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결정으로 배상금을 받을 권리가 생긴 징용 피해자 측에서 제삼자의 변제를 거절하면 돈을 줄 방법이 없다.
피해자가 사망해도 상속되는 채권이기 때문에 한정없이 기간을 끌 수도 있다. 민사채권 시효는 아주 쉽게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연이자도 계속 쌓인다.
서울대 법대 나온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스럽다. 나보다는 더 잘 알 것 아닌가 싶어서다.
이 문제를 이런 식으로 푼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일이다. 미쯔비시 등 해당 일본 기업이 지급하지 않으면 받을 것 같지 않은데, 우리 기업들에게서 재단에 기부하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미르재단 등과 똑같은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주식회사인 포스코 등이 단돈 1원이라도 아무렇지 않게 주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뭔가 허둥지둥 하는 분위기인데, 그건 아마도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선 한미일 공조가 중요한데 한일 간에는 항상 과거사가 거론되기 때문이다. 이건 정치적 차원을 넘어서는 감정적 문제다.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피해자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문제는 피해자 개인의 문제이자 역사의 문제다.
뭘 어떻게 합의해도 도루묵이 되어버리는 식이니 답답하기는 할 텐데 종군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이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하다.
국가 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과 일본 또는 일본 기업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 신뢰라 할 조약과 협정까지 흔들리는 꼴이다.
맨날 하는 말이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끝났다는 것인데 이 문제는 협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며칠 전에 썼다. 그런데도 괴이한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이는 국제 문제이기 이전에 한국 내에서 갈등을 촉발하게 될 것 같다. 국민적 지지가 없는데 대통령인들 뭘 할 수 있을까?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은데 천만에 말씀이다. 결과가 좋을 것 같지도 않다. 신냉전 시대를 열어젖히는 나팔 소리가 될 것이고 그 대가를 가장 아프게 치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과도 안 좋고 국내 갈등만 커지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질 것인가?
한일 기본 조약이나 청구권 협정 어디에도 일제강점기를 언급한 부분이 없다. 1910년에 대한제국과 체결한 조약과 협정이 이미 무효화되었다는 언급만 있을 뿐 일본의 잘못을 인정한 부분도 없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한반도 내 일본의 자산은 몰수됐다. 당시 산정한 금액이 46억 달러 정도인데, 일본은 이에 대한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패전국으로선 당연한 얘기다.
그렇다면 한일 청구권 협정은 이에 대한 부속 협정 또는 개별 국가간 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 46억 포기하는 것으로는 안된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일본이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이걸 일본은 배상권까지 포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현실이다. (배상권까지 포함한 것이라면 그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초대받지도 못한 건 중국이나 대만도 똑같은데, 한국이 이런 협정을 맺은 것은 어떻게 보면 창피한 일이다.
중국과 대만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청구권과 배상권을 포기했다. 1945년 당시 중국 내 일본의 자산을 모두 몰수한 것만 187억 달러였다고 한다. 재산에 관한 문제는 이것으로 끝냈다는 뜻이다.
협정의 전문을 보면 "대한민국과 일본국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 양국간의 경제협력을 증진할 것을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라고 쓰여있다.
누가 보더라도 재산상 문제를 마무리하기 위한 협정이다. 강제 병합에 대한 배상이라는 언급도 없고, 일제강점 기간 내 우리 국민이 입은 물질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과 배상이라는 성격 규정이 없다. 재산과 재산에 준하는 권리를 상계하는 협정이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
국가적 차원도 아닌, 당시 일본 기업들의 불법적 행위에 대한 것까지 포괄해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행태는 일본의 역사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잘못이 없다는 뜻이다. 입으로는 몇 번 사과를 했지만 행동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게 한국과 일본 사이에 흐르는 냉기의 원인이다. 남은 문제가 고작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인데 말이다.
통크게 우리가 양보할 수도 있겠지만 국민 개인의 문제를 국가가 어떻게 임의로 양보할 수 있나? 천부적 권리를 제약하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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