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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잡이
이청준
지난 봄 갑자기 세상을 등지고 만 민태준 형은, 그가 이승에 있었다는 흔적으로 단 한 가지 유물만을 남겨놓고 갔었다. 아는 이는 다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별로 값지지도 않은 몇 권의 대학 노트로 되어 있는 비망록이었다. 우리는 그가 원래 시골집에 논섬지기나 땅을 가지고 있었고, 처신에도 별로 궁기를 띠지 않았기 때문에 설마 옷가지 정도는 정리할 게 좀 남아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민형의 임종 순간이 노트 몇 권밖에 남길 수 없을 만큼 비참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나이 서른넷이 되도록 결혼 살림도 내보지 못한 민형은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주변을 말끔히 정리한 다음 스스로의 임종을 맞았으리라는, 어쩌면 그 임종은 민형 자신에 의해 훨씬 오래 전부터 미리 계획되고 준비된 것인지 모른다는 주위의 추측이 유력했던 것이다. 하고보면 그의 유품인 비망록은 그가 간 뒤에도 세상에 남겨두고 싶은 유일한 소지물이었음이 틀림없었을 거라고들 했다.
한데 그가 죽은 뒤로 친구들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바로 그 초라한 유품 비망 노트였다. 이것도 웬만한 친구들 사이에는 잘 알려진 일이지만 민형은 소설을 한 편도 쓰지 않은 소설가로 통하고 있었다. 소설을 쓰다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든가, 무슨 문예잡지의 추천 같은 것을 받았다든가 하는 일도 없는데 이상하게 우리는 그를 소설가로 불러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도 우리가 그렇게 불러주는 것을 전혀 불쾌해 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여겼었다. 이유가 있기는 했다. 민형은 언제나 소설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고 또 우리와 소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소설을 쓰려고 언제나 마음을 벼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소설을 벼르기만 했지 실제로 그것을 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필경 소설을 써내고 정말 소설가가 되고 말 것처럼 그는 소설에 대해 열심이었다. 우선 자기를 소설가라고 불러주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온 것부터가 그런 증거였다. 이것은 민형에게 썩 중요한 일면이기도 하지만, 그는 한번 어떤 식으로 자기를 규정하고 나면 그것을 아주 사실로 받아들여 놓고 다시는 의심조차 해보지 않으려는 엉뚱한 구석이 있었다. 민형이 자기를 소설가로 믿어 버린 것은 그의 그런 엉뚱한 성미 탓이 아닌가도 생각되었다.
하여튼 민형은 그렇게 우리들의 기대를 받으면서 소설을 열심히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그리고 쓰려고 늘 때를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도 물론 그를 정말 소설가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작품을 내놓지 않은 민형에게 그런 말은 참을 수 없는 비웃음으로 들릴 수 있으리라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는 터였으니까 말이다. 한데 우리가 그를 그냥 소설가로 마음 편히 부를 수 있었던 가장 좋은 구실은 그가 일 년에 몇 번씩이고 어디론가 취재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작품을 쓰고 있는 우리들도 취재 여행은 그렇게 간단히 나다니질 못하고 있는 터에 민형은 만사를 젖혀두고 자주 그런 일을 찾아다니곤 하였다. 별로 하는 일도 없이 하숙방에서만 지내던 민형이 며칠 집을 비우고 없으면 그때는 영락없이 취재 여행 중이었다. 그러나 여행을 갔다 와서도 민형은 그리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창원군 ×마을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기에 가봤더니 차비 손해 봤다는 생각은 안 들더구먼.
이 정도로 말꼬리를 감추고는 그저 비실비실 웃을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여행 때문에 사실은 민형의 시골집 땅뙈기가 다 날아갔다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민형은 그 숱한 취재 여행의 어느 것 다음에도 정말 작품을 내놓지는 않았다. 소설을 쓰는 눈치가 없었다. 그러다 그는 죽어 버린 것이다. 그가 죽은 것도 병 때문이 아니었다. 그 무렵 민형은 결핵으로 조금씩 각혈을 하고 있기는 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게 별로 낙망할 필요는 없다고 수없이 위로를 했고, 또 사실 각혈 정도의 결핵이라면 요즘의 의학이 충분한 구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데도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것이다. 아마 그 경우에도 자기는 이제 정말 난치의 병에 붙들려 버린 것이며 머지 않아 자신은 흉한 시체가 되리라고 단정하고, 그가 단정한 것이면 무엇이나 재빨리 그 상태가 되어 있고 싶어하는 그의 성미대로, 민형은 곧장 목숨을 끊어 버린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니까 모든 죽음이 그렇듯이 그의 죽음에 대한 좀더 중요한 부분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는 셈이었다. 그런 가운데도 민형이
죽은 뒤에 그가 남긴 조그마한 비망록이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는 것은 거기에다 그가 취재 여행에서 수집해 놓은 소재들이 참으로 진기하고 귀중한 것들뿐이기 때문이었다. 전에는 소문으로밖에 별로 내용에 관해서 알려진 바가 없었던 몇 권의 비망록은, 그런 수많은 소재들에 관한 현지 답사, 문헌 조사, 상상 그리고 의문점들로 가득 차 있어서 취재 메모라기보다는 차라리 연구 노트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대개는 산간 벽지에 파묻혀 있거나 이미 사라져 없어진 민속, 설화, 명인거장 같은 것들에 관한 것이어서 지극히 얻기가 힘든 자료들일 뿐 아니라, 그것을 취재하는 태도도 족히 그 방면에 일가를 이룬 전문가의 면모를 엿보이게 하는 데가 있는 것이었다.
서커스 줄광대라든가 남해 고도의 어떤 늙은 나전공(螺鈿工), 또는 전라북도 어떤 정자(亭子)에 사는 여자 궁사(女子弓師)들의 이야기 같은 것들은 자료를 읽어나가는 것만으로도 금방 어떤 작품의 윤곽이 잡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형은 그 어느 하나도 작품으로 다듬어 내지를 못하고 만 것이다. 마치 그는 작가가 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내심의 깊은 절망을 달래기 위해 그의 일은 작품의 자료를 수집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던 것처럼 그 자료만 수집하고 다녔던 것이다. 적어도 민형을 알고 있는 우리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민형은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은 소설가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꼭 한 편, 그것도 우수한(내 생각으로는) 작품이 있는 것이다.
이제 나는 여기서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실상 앞에 말한 모든 이야기는 지금 내가 말하려는 고백을 전제하면서 지금까지 주변에서 생각되고 있었던 사실들을 그대로 적었을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 자신으로서는 그런 것들에 좀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을 나는 바로 오늘 아침에 알게 된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은 사람은 매잡이라는 이 이야기의 제목이 눈에 익은 것을 먼저 알 것이고, 좀 더 주의 깊게 생각했다면 나의 이름으로 발표된 소설 중에 이미 그런 제목이 하나 있었음을 기억해냈을 것이다. 그리고 왜 같은 제목으로 또 이야기를 시작하는가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매잡이라는 제목의 글은 이것으로 두 번째가 되는 것이다. 한데 한꺼번에 고백을 하자면 이 매잡이라는 제목의 글이 이번으로 세 번째가 된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앞서 말한 대로 벌써 발표한 매잡이와 지금 이 글을 합한 두 편은 물론 나의 것이다. 거기에 또 한 편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모두 세 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른 하나는 누구의 것인가.―그것이 바로 작고한 민태준 형의 것이다. 그것을 나는 오늘 아침에 비로소 나의 책상에서 찾아내게 된 것이다. 그것은 물론 아직 세상에 발표된 것은 아니다. 민 형이 소설을 한 편도 쓰지 않은 소설가가 아니라는 것을 안 것도 오늘 아침이었고 그 때문에 나는 다시 이 세 번째 매잡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게 된 것이니까.
하지만 이 세 편의 소설은 사실 거의 같거나 비슷비슷한 것들이다.
이제 나는 민형의 이 기이한 소설이 어떻게 나에게로 들어오게 되었는가 하는 경위를 밝혀야겠다. 민형의 죽음이나, 어째서 두 편의 같은 소설이 생겨났고 거기다 또 내가 비슷한 소설을 하나 더 쓰려고 하는가는 거기에서 대강 이유가 밝혀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자면 먼저 제일 첫 번의 나의 매잡이가 쓰여지게 된 경위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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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어느 날 나는 잠깐 나를 보고 싶다는 엽서를 받고 민 형을 찾은 일이 있었다. 물론 그 전에도 나는 자주 민 형을 만났고, 그가 결핵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지나친 절망감을 덜어주려고 애를 써왔기 때문에 그날의 엽서는 나에게 퍽 이상한 느낌이 들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맞는 그의 첫 마디에서 약간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이 전보다 훨씬 창백해진 듯했지만 그는 그런 것은 별로 의식하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퍽 차분하고 사무적이었다.
잘 와주었어. 좀 상의할 일이 있어서. 자네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일인데.
어둡거나 초조한 빛이 조금도 없는 태도였다.
무슨 횡재라도 할 땡순가?
그가 단도직입으로 용건부터 꺼냈으므로, 나는 여느 사람을 만난 것처럼 그 즈음 민 형의 건강을 묻지도 않고 바로 그 일이라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그는 오히려 너무 중요한 일을 서둘러서 안 됐다 싶은 듯 다리를 꼬고 앉으며 차분한 소리를 했다.
저, 내가 아마 여행 다닌 얘기를 제대로 들려준 일이 없지?
왜?
오히려 여유를 갖지 못한 것은 내 쪽이었다. 나는 별로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반문하고 있었다.
왜라니?
그것은 터부였으니까. 자네가 여행 이야길 들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거든.
나는 엉겁결에 내뱉은 왜에 대해 변명하고 있었지만, 말해진 것은 또 그것대로 사실이기도 하였다. 민 형이 비로소 조금 허탈스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아까부터 베개 부근에 펼쳐져 있던 노트를 끌어당겨 내 앞으로 밀어놓았다.
아마 자넨 요즘 소설을 너무 많이 써 버려서 이야기 밑천이 동이 나고 말았을 테지.
나는 그의 말에 귀를 세우며 눈으로는 그 노트를 쫓고 있었다. 그것은 민 형이 아직 한 번도 보여준 일이 없는 여행 비망록이었다. 메모지를 다시 정리하여 적은 듯한 노트는 마치 중학생 수학 공책처럼 가로세로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민 형이 자신의 한계에서 완성해 놓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나는 비망 노트를 내려놓고 민 형을 건너다보았다. 갑자기 기분 나쁜 연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친구는 도대체 어쩔 심산인가. 사실 나는 작품의 테마에 빈곤을 느낄 때 그것이 무진장히 쌓여 있을 민 형의 취재 노트를 그려본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영원히 한 편의 소설도 쓰지 못하고 말 민 형을 상상했다. 그런 생각에 젖다보면 나는 마지막까지 잔인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민 형으로부터 그 테마와 소재들을 얻어내고, 그리고 그렇게 하는 데 민 형이 즐거움을 가져줄 수 있다면……. 그러나 물론 그런 망상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소재 중에서 꼭 하나 소개해주고 싶은 게 있어.
나의 어렴풋한, 그리고 두려운 예감은 맞아 들어갔다. 민 형은 나에게 말하고 나서 속셈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덧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소개뿐이야. 내가 알아본 것을 다 얘기해 주면 소재를 파는 꼴이 되고 말 테니까.
그리고 그는 그 소재를 꼭 나에게 한번 다루어보게 하고 싶다면서 아마도 내가 거기에 대해 조금만 조사를 해 보면 가만히 둬도 쓰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하리라는 지레 장담을 덧붙여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 그러면서 그는 나에게 그 비망록 중의 한 대목을 가리켰다. 하지만 나는 그날 민형의 집을 나오면서도 내가 끝내는 전라북도 어느 산골 촌락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리라는 사실 이외에는 모든 것이 아직 불확실한 상태였다. 그가 소개해 준 소재라는 것은 결국 그 지방 어느 마을에 살고 있다는 매잡이에 관한 것이었는데, 사실 나는 그의 말과는 달리 썩 호감이 가는 데가 없었다. 거기다 민 형은 처음 다짐대로 자신의 조사에 대해서는 전연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더욱 막연할 뿐이었다.
나는 그가 건네준 여행 차편과 취재 요령 따위가 적힌 메모지를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쑤셔 넣고 돌아오긴 했으나 아무래도 그것에 대해 소설을 쓰게 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왜 구태여 그가 나를 택해 꼭 그곳으로 가라고 하는지, 또 어떻게 민 형이 나에 관해 그토록 모든 것을 확신해 버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여튼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의 권유는 나에게 어쩔 수 없는 부채처럼 나를 강제해 왔고, 더욱이 내가 이야기에 반신반의하는 얼굴을 보고 민 형이 미리 마련한 여행비용을 꺼내 놓았을 때는 더 시들한 대답만을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한사코 사양하고 싶은 여행비용마저 결국 얻어 담고 나오게 만든 민형의 고집이었으니까.
내겐 이젠 재물이 필요 없어. 아마 없게 될 거야.
그는 부득부득 돈을 떠맡기면서 아주 여유만만하게 웃었다. 나는 이제 거의 바닥이 났을 법한 그의 시골집 형편과 병세를 생각했으나 그는 정말 이제 돈이 필요 없는 사람 같은 얼굴을 했다.
결국 나는 다음날로 곧 길을 나섰다. 민 형이 될 수 있으면 빨리 다녀오기를 원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다녀와야 할 형세이고 보면 하루라도 일찍 길을 나서는 편이 나을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산골 마을에 무슨 기대를 가질 수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일이 있기는 했다.
민태준―이라는 인물, 도대체 이 친구가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닌 행적이 어떤 것인지. 이번 기회에 그것을 좀 알아보고 싶었다. 그가 찾아간 마을에서,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그가 무엇을 어떻게 조사하고 돌아다녔으며 그 사람들의 눈에 비친 민 형이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알아보고 싶었다. 그것은 썩 재미있는 일일 듯했다. 왜냐 하면 정말로 민 형의 취재 여행이 우리에게는 완전히 안개 속이었고, 어떤 것은 정말 금기에 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여행은 결국 민 형이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민형 자신의 행적이 그 여행의 관심사가 되고 만 셈이었다. 그리고 그래 나는 결국 민형이 소개하고 싶다던 매잡이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는 것이 없이 바로 이튿날로 그 전라도의 산골 마을을 터덜터덜 혼자 찾아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마을로 들어간 바로 그날부터 나는 갑자기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민 형이 어쩌면 모든 것을 미리 알고 나를 때맞춰 그곳으로 보냈던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마을에는 매잡이의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매잡이―.
