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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 사랑
어제 말씀봉사하며 나눴던 저의 나눔을 이곳에 올립니다.
솔직히 이곳에 올리기가 참으로 부끄럽지만, 어제 참가하셨던 스테파노 형제님께서 부탁하셨다고 하기에 올립니다.
왜냐면... 스테파노 형제님이 마지막까지 겨자씨 잘 마치시고 꼭 봉사를 하셨으면 하는 바램에서 입니다. 하하하..
스테파노 형제님... 부담 갖으십시오. 부담 갖으시고 열심히 하셔서 좋은 봉사자 되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
사랑합니다.
말씀: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요한 15,16)
주제: 부르심
안녕하세요.
저는 수원교구 젊은이기도모임에서 봉사하고 있는 서윤희 율리안나라고 합니다.
부르심이라는 주제로 말씀봉사 요청을 받았는데요, 우선 오늘 이 자리에 각 자의 성소에서 부르심의 길을 멋진 모습으로 걷고 계신 분들이 너무나 많이 계셔서... 아직 걸음마조차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 제가 부르심의 길에 대해서 말씀을 나눔에 너무나 부족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하지만 부족하겠지만, 부르심의 길에 응답해 온 그동안의 저의 나눔이 이곳에 계신 청년분들에게 각자의 성소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환기의 시간, 혹은 그동안 돌보지 않았던 각자의 성소의 씨앗을 찾아보고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면서 오늘 나눔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이번 말씀봉사를 준비하면서 떠오른 마태오 복음 9장 9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 그리고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을 읽고 짧은 기도로 시작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 9, 9-13)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을 삼시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갈라 5,13-14)
어머니 뱃속에 제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저의 생의 전부를 계획하시고 살펴주신 주님, 이 시간 당신께서 어떻게 당신의 계획과 뜻을 제게 알려주셨는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당신께서 만들어주시고 보살펴주시고 지켜주셨던 손길과는 반대로 죄안에서 병든 영혼의 모습으로 살았던 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다시, 그리고 또 다시 불러주셨던 당신의 사랑을 전하려고 합니다. 아버지 당신께로의 부르심이 얼마나 우리를 자유케 하는지를 저의 입술을 통하여 전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고, 부족한 표현들이 당신을 사랑을 전하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당신의 성령을 이곳에 충만케 하시어 이 시간 당신께서 뜻하신 모든 것을 이룰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지켜주시옵소서. 이 모든 기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저는, 아버지의 표현에 따르면 당신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구교집안의 아버지와 전형적인 유교신앙, 무속신앙 안에서 자라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관면혼배를 받으셨고, 어머니는 결혼 후 저를 뱃속에 가지셨지만 세례를 받는 것이 왠지 모르게 너무나 무서운 것 같아서 성당에 안나가셨고 그런 상태에서 제가 태어났습니다. 친가 친척분들의 권유로 어머니는 세례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갓난 아기인 저를 성당에 데리고 가서 유아세례를 받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저의 유아세례가 끝나고 사람들이 성물을 산다는 소리를 듣고, 성물을 선물로 알아들으신 어머니는 이런 걸 하면 선물을 아기한테 사서 줘야 하는구나 생각하시고 성물방으로 가셔서 아무거나 하나 사아겠다고 생각 하셨다고 합니다.
