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다 해저 등 세계 해저에서 소리 없는 ‘자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해저에 무궁무진하게 묻혀 있는 미래의 청정에너지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선점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관련 기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 미국, 중국, 인도 등은 이미 특별법까지 제정해 탐사와 시추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도 독도 주변에 풍부하게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메탄 하이드레이트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독도 해저는 연결고리=미국 지질연구소(USGS)가 지난 수년간 메탄 하이드레이트 분포 지역을 연구한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USGS는 대륙에서는 캐나다와 미국 알래스카, 러시아 시베리아의 동토 지대에, 대륙붕에서는 지진대를 따라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분포하는 것을 확인했다. 러시아 과학원 무기화학연구소도 캐나다 북쪽 비포트해, 러시아와 알래스카 사이의 베링해, 오호츠크해와 일본 열도 근해에서 메탄 하이드레이트 층을 발견했다. 이는 환태평양 지진대와 화산대를 따라 메탄 하이드레이트 분포층이 이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두 연구소는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발견된 독도 주변 해저가 환태평양 메탄 하이드레이트 분포층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반도 주변 해저지형을 보면 제주분지, 울릉분지, 일본분지가 연결돼 있으며, 이들 지형은 쿠릴열도와 베링해를 지나 캐나다, 미국, 남미 칠레까지 이어지는 메탄 하이드레이트 분포 벨트를 형성한다.
그리고 쿠릴열도와 동중국해를 이어주는 곳이 울릉분지이고 그 중심은 독도로 밝혀졌다. 이 벨트는 울릉분지와 제주분지를 지나 대만 해역으로 연결된다. 대만 북쪽 해역에서는 중국이 메탄 하이드레이트 탐사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어 향후 일본과 중국이 메탄 하이드레이트 개발을 둘러싸고 또다시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독도 주변 해저에서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대량 발견되고 있다. 2005년 6월 한국 정부 개발사업단이 울릉도 남쪽 100㎞ 지점 해저에서 6억t가량(국내 천연가스 소비량 30년치)을 발견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지난해 우리나라 동해 해저에서 채취된 메탄 하이드레이트.
세계에는 약 10조t이 해저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훌륭한 에너지 자원인 것은 물론, 석유자원 부존 여부를 알려주는 지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일본 에너지 전문가들은 “해저에 석유자원이 있는 지역을 탐사해보면 통상 맨 위쪽에 얼어붙어 있는 메탄 하이드레이트 층이 나타나고 그 아래 층에 천연가스와 원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에 퍼져 있는 천연가스 층의 지도와 러시아 과학원이 만든 메탄 하이드레이트의 분포층을 비교해 보면 놀랄 만큼 일치한다. 다시 말해 독도 주변에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묻혀 있다면 그 바로 밑에 석유층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일본 내 석유 관계자들은 “독도 주변에 엄청난 석유가 매장돼 있을 수 있다”며 주목하고 있다.
◆일본이 개발경쟁 선두=메탄 하이드레이트 개발 경쟁 분야의 선진국은 일본이다. 해저 탐사 기술은 러시아가 선두지만, 자본 투입 능력에선 일본에 뒤진다. 동해쪽 해저를 포함해 이미 100년간 사용할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발견해 놓은 일본은 2016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해 1월 시뮬레이션으로 상용화 가능성을 추산한 결과를 공개했다. 경제산업성은 먼저 메탄 하이드레이트에서 추출한 가스 가격이 배럴당 54∼77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원유 가격은 연초 뉴욕 시장에서 배럴당 100달러선을 가볍게 돌파한 뒤 현재 130달러대를 기록하고 있다. 배럴당 200달러 선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메탄 하이드레이트의 개발 비용과 채산성이 현실적인 손익분기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2001년 캐나다에서 새로운 시추 기술을 선보였다. 시추공을 통해 메탄 하이드레이트 얼음 덩어리를 파내는 채굴법이 아니라, 시추관으로 뜨거운 물을 주입해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녹인 뒤 분리된 메탄가스를 빨아 올리는 가열법이다. 일본은 지난해부터는 가열법보다 개발비가 적게 드는 감압법을 시험하고 있다. 감압법은 상온에서도 고압을 유지해 메탄을 원형대로 보관할 수 있는 고난도 기술이다.