내가 매잡이라는 제목으로 최초의 소설을 쓰게 된 경위는 그 동기가 대략 그런 식으로 발단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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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진짜 산골이었다. 동남북 세 방향이 재를 넘게 되어 있고, 다만 서쪽 한 곳만이 계곡을 타고 마을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내가 마을을 찾아 들어간 것은 동쪽 새머리 재를 넘어서였다. 재를 올라설 때까지도 나는 마을이 도대체 어느 골짜기에 숨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없었고, 더욱이 마을 남쪽으로 솟은 봉우리가 북쪽 재너머로 겹쳐보였으므로 나는 아직 몇 개의 산을 더 넘어야 하느니라 싶었다. 한데 고개를 올라서 보니 마을은 바로 발 아래였다. 마을이라기엔 좀 뭣한 데가 있을 만큼 사십 호 가량의 초가집들이 산비탈을 타고 버섯처럼 돋아나 있는 작은 산촌이었다. 그나마 서쪽으로 뻗어나간 분지형의 평지는 논을 일구느라 집을 짓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민 형이 말한 마을임엔 틀림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걸은 시간이 비슷했고, 또 그가 메모해준 마을의 지세가 걸맞은 데가 많았다.
나는 고개 위에 벌렁 드러누워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아마 폐가 나쁜 민 형도 이곳을 왔을 때는 이 고개에서 숨을 가라앉혔으리라 생각하면서 나는 잠시 묘한 감회에 젖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한 집을 찾기 시작했다. 며칠 밤을 지낼 잠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보여서였다. 며칠이라고 한 건 민형의 말이지만 적어도 오늘만은 이 마을에서 밤을 지내야 할 형편인 것이 틀림없었다. 민형이 미리 일러준 집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 버섯 같은 집들 사이에는 도대체 사랑채고 뭐고 따로 방을 내고 있을 형편이 되어 보이질 않았다.
―민형이 반 병중에 며칠을 묵은 마을에서 설마.
나는 결국 설마에 맡겨 버리고 속좋게 담배 연기만 뿜어 올리고 있었다. 고개에서는 긴 봄 해가 이제 빛이 엷어지고 있었지만 마을은 벌써 산 그림자가 드리워진 지 오래였다. 그러고 누워 있으려니 나는 자신의 행색이 새삼 우스워졌다. 꼭 민형의 장난에 내가 속아 넘어간 것 같기도 했다. 저 조그만 마을에서 매잡이고 뭐고 이야깃거리가 있을 게 뭐냐. 어차피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이 마을의 매잡이가 아니라 민 형의 그 기이한 행적이 아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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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연기가 걷히고 나서 마을이 방금 밤의 정적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할 무렵에야 나는 고개에서 내려와 마을로 들어갔다. 밤눈에 보아 그런지, 아니면 도회의 고층 건물에만 익은 눈으로 모처럼 초가 마을을, 그것도 고개 위에서 멀리서만 보고 와서 그러는 것인지 아까는 그렇게 초라하고 납작해 보이던 집들이 마을로 들어서 보니 제법 처마들이 키를 넘고 마당들도 꽤 널찍널찍했다. 나는 길목에서 한두 사람을 마주쳤으나 말을 건네 볼 생각도 없이 한참 동안 골목길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주 저녁 기운이 살에 배어들기 시작할 즈음에야 골목을 내려오는 사내 하나를 붙잡고 민 형이 일러준 소년의 이름을 대었다.
중식이네가 자는 방이 어디지요?
사내는 낯선 목소리에 생각이 날 만한 사람으로나 여겼던지.
누군가?
아주 친근한 목소리로 물으며 다가와서는 어둠 속에서 이윽히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영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듯, 그러나 우선 말대꾸를 고쳐 해야겠다고 생각한 듯 갑자기 정중한 태도로 말해 왔다.
어이쿠, 이거 실례했습니다. 난 아는 사람인가고…….
그리고는,
그놈들 자는데…… 일루 오십시오.
앞장을 서서 내려오던 길을 내쳐 걸어 내려가더니 집들이 끝나는 데까지 와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저 밭 건너에 집이 한 채 있지요? 바로 그 집입니다.
호롱불에 창호지 창문만 희미하게 드러나 보이는 집을 가리켰다.
고맙습니다. 예까지 일부러.
아닙니다. 저…….
사내는 그러나 잠시 무슨 말을 입 속에 망설이고 있는 듯하다가는 그것을 금방 잊어버린 듯,
그럼 어서 가보십시오.
하고는 길을 되돌아가 버렸다. 나는 돌아서서 그 불빛을 표적으로 밭둑을 더듬더듬 걸어 건너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호롱불이 내비치고 있는 창호지 문은 정말 민형의 말대로 조그만 별채의 것이었고, 그 곁에는 불도 켜지 않은 본채가 벌써 시커멓게 잠이 들어 있었다. 사랑방으로 쓰인다는 그 별채의 방문 앞으로 갔으나 안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 나는 잠시 기색을 살피다가 가만가만 몇 번 방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불은 켜 있는데. 다시 귀를 문에 대고 동정을 살폈다. 마루가 없이 바로 문지방으로 올라서는 방이었으므로 거기서 나는 바로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안에서 가는 숨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누가 잠을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안되었지만 할 수 없이 문을 당겨보았다. 문은 쉽게 열렸다. 갓 열 살쯤 됐을까말까 한 소년이 시커먼 배를 내놓고 모로 잠이 들어 있었다. 민 형이 일러준 소년은 아닌 성싶었다. 중식은 오히려 청년 티가 나는 아이라고 했다.
얘, 얘.
나는 공연히 죄인처럼 가슴을 두근거리며 소년을 불렀다. 그래도 소년은 끄떡이 없었다. 다시 어떻게도 할 수 없게 된 나는 에라 모르겠다 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냅다 소년을 흔들어 깨웠다. 소년은 응응 볼멘소리를 하며 일어날 듯 몸을 뒤채더니 손을 떼자마자 이내 반대쪽으로 몸을 꼬며 다시 식식 숨소리를 높여 버렸다. 할 수 없이 소년을 버려두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언제쯤 오게 될는지 모르지만 그냥 중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불을 켜놓고 놈이 자는 걸 보면 중식이란 놈이 필경 오긴 올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러고 한참 앉아 있자니 다시 짜증이 났다. 중식이란 놈은 영 소식이 없었다. 밤이 깊어지니까 이제는 아주 녀석이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밤은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는 생각 끝에 소년을 다시 흔들었다. 이번엔 녀석이 깨어날 때까지 계속해서 흔들어댔다. 그제서야 소년은 몇 차례 짜증스런 앙탈 끝에 겨우 눈을 떴다. 눈을 뜨고도 놈은 나의 형체가 흐려보인 듯 한참 눈알을 멀뚱거리고 있더니 이윽고 어어 하고 이상한 감탄사 같은 소리를 하며 부스럭부스럭 자리를 일어나 앉았다.
누구요―?
요소리를 빼며 묻고 나더니 소년은 비로소 나의 윤곽이 완전히 들어온 듯 다소 경계의 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 중식일 찾아온 사람인데 중식인 어디 갔지?
나는 소년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재빨리 말했다.
중식이요?
소년은 뭐가 잘 생각이 나지 않은 듯 다시 한참 멀뚱거리더니 겨우 짐작이 집혀오는 듯, 그러나 나의 물음은 아랑곳도 하지 않은 채 새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어…… 아직도 안 왔어? 또 밤을 새우는개비.
하고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나에 대한 경계를 풀어 버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겨우 중식의 행방을 짐작했다. 소년의 말론 중식이 어디론가 가서 자주 밤을 새우고 돌아오는가 보았다. 그러나 이 소년은 더 이상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중식이 지금 어떤 집 헛간청에 들어박혀 있으리라는 것만을 알아내는 데도 퍽 애를 먹었다. 소년은 늘 나의 질문을 잊어먹었고, 또 경계심을 풀어 버리고 나서는 잠 기근에 오래 시달린 사람처럼 자꾸 잠으로 빨려 들어가려고 했으므로 나는 재빨리 말을 쏘아대어 겨우겨우 행방을 알아낼 수 있었다. 우선 중식 소년을 만나고 볼 일이었다. 이 소년에게서는 그가 헛간으로 가서 밤을 새우는 연유까지는 알아낼 가망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소년에게 그 중식이 있는 곳을 좀 같이 가보자고 했다. 처음엔 달래고 나중에는 마구 녀석을 윽박질렀다. 그렇게 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러자 마지못해 자리를 일어선 소년은 그럴테면 차라리 저 혼자 밤길을 갔다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미적미적 문을 나선 소년이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울사람은 오기만 하면 그 새끼만 찾아…….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겨우 서울의 민형을 생각했다. 사실 나는 그 사이 난처한 처지 때문에 바로 이 방이 민형이 며칠 묵었다는, 그리고 내가 바로 그곳에 지금 와 있다는 것이, 깊고 깊은 산골이라는 점에서는 인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비로소 방구석 어디에 아직 민형의 흔적이 남아 있기라도 한 듯 눈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민형을 생각했다. 그리고 아까 마을로 들어와서부터 지금까지 보아온 것, 이 버섯 떼 같은 초가 마을의 풍경이라든가, 밤길, 그리고 이 방의 불빛을 가리켜주고 간 사내라든가 방금 문을 나간 소년…… 들을 차례로 생각하면서 민 형의 표정 속 어느 구석에 그런 것들의 흔적이 스며 있었던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러다 나는 어느 순간 의외의 기척 소리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고 말았다. 방안을 두루 살펴보았다. 어디선가 딱 한 번 캑 하는 기침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온 것이었다. 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그것은 분명 방 안에서 난 소리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나는 다시 방바닥에 누웠다. 그리고 한참 아까 하던 생각을 계속하고 있는데, 나의 시선 속에서 무엇인가 어슴푸레 움직거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천장의 어둠 속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 그림자를 가까이 쳐다보았다. 매―나무토막을 못질해 놓은 벽에 매가 한 마리 머리를 콕 박고 앉아 있었다. 놈은 잠을 자다가 나의 기척에 깨어난 듯 눈을 굴리었으나 몸은 까딱도 하지 않았다. 내가 가까이 가자 놈은 목을 좀 빼어내더니 이내 천장에 어른거리는 자기 그림자가 이상스러워지고 있을 뿐인 듯 나를 피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때 밖에서 소년이 돌아오는 기척이 났으므로 나는 까닭도 없이 화닥닥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발자국 소리가 두 사람이었다. 소리가 문 앞에 이르러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곧 문이 열렸다. 눈에 잠이 더덕더덕 낀 아까 그 소년의 뒤로 몸이 훨씬 마르고 입을 굳게 다문 십칠, 팔 세가량의 소년 하나가 나를 넘겨다보다가 다짜고짜 꾸벅 절을 했다.
미안해! 중식이지?
나는 일어서서 소년을 맞았으나 그는 남의 집에라도 온 것처럼 두릿두릿하고 있었다.
들어와, 널 찾아온 거야.
나는 조금 시장기가 낀 소리로 말하며 소년을 손짓했다. 그러자 소년은 먼저 들어와 설 구석부터 살피면서 조심조심 방으로 들어왔다. 행동에 비해 눈알이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 소년은 퍽 영민해 보이는 데가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수척한 얼굴 어느 구석엔가는 슬픈 그림자마저 어려 있었다. 소년은 내가 자리를 가리킬 때까지 그러고 서 있기만 했다. 나는 주인이 되고 소년은 굳이 손님 행세만 하려고 하는 형세였다.
얼마 전에 여기 왔다 간 민태준이란 사람 알지?
나는 똑바로 소년을 쳐다보며 내 소개를 하려고 했다. 그러자 소년의 눈이 갑자기 반짝 빛나는 듯하더니 낑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힘을 주듯 답답하게 몸을 한 번 비틀었다. 그리고는 그를 데려온 소년을 보았다. 그러자 꼬마가 대신 말을 했다.
버버리라요.
전혀 뜻밖이었다. 시원시원하지 못했던 소년의 거동도 그제서야 짐작이 갔다. 민형이 그런 내색을 보인 적도 없었고 또 그걸 예상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니까. 버버리― 그것은 벙어리의 전라도 사투리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식은 그저 호적상의 이름이었을 뿐 마을에서는 그냥 버버리로 이름을 대신해 불러오고 있었다.
하여튼 나는 다시 한번 어떤 절망 비슷한 답답증을 느끼며 소년의 기색을 살폈다. 소년도 나의 표정에 무슨 충격을 받은 듯 안절부절 못하고 말을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때부터 나는 꼬마 소년의 도움을 얻어가며 답답한 대화를 계속해 나갔다. 소년은 여느 벙어리와는 달리 귀가 조금 뚫린 듯했다. 거기다 나의 입모습과 몸짓을 빠짐없이 살펴서 대부분의 말을 알아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말할 차례가 되면 눈짓 손짓을 아무리 되풀이해도 내 쪽에서 그걸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러면 그가 꼬마를 시켜 다시 나에게 말을 전하게 했다. 내가 이곳을 다녀간 민태준의 친구라는 설명을 다시 듣고 소년은 꼬마를 재촉하여 그럼 민 형의 소식을 잘 아느냐고 물었다. 꼬마 소년이 자기의 말을 제대로 전한 걸 보고 그는 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래서 우선 민 형이 잘 있다고 안부를 전하고 나서, 나는 민 형에게서 그의 소개를 받고 찾아왔으며, 원래는 민 형이 이 마을에서 조사해 간 매잡이에 관해서 알고 싶지만, 사실은 민 형이 이 마을에 와서 어떻게 지내고 갔는가도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고 여러 번 끊어서 사정을 말했다. 소년은 나의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알아들으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얼굴이 무척도 진지해 보였다. 가끔은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며 나름대로 감동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아주 슬픈 표정으로 낑낑거리는 것이었다.
