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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I think that those whose profession is government service have more conditions for pure livelihood. They do not have to think about making a profit for themselves.
질문: 제 생각에 직업이 정부 봉사자인 사람은 깨끗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얻을 궁리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Nina: They may have many akusala cittas; they may have conceit, or they may think of their own success. It all depends on the individual. When we have chosen a profession, it shows that we have accumulations for that profession. That profession is part of our daily life. During our work we can develop mindfulness and right understanding of nāma and rūpa. When we have more understanding of the Dhamma we can help other people to understand it as well, and thus we serve society in the best way, we contribute to peace in the world.
대답: 그들도 불선심이 있을 것입니다. 자만심과 자신의 성공을 생각하는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개인마다 다르지요. 어떤 직업을 선택할 때는 그 직업에 대한 축적된 성향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직업은 일상생활의 한 부분입니다. 일을 하는 동안 정신과 물질에 관한 알아차림을 계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담마를 더 잘 이해하면 다른 사람도 담마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사회에 봉사하게 되고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Question: But can someone who has to think of money all day be aware of nāma and rūpa?
Nina: Do you handle money during the day?
Question: Yes, it is part of our normal way of life.
Nina: Should you not be aware of realities when looking at money? Do you think that there is anything which is not included in satipaṭṭhna?
질문: 돈에 대해서도 정신과 물질로 생각할 수 있습니까?
대답: 당신은 돈을 만지지요?
질문: 그럼요, 그건 정상적인 생활의 일부입니다.
대답: 돈을 볼 때 실재를 알아차릴 수 없습니까? 사념처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Question: When I look at money visible object appears through the eyes. When I touch it hardness or softness may appear through the bodysense. But if I were aware only of those realities and did not know the value of the banknote I would be poor very soon. Even though I believe that awareness is very useful, yet I consider it to be a different section of life. I lead two kinds of lives: my life of awareness which I lead mostly at home, when I am alone, and my business life in which I have to be practical.
Nina: Do you think that the Buddha said that there are times one should not be mindful? He exhorted people to be aware, no matter what they were doing.
질문: 돈을 보면 보이는 물질이 눈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것을 만지면 단단하고 부드러운 것이 몸의 감각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러나 돈의 실재만 알고 지폐의 가치를 모르면 저는 금방 가난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비록 알아차림이 유익하다고 믿지만 그것은 삶의 또 다른 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알아차림은 집에서나 혼자 있을 때 하고 일할 때는 실용적으로 되어야 합니다.
대답: 부처님께서 알아차리지 말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까? 부처님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알아차릴 것을 권하셨습니다.
Question: But awareness is not always practical. For instance, when I am opening the safe in my office I have to remember the numbers of the combination-lock. If I were aware only of hardness, motion or visible object, I could not open the safe. I thought that only absolute realities, nāmas and rūpas which appear one at a time through the six doors are objects of mindfulness. I thought that there cannot be mindfulness while one is thinking of concepts.
질문: 하지만 알아차림이 항상 실용적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제가 사무실에 있는 금고를 열려고 할 때, 번호 자물쇠의 숫자를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제가 단단함, 움직임, 보이는 형상 등만 알아차리고 있다면 저는 결코 금고를 열지 못할 것입니다. 여섯 문을 통해서 한 번에 하나씩 나타나는 정신과 물질의 절대적 실재만이 알아차림의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념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는 알아차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Nina: Why can there not be awareness when you know the value of a banknote or when you remember the numbers of the combination-lock on the safe? At such moments there is thinking of concepts, but is thinking not a reality? Are there moments that there are not nāma and rūpa? I agree that you have to be practical, but does that mean that there cannot be awareness at the same time?
대답: 지폐의 가치를 알 때나 금고에 있는 번호 자물쇠의 번호를 기억할 때 알아차림이 없습니까? 그런 순간에는 개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은 실재가 아닙니까? 정신과 물질이 없는 순간이 있습니까? 나는 당신이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동시에 알아차림을 하지 말라는 의미인지요?
The Buddha's teachings are very practical. The Buddha gave many practical guidelines for lay people so that they could lead a life of goodwill and benevolence in their social relations. He advised them on the means for both their material welfare and their spiritual welfare. We read in the Gradual Sayings (Book of the Eights, Ch VI, § 4, Longknee, the Koḷiyan) that, while the Buddha was staying among the Koḷiyans, at Kakkarapatta, Longknee (also named ``Tiger foot'') visited the Buddha.