일본 에너지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일본은 지금부터 세계를 리드하는 기술 개발을 조용하게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놓고 떠들 게 아니라 물밑에서 조용히 기술을 개발해 미래의 에너지를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부터 개발에 나선 일본은 올 들어 경제산업성 주도로 ‘메탄 하이드레이트 자원개발 연구 컨소시엄’을 결성했다.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 자원기구(JOGMEC)’는 일본 주변 해역에 100년치의 소비량 이상의 고순도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매장돼 있다고 추정했다.
미국은 최근 일본과 함께 메탄 하이드레이트 공동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양국은 동해 등 일본 열도 주변에 넓게 분포된 매장층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탐사하고 있다. 미국은 석유자원을 대체할 미래 자원으로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꼽고 있다.
중국은 메탄 하이드레이트 개발에 기술적으로 가장 뒤떨어져 있지만 행동은 가장 적극적이다. 일본 자원에너지청의 한 간부는 “일본은 이미 1970년대에 메탄 하이드레이트 개발에 나섰지만, 중국은 개발에 나선 지 10년도 안 돼 대만 주변 해역에서 채취에 성공한 뒤 상용화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고 전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해 하이난섬에 대규모 정제시설을 건설하고 메탄 하이드레이트에서 분리해낸 천연가스를, 홍콩까지 800㎞에 이르는 해저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공급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중국은 2015년 상용화를 목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중국 공산당 하이난성위원회 기관지 하이난일보는 최근 중국석유화공, 중국석유천연가스, 중국해양석유 등 3대 국영석유회사가 파이프라인 건설 후보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1998년 당시 주룽지(朱鎔基) 총리 주도 아래 메탄 하이드레이트 개발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개발에 착수했다.
우리나라는 독도 주변 해역에서 메탄 하이드레이트 탐사에 나서 2005년 6억t의 매장량을 확인했다. 하지만 상용화하기에는 아직 자본 투입 여력이나 기술력에서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정부가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메탄 하이드레이트란=메탄 하이드레이트는 엄청난 수압과 저온 상태인 해저에서 메탄 분자가 물 분자 내에 끌려들어가 생성된다. 드라이아이스와 비슷한 얼음 형태로, 불을 붙이면 활활 타올라 ‘불타는 얼음’으로 불린다.
1m³의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분해하면 172m³의 메탄가스를 얻을 수 있을 만큼 에너지 효율이 아주 높다. 게다가 연소 시 휘발유나 천연가스에 비해 이산화탄소를 절반 이하로 배출하며, 매장량도 풍부해 차세대 에너지로 개발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19세기가 석탄, 20세기가 석유의 시대라면 21세기는 메탄 하이드레이트의 시대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도쿄=정승욱 특파원 jswook@segye.com 세계일보 2008.06.24 (화) 10:31
러일전쟁중 독도의 전략적 가치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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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 일본 어업가가 獨島에 독점적 어로권을 확보하기 위해 제출한 신청을 받아들여, 1905년 1월28일 내각회의에서 獨島를 無主地로 전제,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한다고 결정했다. 이때는 러일전쟁이 한참이던 때였다.
일본軍 1만4000명, 러시아軍 5000명 이상이 전사한 후 旅順항을 내려다보는 203고지가 일본軍 손에 최종적으로 들어온 것은 1904년 12월5일이었다. 이어서 일본軍은 203고지 山頂에 탄착 관측소를 설치하고 항구를 향해 攻城砲(공성포)를 퍼붓기 시작했다.
목표는 여순항內에 대피하고 있던 러시아 제1태평양 함대(여순함대)였다.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의 연합함대는 이때 여순 外港을 봉쇄하고 있었다. 일본軍이 여순함대를 격멸한 것은 12월16일이었다.
이어 도고 제독은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迎擊(영격)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러시아는 1904년 4월 중순 발틱함대를 「제2 태평양 함대」로 개칭하고, 발틱海를 떠나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일본을 향해 항진하도록 했다.
도고 제독은 함대를 정비하기 위해 규슈(九州) 서쪽의 사세보 기지로 이동시킨 후, 1904년 12월30일 戰況(전황) 보고를 위해 東京의 大본영에 나타났다. 일본인들이 사상 유례 없는 천재 작전참모라고 칭송하는 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眞之) 중좌가 동행했다.