매잡이―그 매잡이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부터 나는 새로운 긴장을 느끼면서 다음 이야기를 잇대어 재촉했다. 재촉을 하다 나는 답답하여 이번에는 바로 꼬마 소년에게 이야기를 시켰다.
매잡이. 그 쉰 살짜리 홀아비는 지금 어떤 집 헛간에서 언제 숨이 넘어갈지 모르는 지경이라고 했다. 그곳은 옛날 자기가 밥을 얻어먹고 있던 집 헛간인데 왜 거기에 그가 누워 있는지는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벌써 일주일도 넘게 거기에 버티고 누워서 밥 한 숟갈 입에 넣지 않고 빠작빠작 말라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내는 또 그곳에 들어가 누운 뒤로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왜 그가 거기서 그렇게 죽으려고 하는 것인지(그가 죽으려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고 마을에서도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미음 같은 것을 쑤어가지고 가서 사내를 달래보기도 했지만, 사내는 영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요즈음은 아주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라고, 더욱이 밤이 되면 그 근처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얼씬하지 않아서 무섭기 한이 없는데, 다만 한 사람 중식 소년만은 그곳을 자주 가 사내를 지켜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주 거기서 밤을 새우기까지 한다고. 소년의 이야기는 거기까지밖에 들을 수가 없었다. 눈에 주렁주렁 매달린 잠이 소년의 입을 더 놀릴 수 없게 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듣고 있던 중식도 피곤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실상은 나도 시장기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궁금증을 누르고 내가 중식 소년에게 이젠 자라고 손짓을 하니까 그는 갑자기 더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 듯 눈을 빛냈으나 이내 호롱불을 끄려고 하다가는, 다시 몸을 일으켜 천장에서 매를 잡아 내렸다. 그 매에게서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났다. 매의 어디에다 방울을 달아놓은 모양이었다.
소년은 매의 발에 맨 줄을 손에 감아 쥔 다음 불을 끄고 누워서 배 위에다 매가 앉은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는 모양이었다. 나는 윗도리만 벗고 그냥 자리에 누웠으나 시장기와 피로에도 불구하고 곧 잠이 오질 않았다. 일단 이야기를 거기까지 듣다 중단하고 나니까 그간의 의문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매잡이란 그 사내는 어떤 사람인가. 무슨 연유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잠자리에서까지 배에다 매를 얹고 자는 이 소년은―아무도 가지 않는 그 사내의 반 죽음 곁에서 밤을 같이 새우는 이 소년은 아마 그 연유를, 아니 그 연유뿐만 아니라 예상할 수도 없는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데 소년은 무엇 때문에 그 사내를 그렇게 가까이 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보다도 더욱 이상한 것은 민태준이란 사내였다. 그는 도대체 이러한 모든 사태를 알고 있기나 한 듯 제때에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이다. 그는 그럼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인가…….
소년도 쉽사리 잠이 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숨소리가 아직 고르게 잦아들지 못하고 몇 번씩이나 몸을 움직였다. 그때마다 배 위에 얹은 매가 어둠 속에서 잠이 깨어 눈을 디룩거리는 게 보였다. 소년이 잠이 든다 해도 아마 매란 놈은 편한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숨결에 소년의 배가 부풀었다 꺼지고 하는 데 따라 매도 같이 오르내리며 불안한 자세를 고쳐 잡곤 했다. 그때마다 매에게서는 달랑달랑 방울 소리가 났다. 그런데도 매란 놈은 거기서 아주 자리를 내려앉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소년이 매에게 잠을 재우지 않기 위하여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어떤 혼란한 꿈속에 빠져 있는 기분이었다. 그 혼란스런 꿈속에서 나는 어쩌면 애초의 예상과는 달리 훨씬 긴 시간을 머물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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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나는 소년보다 먼저 일어나 소년을 기다렸다. 밖에서는 안채 식구들이 벌써 마당까지 나와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매는 아직도 소년의 배 위에 얹은 팔목에 앉아 공간을 오르내리며 불안한 자세를 고쳐 앉곤 했다. 발목에 매인 명주실을 소년이 아직 손가락에 감아 쥔 채였다. 놈은 밤새 깊은 잠을 자지 못했을 것 같았다.
이윽고 소년이 눈을 떴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 일어나더니 나에게 조금 겸연쩍은 웃음을 웃어 보이고는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무슨 영문인가 싶어 소년의 거동을 문틈으로 지켜보았다. 소년은 중년쯤 되어 보이는 마당의 남자에게 손짓으로 열심히 무슨 말인가를 하고 나더니 그 남자와 함께 다시 방문 앞으로 왔다. 그 남자는 소년의 아버지였다. 그는 나에게 누추한 곳을 찾아주어 감사하다고 정중한 인사를 건네고 나서는 대뜸 민형의 안부를 물어왔다. 역시 민형도 자기 집에서 묵고 갔다면서 그때는 참 신세를 많이 졌노라고 새삼 송구해 하였다. 나는 민형이 취재 여행에 그의 가산을 거의 다 털어 바친 일을 생각하고 소년의 아버지가 하는 말뜻을 곧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소년이 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팔을 끌어당겼다.
저 녀석이 그 매잽이 위인에게 선생님과 같이 가고 싶다는군요. 아마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불가사의입니다. 선생님이라면 혹 무슨 소릴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소년의 아버지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녀석의 뜻을 알아차렸다. 나는 곧 소년을 따라 나섰다.
매잡이 사내는 마을 위쪽 어떤 집의 사랑채 헛간에 누워 있었다. 지푸라기에 싸여 눈만 뻐끔히 뜨고 있는 사내는 벌써 반송장이 되어 있었다. 부근에는 소년이 사내의 입술에 흘려 넣어주려는 듯한 물그릇이 하나 뒹굴고 있을 뿐 음식물은 이제 권해 보는 것조차 단념해 버린 듯했다. 소년을 따라 내가 헛간으로 들어갔을 때도 사내의 얼굴은 조금도 움직이질 않았다. 소년이 그 유리알처럼 움직이지 않는 눈앞에서 낑낑소리와 함께 분주한 손짓 발짓으로 한참 무슨 이야기를 해보였다. 소년의 뜻을 짐작하는 데 조금 익숙해진 나는 그것이 나를 소개하는 말인 것을 알았다. 소년은 내가 서울서 온 사람이라는 것, 전에 다녀간 민선생의 친구이며 그의 안부를 전하러 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사내의 그 눈망울이 조금―정말 아주 조금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사내의 눈은 이내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동자가 아득해져 버렸다.
보다 못해 내가 소년에게 뭘 좀 가져다 먹여보지 않겠느냐고 부질없는 소리를 했더니, 소년은 아주 힘없이 고개를 젓고는 대신 어디선가 물을 한 사발 가져왔다. 그리고는 숟가락으로 조금씩 사내의 입술에 물방울을 흘려 넣었다.
사내는 그 물을 뱉어 버릴 힘마저 없는 듯 소년을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려고 하질 않았기 때문에 물은 그의 입에서 거품이 되어 대부분 다시 볼로 흘러내려 버렸다.
소년의 집으로 돌아와 아침밥을 먹고 나서 나는 다시 그의 방으로 돌아가 잠시 누워 쉬고 있었다. 어젯밤 그 잠보 소년은 어디론가 제 집을 찾아가고 없었다. 중식은 천장에 앉혀둔 매를 끌어내려서 발톱과 부리를 조사하고 있었다.
뭘 먹이지?
나는 드러누운 채 소년을 쳐다보며 물었다. 소년은 나를 보며 머리를 저었다. 아무것도 먹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먹이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
소년은 대답 대신 나를 보고 이상한 웃음을 웃었다. 그 웃음은 내가 소년에게서 처음 본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무슨 즐거움을 나타내는 웃음은 아니었다. 소년은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누구나 사람들은 흔히 상대방에게 무슨 어려운 말을 할 때 대개 그런 웃음을 웃는다. 벙어리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당장 그 웃음의 뜻을 고백하지 않았다. 그는 캐묻는 나를 모른 척 매만 자꾸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매의 한쪽 발목에는 조그만 방울이 두 개 매달려 있어서 놈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달랑달랑 소리를 내고 있었다. 꼬리에는 기다란 깃털을 하나 끼어 묶어 거기에 ‘鷹主 ×里 郭乭․번개쇠라고 서툰 붓글씨로 써넣어져 있었다. 매주 곽돌(郭乭)은 매를 부리는 임자이며 번개쇠는 매의 이름이라고 소년이 설명했다.
그럼 이 매는 네 것이 아닌가 보군?
이 말에 소년은 잠시 표정을 흐렸다. 그리고는 마지못한 듯 그것이 지금 굶어 누워 있는 사내의 것이며, 그 사람의 이름이 곽돌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소년은 금방 말을 돌려 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번개쇠에게는 벌써 삼 일 동안 아무것도 먹이지를 않았으며, 그만한 시간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냥을 나서기 전에는 으레 매를 그렇게 굶기는 거라면서 소년은 또 의미 있게 나를 쳐다보고 웃었다.
그것도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매에게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은 매를 아주 사납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잠을 재우지 않으면 매는 성질이 아주 사나워져서 사냥을 잘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냥 전에 놈을 굶기는 것은 매란 놈이 배가 고플 때가 아니면 꿩이나 토끼 같은 것을 잘 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중에 띄운 매는 배가 부르면 꿩을 보고도 쫓지 않고 하늘 높이 떠올라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기가 쉽다고. 그리고 꿩을 잡았을 때도 배가 아주 고파 있어야 잡은 꿩을 오래 뜯어먹고 있지, 처음부터 배가 불러 있으면 눈알이나 빼먹고 곧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날아가 버린 매는 배가 고파지면 다시 마을로 인가를 찾아 들어오지만, 그때는 옛 주인을 찾는 게 아니라 아무 마을이나 들어가 잡히기 때문에 그 매를 돌려받자면 꽤나 사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소년이 사흘씩이나 매를 굶기고 있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요즘도 사냥을 하고 있나?
나의 물음에 소년은 머리를 저었다. 자기는 늘 사냥 준비만 하지 실제로 사냥을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사냥은 몇 사람이 함께 가야 하는데 같이 갈 사람도 없고, 또 산에는 꿩이 흔하지도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 나를 보며 웃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 웃음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나와 함께 사냥을 가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아마 전에 민 형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소년은 민 형의 경험을 생각하고 나에게 같은 것을 기대하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어 나는 그날 소년과 함께 매를 가지고 철도 맞지 않는 사냥을 나섰다. 소년은 매잡이가 되고 나는 몰이꾼이 되었다. 소년은 발목에 맨 끈을 손가락에 감고, 매를 팔목에 앉히고는 산마루로 올라갔다. 거기서 소년은 골짜기를 살피고 나는 산고랑을 헤매며 꿩을 몰았다. 만약 꿩이 날면 소년이 산마루에서 매를 띄우고 그 매는 하늘을 맴돌다가 꿩을 발견하면 쏜살같이 뻗쳐 내려가 꿩을 잡아채는 것이다. 그때 나는 급히 매의 강하 지점으로 달려가 매가 배를 채우기 전에 놈으로부터 꿩을 빼앗아내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날 우리는 종일 허탕을 치고 말았다. 수없이 산고개를 넘었으나 나는 꿩을 한 마리도 날려 올리지 못했다. 소년은 매를 띄울 일이 없었다. 매도 마찬가지였다. 꿩을 잡으면 빼앗기기는 해도 맛있는 내장이나 가슴께 살을 몇 점 얻어먹고 더 힘을 낸다는데, 그놈은 그 살점 하나도 얻어먹지 못하고 결국 산그늘이 내릴 무렵 소년의 팔목에 앉은 채 집으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일이 나에게는 전혀 허탕이 아니었다. 민 형이 알아보라고 하던 것에 관해서 실제로 그 질서를 조금 알게 된 것도 수확이지만 그보다도 돌아오는 길에서, 그리고 기운이 진해 바윗돌에 걸터앉아 쉬면서 소년은 허탕을 치고 만 일에 괜히 민망해졌던지, 자기의 매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나에게는 중요한 이야기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마을에서의 민형의 행적과 실제로 눈앞에서 기이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매잡이 사내, 둘을 한꺼번에 쫓느라고 어느 쪽에도 확실한 관심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소년의 이야기는 혼란스럽고 어정쩡한 나의 주의를 매잡이 사내에게로 고정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첫 번째 매잡이 라는 작품을 낳게 했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민형의 행적에만 호기심을 갖다 말아 버린 것보다는 민형의 취재 행각이나 매잡이에 대한 인식, 또는 나를 보낸 민형의 의도 같은 것을 나에게 훨씬 명백하게 이해시켜 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자, 나는 잠시 그 헛간의 매잡이 사내를 들러보고 그가 아직도 아침과 별 차이가 없음을 알고 나서는 소년에게 다시 이야기를 계속 시켰다. 나는 벌써 그의 시늉말에도 이해가 퍽 빨라지고 있었다.
