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한국은 원화 환율 고평가로 1만 달러 소득을 달성하자, 경상수지 적자가 증가하고 수출이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1996년 OECD에 가입하였다. OECD 가입 조건 충족을 위한 금융 자유화 정책으로 유동성 외화 자금이 대량 유입되어 외환위기에 취약해졌다. 외환 자유화를 하면 해외 투기자금의 공격으로 외환위기 가능이 상존하는데도 이에 대비하지 못했다. 고도 성장기 차입 경영과 문어발 경영으로 기업의 평균 부채 비율이 500%에 달하여 자금난이 심화하였다. 대통령 선거로 정세가 불안하고 환율 고평가(1997년 836원/$, 2023년 1,310원/$)로 경제 환경이 나빠지자 코스피 지수가 급락하고 외자가 160억 달러 이상이 빠져나가 환율이 달러당 792원에서 1,600원대로 급등했다.
외화도입을 활성화하기 위해 소규모 단자사에서 전환한 종금사들은 동남아에 진출한 일본 은행에서 3개월짜리 단기성 저금리 자금을 대출받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1~2년 장기 고금리로 대출하여 2~3%의 차익을 거둬 국내 영업의 2배 이상 수익을 누리며 성장 가도를 달렸다. 고도 성장기 차입금과 문어발식 확장으로 덩치를 키운 국내 기업들은 1997년에 접어들자 환율이 800원대로 고평가되어 해외여행 증가와 수출 감소로 무역수지 적자가 1994~1996년까지 371억 달러로 증가하여 외화보유액이 줄어들고 환율이 지속해서 상승하였다.
동남아 외환위기 확산으로 한국 경제 불신이 높아지고 외화 차입이 막히고 차입금 만기 연장도 거부되어 외자 유출이 커지고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였다. 일본은 한국에 237억 달러, 아시아 국가에 990억 달러의 대출금을 회수하였다. 경제 위기로 증시가 폭락하여 담보 가치가 떨어지자 기업체는 대출 담보 부족액을 은행에 상환하여 외화가 부족해졌다. 대기업 부도로 금융기관 부실과 보유 외환 감소로 이어져 환율이 상승했다. 일본 은행의 대출 연장 거부로 인하여 종금사의 미스매치(mismatch. 차입 기간과 대출 기간 불일치)로 환율이 달러당 1,400원에 이르고 지급 보증한 은행들이 부도 위기에 몰렸다.
1997년 초 부채 비율 2천% 이상의 한보 부도 이후 삼미, 진로, 기아차, 해태, 대상, 뉴코아, 청구 등 30개 대기업 중 17개 기업이 도산하고 20,000여 개의 중소기업이 도산했다. 수년에 걸친 기아차 회계 분식(1996년 7,519억 손실을 70억 원 손실로 조작) 사실이 드러나자 부도에 반발하는 기아차 노조에 야당 정치권이 가세하여 노동 개혁법과 금융 관계법 개정이 불발되고, 기아차에 세금을 투입하는 무리수로 해외 투자자들의 이탈을 부추겼다. 환율은 달러당 1,964원까지 치솟았고 대출 이자율도 20%대에 달했다. 7개 은행과 14개 종금사가 외화 부도 선언으로 영업정지 되었다.
1997년을 전후로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고 도산하고 은행이 파산했다.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는 근로자들은 이유도 모른 채 회사 부도나 구조조정으로 실직을 하고, 그 사실을 숨기려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아내와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서 차디찬 공원 벤치에서, 또 근교 산에서 육체와 마음의 추위를 분노와 눈물로 감내했다. 대마불사라든 대기업과 은행, 자영업자의 부도로 1999년까지 실업자가 1,055,000명에 이르고 실업률이 8.7%에 달했으며 대출이자가 24%까지 치솟았다. 아이들 학원을 끊고 적금과 보험을 해지해서 생활했다. 연일 부도, 실직, 자살 소식이 언론을 장식하고 제일 은행 눈물의 비디오가 인구에 회자했다.
▶ 몰려드는 먹구름
1997년 쇠고기 0157 대장균은 익혀 먹으면 문제가 없는데 한국만 수입을 거부했다가 클린턴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나서야 수입을 재개해 미국의 원성을 샀고, 1994년 골드만 삭스 루빈 회장(IMF 외환 사태 당시 미 재무장관)이 한국 재무장관과 면담 약속을 하였으나, 장관 대신 과장이 영접하여 문전 박대를 했다. 미국의 자동차 구매 요청에 "이제 미국과 이혼할 때가 되었다"라는 폭탄선언을 해 워싱턴 정가에서 한국을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1995년 일본 에토 다카미 총무상의 망언에 YS는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라고 하고, 한·일정상 회담장에 총무상 배석을 거부했다. 미국, 일본이 한국을 지원하지 않은 것은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것인지 - 그럴 리는 없겠지만 - 지도자들의 사적 감정이 작용했는지 모르겠다.