러일전쟁을 다룬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대하소설 「언덕 위의 구름」은 東京에 온 아키야마의 행적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1년 전에 결혼한 그에게는 東京 시내 아오야마(靑山)에 신부가 기다리는 새집이 있었다. 東京에 있는 동안 아키야마는 해군 軍令部(해군본부)에 매일같이 잠깐 얼굴을 비치고는 이내 집에 와서는 군복을 입은 채 벌렁 드러누워, 늘상 볶은 콩을 씹으며 바둑판처럼 구획된 판자 천장을 끝없이 응시하며, 작전구상에 골몰했다.
戰史는 전하고 있다. 일본의 연합함대는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통과할 것으로 예상한 제주도 근해에서 시작하여 동해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全동해를 緯度(위도)·經度(경도) 각 10분씩 바둑판으로 세분한 지도책을 작성하고, 그 바둑칸 하나하나에 일련번호를 붙였다. 敵 함대를 발견했을 때 하나의 숫자를 대는 것만으로 위치 전달이 족했다(「日露戰爭全史」, 데니스 워너, 페기워너, 妹尾作太男·三谷庸雄역, 時事通信社).
이 아이디어는 일본 각의가 獨島 귀속을 결정한 1905년의 1월 한 달을 東京 새집의 바둑판 천장을 바라보며 작전구상에 빠져 들었던 아키야마의 머리에서 나왔을 것이다.
동해를 세분하는 작전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본 해군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獨島의 존재에 눈이 갔을 것이고, 국가의 흥망이 걸린 大해전이 벌어질 전장 한복판에 있는 암초인 獨島의 전략 가치에 괄목했을 것이다.
러일전쟁 중 獨島에 무선기지 설치
1905년 5월 동해 海戰에 앞서 일본은 獨島에 망루를 세우고, 무선전신 기지를 설치했다. 한 어업가의 어로작업을 위해 전쟁 한복판에 있는 나라가 이 짓을 했을 것인가.
일본 각의가 어민의 어로를 위해 獨島 영유를 결정했다는 1905년 1월 하순은, 陸戰에서는 만주 遼陽(요양)의 北西쪽 黑溝臺(흑구대) 부근에서 러시아軍 대병력과 일본軍 수개 사단이 혹한의 풍설 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러시아軍의 反攻은 저지되었으나(1월27일), 일본군 1개 사단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000여 명의 사상자와 동상자가 발생했다.
만주 벌판의 전황은 電信을 통해 東京의 대본영으로 즉각 전달되고 있었다. 冬服이 무진장 아쉬웠고, 화약이 모자랐고, 戰費(전비)가 달렸다. 온 정부가 전쟁 뒷바라지에 매달려 있던 것이, 일본 각의가 獨島 귀속을 결정하던 1905년 1월29일 전후의 상황이다.
도고 제독은 1905년 문제의 1월 한 달을 꼬박 東京에 머물면서 야마모토 곤베이(山本倦岳衛) 海軍相 등 해군 수뇌부와 작전계획을 세웠다.
이때 결정된 대작전 원칙은 「함대의 전력을 조선해협(대한해협)에 두고 機(기)에 응해 행동할 것」이었다. 일본 해군은 東海에서 발틱함대와 결전을 치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발틱함대가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水路로는 사할린과 홋카이도(北海道) 사이의 소야(宗谷)해협, 북해도와 혼슈(本州) 사이의 쓰가루(律輕)해협 등 두 개의 수로가 더 있었다. 도고는 군함 29척, 수송선 40척, 승원 1만 명의 대함대가 이들 수로를 통과하는 것은 어렵고, 지구를 반 바퀴 도는 긴 항해에 지친 함대가 지름길인 東海 항로(대한해협)를 택할 것이라 보았다.
앞의 작전지침 「함대의 전력을 조선 해협에 두고…」가 결정되었을 때 獨島의 운명도 결정되었다. 동해海戰을 앞둔 일본함대가 망루와 무선기지를 설치할 곳으로는 獨島만 한 곳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략이 풍부한 야마모토 곤베이 해군상은 해군 수뇌부의 작전의지에 맞춰, 閣議에서 「어로」 명분으로 獨島 귀속조치를 처리했을 것이다.
東京을 떠난 도고 제독은 정비를 마친 연합함대를 끌고, 진해만으로 이동했다. 연합함대는 5월 말의 海戰 때까지 석 달 내내 함포사격 연습만 했다고 한다. 거제나 웅천이나 다대포의 우리 어민들은 생업을 닫고 밤낮 없이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에 떨었을 것이다.
일본 연합함대와 발틱함대가 조우한 곳은 부산과 일본 야마구치縣의 서북 끝을 연결한 중간 지점쯤 된다.