한데 소년은 이제 매잡이 사내에 대하여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것 이외에도 들어서 안 것까지 자세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여기서부터는 이야기를 나의 그 첫 번째 매잡이라는 작품에서 직접 빌려오는 것이 좋겠다. 그 작품을 읽고 아직도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는 독자는 이런 중복이 짜증나고 지루하겠지만, 매잡이 사내의 이야기는 그쪽에 비교적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으므로 결국 같은 이야기를 달리하는 것보다는 정직하게 경위를 밝히고 그 일부를 인용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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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잡이 곽서방은 결국 버버리 한 놈을 데리고 마을을 나섰다. 놈과 둘이서 번개쇠를 부리 는 수밖엔 도리가 없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도 몰이꾼 노릇은 나서려 하질 않았다. 박달나무 방망이를 하나라도 더 깎아다 장터에서 조됫박 값을 만들거나, 아니면 차라리 뜨뜻한 아랫목에서 화투판을 벌이는 편이 낫다고들 생각했다. 하지만 예전 사람들은 몰이꾼 놀이를 무슨 삯일로 생각했다. 그저 재미만으로 즐거이 몰이꾼을 청해 나서곤 했었다. 종일 풀토끼 한 마리 잡지 못해도 좋았다. 하루 종일 산을 타서 몸은 피곤하고 먹을 것은 없어도 그래도 그들은 얼굴이 붉어져 웃는 낯으로 또 틈 봐서 사냥을 나오자고 다짐하며 집으로들 들어갔다. 꿩이 잡히면 물론 더 좋았다. 그런 날은 아예 동네 잔치가 벌어졌다. 적은 안주 구실밖에 못했지만 그 꿩을 구실로 술판을 벌였다. 혹시 마을에 혼사나 다른 잔치가 있으면 그 꿩을 그 집으로 보냈다. 그러면 그 집에서도 떡시루 아니면 술말로 답례를 해오는 것이 예사였다. 한데 요즘은 매로 잡은 꿩이 장거리에서 돈으로 팔리는 판국이다. 안주 핑계하고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아예 값을 저쪽 처분에 맡기고 잔칫집에 꿩을 보내는 일도 없으니 그 답례가 있을 리도 없었다. 하긴 그런 사람들이 되려 터무니없는 쪽일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터무니없는 짓들에 정신을 빼앗기고 살았어도 그 사람들은 걱정들이 적었는데……. 요즘은 가로 재고 모로 재고 해서 그런 일엔 정신팔 겨를이 없는 양 아득바득대어도 그 사람들 사는 요령에는 어림이 없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들길을 건너 산으로 접어들던 곽서방은 문득 버버리 녀석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왈칵 고마운 생각에 가슴이 새삼 후끈해 왔다. 말은 못해도 녀석은 속이 꽤나 깊었다. 이제 나이 오십― 장가를 가지 못했다고 마을에서들은 조무라기들까지 곽서방 곽서방 하고 아이 이름 부르듯 함부로 그를 얼러대는 터였다. 어른들이 그를 온전한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으니 아이들이 그를 그렇게 알 리가 없었다. 녀석들은 곽서방을 마치 갓 스무 살이나 먹은 떠꺼머리 총각쯤으로나 아는 형편이었다. 거기다 집이 있나, 다른 사람처럼 무슨 일재주가 있어 밥걱정이 없나, 하는 짓이란 언제나 팔뚝에다 막내 아들처럼 굶고 잠 못 잔 번개쇤가 뭔가를 얹고 다니며 잠자리는 남의 사랑채 신세에다 재수가 좋아야 겨우 밥을 굶지 않았다. 그리고는 되지도 않는 꿩 사냥이랍시고 산이란 산은 다 뛰어다닌다. 그도 옛날엔 매 한 마리로 가는 곳마다 공술을 대접받는 한량축이었다지만, 이젠 그가 매 때문에 공술이나 밥을 대접받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고, 더욱이 그의 한량 시대라는 걸 구경조차 해본 일이 없는 아이들에게 곽서방은 참으로 기이한 거지―헐수없는 마을의 천덕구니였다.
한데 버버리 놈은 달랐다. 애초부터 말을 못하는 녀석이 남들처럼 찧까불고 곽서방을 괴롭힐 일은 없었지만, 버버리는 그래서라기보다 이상하게 곽서방의 사냥을 즐겨 따라나섰고, 자기집 사랑채 방에서 잠도 곧잘 함께 자주곤 했다. 그리고 곽서방이 매를 다루는 법―이를테면 비둘기로 매를 잡아서 사람과 친하여 달아나지 못하게 훈련시키고, 또 사냥에 대비하여 잠을 재우지 않거나 밥을 굶기는 일 따위를 예사로 보지 않고 있다가 꼭꼭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빠짐없이 곽서방의 사냥길을 따라다니는 단 하나의 친구였다.
골짜기를 하나 지나 마을이 보이지 않는 산으로 접어들자 곽서방은 자기의 팔목에 얹어온 번개쇠를 버버리에게 건네주었다. 이제부터는 버버리가 매잡이가 되고, 곽서방 자신은 꿩몰이가 되어야 한다. 버버리는 번개쇠를 받아가지고 곧장 능선을 타고 봉우리 쪽으로 혼자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녀석은 봉우리 봉우리만 쫓아다니며 산을 두루 살펴야 하고, 곽서방은 그 봉우리 아래의 산고랑 중에서 볕이 드는 곳을 모조리 쏘다니며 숨어 깃든 꿩을 날려 올려야 할 참이다. 일인즉 곽서방 쪽이 훨씬 고되게 마련이다. 산을 헤매는 것은 고사하고 혹시 꿩마리라도 찾아내어 날려 올리면 버버리 놈은 산 정수리에서 꿩을 보고 번개쇠만 띄우면 된다. 번개쇠가 꿩을 덮치는 곳으로 재빨리 쫓아가 배를 채우기 전에 꿩을 빼앗아내야 하는 것도 곽서방 쪽―마땅히 일이 바뀌어야 할 이치다. 아무리 산길에 발바닥이 굳었다 해도 이제 곽서방은 조금만 뛰면 숨이 헉헉거렸다. 그가 매잡이가 되고 아직 나이가 팔팔한 버버리 녀석이 꿩몰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녀석은 벙어리―몰이를 할 때 꿩 모는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고, 꿩이 날아도 산꼭대기의 곽서방을 향해서 꿩떴다고 외쳐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꿩몰이 하나마나가 되는 때가 많았다. 할 수 없이 곽서방이 꿩 몰이꾼이 되었다. 그도 아직은 다행한 일이다. 버버리 녀석이라도 없으면 혼자서 꿩 쫓다 매 몰다 두 몫을 뛰어야 했을 일 아닌가. 그것은 어쨌든 오늘은 꿩이라도 한 마리 찾아냈으면 좋겠다. 자신이 고되게 뛰어다닌 덕으로 요즘은 전보다 더 발이 빨라진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능선으로 멀어져 가는 버버리 놈을 쳐다보며 잎담배 한 대를 꺼내 말아 물었다. 소년이 나무숲 속으로 사라졌다가 한참 뒤에 멀리 산정 가까이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는 손을 두어 번 저어 보인 다음에 아주 정수리로 올라섰다. 곽서방은 이윽고 피워 물었던 담배를 부벼 끄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양지쪽을 골라 냅다 거기서부터 꿩도 없는 숲속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후어! 후어! 소리를 지르며 골짜기를 내닫는 곽서방은 정말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발이 빨랐다. 돌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양지쪽 골짜기 하나를 다 훑고 나서 이제는 산비탈 부근을 모로 뒤졌다. 후어! 후어! 산 하나를 다 헤매고 났을 때 소년은 그 산봉우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 뒤에는 또 골짜기를 하나 건너 다음 산봉우리로 올라섰다. 소년이 거기서 손을 뱅뱅 맴돌렸다. 곽서방도 거기 따라 다음 골짜기로 들어섰다. 바지 자락이 가시나무에 걸려 찢어지고 몇 번 자갈밭에서 발을 잘못 디디고 넘어졌다. 찧은 손바닥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그러나 여직 골짜기에서는 비둘기 새끼 한 마리 날아오르질 않았다. 후어! 후어! 곽서방의 외침 소리가 메아리 되어 산을 기어오를 뿐 꿩꿩꿩 장끼가 날아오르는 소리는 먼 꿈 속에서나 들었던 것처럼 기억마저 희미했다. 차츰 곽서방의 발길이 무디어지고 외침 소리도 자꾸만 목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네 번째 봉우리에서 소년은 이제 다음 봉우리로 옮겨가지를 않고 곽서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밀려들던 구름장들이 이젠 해를 많이 가리어 버리기도 했지만, 때도 웬만큼은 기운 것 같았다. 곽서방도 이제는 아주 지쳐 늘어져서 엉금엉금 기다시피하여 봉우리로 올라갔다. 거기에서 곽서방은 소년의 꽁무니에 찬 점심을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는 잠시 바람을 피해 휴식을 취했다. 번개쇠 놈에게 감기기가 조금 있는 것 같았다. 오후에는 햇빛이 나지 않아 그만 하산을 해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조금만 더 뒤져보기로 했다.
소년은 여전히 매잡이가 되고 곽서방이 골짜기를 헤매었다. 그러나 결과는 오전과 마찬가지였다. 해가 서산을 기웃거리고 산그늘이 골짜기를 메우기 시작할 때쯤 해서 곽서방은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후어 후어소리가 자꾸만 목구멍 속으로 기어들어 가다가 이제는 아주 중얼거림으로 변해 있었다. 한데 그때 뜻밖에도 장끼 한 마리가 푸드등 산을 날아올랐다. 꿩꿩꿩꿩……. 오랜만에 들어보는 장끼 소리가 산골짜기를 가득 채웠다. 곽서방은 갑자기 기운이 치솟았다. 떴다! 꿩떴다아. 그는 목청을 돋아 외치며 산봉우리를 쳐다보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산꼭대기에서 번개쇠가 떠올랐다. 놈은 바람을 탄 연처럼 좀더 떠올라 골짜기 위의 하늘을 맴돌더니 이윽고 살처럼 골짜기를 내려박혔다. 곽서방은 놈이 내려꽂힌 지점을 향해 내닫기 시작했다. 어디서 솟아난 힘인지 그는 무섭게 내달렸다. 발이 거의 땅에 닿고 있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곽서방은 이내 자갈밭으로 곤두박질을 치고 말았다. 그리고 달려오던 기세와 정비례해서 오랫동안 꼼짝을 하지 않고 늘어져 있었다.
산 정수리에서 동정을 살피고 있던 소년에겐 아무리 기다려도 곽서방의 신호가 들려오지를 않았다. 그는 번개쇠가 내려박힌 근방으로 내려가 볼까 생각하며 눈어림을 하고 있었다. 한데 그때 어찌된 일인지 번개쇠 놈이 느닷없이 다시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매는 끝없이 하늘을 날아오르다가는 이윽고 한쪽으로 방향을 잡기 시작하더니 이내 먼곳으로 산을 넘어가 버렸다. 그렇다면―소년은 급히 산을 내려뛰기 시작했다. 매란 놈은 꿩의 내장과 부드럽고 기름진 곳을 다 파먹고 배가 불러 떠올라 버린 것이다. 그 동안 곽서방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필시 무슨 변이 생긴 게 분명했다.
산을 내려오다 소년은 자갈밭에 늘어져 있는 곽서방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때 곽서방은 자세를 바꿔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그러고 누워서 매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었던 듯 놈이 사라진 쪽으로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소년을 보자 지금껏 가장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부시시 몸을 털고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곽서방은 생각하였다. 아마 서영감은 되려 시원해 할지도 모르지. 한사코 매잡이 노릇일랑 그만두고 이젠 다른 일을 해서 밥을 마련하라는 서영감이었다. 그러기만 한다면 우선 자기집 사랑채에 잠자리도 주고 세 때 끼니도 함께 나누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까닭없이 곽서방의 매잡이 노릇을 못봐하는 영감이었다.
자넨 요순 세상의 한량이로군.
하며 곽서방을 비웃거나,
지금이 어느 때라고……. 그래 밥을 먹고 살겠다는 겐가.
하고 까놓고 싫은 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서영감인즉은 옛날 매잡이들의 단골 주인이었다. 마을의 매잡이는 언제나 그 서영감이 부렸고, 다른 마을로 들어간 매를 찾아올 때 그 매값을 치러주는 것도 언제나 서영감이었다. 그래서 서영감네 사랑채는 늘 매잡이의 차지였고, 또 서영감은 그 만년손을 싫다 않고 일년 내내 매잡이를 사랑채에 묵게 했다가 겨울 한철 매를 부리곤 했다. 그런 정이 미더워 그랬는지 곽서방은 아직도 서영감에게 가끔 떼를 쓰다시피 하여 겨우겨우 연명을 해오는 터였다. 그러나 이젠 서영감도 달랐다. 오히려 마을의 누구보다도 매잡이 곽서방을 더 귀찮아했고 싫은 소리를 많이 했다. 그래서 때로 곽서방은 버버리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고, 이번 경우만 해도 매를 길들인 곳은 바로 버버리네 방이었다. 한데도 서영감은 그것도 못 보겠다는 듯 곽서방에게 자꾸 딴 짓으로 밥먹을 생각을 하라고 만나기만 하면 성화가 대단했다.
―번개쇠가 떠 버린 것을 들으면 영감은 아마 춤이라도 출지 모르지. 그리고 놈을 아주 잊어버리라고 할 테지.
하지만 그날 밤부터 곽서방은 다시 새로운 걱정에 싸이기 시작했다. 장날이 이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날아간 매의 소식이 장으로 올 것이다. 매는 배가 고프면 다시 인가로 찾아 내려오게 마련이었다. 너무 멀리 날아가지만 않았다면 녀석의 기별은 꽁지에 쓰인 주소로 매주에게 정확하게 전해질 것이었다.
한데 문제가 있었다. 번개쇠의 기별이 오면 곽서방으로서는 매를 찾으러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번개쇠를 찾자면 우선 매값으로 쌀말값은 마련을 해야 한다. 매를 찾아올 때는 으레 그러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곽서방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관례대로라면 한 가지 희망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오히려 곽서방 쪽에서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매를 찾을 때 매주가 매값을 치를 수 없으면 매가 들어간 마을로 가서 이삼 일 매를 놀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때 매잡이는 매를 가지고 산 정수리를 다니며 꿩이 떠오르면 그걸 보고 매를 띄우는 것뿐 꿩몰이는 마을에서 나서 주었다. 그러고도 매잡이는 술과 밥과 잠자리를 얻으며 마을의 손님 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마을에라도 매 한 마리만 가지고 들어가면 밥 걱정 잠자리 걱정을 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요즈음 어떤 마을에도 매를 부리는 사람이 없었고 매잡이가 그런 곳엘 들어갔다간 괴상한 구경거리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전혀 기대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두 가지 중에 어느 쪽도 곽서방은 별 수를 낼 재주가 없을 것 같았다. 매값 대신 번개쇠로 며칠을 놀아주겠다는 일은 저쪽에서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나 들을 듯한 터이고 돈을 마련할 재주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도저도 아니게 그냥 매나 받아가지고 돌아오는 것은 더욱 도리가 아니다. 매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매주가 마을로 팔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매를 그냥 받아오는 것만은 용서되지 않는 습관이었다. 그렇게 되어 내려오는 풍습이었다. 거기다가 매의 기별을 받고도 모른 체하고 있을 수는 더욱 없는 일―매값을 치르지 않고 매를 받아오는 일이 곽서방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금기라면, 매의 기별을 듣고도 모른 체하는 것은 마을이 용서하지 않을 죄악이었다.