일본의 급성장으로 70년대 미국이 경제 위기를 만나자 일본의 거품을 빼기 위해 플라자합의를 하고, 예금자와 금융 시스템 보호를 위해 부채에 대한 자기자본 비율(BIS)을 8% 이상 유지하게 하는 바젤협약이 1996년 시행되었다. 일본 은행들은 BIS 8%를 지키기 위해 보유 주식, 채권, 부동산을 팔아 자기자산을 늘리고 대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태국, 인도네시아 등이 환투기꾼 공격으로 외환위기를 맞자 일본 은행은 동남아 각국에 대한 대출금을 집중적으로 회수하기 시작했다. 또 한국의 종금사 대출 기한을 연장해 주지 않자,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진 종금사 지급보증을 한 은행에 중앙은행이 외화를 공급하여 외화가 바닥났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정부는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IMF를 통하지 않으면 지원할 수 없다고 했다. 정부는 일본 은행의 대출금 회수 중단과 자금지원을 요청했으나 일본도 3개 은행과 증권사 4개가 파산한 상태이고, 은행 BIS 8% 비율을 맞추기 위해 위험자산(대출금, 주식 등)을 회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했다. 미스까 히로시 대장성은 미국 루빈 재무장관의 “일본 금융체계가 걱정스럽다. 한국은 IMF 틀 내에서 처리할테니 일본은 경거망동하지 말아라”라는 친서를 보여주며 IMF 틀 안에서 절차를 밟으라며 지원을 거절했다. 중국에 달러 지원을 요청하니 류지민 재무 차관은 국민 소득 600달러짜리 나라가 어떻게 1만 달러 나라에 돈을 빌려주겠냐는 핀잔을 듣는 수모를 당했다.
대출금 이자가 30%대에 육박하고 다 채무가 기업은 이자 부담으로 연쇄적으로 도산하여 외화보유액이 39억 달러까지 급감하자 정부는 1997.11.20 임창렬 부총리 명의로 IMF에서 요구하는 대통령 후보 3명의 각서를 제출하는 굴욕을 겪고 60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기로 했다. 지원 금액은 IMF 195억 달러, IBRD 70억 달러, ADB 37억 달러 합계 302억 달러를 지원받기로 해 간신히 국가 부도 사태는 면했으나 기업구조 조정 등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국제 환투기 세력이 공격하기도 전에 외환 관리정책의 미숙과 실패로 한국 스스로 몰락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종금사가 일본에서 차입한 단기 자금으로 장기로 대출하였으나 일본 은행의 차입금 만기 연장이 안 되어 자금순환 불일치로 인한 일시적인 달러 부족으로 외환위기를 맞았다.
1997.12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김대중 후보는 제일 먼저 헤지펀드 조지 소로스 회장을 만났다. 한국이 스스로 무너진 것인데 국제투기 세력의 공격을 받아 외환위기를 당한 것으로 오해를 한 것이다. 종금사들의 해외 차입금 규모도 파악하지 못하고 관리도 하지 못한 한국 관료들의 폐쇄적이고 해외 정보에 어두워 일어난 일이다. 정부는 기업 부채 비율 500% 이상을 200% 수준으로 낮추고 구조조정, 재정, 금융 긴축과 투명성 제고 등 후속 조치를 했다. 은행의 통폐합으로 제일, 상업, 한일, 서울, 동남, 동화, 대동, 평화 은행 등 낯익은 은행들이 사라져갔고 실업자와 실업률이 늘어났다. 금융ㆍ기업ㆍ노동ㆍ공공 4대 부문의 구조조정을 하고, 금 모으기 등 눈물겨운 노력과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2001.8.23. IMF 차입금을 모두 상환하였다. (외화보유액 1997.12.18. 39억 달러, 2023.6. 4,200억 달러)
▶ 외국 환투기 세력의 공격 현황
미국 금리 인상으로 미국으로 몰려든 국제 투기성 자금이 1991년 스웨덴, 1992년 영국, 1995년 멕시코를 공격했고, 터키, 스페인, 프랑스, 덴마크, 러시아와 브라질로 외환위기가 전이되었다. 1996년 태국에 이어 인도네시아, 홍콩이 환투기 세력의 공격을 받았다. 대출이자를 높이면 자국 기업이 도산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대출이자를 러시아는 150%, 대만은 49%, 홍콩은 콜금리가 100%가 될 때까지 달러를 쏟아부어 환투기를 방어했다. 말레이시아는 외국인에게 링기트화를 빌려주지 않는 외화거래차단으로 방어했다. 당시 중국 장쩌민 주석은 미국의 보잉기, 슈퍼컴퓨터 등 300억 달러어치를 사주기로 해 외환위기를 넘겼다.
▶ 환투기 세력이 외환시장을 공격하는 방법
국제 투기자금이 공격하는 대상국은 통화가치가 고평가되었거나 외환보유고 부족 등 경제 체질이 부실한 국가를 대상으로 한다. 공격하는 방법은, 환투기자금이 달러를 담보로 한국의 원화를 대출받아 달러를 구입하고, 그 달러를 담보로 원화를 빌리고, 그 원화로 달러 사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반복하면 원화 가치가 폭락하고 달러가 부족하게 되면, 값어치가 떨어진 원화로 달러를 사서 가치가 폭락한 원화를 갚으면 환투기 세력은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게 된다. 환투기 공격을 받으면 원화 대출 이자율을 일시적으로 대폭 올려 환투기 세력이 이자가 비싸 이익을 없게 만들거나, 원화를 대폭 절상하여 환투기를 방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