아무리 봐도 예쁜 건 하나도 없어보였고 십자가가 하나 눈에 띄어서 그것을 사서 집에 돌아오셔서 방에 걸어두었는데 그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두렵고 무서운 마음 때문에 편치 않은 마음으로 그날 밤에 잠이 드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서 방문을 누군가 계속 두들겨서 어머니는 아기인 저를 품에 안고 방문을 열었는데 온몸에서 너무나 하얗게 빛이 나는 흰옷을 입은 할머니 한분이 서계시더랍니다. 어머니는 너무나 두렵고 무서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어머니 품에 안겨있는 저를 손에 대시며 "이 아기가 맞아... 내가 맞게 찾아 왔어."라고 말씀하시며 자꾸 방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시는데 어머니는 무서워서 그 할머니를 못 들어오게 막고 실랑이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던 순간 그 할머니가 하얀 빛으로 변하시면서 방안으로 들어왔고 그 빛은 방을 한바퀴 휘감으며 벽에 걸어둔 십자가 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너무 놀래서 잠에서 깬 어머니는 벽을 바라봤고 진짜로 벽에 걸어둔 십자가에서 빛이 나고 있어서 소리를 지르면서 아버지를 깨웠는데... 알고보니 그 십자가는 야광 십자가여서 빛이 나고 있던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일년후에 세례를 받게 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이 이야기를 오랜 시간 동안 제게 들려주시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너무나 생생하기만 한 그 꿈의 장면들을 가슴에 품으시고 오랫동안 기도하셨고,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그 꿈속에서의 빛이 나는 할머니는 성모님처럼 느껴졌고 웬지 모르게 내 딸을 당신께서 처음부터 점지해 두셨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일부러 제게 얘기해 주시기가 싫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다가 이번에 제가 수녀원에 입회를 하겠노라고 말씀드리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께서도 마음을 비우시고 주님께 내 딸을 이제 보내드리겠다고 결심하게 되면서 제게 말씀해 주셨던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이유는 이렇게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의 길에 따르겠노라고 결심하고 행했을 때, 주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당신께로 부르시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그리고 많은 이들을 통하여 당신께서 손수 준비하셨음을 알려주신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열고 느끼려 하는 만큼 꼭 알려주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이런 작은 이야기들안의 사건들은 지나치기 쉬운 중요하지 않은 하나의 사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우리가 그것을 하느님 안에서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안에서의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할 때, 그 작은 이야기 하나는 쉽게 지나치게 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닌 부르심의 사인이 되며, 싹을 띄우고 가꿔나가야 할 우리 성소의 씨앗이 되며, 그분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소명을 발견하게 되는 하나의 징표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저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저는 참으로 신기하게도 항상 장래희망에 수녀님을 쓰는 아이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친구 어머니의 권유로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의 작은 샘물모임이라는 성소자 모임에 매달 나가게 되었습니다. 안양에서 서울 정릉의 수녀원까지는 참으로 먼 거리의 곳이지만 저는 매달 꼬박꼬박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중학교 2학년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그곳 성소자 모임에 나갔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제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대학 생활이 그동안 너무나 제가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충족시켜주는 곳으로 다가오면서부터 저는 신앙생활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당에 나가야 하는 주일마다 제게 너무나 특별한 즐거운 놀꺼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전공을 주거학으로 선택하고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 공부를 시작하면서 부터는 신앙안에서 배우고 제게 심어졌던 생각들이 함께 전공을 공부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바보스러운 생각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더 강하게 부각시키고 표현할까. 어떻게 하면 유명한 디자인 회사에 들어갈까. 유명하게 이름을 떨치면서 성공한 디자이너로 살 수 있을까에 모든 마음을 빼앗긴 채... 오히려 하느님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어리석은 이들로 바라보고 선교하시는 분들을 마주하면 짜증을 내는 모습으로 변해갔던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삶을 꿈꿨던 저의 어린시절의 마음과는 정반대로 변하여 4년간의 대학생활, 만 4년간의 직장생활 시기를 살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정말 큰 내적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성공을 추구하며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어느날 전혀 행복하지 않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작은 일에 화만 잘 내고, 무엇을 하든 만족할 수 없고, 일을 핑계로 매일 매일 술을 마시며 또한 사람들에게 한없이 차갑게 말하고 행동하는 제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고 오히려 몸과 마음을 함부로 여기며 돌보지 않고 망가뜨리면서 지낸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저를 다시 부르셨습니다. 