慶)의 묘 옆에 심었던 것이라 한다. 그는 부친 이조판서 김노경(金魯敬)이 연경으로 갈 때 수행했다 한다. 한편 서울의 완당 본저에도 조선 영조가 하사한 백송이 있어 그 가문의 상징처럼 되었다.
백송은 소나무와 사촌 간인 나무이지만, 생김새가 유난스러워 눈에 잘 띈다. 줄기는 흰색 바탕에 밝은 회색의 얼룩이 신비롭게 어우러졌다. 그래서 백송이라고 부른다.
충의사(윤봉길의사 예산8경) 덕산면 시량리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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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결에 실패한 윤봉길은 현장에서 체포돼 일본으로 압송됐다. 충의사는 일제시대 독립 투사인 윤봉길의사가 태어나 망명길에 오르기까지 농촌계몽과 애국정신을 고취한 곳으로, 윤의사의 의거와 애국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립되었다.
매년 4월 29일에는 윤의사의 애국충정을 기념하는 매헌 문화제가 열리며 윤의사의 귀중한 유품은 기념관에 전시되어 보물 제 568호로 보호되고 있다.
탈해사[脫解寺]
한국고건축박물관 http://www.ktam.or.kr
우리민족 고유의 건축미를 응집 표현하여 고건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세계인들에게 그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서 건립된 국내 최초 유일의 건축박물관이다.
제1전시관은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국내의 대표적인 사찰, 탑, 불상등 17종의 축소모형 100여점이 전시되고 있으며 제2, 3전시관은 국보급 문화재 축소모형이 전시되고 있다.
전국에 산재된 국,보물급 고건축문화재를 1/10,1/5로 축소 전시하여 한국건축 발달사를 한자리에서 견학, 연구, 계승 발전시키는데 목적이 있으면 선조들의 정신문화를 고취시키고 후학들에게 우리 건축문화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향천사 예산읍 향천리 57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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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예산8경)
신라때는 가야산사를 짓고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조선시대까지도 덕산현감이 봄, 가을로 제를 올렸던 곳으로,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진달래와 억새풀은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높이 600m급의 산으로는 놀라운 고도감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내륙의 산과는 달리 바다가 가까운 곳으로 상대적 해발 높이가 높기 때문이다. 대개의 산행은 남연군묘에서 계곡으로 들어가 석문봉에 가까운 안부에서 석문봉으로 올라가는 코스로 시작되거나 마무리 된다. 석문봉은 가야산에서 가장 바위가 많은 봉우리로 이곳에서 옥양봉으로 가는 능선을 올라가게 되어있다
남연군의 묘[南延君─墓] 이곳에는 원래 가야사(伽倻寺)라는 절이 있었고 무덤자리에는 탑이 서 있었는데, 1844년(헌종 10) 대원군은 명당자리를 찾아 옛 가야사를 불지르고 탑을 부순 후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의 묘를 썼다. 그리고 인근 골짜기에 절을 지어 보덕사(報德寺)라 이름짓고 개운사 주지인 도문(道文)을 초대 주지로 삼은 후에 남연군묘 수호일품대승(守護一品大僧)이라는 직책을 내려 묘를 돌보게 하였다. 7년 후 대원군은 차남 재황(載晃)을 얻었는데, 이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1868년 독일인 에른스트 오페르트(Ernst Oppert)가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교섭에 실패한 뒤 대원군과 통상문제를 흥정하기 위하여 이 묘의 시체와 부장품을 도굴하려다 미수에 그치기도 하였다. 이 사건으로 대외적으로는 서양인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고, 크게 노한 대원군은 통상수교거부정책을 강화하고 천주교탄압을 가중시켰다.
덕산온천 조선시대의 유학자 이율곡선생의 저서인 『충보』에 의하면 '학 한 마리가 이곳의 논 한가운데서 날아갈 줄 모르고 서 있기에 동네 주민들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날개와 다리에 상처를 입고서 논의 물을 열심히 상처에 찍어 바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3일간 계속한 후 그 학은 상처가 나아 날아 갔는데 이를 이상히 여긴 마을 사람들이 학이 앉았던 자리를 살펴보니 따뜻하고 매끄러운 물이 솟아나고 있어 그 후로 이곳을 약수터로 사용하였는데 피부병, 신경통 등에 신통하게 잘들어 이 마을을 온천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라고 덕산온천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삽교평야(예산8경)
예당호의 맑은 물과 풍부한 용수를 바탕으로 황금벌판의 기름진 땅에서 생산된 벼를 최신설비가 완비된 미곡종합처리장에서 가공 선별한 고품질 청결미로 신선도가 높고 밥맛이 좋은 황금쌀이 생산된다.
예산 쪽파 쪽파는 하나의 비늘줄기를 심으면 여러 쪽으로 나뉘어 자라서 붙은 이름으로 보인다. 쪽파를 한자로 분총[分葱]이라 쓰기도 하는데, 이도 여러 쪽으로 나뉜다는 의미일 것
예산쪽파는 뿌리는 희고 단단하여 탄력과 윤기가 좋아 전국에서 최고의 품질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전국 생산량1위이다.
예산 달집축제 우리민족 고유명절인 정월 대보름을 맞아 한해의 무사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11회 예산달집축제가 지난 2010.2.27일 무한천 둔치공원에서 군민 2천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쳤다.
예산 맛집 충남 예산의 유명한 음식이 소갈비, 어죽, 곱창, 수덕사산채비빔밥이라고 한다.
예산 맛집 소복갈비/삼우갈비
과거에 박정희 대통령도 자주 들렀다는 그 유명한 충남 예산에 있는 소복갈비집. 예산 갈비는 소복식당과 삼우갈비가 쌍벽을 이루는데 외부인들은 소복갈비를 많이가고, 예산사람들은 삼우갈비를 주로 간다고 한다
예산사과(예산8경)
우리군의 사과면적은 1995년도 2,184ha로 가장 많이 재배하였으나 그후 다른 과종에 비하여 작업이
예산 황토 사과, 속빨간사과 레드러브 사과 등이 있다
산채정식 수덕사 앞에는 현재 50여 산채정식 식당이 성업중이다. 그 중에서 무릉도원(TV 방영,50년), 그때그집(TV 방영), 수덕골 미락(산초 간장장아찌, 더덕구이) 무릉도원식당 산채정식으로는 오리훈제와 조기찜 그리고 홍어찜이 나온다
곱창 예산군 오가면 역탑리 소재 '할머니딸 숯불 곱창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이 집의 구이가 유독 부드러운 비결은 따로 있다. 곱창 속 얇은 막을 벗겨내기 때문이다. 구이와 찌개거리도 부위를 달리해 쓴다. 중간 것은 굽고, 앞뒤 부위는 전골감이다.
붕어찜, 어죽 저희 줄포회관은 25년 전통의 맛을 지켜온 모범 음식점 입니다. 예당저수지에서 갓 잡아올린 참붕어찜과, 새우매운탕과, 어죽 ,메기매운탕, 장어구이가 있다.
윤봉길 문화축제 매헌 윤봉길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혼을 기리기 위한 '제38회 윤봉길 문화축제'가 오는 2011.4.29일부터 5월 1일까지 예산군 덕산면 충의사 일원에서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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