곽서방은 마침내 한 가지로 생각을 정리했다. 장날로 번개쇠의 기별이 들어올 것은 거의 확실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든지 매값을 마련해 보는 수를 내야 했다. 그는 서영감에게 사정을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마을에서 그런 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도 역시 서영감뿐이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전날 자신을 부려준 일도 있었고 타관 매잡이가 마을로 들어왔을 때는 잠을 재워주기도 했던 사람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곽서방이 서영감을 애걸의 상대로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은 그가 곽서방의 매잡이 일에 제일 간섭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곽서방을 절반이나 넋이 나간 위인으로 여기고 있는데 서영감은 그래도 그러는 곽서방을 한사코 나무라 들기라도 하였다. 그래 곽서방은 영감에게서 오히려 사정을 이야기할 만한 틈을 본 것이다. 그날 밤으로 곽서방은 서영감을 찾아갔다. 그러나 서영감은 짐작하고 간 대로였다. 곽서방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비로소 그의 매가 위인을 떠나 버린 것을 안 서영감은, 그것 참 매란 놈이 곽서방 사람될 기회를 주느라고 그리 된 것이라며 자신의 일처럼 다행스러워 하기부터 했다.
이제 딱 마음을 잡고 딴 일을 손대 보게. 우리집에서도 할 일이 많으이. 그간 자넨 매라는 놈에게 미쳐 있었지. 한데 그 매 귀신이 제풀에 떠나주질 않았나.
모래 장터로 번개쇠의 기별이 올 텐디요.
곽서방은 그러나 고집스럽게 말했다.
글쎄, 내 생각 같아선 요즘 어느 넋 나간 녀석이 그런 걸 찾아주겠다고 건드럭건드럭 장터로 매를 가지고 나올 턱도 없지만, 또 오면 어때. 모른 체해 버리든지, 자네 고질병 여읜 셈치고 그 사람더러 아주 가져다 매를 모시라지.
하지만 그런 짓을…….
글쎄 그건 저쪽 시절 생각이구……. 하여튼 나는 매값을 낼 수 없으니 그런 줄 알게. 그리고 절대루 장날 기별을 보내올 놈도 없을 게구. 만약 그런 놈이 있다면 진짜 후리배지.
곽서방은 할 수 없이 서영감 앞을 물러나왔다.
매 소리를 하겠거든 다시 내 집에 발을 들여놓지 말게. 인간이 불쌍해서 그쯤 알아듣게 살 궁리를 해보라고 했으면 귀가 좀 뚫릴 법도 한데 원 사람이라군…….
그런 소리를 뒤로 남기고 버버리네 아랫방으로 돌아온 곽서방은 밥도 굶고 생각에만 잠겨 있었다. 밤이 늦어서야 버버리 소년이 부엌을 뒤져다 준 식은 밥덩이를 목구멍으로 조금 넘기고 나서, 곽서방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에이 번개쇠 놈, 아무리 생각이 없는 날짐승이기로서니…….
그러나 다음날 오후 늦게 곽서방은 또다시 서영감을 찾아갔다. 그의 짐작대로 장날을 하루 앞두고 번개쇠의 기별이 마을로 들어온 것이었다. 삼십 리 바깥 천관리(天冠里) 마을로 대낮에 매가 들어왔다고 천관리를 지나 들어온 마을 사람이 기별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매주는 내일 장으로 매를 가지러 나오라더라는 것이었다.
큰 병일세그려. 그래 자네 요즘 매를 부려서 꿩을 한 마리나 잡은 일이 있나, 마을에서 누가 몰이를 나서주길 하나. 대관절 그건 찾아다 뭘 하겠다는 겐가, 이 갑갑한 사람아.
영감은 이제 화를 내지도 못하고 답답해 못 견디겠다는 듯 곽서방을 건너다보았다.
사냥을 못하더라두요 기별이 왔는디 모른 체하고 있을 수가 없어서…….
그래, 자네가 지금 도리를 찾을 땐가.
……
곽서방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침묵은 영감의 말에 승복을 하고 있는 증거는 아니었다. 오히려 바위처럼 버티고 앉아 있는 모양이 서영감이 무슨 말을 하든 기어코 매값만은 받아가야겠다는 결심을 다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매값 몇 푼이 아까워서가 아니야. 매를 찾아오면 또 자네 꼬락서니가 못 보겠다는 말일세.
저도 사냥이 문제가 아니어요. 이제 사냥은 되지도 않구요.
그럼 자넨 지금 정말로 그 매주의 도리라는 것 때문에 이러는 것인가?
서영감의 목소리가 갑자기 은근해졌다.
하여튼 번개쇠를 찾아야겠어요.
그럼 약속해 주겠나?
영감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자꾸 목소리가 낮아졌다. 곽서방은 영문을 몰라 처음으로 영감을 정시했다.
매를 찾기만 하면 사냥 따윈 다시 나서지 않는다고…….
…….
곽서방은 또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매는 찾아오되 매병은 가져오지 말라는 말일세. 실상은 나도 전혀 자네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 왜 나도 전에는 자네들을 부리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 내가 미쳤다고 뭐 얻어먹은 것 없이 자네 하는 일을 못마땅해 하겠나. 세상이 그래서는 안 되겠기에, 더구나 자넨 근본이 선량한 줄을 내가 아는 터라 좀 사람다운 대접을 받게 되라고 이러는 것일세. 나도 실상 어떤 때는 뭐가 옳은지 그른지를 모르게 될 때가 많기는 하지. 하지만 어쨌든 자네가 지금 이런 곤욕을 당하고 있는 것은 그 매라는 놈 때문이 아닌가 말일세.
결국 그날 영감은 하고 싶은 말을 실컷 다하고 나서 쌀 한 말 값을 내놓았다. 그 돈으로 매를 찾아오더라도 절대로 다시 사냥을 나서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라고 몇 번씩이나 다짐을 한 끝이었다. 그러나 곽서방은 돈을 움켜쥐고 나오면서 끝내 거기 대한 약속의 말은 남기지 않았다. 시류를 좇아서 사는 사람들은 그 시류에 맞춰 생활을 잘 요리해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가 얼마나 그 시류에 민감하고 영리하게 적응하는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스스로 만족한다.―곽서방은 영감의 집을 나오면서 어렴풋이나마 그 비슷한 생각을 느끼고 있었다. 서영감도 전에는 그 자신이 매잡이를 부리고 사냥을 즐겨온 장본인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는 그러던 그가 그 짓을 누구보다 못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곽서방은 실상 그 이전부터 벌써 그것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감이 그렇게 곽서방을 걱정해 주고 충고를 해주는데도 곽서방이 한번도 그것을 고맙게 생각해 본 일이 없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니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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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서방은 서영감에게 받은 매값을 꼬깃꼬깃 접어 허리춤에 넣고 다음날 아침 일찌감치부터 장터를 나와 돌아다니고 있었다. 매를 찾으러 나오기는 했어도 어디서 어느 때 누구와 만나자는 약속이 없었으므로 무작정 사람들 사이를 어슬렁거리고 다녔다. 비단점 앞으로 가서 점포 안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대장간 앞에서 벌건 숯불을 보면서 쌀쌀한 봄추위를 달래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는 사람을 보면 혹시 어디서 자기를 찾는 매를 보지 못했느냐고 묻기도 했고 사람들 사이에 혹시 매를 안은 사람이 끼이지 않았나 눈을 부지런히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소란스럽기는 했지만 어디서 매방울 소리가 들려오지 않나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고 좋아하는 소주가게 앞에서는 허리춤의 매값을 한참씩 만지작거리다 자리를 비켜가기도 했다.
곽서방이 번개쇠를 만난 것은 오정이 지나서였다. 어떤 소주가게 앞을 지나려는데, 그 안에 얼굴이 벌겋게 취해 앉아 있는 얼굴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전에 다른 마을에서 매잡이를 하다 지금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종적조차 알 수가 없던 얼굴이었다. 반가운 김에 곽서방이 안으로 들어갔더니 그가 무릎 위에 매를 올려놓고 있었다.
이 사람 올 줄 알았네. 한데 좀 일찍 오지 않구 이제야?
흥, 이런 데 박혀 있으니 어떻게 찾아내겄나. 장바닥을 벌써 열 바퀴는 돌았을 거구만. 한데 어떻게 자네가 내 번개쇠를?
두 사람은 사실 썩 친한 사이였다. 한쪽은 이제 매잡이 노릇을 아주 그만두었고 또 한쪽은 그 매 때문에 속을 썩이고 있지만, 그 순간 두 사람은 그래도 옛날 한창 사냥이 성하던 때나 된 것처럼, 매를 찾아 전해주는 거드름이 완연했고 곽서방도 제법 귀한 것을 찾아낸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요놈의 매가 사람을 알아보고 찾아들었지 않나. 오늘은 매값을 톡톡히 받아가야겠어. 마침 끼니도 쪼들리던 참이고…….
곽서방은 씩 웃었다. 그리고 허리춤에 꽁꽁 접어 넣은 매값을 생각했다.
이 사람, 좀 앉기나 해. 우선 몸을 녹여야지. 왜 아들놈만 찾아 도망갈 생각을 하나?
그러자 곽서방은 곁으로 걸상을 끌어 잡아당겨 앉으며 번개쇠를 안아올렸다.
요놈의 철부지 자식, 내 속을 몰라보고…….
번개쇠의 눈이 깨끗지가 않았다. 꼬리도 좀 늘어져 있었다.
감기가 걸려 있었어. 놈이 춥고 배고프고 눈꼽이 끼어가지고 왔더구만.
그날도 조금 감기기가 있던 놈이었다. 곽서방은 번개쇠를 무릎 위에 앉히고 사기컵에다 소주를 따랐다.
한데 자네 요즘도 매를 부리고 있는 줄 알고 난 깜짝 놀랐네. 꿩이 잡히나? 요즘 매가 잡을 꿩이 있나 말일세. 그리고 아직 몰이꾼도 있구?
그러나 곽서방은 대답 대신 술잔만 말없이 들이키고 있었다.
알만하지. 오죽했으면 내가 마을을 떠났을까. 신통치도 않은 품팔이꾼으로. 어쨌든 자넨 매잡이로 아직 굶어죽진 않은 걸 보니 부럽구만.
죽지 않은 것만 대순가?
술이 몇 순배 더 돌았다.
한데 자네 매값은 많이 준비해 왔나?
이 사람, 그 걱정 때문에 술을 못 마시나?
곽서방은 당장이라도 매값을 치를 기세로 허리춤을 뒤지는 시늉을 했다.
정말?
친구의 눈이 번쩍했다.
쌀 한 말 값 해왔어. 아무래도 매를 놀아주라고는 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자 이번에는 친구가 정말 술맛을 잃은 얼굴을 했다. 그는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더니 갑자기 결심을 한 듯 술잔을 훌쩍 비워 버리고 자리를 일어섰다.
이제 그만 가보지.
왜 그래, 벌써?
곽서방은 영문을 몰라 아직 엉거주춤한 채였다.
매 주인을 찾아줬으니까 이젠 가야지 않나. 술에 몸두 녹였구.
하지만…… 그러고 매값은……?
매값? 가지고 가게. 가지고 가서 꾸어온 사람에게 돌려주게. 보나마나지. 매잡이에게 그런 돈이 어디서 나와? 그만 돈을 꾸어온 것만도 용허네.
그러면서 술값까지 자기가 치르고 있었다.
아니 이 사람이? 자네 정 이러긴가. 자네가 이러면 내 도리가…….
도리고 뭐고가 있나. 아뭇소리 말구 매나 안구 돌아가게. 내게도 두 사람 술값쯤은 있으니께.
결국 그러고 주막을 나왔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곧장 천관마을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곽서방은 아직도 뭔가 아쉬운 것이 옷깃을 꽉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 기분이었다.
그럼 내 자네 마을로 가서 며칠 이놈을 부려주기라도 해야 할 텐데…….
하하하……. 자넨 그래서 부럽단 말야. 속 편한 세상을 혼자 다 살고 있거든.
그래도 곽서방은 속이 뚫리지를 않았다.
그냥 매만 받아갈 수가 있나.
내 말을 해주지. 매가 들어오니까 천상 누가 매를 돌려주러 나올 사람이 있어야제. 마을에서들은 그냥 다시 산으로 날려보내 버리라는 게야. 자넨 날 거꾸로 도리가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사람을 찾게 저를 훈련시켜 놓은 그 인간들을 찾아내려온 매를 차마 다시 산으로 쫓아보낼 수가 없어 이렇게 어정어정 청승맞게 장터까지 놈을 안고 자네를 찾아나온 거란 말일세, 알겠나? 그래도 매를 돌려받은 게 그토록 고마운가?
하더니 그는 멍해 있는 곽서방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이번엔 더욱더 정색을 하고 물었다.
헌데…… 마을로 가서 자넨 여전히 사냥질을 할 참인가?
…….
그 말엔 곽서방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에는 마치 마을의 서영감 앞에서처럼 아무 의사도 내비치지를 않았다. 곽서방의 그런 얼굴을 한참 쳐다보던 친구가,
그럼 난 가네.
하고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도 곽서방은 여전히 그 멍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날 오후, 마을로 돌아오는 곽서방의 심경은 어느 때보다도 허전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이 흐느적흐느적 넘어질 듯 길을 걷고 있었다. 차라리 매값이 적다고 투정이라도 잔뜩 들었다면 마음이 후련할 것 같았다. 마음이 꺼림칙하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영리한 서영감도 그것까지는 미처 예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애초부터 매값 대신 마을로 들어가 매를 부려줄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이 매를 안겨주고는 사례를 한 푼도 받지않고 도망치듯 자리를 비켜 버리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볼 수가 없던 일이었다. 한데다 오히려 제 편에서 술값까지 치르고 가는 녀석의 언사는 분명 곽서방을 몹시도 동정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 가령 형편이 궁색하다 치자. 그렇다고 매를 그냥 돌려받아서야 얼굴이 서는 일인가.