우연하게 수원교구 젊은이기도모임에서 하는 제10차 젊은이 성령안에 새생활 피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때 저는 오늘 시작에 나눈 복음말씀처럼 죄 가운데에 있고 영혼이 병들어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쉬지 않고 저를 살피시며 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예수님, 그리고 돌아왔을 때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저는 이 때 제가 세례를 통해서 받은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부르심을 회복하고, 그분의 자녀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젊은이기도모임에서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성령 안에서 다시 새롭게 살아가는 삶이 너무 행복하기만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제가 품었던 꿈을 다시 꺼내게 되었고 저는 2년 6개월 전에 수도성소로서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그런 응답에 주님께서는 순조로운 과정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입회 전날 폐결핵이라는 병명으로 숨조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응급병동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하느님에 대한 원망과 알 수 없는 마음들로 많이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았을 때 그 시간 또한 주님께서 더 저의 성소에 대한 동기와 열망을 정화시켜 주시려 주신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 끝없이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저는 저의 의지로 그분께 받은 사랑을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수도자로서의 부르심의 길만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수 있는 봉헌의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어떤 길을 가든 매순간 주님 뜻에 맞는 응답을 드리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제게는 제가 어떤 옷을 입고,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할지가 너무나 중요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주님께서는 기도모임 봉사자로서 2년 6개월을 더 살게 하시고 그 시간을 통해서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당신께서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지를 제게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 과정의 시간은 제게 고통과 수많은 내적인 갈등안에서 고민했던 시간이었지만, 그 또한 주님께서 저를 위해 준비해두신 계획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끝없이 우리를 당신에게로 초대하십니다. 초대하시기 위해서 오늘날까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당신의 부르심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만나주시듯이 당신에게로의 구체적인 초대의 부르심 또한 인격적으로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 부족하지만 항상 그분께로 향하기를 희망하는 신앙생활 안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처지와 여건과 상황들, 우리 마음가짐의 모양새들...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며 그에 맞게 초대하십니다. 어떤 길을 가느냐가 그분 마음에 드는 응답일수도 있지만, 그분께서는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모양이 그려지는 길(성직,수도성소, 결혼성소, 평신도 독신성소)로의 초대에 응하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부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다는 의미입니다. 결코 그 초대에 응답했다는 것 하나로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소명을 자동적으로 다 했다는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어떤 길을 통하여 당신께로 더 가까이 이끄실지를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각자의 몫에 가장 잘 맞는 방법으로 당신의 선하신 계획안에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완전한 봉헌을 희망하는 성직자.수도자로 살아가는 것이든, 혹은 평신도로서 독신을 지키며 교회에 봉사하는 삶이든.. 하느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그 삶의 형태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주님께서 주신 성소를 제대로 분별하여 따르는 것은 중요합니다. 또한 세상의 것을 모두 버리고 완전한 봉헌생활을 하게 되는 성직, 수도자의 길 또한 큰 의미가 있는 길입니다.하지만 그것이 부르심을 의미하는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불러주시고 내가 응답한 그 삶의 형태를 통해서 주님께서 주신 그 사랑의 소명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작할 때 나눴던 갈라디아서의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그 삶의 형태를 통해서 우리가 당신께로 가는데 있어서 더 자유로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불러주시고 우리가 선택한 그 길이라면 주님께로 향하는데 결코 구속이되며 짐이되며 마냥 고통스러운 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무엇보다 우리가 그분 사랑에 자유함을 얻어서 주님께서 주신 가장 중요한 계명, 한분이신 하느님과 우리의 이웃과 서로 사랑하는 삶을 이뤄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소 즉 당신께로 초대하는 길로 불러주시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저 또한 이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수도성소로 초대해 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네"라고 응답했습니다.
여기 계신 많은 청년분들, 혹은 이미 구체적인 부르심에 길에 응답하시고 살아가고 계신 신부님, 수도자, 봉사자분들..
다시 한번 그분의 사랑으로의 초대의 부르심을... 우리를 부르셨던 그 첫 음성을 소중하게 다시 느끼시길 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사랑하는 김종훈 아우구스티노 신부님께서 제가 작년 기도모임 회장으로서 모임을 섬기면서 봉사자의 모습으로서 어려운 갈등을 하고 있을때 해주셨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이미 사제이지만, 이 길을 걸어가면서 사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며 진짜 사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사제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미 사제로 완성 된 것이 아니라,
되어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결심한 것이며
그분께서 부르시는 그 마지막 순간에는 더 되어진 사제의 모습으로 있기를 희망하며 사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 그렇게 주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소명을 이루시며
그분께서 불러주시는 그 길을 통하여 주님께서 계획하신 모습대로 되어가는 삶 사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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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님의 음성에 "네"라고 응답한 울 사랑스런 율리안나~ 아버지의 사랑안에 머물면서 아버지가 계획하신 대로 한걸음씩 내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천사가 되길 기도할께~ 넘 고맙고.. 마니 사랑해~*^^*
저는 오랜기간 피정갔다 오는 그런건줄 알았거든요... 어젠 정신적 충격이 좀 있어서..^^ 당신께서의 부르심을 아직 이해못하고 다가오지 않지만 율리안나 자매님께서 보여주신 그 따뜻한 미소는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건강하시고 부족하지만 자매님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