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랑이 부족한 자를 위하여
본문 창29:31-35
사랑이란 주는 것도 어렵지만 받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이 부족한 채 살아간다. 사랑이 부족했던 대표주자는 야곱의 아내 레아를 들 수 있다. 아들 여섯과 딸 하나 낳고도 남편 사랑을 받지 못했다. 숨만 쉬었지 죽은 자와 같은 기구한 운명을 살았다. 그렇지만 영화처럼 레아의 인생에 반전이 이루어졌다. 그녀의 입술에서 “여호와를 찬양합니다.”라는 고백이 터져 나왔다. 레아에게 충만한 사랑으로 채워졌다. 오늘 말씀이 사랑이 부족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한다.
남편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의 축복을 가로챈 일로 보복이 두려워 삼촌 라반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다. 야곱은 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연모했다. 라반은 야곱이 자기 딸 라헬을 사랑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한 달이 지난 후 라반은 야곱에게 공짜로 일을 시킬 수 없으니 삯을 정하라고 했다. 야곱은 기다렸다는 듯이 라헬을 위하여 7년 동안 일하겠다고 약속했다. 라반은 빈털터리인 야곱이 신부를 위한 지참금 마련을 위해 자기 집에서 일하는 길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제안함이다.
7년간의 임금을 따지면 당시 일반적인 지참금의 3-4배가 되었지만 그래도 야곱은 라헬을 사랑함으로 7년을 며칠처럼 여겼다. 드디어 7년을 마친 후 아내를 달라고 했다. 라반은 딸 결혼을 위하여 잔치를 벌였다. 그리고 밤이 되어 자기 딸 레아를 야곱에게 데리고 갔다. 야곱은 7년 동안 피땀 흘려 일한 대가로 얻은 라헬을 품에 안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야곱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다. 신부는 면박으로 얼굴을 가렸고, 야곱은 술을 마셨으니 분별력이 떨어졌을 것이다. 라반의 속임수도 작용했을 것이다. 야곱은 삼촌에게 속고 나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레아의 몸을 만지며 라헬로 여겼던 일을 통해서 자신이 에서의 털 난 팔로 위장하여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였던 일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야곱은 삼촌에게 항의를 했다. 삼촌은 아주 태연하게 우리 지방에서는 아우를 먼저 시집보내는 법이 없으니 라헬을 신부로 삼고 싶거든 7일을 기다리라. 큰 딸의 결혼잔치를 마친 후 라헬을 주겠다고 했다. 그 대가로 7년을 더 일하라고 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니 그렇게 했다.
야곱은 언니 동생을 한꺼번에 아내로 삼게 되었다. 이런 일이 옳은 일은 아니지만 그 시대에는 통용되었다. 첫 번째 부인이 된 레아는 남편에게 언제나 찬밥 신세였다. 30절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라고 했다. 레아는 아들들의 이름 지음에서 남편의 사랑을 얼마나 갈망했는지를 알 수 있다.
첫 아들을 르우벤이라 했다.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을 때 시므온이라 했다. 이는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을 주셨도다.” 또 아들을 낳았을 때 레위라 하였다. 이는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갈망했다. 그렇지만 남편은 라헬만 사랑했다. 야곱은 레아가 아들을 낳았어도 사랑으로 대하지 않았다. 레아는 온종일 4명의 아이들을 양육하느라 녹초가 되었고, 밤이면 자기 동생 라헬로 침실로 들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레아의 심장은 찢기고 가슴은 비수에 찔리는 통증을 느꼈을 것이다.
옛 우리의 어머니들도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부엌에서 식모처럼 밥 먹으며 냇가의 얼음을 깨고 빨래했다. 농사철에는 밭에서 고되게 일하고 시어머니의 구박까지 받았다. 남편이 따뜻한 말 한마디만 해주면 그래도 견딜 만했을 테지만, 그런 말은 꿈에도 들어보지 못했다. 사랑받지 못한 지난 삶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남편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를 위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사랑이 부족한 레아를 위하여
하나님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의 아픔을 구경만 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레아의 아픔과 보셨고, 탄식 소리를 들으시고 내가 레아를 사랑해 주어야겠다고 나섰다. 31절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라고 했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고 과부의 남편이 되는 분이다. 하나님은 레아를 사랑하셨다. 레아의 남편이 되어 주고, 큰 사랑으로 품어 주셨다. 땅의 남편들이 주는 사랑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베푸셨다.