그는 오는 길에 다시 주막을 한 곳 들러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매값을 다시 마을로 가지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낯선 영감들이 몇 술자리를 펴고 앉아 있다가 곽서방이 매를 가지고 주막을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허허 매잡이로군?
자기네들끼리 아는 체들을 했다. 신기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는 눈들이었다. 곽서방은 그 사람들을 본체만체 자리를 따로 잡고 앉아 술을 청했다. 그러자 영감들은 이내 자기들의 이야기로 다시 관심이 돌아가 버렸다.
곽서방이 주막을 나온 것은 그의 허리춤에 접어 넣었던 매값이 다 떨어지고 난 다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워낙 호주인 데다가 아까 밑자리를 깐 술이 되어 별로 걸음걸이가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그는 애초에 술값을 정확히 따지지도 않았고 주모가 갖다주는 대로 안주 접시를 비워냈기 때문에 술기가 주량에는 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 쌀한 말 값이라는 것이 대단한 술값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제 그의 기분은 아까처럼 꽉 막혀 있지를 않았다. 그는 매잡이로 산을 탈 때 가끔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천천히 산길을 오르다보니 비로소 조금씩 다리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해가 저녁나절 양지를 비추고 있어서 곽서방은 이른봄 날씨에도 등골에서 뽀속뽀속 땀기까지 솟았다. 그러자 곽서방은 문득 어디서 다리를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지런히 마을을 찾아 들어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마을도 집이 있고 가족이 있는 사람의 마을, 곽서방에게는 매잡이를 불러주는 곳이 제 마을이었고 제 집이었다. 한데 이제는 그를 불러주는 마을이나 집이 없었다. 물론 기다릴 가족도 없었다. 지금 그가 드나드는 곳이 제 마을이 되어 버린 것은 그가 바로 그 마을에서 영 주인 없는 매잡이 신세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피곤한 다리를 서둘러 갈 이유가 없었다. 그는 바람이 막힌 양지를 골라 다리를 편하게 내려뻗고 누웠다. 그리고 언제나의 버릇대로 번개쇠를 팔목에 앉혀 배 위에 얹고는 이내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한데 마을에서 옛날대로의 곽서방을 본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날 장길에서 돌아오다 곽서방을 만난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약간 빈정거리거나 우스개로 보이기는 했어도,
곽서방이 장에 갔다오는갑네.
매를 찾았으니 아들을 찾았구만.
하고들 인사를 했고, 곽서방도 그땐 술김에 제법 기분 좋은 대꾸를 해왔는데, 그것이 곽서방과 마을 사람들과의 마지막 대화가 되고 만 것이었다.
그 산길 한 모퉁이에서 어스름이 들 때까지 잠을 자고 있는 곽서방을 발견하고 그를 깨운 것은 해늦은 장길에서 돌아오던 버버리네 아버지였다. 그런데 그때, 잠에서 깨어났을 때부터 곽서방은 전과 영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은 달라진 게 없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그때부터 갑자기 벙어리가 된 것처럼 누구의 말에도 일체 대답을 하는 일이 없었고 혼잣말을 하는 일조차도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아마도 무슨 꿈이라도 꾸었던 것일까. 그래서 그 꿈이 그에게 어떤 무서운 충격이나 암시를 준 것이었을까. 버버리 아버지가 곽서방을 깨워놓았을 때 그는 무슨 꿈을 꾸다 깨어난 사람처럼 주위를 몹시 두리번거렸고, 그리고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눈으로 자기를 유심히 쳐다보더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꿈을 꾸었는지, 또 꿈을 꾸었다면 어떤 꿈을 꾸었는지 역시 누구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확실하게 변한 것은 그가 말을 잃고 말았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곽서방이 그보다 근본적으로 사람이 달라진 것은 그때 순순히 매를 안고 돌아온 그가 마을에서 시작한 기이한 행동들이었다. 곽서방은 마을로 돌아오자 버버리 소년의 방을 차지하고 누워 내처 번개쇠를 굶기기 시작했다. 버버리 소년에게마저도 한 마디 말이 없이 방구석에만 누워 뒹굴면서 녀석을 굶겨댔다. 중식 소년은 처음 그것이 또 사냥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가 가져다 주는 음식물을 곽서방 자신도 입에 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곽서방은 매와 자신이 함께 굶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번개쇠를 잠재우지 않듯이 자신도 함께 잠을 자지 않았다.
소년이 없을 때만 잠을 자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가 곁에 있을 때는 언제나 곽서방의 눈이 멀뚱멀뚱 천장을 향해 있었다. 처음부터 배를 주리다 마을을 찾아 들어왔던 번개쇠는 급속히 기운이 마르기 시작했다. 기운이 약해져 가는 탓인지 감기기도 점점 더 심해져 가기만 했다. 곽서방이 사냥 준비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소년이 확실히 짐작하게 된 것은 번개쇠가 영 기력을 잃고 만 것을 보게 되었을 때였다. 사냥 준비로 매를 굶긴다 해도 그것은 사실 정도 문제였다. 이제 번개쇠는 숨을 깔딱거리며 제 몸조차 이기질 못하고 자꾸 모로 쓰러지려고만 했다. 더구나 곽서방도 그 매에 못지않게 눈두덩이 움푹 패어 들어가고 있었다. 소년은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곽서방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 좋던 곽서방이 눈이 움푹 패어서 말도 하지 않고 멀뚱거리기만 하거나 자기를 멍하니 쳐다볼 때 소년은 오싹 소름이 끼쳐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소년은 곽서방을 내쫓을 수는 없었다. 마을에서들은, 특히 서영감은 곽서방에게 진짜 매귀신이 붙은 거라고 했다. 그러나 소년은 기다렸다. 자신만은 필경 곽서방의 곡절을 알게 되고 말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한데 그러기를 꼬박 나흘―그 나흘째 되던 날 저녁 무렵 곽서방이 별안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엉금엉금 안채 쪽으로 가더니 마룻장 밑에 얽어 놓은 닭장에서 지금 막 저녁 잠자리로 들어온 장닭 한 마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사랑채 방으로 들어가서 번개쇠를 안고 나왔다. 소년과 아버지는 지금부터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 싶어 숨을 죽이며 곽서방의 거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곽서방은 자기를 지켜보는 눈들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듯 천천히 번개쇠의 다리에서 줄을 풀어주었다. 줄을 풀어주면서 그는 번개쇠를 새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조그만 콧구멍에서는 물이 흐르고, 놈은 연신 그 물을 튀기며 킥킥 재채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매의 줄을 다 풀고 나서 닭을 땅 위로 떨어뜨려 주었다. 번개쇠의 방울 소리만 듣고도 겁에 질려 오금을 펴지 못하고 있던 녀석은 곽서방의 손을 벗어나자마자 무작정 마당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곽서방이 그 도망가는 닭 쪽으로 매를 훌쩍 던졌다. 번개쇠는 그 짧은 공간을 날아 닭을 쫓았다. 그러자 번개쇠의 추격을 알아차린 닭이 거기서 그냥 납작하게 땅에 붙고 말았다. 번개쇠가 그 닭을 호되게 때렸다. 감기에 시달려온 놈이기는 하지만 거기까지는 그래도 제 기개를 잃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곧바로 닭의 목을 집어 문 번개쇠 놈은 제풀에 힘이 겨워 겨우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곽서방은 방문을 열어젖히고 문지방에 걸터앉아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닭은 아직 숨이 끊기지를 않아서 목을 물리고도 푸덕거리기를 그치지 않았다. 죽을 힘을 다 내뽑은 닭을 약한 번개쇠가 쉽사리 처리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놈은 닭의 목 부근을 물고 흔들고 찢고 하면서 퍼덕이는 닭과 거의 함께 땅에서 뒹굴고 있었다. 닭의 목에서인지 번개쇠의 어디에서인지 드디어 검붉은 피가 튀기 시작했다. 소년과 아버지는 손끝 하나 꼼짝하지 않은 채 끝까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끔찍한 번개쇠의 공격이 성공을 하여 마침내 닭의 가슴이 열렸다. 번개쇠는 마치 새 귀신처럼 머리에 붉은 피를 뒤집어써가며 닭의 내장을 쪼아먹기 시작했다. 핏빛이 진한 가슴께 내장만 파먹었다. 그러면서 놈은 가끔 부리를 흔들어댔기 때문에 제 깃에는 물론 부근 땅바닥에까지 핏방울을 뿌려댔다. 이윽고 번개쇠는 허기가 가신 듯 닭을 버리고 부리를 문질렀다. 놈은 갑작스런 포식으로 기력이 쇠진한 듯 처음보다도 몸이 더 비틀거리고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하늘로 날아올라 버릴 궁리부터 했을 텐데 계속 근방만 어정거리고 있었다. 한두 번 수상한 몸짓을 해보이긴 했으나 놈은 그냥 쳐들었던 머리를 내려박아 버리곤 했다. 그러자 놈의 거동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곽서방이 드디어 끙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천천히 번개쇠 곁으로 다가가더니 놈을 한 손으로 덥석 안아들었다. 그리고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대로 사립문을 걸어나가 버렸다. 바깥은 방금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곽서방은 번개쇠를 안은 채 바로 뒷산 솔밭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버버리 부자는 그제서야 겨우 자기집 닭 한 마리가 엉뚱한 소동결에 죽어간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소년은 곽서방의 거동을 좀더 따라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데 그렇게 혼자 사립을 나간 곽서방은 그 뒷산 솔밭에서 매를 띄워 보내려고 한사코 애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번개쇠를 자꾸만 하늘로 띄워 올리려고, 잡아서는 날리고 또 잡아서는 날리고…….
그날 밤 곽서방은 소년의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밤이 늦어 어디로 그를 찾아나서 볼 수가 없었다. 늦도록 곽서방을 기다렸으나 소년은 할 수 없이 혼자 잠이 들고 말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곽서방은 곁에 있지 않았다. 간밤에 방을 왔다 간 흔적도 없었다.
여느 때보다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소년은 아버지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곽서방이 윗마을 서영감네 헛간에 누워 있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말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곡기도 전혀 아직 입에 대려 하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번개쇠는 기어이 날려보내고 말았는지 이제 곽서방은 매를 가지고 있지도 않더라고.
소년은 상을 물러나자마자 그 서영감네 헛간으로 달려갔다. 가보니 과연 거기 곽서방이 멀뚱멀뚱 눈을 뜬 채 죽어가고 있는 사람처럼 하고 누워 있었다. 숨을 쉬는 기색조차 알아볼 수가 없었다. 구경삼아 달려온 마을 사람들이 곽서방을 이리저리 달래고 있었다. 어떤 여자들은 누룽지 그릇을 곁에 가져다 놓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곽서방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살아 있는 사람의 기척을 해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절반 쯤은 죽어 있는 사람 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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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이야기를 본 줄거리로 돌리는 것이 좋겠다. 매잡이 곽서방의 기이한 단식은 그렇게 시작이 된 것이었고, 그러니까 내가 갔을 때는 이제 마을 사람들조차 그 곽서방의 일엔 싫증을 내고 있었을 때였다. 곽서방이 누워 있는 헛간의 안채에서 서영감은 정말 매 귀신이 들어앉았다.고 화를 냈지만 그러고 있는 곽서방을 내다본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신기한 일은 소년이 가지고 있는 매에 관한 것이었다.
그럼 네가 가지고 있는 곽서방 매는 어떻게 다시 갖게 된 거지?
한데 소년은, 곽서방이 매를 아주 날려보냈으려니 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그러니까 곽서방이 헛간으로 가서 누운 다음날 번개쇠가 다시 마을로(그것도 바로 버버리 소년의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년은 처음 번개쇠를 다시 곽서방에게로 가지고 갈까도 생각했으나 어쩐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단다. 그리고 지금은 번개쇠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조차 곽서방이 알면 화를 낼 것 같아서 곽서방에게는 사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년이 매를 다시 기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마저 몹시 핀잔을 주었지만 소년은 그 매를 다시 돌려보내지는 않겠다고 했다. 소년은 자기의 매를 갖고 싶으며 또 사냥도 하고 싶다고 했다. 소년의 아버지는 한 번도 고집을 꺾어본 일이 없는 녀석의 성미를 잘 알기 때문에 할 수 없다 싶어 그대로 버려둔 눈치였다.
하여튼 그 모든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나는 산을 이틀이나 더 타야 했다. 물론 사냥 수확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소년은 허탕만 치는 일로 나에게 미안해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는 허탕을 치고 돌아오면서 마치 나를 부린 값이라도 치르듯 곽서방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부터 나는 더 이상 소년을 따라나설 수가 없었다. 번개쇠가 불쌍하니 사냥은 그만하고 이제 먹을 것을 주자고 했더니 소년은 머리를 끄덕이고 그날은 사냥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곤 어디서 구해왔는지 참새 두 마리를 잡아다 매에게 먹였다.
언제나 참새를 주나?
하고 물었더니, 개구리 철에는 개구리를 먹이고 어떤 때는 닭을 잡아 먹이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 가을이 되어 길이 다 든 매는 제 값을 받자면 쌀 몇 가마 값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그날은 방안에서 소년과 해를 보냈다. 그날 저녁이었다. 초저녁에 소년이 윗마을 영감네 헛간에 간 뒤 나는 혼자 방에 남아 뒹굴다가 그냥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소년은 전날에도 그렇게 혼자 서영감네 헛간으로 갔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면 어느 결엔지 곁에서 잠이 들어 있곤 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 사이 곽서방을 몇 번 헛간으로 찾아가 봤지만 위인은 언제나 마찬가지 자세로 눈두덩만 더 앙상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사람이 온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는 곽서방을 이 밤은 찾아가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음식이 입에 닿지 않은 데다 이 며칠 무리하게 산을 탄 바람에 이날은 몸을 움직이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자리를 고쳐 앉을 때 울리는 매의 방울 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버버리 녀석이 헐레벌떡 방으로 뛰어 들어오며 냅다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맡 성냥불을 더듬어 밝혔다.