붓다의 가르침은 매우 실용적입니다. 부처님은 재가신도들이 선의를 가지고 살아가고 사회관계에서 자비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매우 실용적인 안내를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그들이 물질적인 번영과 정신적인 번영을 이룰 수 있도록 조언하셨습니다. 앙굿따라 니까야 여덟의 모음 6권 4장에 그것이 나옵니다. 붓다께서 까까라빠따에서 꼬릴리안들 사이에 머무실 때 사람들이 붓다를 찾아왔습니다.
He asked the Buddha whether he would teach Dhamma to people like him, who are householders indulging in sense pleasures. He would like the Buddha to teach him what would lead to happiness here on earth and to happiness in the world to come. The Buddha said that four conditions would lead to advantage and happiness here on earth, namely, alertness, achievement in watchfulness, good company and the ``even life''. As to alertness, he should be deft and tireless in his work, he should have an inquiring turn of mind into ways and means, and be able to carry out his job. As to ``accomplishment of watchfulness'', we read:
그들은 붓다에게 자기들과 같이 감각적 쾌락에 빠진 재가자에게 담마를 가르쳐 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붓다께서 내생뿐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기를 바랐습니다. 붓다께서는 지금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는 네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깨어있음, 보호를 구족하는 것, 좋은 친구, 평온한 생활 등. 깨어있음에 관해서는 일에 능숙하고 싫증을 내지 않아야 하며 방법과 수단을 마음에 새겨서 묻고 일에 적용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보호의 구족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What is the accomplishment of watchfulness? Herein, Tigerfoot (Vyagghapajja), whatsoever wealth a householder is in possession of, obtained by dint of effort, collected by strength of arm, by the sweat of his brow, justly acquired by right means-such he looks after well by guarding and watching so that kings would not seize it, thieves would not steal it, fire would not burn it, water would not carry it away, nor ill-disposed heirs would remove it. This is the accomplishment of watchfulness...
어떤 것이 보호를 구족함인가? 호랑이가 다니던 길에 사는 자여, 여기 선남자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정의롭게 법에 따라서 얻은 그의 재물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을 구족한다. ‘어떻게 하면 나의 이 재물을 왕이 거두어 가버리지 않을까, 물이 쓸어가 버리지 않을까, 불이 태워 버리지 않을까, 도둑이 훔쳐 가지 않을까, 성품이 나쁜 자가 상속받지 않을까?’ 라고, 이를 일러 보호를 구족함이라 한다.
As to good company, the Buddha said that he should consort with those who are full of faith, virtue, charity and wisdom, and try to be likewise. As to the ``even life'', we read: ...
좋은 반려자로서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신념과 덕과 자비심과 지혜에 가득 찬 사람과 배우자가 되어야 하고 또 그와 같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평온한 생활에 관해서도 다음과 같은 걸 읽을 수 있습니다.
Herein a clansman while experiencing both gain and loss in wealth, continues his business serenely, not unduly elated or depressed. He thinks: ``Thus my income, after deducting loss, will stand (at so much) and my out-goings will not exceed my income''...
여기 선남자는 재물의 수입과 지출을 알고, 지나치게 풍요하거나 지나치게 궁핍하지도 않게 바르게 생계를 유지한다. 이와 같이 내 수입은 지출을 제하고도 남을 것이고 지출이 수입을 능가하지 않을 것이다.
We read that there are four channels for the flowing away of amassed wealth: ``looseness with women, debauchery in drinking, knavery in dice-play and friendship, companionship and intimacy with evil doers.'' The Buddha explained that there are four conditions for happiness in the world to come: achievement in faith, namely, confidence in the Buddha, achievement in virtue, that is, abstaining from ill deeds, achievement in generosity and achievement in wisdom.
모아 놓은 부를 휩쓸어 가는 네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여자에 빠지는 것, 술에 빠지는 것, 도박, 친구들과 방탕하게 지내는 것,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과 결속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 붓다께서는 행복이 오게 하는 것에도 네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붓다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 덕을 갖추고 악행을 하지 않는 것, 관용과 지혜를 갖추는 것.
The Buddha would not teach anything which is not practical and beneficial. There should be awareness not only of realities which appear through the five sense-doors, but also of realities which appear through the mind-door. When we are thinking of concepts, there can be awareness of thinking. Can you help knowing the value of a banknote? Is knowing this a reality?
붓다께서는 실용적이지 않고 유익하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5가지 감각의 문에 나타나는 실재만이 아니라 마음의 문에 나타나는 실재에 대해서도 알아차려야 합니다. 개념을 생각할 때는 생각한다고 알아차려야 하지요. 지폐의 가치를 알아야 하지 않나요? 이것은 실재를 아는 것이지요?
14 Factors of the Eightfold path.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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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