구축함 등을 빼고 主전력만 비교한다면 전함수에서는 8 對 4로 발틱함대가 우세했다. 순양함級에서는 20척 對 9척으로 일본이 우세했다. 비슷한 戰力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화력과 포격력에서 연합함대가 압도적이었다. 성능·기술을 계산하여 연합함대의 포격력이 발틱 함대의 17배였다는 분석도 있다(「日淸·日露戰爭」, 海野福壽, 集英社. 東京). 충분한 훈련으로 銳氣(예기)를 기르며 대기하고 있었던 연합함대에 비해 7개월에 걸친 긴긴 항해에서 대양의 황파에 시달린 발틱함대의 수병들은 지쳐 있었다.
20시간 남짓한 海戰에서 발틱함대는 괴멸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러시아의 함정은 순양함 한 척과 구축함 두 척뿐이었다.
5월27일 오후 2시 조금 지나 시작된 동해海戰은 28일 아침, 獨島 근해에서 벌어졌다. 27척의 연합함대 함정들이 전함 두 척을 포함하는 다섯 척의 발틱 함대 함정을 원거리에서 포위했다. 러시아 함대에 백기가 올랐고 나포 절차가 진행되었다. 동해海戰은 獨島에서 끝났다.
독도가 동해해전에서 저들에게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되었던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월간조선 2005년 6월호 중- 許文道 前 통일원 장관
독도 경제가치는 11.6조···日, 메탄하이드레이트 눈독 일본 정부가 30일 중학교 교과서 검정조사심의회를 열어 독도 영유권 주장을 기술한 사회교과서 12종을 통과시키면서 한·일간 '독도분쟁'의 악순환이 또 다시 재현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중·러와 분쟁···日 영해·영토 확장 의도=일본이 독도 영유권 도발을 지속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영해·영토의 확장이다. 일본은 독도 이외에도 러시아와는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를, 중국과는 댜오위다위(일본명 센카쿠열도)를 놓고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이 같은 반복적인 독도 영유권 주장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이슈화시키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현실적으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한국이 행사하고 있는 만큼 분쟁지역화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이 문제를 회부한다면 일본으로서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독도 경제적 가치 11.6조원=독도의 경제적 가치 역시 일본이 탐내는 부분이다. 유승훈 호서대 해외개발학과 교수는 "2009년 기준으로 독도와 그 일대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11조 5800여 억원에 달할 것"이라며 "이는 독도 주변에 분포돼 있는 광물·생물자원·관광가치 등 시장적 가치와 함께 역사적·군사안보적 가치 등 비시장적 가치를 합한 수치"이라고 밝혔다특히 일본의 관심은 독도 주위 해역에 6억t 가량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타는 얼음, 메탄하이드레이트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정부 소식통은 "거듭된 분쟁지역화를 통해 해저자원 공동개발 권리만 확보해도 일본으로서는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일본 특유의 정책결정 시스템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일본은 전문관료들이 대부분의 정책을 입안해 상향식으로 추진한다. 한 번 정책이 결정되면 큰 결점이 없는 한 총리라도 쉽게 바꿀 수 없다. 앞서 일본 정부는 2006년 애국심과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교육기본법을 개정했고, 이 기본법에 기초해 문부과학성 주도 아래 독도 영유권 주장 강화 흐름을 일관된 이어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분쟁지역화는 日 노림수···"실효적 지배력 강화해야"=일본의 도발이 계속되면서 일각에서는 지난해 11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쿠릴열도를 방문한 것처럼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등이 직접 독도를 방문해야 하는 방안, 해병대를 주둔시키는 방안 등 '강경론'이 비등하고 있다.그러나 전문가들은 거듭된 일본의 도발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의 주장에 한국이 군대를 주둔시키는 등의 과도한 대응을 하면 국제사회에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인식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며 "해양연구시설 설립과 체험확대 등으로 지배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독도 영유권 관련 연구 및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일 친선이 아무리 계속돼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이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다"며 "우리 학계의 독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제의 의도대로 독도가 분쟁지역화될 경우 국제사회에서 대응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이와 함께 이두형 우리역사교육연구회 회장은 "체계적인 청소년 독도교육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일선 역사·사회 과목 교사"라며 "교사 대상 독도 연수를 강화하고 역사과 1급 정교사의 자격 연수에 독도 영유권 강좌를 필수적으로 편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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