왜 그래. 무슨 일야?
무턱대고 팔을 끌어대던 소년이 그제서야 사연을 일러주었다. 곽서방이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곽서방이 말을 했단 말야?
나는 번쩍 기묘한 예감이 지나갔다. 어슴푸레하게나마 소년이 서두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소년과는 정반대 이유로 나도 역시 그를 따라 서둘러대었다. 곽서방이 정말 말을 했다고 소년은 밭둑길을 뛰어가다시피하며 설명했다. 그리고 웬일로 그가 이 밤중에 나를 불러달라 부탁하더라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곽서방은 어떻게 말을 시작했을까. 그리고 왜 그가 나를 만나자고 했을까. 그러나 그보다도 더 이상한 것은 그때 나는 그런 것을 실제로는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가 말을 시작한 것도, 하필 나를 찾는 것도 모두가 그저 다 당연한 것처럼, 그리고 나는 여태까지 바로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서둘러 곽서방에게로 뛰어간 것이었다…….
곽서방은 정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전과 다름없이 꼬직히 헛간 지푸라기에 싸여 누워 있었으나, 깊이 가라앉아 가기만 하던 눈망울이 처음으로 나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얼굴 근육까지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으로 곽서방이 나를 아는 체하는 줄을 알 수 있었다.
민…… 민 선생을…… 가서…… 만…… 나…… 지요……?
이윽고 그가 꺼져가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곽서방은 너무 여러 번씩 입술을 움직인 끝에 겨우 소리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그 조금씩밖에 벌리지 않은 입술 사이에서는 소리가 미처 되어 나오질 못하거나, 아니면 너무 오래 말을 하지 않고 있어서 잊어버린 말이 다시 생각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띄엄띄엄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흐린 눈동자와는 달리 일단 의사가 확실했다.
제 친굽니다. 가서 만납니다.
나는 그의 귀가 이미 깊은 영혼 속에서만 열려 있어서 그곳까지 소리가 들리게 하기는 퍽 어려울 것만 같이 생각되어 터무니없이 큰소리로 말했다. 곽서방이 조금 머리를 끄덕였다. 반가움을 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내 이야기를 전해주시겠소?
곽서방은 다시 나에게 말하면서 눈을 치떠 나를 쳐다보았다.
물론이지요. 한데 뭐라고 전해야 할지. 이러고 계시는 까닭이 뭡니까?
그 말에 곽서방은 다시 한번 염려스럽게 나를 쳐다보았다.
좋은 사람입니다. 내 평생 가장 긴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 민 선생이었소.
얼핏 딴소리 같은 말만 하더니.
아마 민 선생은 짐작할지 모르지요. 마음이 워낙 깊은 분이니께…….
하고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민 선생에게 짐작될 일이라면 제게 말씀해 주셔도 무방하실 텐데요.
그러나 곽서방은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니까 나는 바로 그때 두고두고 후회할 실수를 저지르고 만 셈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때 곽서방이 민형과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를 그에게 물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민형이 곽서방에게 했던 말을 알아놨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이번 일의 사연도 짐작을 할 수가 있었을는지 모른다. 하나 나는 너무 사건에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여유마저도 가질 수가 없었다.
하여튼 그날 밤의 곽서방의 이야기는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소년의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어떤 예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날 밤 날이 샐 때까지 모든 일을 빠짐없이 보아두었다가 그것을 민형에게 전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사실 민형에 대한 그런 부채감보다도 나 스스로 그곳을 떠날 수 없는 어떤 강한 힘에 붙잡혀 있었던 것이다. 버버리 소년도 물론 나와 같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었다. 우리는 조금 뒤에 곽서방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잠시 눈을 붙인 것 같았는데, 우리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벌써 날이 희끄무레 밝아오고 있었다. 한데 그때 곽서방은 이미 숨을 거두고 있었던 것이다.
곽서방은 그날 아침으로 대발에 말려 어떤 조그만 산모퉁이에 묻혔다. 그리고 장례가 끝나자마자 나는 서울로 떠날 차비를 했다. 한데 웬일인지 그때부터 소년이 내게 영 말대답을 해오지 않았다. 녀석은 원래 벙어리니까 소리를 내어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소리를 내지 못하는 대신 어떤 경우에는 소리를 가진 사람보다 더 수선스런 행동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던 녀석이 그때부터 갑자기 내게 말대꾸를 해오지 않았다. 하염없이 매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제 사냥철도 지나갔는데 그 매 산으로 보내주지 않을래?
그런 물음에도 소년은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숫제 듣지조차 못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원래 곽서방 거였다는데, 이젠 주인도 죽고 없는데…….
…….
그러나 나는 끝내 소년의 가장 깊은 정곡을 찾아내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엔 네가 또 매잡이가 되고 싶은 게로구나.
그 소리에 소년은 짐작했던 대로 번쩍 머리를 쳐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 표정이 참으로 심상치가 않았다. 소년이 처음 머리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을 때 그 눈에는 뜻밖에도 어떤 무서운 증오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무서운 반발이 숨어 있었다. 나는 소년의 그런 눈길을 받고 나서 움칫 한 걸음 몸을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괴팍하고 사나운 벙어리의 본능이 덩어리져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눈 때문에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 소년이 무엇 때문에, 그런 눈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의 말이 생각났을 때도 나는 소년이 무엇을 그토록 증오하고 반발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소년의 눈이 나에게 좀처럼 떠날 줄을 몰랐다. 그래서 그렇게 보였던 것일까. 이윽고 그 소년의 눈에는 애초의 증오 대신 서서히 어떤 슬픔기 같은 것이 차오르고 있었다. 뿐더러 그것은 그 간밤의 곽서방의 눈길을 연상시키기까지 했다.
나는 어쩌면 녀석이 또 매잡이 노릇을 계속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날로 소년과 마을을 하직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울로 가는 차를 타게 되면서부터는 비로소 민형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때 서울을 떠날 때와는 또 다른 수수께끼를 품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수수께끼를 민형과 함께 풀어보리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곽서방의 죽음은 무슨 뜻을 지닌 것인가. 곽서방은 왜 그런 해괴한 죽음의 방법을 생각한 것인가. 곽서방의 소식을 듣고 민형은 그 모든 수수께끼의 대답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서울에는 또 하나의 수수께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뜻밖에도 민형이 그 사이에 자살을 하고 만 것이었다. 내가 시골로 떠난 다음날이었다고 했다. 내가 서울로 돌아왔을 땐 민형은 이미 자신의 유언에 따라 한줌 재가 되어 강물로 뿌려진 다음이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의 간단한 유서 한 장과 유서에서 밝힌 두 가지 비장품뿐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밖에 그에게선 다른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것으로 이를테면 그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재산으로 여행을 하고 온 셈이 된 것이었다.
……여행 이야기가 꼭 좋은 소설이 되기 바라네. 그리고 여기 나의 취재 노트를 자네에게 넘기고 가네. 혹 소설로 만들 만한 것이 있을는진 모르겠네만. 또 하나 밀봉한 봉투는 이삼 개월 날짜가 지나서 적당한 시기에 꺼내보라고 특히 부탁하네…….
그가 내게 남기고 간 유서의 내용이었다.
마치 한 일 년 어디로 여행을 떠나면서 부탁을 남기고 있는 투였다. 그 유서에는, 자세히 읽어보니 세 가지 다짐이 들어 있었다. 첫째로 내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꼭 소설을 한 편 써 발표하라는 것, 두 번째로는 가능한 대로 자기의 취재물을 소설로 완성시켜보라는 것, 그리고 세 번째 부탁은 무엇인지 모를 그 봉투의 물건을 일정한 기간 후에 꺼내보라는 것이었다. 어세가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죽음을 이마에 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산 사람이 몇 십 번을 되풀이 강조한 것보다도 더 엄숙하고 확실한 것이었다.
나는 그의 첫번째 부탁을 금방 이행했다. 아니 그것은 그의 부탁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서울로 돌아올 때부터 벌써 작품을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민형의 예언은 적중한 셈이었다. 매잡이 사내의 기이한 죽음이 순간순간 나를 긴장시켰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필경 나는 소설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으리라는 것을 마을에서부터 벌써 알고 있었다. 나는 민형에게 그 매잡이 사내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으리라 했었다. 한데 서울로 돌아와 보니 민형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었다. 그것은 한층 더 나를 긴장시켰다. 그 우연은 마치 민형이 매잡이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한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리고 매잡이의 죽음과 민형의 죽음에는 자꾸만 어떤 관련이 있는 것처럼 나의 머리 속으로 함께 얽혀들었다. 나는 매잡이 사내의 죽음을, 민형의 죽음을 중심으로 한 소설 계획에 관련시키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나의 욕심뿐이었다. 두 죽음을 연결시킬 근거가 나에게선 아무래도 분명해지질 않았다. 모든 것이 그저 느낌뿐이었다. 소설이 무척 애매하고 어려워졌다. 나는 할 수 없이 이야기에서 민형을 다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매잡이 사내의 이야기만으로 나의 능력껏 한 편의 소설을 썼다. 그것이 나의 최초의 매잡이였다. 그것으로 일단 나는 민형의 첫번째 부탁을 이행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내가 매잡이 사내와 민형 사이의 그 이상한 관련감을 포기해 버린 것은 물론 아니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나의 느낌이 틀림없으리라는 확신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확신을 증명하려고 했다. 한데 좀체 방법이 없었다. 민형이 남긴 흔적이라고는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그 일을 더욱 어렵게 했다. 밀봉한 봉투는 그 적당한 시기라는 것이 언제가 될지 몰라 당분간은 거의 잊어버린 상태로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있었다. 민형에 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물건은 민형이 나에게 소설로 만들어주기를 바라면서 남겨준 비망 노트 한 가지뿐이었다. 그러나 그 노트도 민형의 죽음과 매잡이 사내와의 관계를 추리하는 데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앞서도 얘기한 일이 있지만, 그 취재 노트는 정말 경탄할 만한 것이었다.
아까운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그중의 대부분을 언젠가는 소설로 만들 욕심이고 또 실제로 몇몇은 머지 않아 곧 작품이 이루어지게 되리라고 단언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내가 그 하나하나의 소재를 취재할 때의 민형의 뜻을 충분히 살려낼 수 있을 것인가. 망인(亡人)에게 죄스럽기는 하지만 천상 소재 해석은 나의 방법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그 많은 민형의 노력의 결과는 한낱 사전 지식 구실밖에 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땅히 민형 자신의 소설 구상을 통해서 작품으로 이루어져야 했을 것이다. 가령 그런 점을 떠나 민형에 대한 인간적 관심으로 볼 때도 그것은 역시 안타까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민형의 그러한 생은 마치 자기는 소설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너무 일찍 체념으로 받아들이고, 자료 수집 그것으로나마 문학의 어떤 몫에 참여하고 있다는 최소한의 인간적 요구를 만족시키고 있었던 것같이 생각되는 것이었다.
정말로 민형은 소재 수집 자체를 생의 과업으로 자족했던 것일까. 그것도 한편으로는 머리가 숙여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역시 그와 가까운 친분으로서는 민형의 그러한 생 전체가 오히려 하나의 큰 좌절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가 안타깝고 아쉬웠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민형의 자상하고 철저한 취재 노트에는 하필 전에 그가 나를 내려보내면서 얼핏 펼쳐 보여줬던 매잡이에 관한 기록이 뜯어 없어져 버린 사실이었다. 노트 석 장이 떨어져 없어지고 그 뜯어진 다음 장에 매잡이에 관한 아주 평범한 사전 지식이 조금 계속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뒤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뜯어 없앤 것은 분명 매잡이에 관한 기록이 틀림없었다.
―매과 매속의 맹조의 총칭. 수리에 비하여 몸이 소형인데 부리가 짧으며 윗부리와 가장자리 중앙에 이빨 모양의 돌출부가 있다. 발가락이 가늘고 날개와 꽁지가 비교적 폭이 좁다. 다리의 발꿈치에 있는 비늘은 앞뒤가 모두 그물 모양이며 머리 위와 눈 주위 주둥이 근처가 흑색이고 등은 회색, 허리와 꼬리는 연한 색이고 검은 가로 무늬가 있다. 주둥이는 창각색(蒼角色)─엽막과 다리는 황색, 민속하게 날개를 놀리어 수리보다 빠르게 난다.
―날개 길이 30cm, 부리 27cm
―보라매, 새매, 송골매, 海東靑(한국산. 특히 중국에서 진가가 인정되고 있음.)
―韓, 中, 日, 아시아, 북아프리카, 동유럽 등지에 서식.
―1년 깃들인 것→갈지개. 2년→초진이(初陳伊)=초지니. 3년→삼진이. 산진이=산지니
―한국 북쪽 지방(중국 대륙에서 들어옴. 몽고 풍속→유럽 일부에도 있음)
―매두피. 매를 잡는 기구, 명주 그물, 매사냥, 매찌, 매의 똥, 매치, 매를 놓아 잡는 꿩, 짐승, 매팔자=개팔자
―매잡이. 매를 잡는 사내→사전×(현지에서는 매를 부리는 사내를 매잡이라고 함 ) ※손잡이.
―매치는 절대로 팔지 않았음. 마을 잔치에 부조를 하고 부조받는 사람은 떡시루나 술말로 보답. 요즘은 시장으로 나가는 일이 있고 약이나 총으로 잡은 것보다 값이 있다고 함.
이것이 뜯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매나 매사냥에 관한 기록의 전부였다. 그것은 다만 사전 지식에 불과했고, 그의 의견이 엿보이는 곳이라고는 매잡이를 사전 해석에 따르지 않고 취재 지역에 따르려고 했다는 것 정도였다. 나로서도 그것이 옳은 듯했다. 매잡이의 잡이는 잡는 이라는 뜻이기보다 민형이 참고로 ※표로 보인 것처럼 잡는 것, 즉 손잡이의 잡이에 가까운 것 같았다. 매잡이 사내는 언제나 매를 팔뚝에 올려 앉히고 다녔다. 사내의 팔뚝은 매의 앉을 잡이였다. 그래서 아마 그쪽 사람들은 매 부리는 사내를 매잡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 매잡이라는 말은 물론 나 역시 지금까지도 그런 뜻으로 써오고 있는 터였다.