그러면 어떻게 레아를 사랑해 주셨을까? 자식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다. 셋째 아들은 레위는 성전 봉사자의 조상이 되었다. 레위는 아론의 줄기요 이스라엘의 구원자 모세의 할아버지다. 이보다 더 놀라운 사랑은 넷째 아들 유다를 통해서 누렸다. 넷째 아들 유다는 놀랍게도 예수님의 조상이다. 하나님은 레아를 예수님이 오게 할 태반으로 삼으셨다. 레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었다. 창세기 3장에서 여자의 후손으로 뱀의 머리를 밟을 자를 보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품은 복된 여인이 되었다.
레아는 안력이 나쁜 여자, 미모도 없고, 매력이 없는 여자였다. 아무도 그녀를 원하는 남자가 없어 동생에게 끼워서 시집을 보냈다. 하나님은 레아가 사랑받지 못한 것을 아셨다. 33절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은 천덕꾸러기 레아를 사랑하시고 그의 태를 통하여 이 세상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태만 빌린 것이 아니라 레아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예고하셨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셨을 때 모든 사람에게 싫어버린바 되었다. 그에게 흠모할 만한 것이 없었다. 예수님은 자기 땅에 오셨지만 아무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심지어 하늘 아버지께서도 그를 버렸다. 예수님의 생애는 마치 레아의 운명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레아는 당시에는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을지라도 자신이 겪은 멸시 천대를 통하여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맛본 것이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천덕꾸러기였지만 하나님은 메시아의 어머니로 세우셨고, 세상의 만민을 구원함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하셨다. 비천한 레아의 생애를 이렇게까지 빛나고 영광스러워지리라고 누가 예견했겠는가? 하나님이 레아의 남편이 되어주심으로 모든 삶이 달라졌다.
하나님은 레아에게만 남편이 되어 주심이 아니라, 우리의 남편도 되어 주셨다. 우리를 그의 거룩한 신부로 삼아주셨다. 우리는 본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였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비천한 자들이다. 그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 곧 순결한 신부로 삼아주셨다.(엡5:26-27)
하나님은 만인의 남편이 되신다. 남편이 있는 자들도 하나님을 남편으로 삼아야 한다. 나의 남편을 내 중심에서 내려놓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남편으로 앉혀야 한다. 남편이 하나님보다 앞서면 위험하다. 목사, 자녀, 부모, 친구, 재물도 내 마음 중심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
하나님만이 부족함 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남편, 부모, 자녀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내게 큰 사랑을 베푸시는 분임을 믿기 바란다.
레아의 입에서 찬양이 나왔다
레아는 아무도 자신의 인생은 바꿀 수 없을 것이라며 낙심했었다. 하지만 놀라운 반전이 이루어진다. 넷째 아들을 낳고 유다라 불렀다. 이는 35절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는 뜻이다. <내가 이제는>이란 말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남편의 사랑을 받기 위해 몸부림을 했다. 자신을 목석처럼 대하는 남편에게 목매어 살아왔다.
이번에는 달랐다. 넷째 아들을 낳은 후엔 남편과 연관을 짓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미련을 떨쳐냈다. 그 대신 소망을 하나님께 두었다.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쳤다. 더 이상 남편 사랑을 구걸하지 않고 하나님을 남편으로 섬기는 것이 인생의 의미임을 알게 된 것이다. 레아는 진정한 사랑은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옴을 깨우쳤다.
이제 레아는 야곱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인생의 의미가 야곱의 품에 자신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안기어 살며 그분을 찬송하는 데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잃어버린 나를 찾는 길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음을 안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인생의 의미는 하나님을 섬김에 있다. 그 목적을 발견하고 나니 그의 입에서 찬양이 터져 나왔다.
우리 역시 남편이나 부모나 자식으로부터 만족과 행복을 구하려고 하지 말라. 참 사랑은 하나님을 남편으로 모실 때 온다. 만족하는 사랑은 하나님에게서만 옴을 믿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시려고 레아의 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님 통해 사람의 본분을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고, 만족한 삶을 이룰 수 있다. 만족하면 영혼 깊은 곳에서 찬양이 나오고, 입술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게 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