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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용도로 허가된 곳에 불법 입점한 롯데마켓999 청주가경가맹점 앞에 할인행사용 제품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
최근 각종 비리의혹으로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있는 재계 5위 롯데그룹 계열의 준대규모점포(SSM·Super SuperMarket)가 청주의 한 골목상권에 들어서면서 주변 상가마트와 편의점 등의 매출이 절반 가까이 뚝 떨어지는 등 생계에 큰 위협을 받고 있다. 특히 입점 건물마저 무단으로 용도 변경된 불법 건축물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롯데마켓999 가경가맹점은 지난달 31일 청주시 흥덕구 풍년로 32의 오피스텔 건물 1층에 입점했다. 롯데쇼핑이 국내 최초 균일가 신선식품 소포장 매장으로 선보인 롯데마켓999는 990원, 1990원, 2990원 등 소형 묶음 판매로 1인 가구와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더욱이 가경가맹점은 서민들이 거주하는 주공아파트단지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어 그 파급력은 클 수밖에 없다.
실제 가경가맹점은 입점직후 4일간 파격적인 오픈할인행사를 진행했고 그 즉시 반경 50m 내에 있는 상가마트 3곳과 편의점 3곳의 매출이 3분의 1에서 절반가까이 떨어지는 등 경영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인근 상가마트 관계자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갑자기 SSM이 들어오면서 매출이 너무 큰 폭으로 떨어져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우리 같은 소규모점포 점주들이 대기업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영세상인을 보호할 법적 제도나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가경가맹점이 입점해 있는 점포는 용도상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해당 건물은 택지조성 당시부터 업무시설로 지정, 지구단위계획에 묶여 용도변경이 불가한 곳이다. 즉 사무실이나 오피스텔용도 외에 SSM과 같은 점포는 절대 입점할 수 없다.
현재 이 곳은 지난 2일 흥덕구청 건축과에 불법건축물에 대한 민원이 접수돼 건축법 70조에 의거, 가맹점주(건축주) A씨에게 35일(6월2일~7월7일)안에 원상복구 하라는 내용의 1차 시정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만약 A씨가 이를 이행치 않을 경우 2차(45~60일) 시정명령 후 경찰에 고발돼 벌금과 이행강제금 등이 부과된다. 하지만 A씨나 롯데마켓측이 가맹계약 시 불법용도변경에 대한 규정과 처벌을 모른 채 오픈준비를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청주시 흥덕구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마트와 관련한 민원신고는 창고 등의 불법증축이 대부분이었으나 이번과 같은 불법용도변경신고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매출이 높은 일부 불법점포의 경우 벌금과 이행강제금 납부 뒤 계속해서 영업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불법행위가 가능한 이유는 강력한 관리·감독 권한을 가져야 할 행정관청의 관계법령이 허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청주시내 SSM 및 마트는 시청 일자리경제과와 관할구청 환경위생과에서 관리되고 있으나 전통시장과 전통상점이 있는 반경 1km 내의 전통상업보전구역에 입점해 있거나 점포면적이 300㎡ 이상의 대형점포만이 등록허가나 영업신고 대상이다.
따라서 이번에 문제가 된 가경가맹점(156.22㎡·47평)처럼 매장면적이 300㎡(90평) 미만의 소형매장의 경우 특별한 절차 없이 영업개시 1개월 전 개설신청을 한 뒤 관할 세무서에 사업자등록만 끝내면 그 즉시 영업이 가능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맹점을 이용해 대기업의 SSM이 법적 제재가 딱히 없는 소형 SSM으로 골목상권을 공략한다면 서민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어 관계당국의 관련법 개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롯데마켓999 가경가맹점주 A씨는 “가맹계약 전 롯데쇼핑 개발담당자와 매장의 용도문제로 입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상의했으나 ‘다른 비슷한 곳들도 몇 년째 별 문제없이 운영돼 오고 있다’고 말해 시작하게 됐다”며 “전 재산은 물론 대출까지 받아 시작한 사업인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A씨는 지난 4월 중순께 해당 상가건물(1층)을 3억3000만원에 매입하고 롯데쇼핑에 가맹비와 물건 사입비 등 1억원 가량을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롯데쇼핑 충청·호남 개발팀장은 “A씨가 가맹계약을 맺기 전 점포의 용도문제를 놓고 같이 상의한 것은 사실이지만 점포 개설 뒤 용도변경을 추진하겠다고 말해 계약을 체결한 것일 뿐”이라며 “계약서에 모든 인·허가에 대한 책임은 가맹점주에게 있다고 명시돼 있다”고 밝혔다.
청주시에는 지난 5월말 현재 홈플러스익스프레스(8곳), GS리테일(8곳), 롯데슈퍼(5곳)·롯데마켓999(2곳), 농협하나로클럽(5곳), 에브리데이리테일(3곳) 등 모두 31곳의 SSM이 성업 중이다. 이중 전통시장과 전통상점 인근 1km 이내에 대형마트 등이 들어설 수 없는 전통상업보전구역 내에 입점한 SSM만도 14곳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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