그러니 그 정도는 나에게도 기록이 남아 있으나마나였다. 그것을 뜯어 없앤 것은 물론 민형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뜻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어떤 이유에선가 매잡이 기록을 뜯어내면서 뒷부분을 그대로 조금 남겨둔 것은 민형 자신도 있으나마나한 거라고 대수롭잖게 생각했기 때문일 터였다. 따라서 그것은 내가 민형과 그 곽서방의 죽음 사이의 비밀을 캐보려는 노력에는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었다.
왜 민형은 그것을 뜯어 없애 버린 것일까. 상식적으로 이해하자면 민형은 나에게 취재 여행을 권유한 터였으므로 그 기록을 남겨서 내가 쓸 작품 의도에 어떤 간섭을 주지 않으려고 그랬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뒤 사정이나 그의 죽음 같은 것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는 않았다. 어째서 그는 나에게 하필 그 산골로 여행을 권한 것일까. 그리고 자기가 얻어낸 모든 자료를 끝내 감추고 죽어 버린 것일까. 더욱이 왜 나에게 굳이 그 매잡이에 관한 소설을 쓰게 한 것일까. 아무것도 해명되지 않았다. 나의 생활은 자꾸만 그 사실의 거죽 위에서 겉돌고만 있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 모든 것은 단순한 몇 가지 우연의 연속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는 그만 그런 생각에서 떠나려고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어느 틈에 다시 그 의문 속에서 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관심도 어느 땐가는 시간과 더불어 차츰 퇴색이 되게 마련이었다. 영영 해답을 얻어낼 길은 없고, 해답을 위해 조사를 해볼 자료도 없고, 거기다 또 나대로의 작품 의욕에 휘말리기도 하다 보니 그것은 결국 나의 심층 속으로 깊이 잦아들어 버리는 듯했다. 더욱이 그것을 아주 의식의 밑바닥까지 밀어넣어 버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내가 또 한 번 그 시골 산골을 다녀오고 난 다음이었다. 답답하다 못해 나는 다시 그 산골 마을을 찾아갔었다. 물론 거기서 신통한 해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를 갖지는 않았다. 만약 그러리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벌써 열 번이라도 그곳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곳을 다시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거기서 얻은 나의 가엾은 의문들을 다시 그곳에다 씻어 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의 그런 기대는 거의 그대로 적중하고 있었다. 마을에는 어느 구석에서도 민형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었다. 곽서방은 이미 저세상 사람, 마을 사람들은 이제 그의 매사냥에 대해서, 아니 곽서방이 마을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마저도 까맣게들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에 관해선 아무도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일로 마을을 드나들었던 나를 이젠 옛날에 곽서방을 보듯이 했다. 벙어리 소년마저 마을을 나가고 없었다. 그는 내가 서울로 올라간 뒤부터는 밥도 잘 먹지 않고 상심해 있다가 어느 날인가 마침내 번개쇠를 가지고 어디론가 마을을 나가 버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곽서방에 대해서, 더욱이 민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새로운 사실을 얻어내지 못한 채 마을을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때 나는 어쩌면 가장 귀중한 것을 얻고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나는 그 여행만으로 이제 모든 것을 결말낸 것처럼 마음이 한결 편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마을로 들어와서 얻은 의구를 거기에다 다시 씻어 버린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도 나는 그렇게 그럭저럭 마음을 잡아 앉히고 있었다. 하니까 민형과 곽서방의 죽음에 대한 애초의 비밀은 마음의 밑바닥에서 한동안 그렇게 잠을 자고 있었던 셈이다.
한데 오늘 아침, 바로 오늘 아침 나는 크나큰 놀라움과 함께 그 대부분의 비밀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얻어낸 것이었다. 아침에 우연히 책상 서랍을 뒤지다가 나는 그때 민형이 적당한 시기가 경과한 후에 개봉하라고 남겨준 봉투를 찾아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 적당한 시기라는 말에 충분할 만한 기간이 흘렀으리라는, 오히려 너무 긴 기간 동안 그것을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허겁지겁 뒤늦게 봉투를 뜯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전부터도 그 봉투에 대해서 퍽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허나 포장이 너무 견고하여 바깥 촉감으로는 내용을 짐작하기가 힘들었고, 그렇다고 슬그머니 미리 열어보는 것도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해서, 그냥 그대로 서랍 속에 집어넣어 둔 것이었다. 아침에 그것을 본 순간 나의 그런 궁금증이 순식간에 다시 불붙어 올랐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데 봉투를 뜯고 나서 나는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이백여 매 남짓한 원고지 뭉치였고, 그 원고지에는 천만 뜻밖에도 눈에 익은 민형의 자필 소설 한 권이 나의 개봉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매잡이―그 원고의 겉장에 쓰인 제목이 그것이었다. 나는 책상 서랍을 닫을 생각도 않고 그 자리에서 원고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설을 읽어 내려가다가 나는 거듭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매잡이라는 제목의 소설, 그것은 너무나 내가 썼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게 아닌가. 다른 것이 있다면 민형의 소설은 나라는 화자(話者)가 하나 더 등장하고 곽서방은 그 화자의 눈을 통해서 그려지는 데 반하여 나의 것은 곽서방이 나라는 화자 없이 삼인칭으로 직접 묘사되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리고는 거의 아무것도 다른 것이 없었다. 곽서방이 단식을 시작한 구체적인 동기가 조금 다를 뿐 줄거리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아니 내가 놀라고 있다는 것은 민형이 그런 소설을 써놓았고 그것이 소설로서 거의 완벽한 느낌을 갖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벌써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그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곽서방의 죽음까지 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얼마나 괴이한 일인가. 물론 민형이 그 소설을 썼을 무렵에는 곽서방의 죽음이 아직은 미래사에 속하는 일이었을 것이기에 말이다. 말하자면 민형의 이야기는 곽서방의 운명에 대한 일종의 예언이었다. 그런데 그 예언이 너무나 정확한 것이다. 민형은 마치 나와 함께 곽서방의 최후를 보고 와서 역시 나와 함께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처럼 나의 그것과 거의 틀림이 없는 결말을 맺고 있었다. 그렇다면 민형은 분명 나를 앞지르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무엇이 민형으로 하여금 곽서방의 운명에 대한 그런 정확한 예언을 하게 한 것일까. 작품에서의 예언은 작가 자신의 어떤 필연성의 요구다. 곽서방의 운명의 종말로서 왜 그와 같은 형태의 죽음을 민형은 요구한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하여 곽서방은 민형에 의해 요구된 자기 운명의 필연성을 의식하고 그것을 좇았을까.
그런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해서 민형의 소설 가운데는 단 한 가지의 해답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소설 중의 화자인 나로 변장한 민형과 곽서방과의 대화에서였다.
당신은 매를 아끼는 것입니까?
아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매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본 일이 있습니까?
…….
이상하군요. 학대와 굶주림과 사역이 당신이 매를 생각하는 방법의 전부라는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나는 매를 부리는 사람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건 매잡이를 부리는 쪽도 마찬가집니다.
어떻게 마찬가질 수 있습니까?
선생은 매가 하늘을 빙빙 돌거나 땅으로 내려박힐 때 그 곱고 시원스런 동작을 보신 일이 있겠지요. 그건 아름답습니다. 아마 선생도 그렇게 생각하셨겠지요. 하지만 난 알고 있습니다.
나는 눈으로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한데 선생은 이 일에 관해서…….
하다가 사내는 다시 말을 끊고 한참 동안 나를 쏘아보았다. 그 눈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이상하게도 성난 매의 눈을 연상시켰다. 사내는 그 자기 눈 속의 불길을 의식하고 있는 듯 한참 더 기다리다 말을 이었다.
가시오. 당신은 나를 못 견디게 하오. 몇 번이고 당신을 죽이려고 생각했소. 가지 않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을 죽이려 들지 모르오.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곽서방은 내가 실제로 본 것과 같이 혼자 말없이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이야기의 결말은 이를테면 우리 생존의 처절스런 실상과 풍속의 미학과의 표리관계 같은 것이 비극적인 시선 속에 옷을 벗고 있는 식이었다. 거기서 곽서방은 자신의 운명을 매의 그것과 한가지로 받아들이고 있는 식이었고, 혹은 그래서 그 스스로는 매로부터 다시 인간의 운명으로 돌아와 그가 지금까지 얻은 진실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싸움을 치러내고 있는 식의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이 근처 어디쯤에 그의 작의가 숨어 있을 게 분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섣불리 그의 작의를 단정하는 것은 삼가자.
상황은 별 군소리 없이 그렇게만 묘사되어 있고, 더욱이 민형은 작품을 해명하거나 하는 따위의 별지를 일체 첨부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 그 대화가 중요한 시사를 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이, 그 후로 곽서방은 가끔 낭패한 얼굴로 깊은 사념에 빠지는 때가 생겼고, 그러다가는 드디어 매를 날려보내고 스스로는 그 죽음을 향한 참담스런 단식을 시작하고 있는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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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은 어쨌든 마지막으로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을 쓰고 간 셈이었다. 그것은 내가 전에 직접 보고 들은 자료로 모든 정력을 기울여 써냈던 같은 이름의 소설에 비하면, 결말부에 가서는 순전한 민형의 상상력만으로 되어진 작품이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이 나와 똑같았다. 경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훌륭한 작품이라고, 그리고 민형은 훌륭한 소설가 였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욕심대로 한다면 그가 수집한 모든 자료를 그의 구상과 상상력에 일치하는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제 민형이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은 소설가라는 누명 아닌 누명에서 벗어난 것은 민형 자신을 위해서나 주위 친구들을 위해서나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더욱이 그것이 민형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고 보면 이젠 그 매잡이라는 이름의 소설이 세 편이나 나오게 된 이유도 모두 밝혀진 셈이 된다. 그리고 이젠 그 민형을 위한 나의 증언을 이쯤 끝내도 좋을 때가 된 것 같다. 왜 민형이 그 소설을 처음부터 내게 내보이지 않고 나로 하여금 같은 제목으로 소설을 발표하게 했는가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그가 자살로써 생을 종말 지은 일이나 마찬가지로 그가 자신의 능력을 공정하게 시험 받고 증명되고 싶었을지 모른다는 가장 인간적인 동기에서였으리라고 이해해도 무방할 듯싶으니 말이다.
이야기를 끝내려고 하면서 곁다리로 생각나는 것은, 사물의 본질을 투시할 수 있는 눈을 가진 훌륭한 작가라면(그 점에서 나는 벌써 민형을 훌륭한 작가였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어느 정도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민형에 의해서 예견된 어떤 필연성이 곽서방에게 받아들여지느냐 않느냐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고, 하여튼 그런 작가의 눈(양심이라고 해도 좋겠다)이라는 것은 내가 민형을 증언하거나 매잡이라는 세 편의 소설에 관한 해명 못지않게 관심이 가는 일이다.
중복감이 있기는 하지만, 머지 않아 나는 민형의 매잡이도 곧 소개할 예정이므로 이 소설에서는 긴 변명 대신 이런 관심도 함께 가져볼 수 있었다는 점만을 고백해 둔다. 다만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그 버버리 소년이 앞으로도 정말 매잡이 노릇을 계속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을 수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별로 확신을 가지고 대답 할 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의 기분대로 말한다면 소년의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세한 사실을 알아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어느 땐가 인연이 닿으면 다시 소년의 소식을 듣게 될 때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년은 다시 매잡이가 되어 있다고 한들 이제 와선 그게 내게 무슨 뜻을 지닐 수가 있단 말인가.
풍속이 사라진 시대―사라져간 풍속의 유민으로서의 소년은 내게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민형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야 민형은 자신의 소설에서 매잡이 곽서방을 그의 풍속으로 돌아가게 해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곽서방에게 자신의 풍속으로 돌아가 그의 풍속의 유물이 되게 해주고 있었다. 곽서방에게 그것은 그의 참담스런 생존의 실상으로부터의 소중한 승리이자 구원일 수 있었다.
하나의 풍속이란 그것 밖의 사람들의 외연적 기명(記名)일 뿐 그것을 직접 살아내는 사람들에겐 그의 삶의 보편적 질서인 것이라면, 적어도 그것을 뒤에서 바라보며 풍속을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곽서방에게나 가능할 일이었다. 그것은 매잡이 곽서방의 풍속일 뿐 민형 자신의 풍속은 아니었다. 민형을 포함한 우리들 자신의 풍속은 절대로 될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것이 우리들의 풍속이 될 수 없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에겐 애초 우리들 자신의 어떤 풍속도 가능성이 용납되질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풍속의 의상이 없는 시대에서 그 삭막하고 참담스런 삶의 현실들을 맨몸으로 직접 살아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보다도 그 참담스런 삶의 현실이 또 다른 풍속으로 부화되는 것을 거부하며, 자기 삶의 새로운 풍속화에 대항하여 그것을 거꾸로 인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민형도 어쩌면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으로는 소설마저도 단 한 편밖에 쓸 수가 없었던 민형―그래서 그는 오히려 곽서방에게 그토록 매달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끝내는 절망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민형의 종말―그것은 그 곽서방의 풍속에 자신을 귀의시킬 수 없었던 비극의 종말이 아니라, 그의 삶의 새로운 풍속화에 대한 마지막 저항과 결단의 몸짓은 아니었을까. 감히 말하자면 그것이 아마도 민형의 죽음의 진실이어야 할 것이었다.
……소년이 다시 매잡이가 되어 있든 아니든 그것은 이제 별다른 뜻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 매잡이의 시대가 지나가 버린 세상에서의 소년에게도 그렇고, 민형이나 나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더욱이 이번에 다시 이 이야기를 쓰게 된 나의 관심이 매잡이의 풍속 자체보다도 민형과 민형의 죽음, 그리고 그의 소설에 관한 것들 쪽이었고 보면, 그것은 어차피 나의 개인적인 과외의 관심거리에나 속해야 마땅한 것이다. 나는 그나마 민형의 경우처럼 자신의 삶에 대한 어떤 치열한 인내와 결단성, 심지어는 그 풍속의 미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꿈마저도 깊이 지녀보질 못해온 터이니 말이다. □『신동아』 (196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