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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잘츠부르크 오페라의 향기'
< 피델리오 - Fidelio >
지난 6월 악성(樂聖)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 피델리오 > 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장 니콜라스 부이 원작 < 레오노레, 또는 부부의
사랑 - Leonore, ou L'amour conjugal > 을
각색한 작품으로,
조세프 존라이트너와 트라이추케가 독일어
대본을 완성했지요.
프랑스 혁명 당시 유행한 '구원(탈출) 오페라'의
기본 프레임을 취한 이 오페라는...
전면적인 개작을 거듭한 끝에 1814년에야
줄거리, 대사, 음악이 균형을 이룬 최종
수정본이 나오게 됐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세 판본 모두 베토벤이 모차르트
징슈필 오페라 < 마술피리 > 에 품고 있던
애정이 짙게 배어있지요.
베토벤은 오페라 < 피델리오 > 를 1805년
11월에 초연한 후 불과 4개월 만에 개정판을
공연했고,
1814년 5월에는 현재 남아있는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제3판이 확정되었습니다.
10년의 치열한 과정을 거쳐 서곡을 무려
네 개나 작곡했을 정도였으니 베토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던
셈이죠.
오페라 타이틀도 초판의 < 레오노레 > 에서
최종본의 < 피델리오 > 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인류의 자유·평등·평화를 중시한
휴머니스트 베토벤의 정신과 열정을 체감할 수
있는 오페라 < 피델리오 >.
프랑스 대혁명 당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의 시놉시스는 이러하지요.
정치범들을 수용하는 교도소에 '피델리오' 라는
젊은 간수가 새로 들어옵니다.
실은 그는 '레오노레' 라는 여자로서 억울하게
투옥된 남편 플로레스탄을 구출하기 위해서
남장(男裝)을 하고 위장취업(?)한 것이죠.
그녀는 남편의 지하 감방에 접근하기 위해서
열심히 근무합니다.
이에 간수장 로코는 그를 좋게 보고 심지어
사윗감으로까지 생각하지요.
어느 날 불법으로 감금된 죄수가 있다는
정보를 들은 법무대신 돈 페르난도가 이곳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에 당황한 교도소장 돈 피차로는
플로레스탄을 죽여버리려 하지요.
피차로가 플로레스탄을 죽이려는 순간,
피델리오가 앞을 가로막고 "그를 죽이려면
아내인 나를 먼저 죽여라" 고 외칩니다.
이때서야 사람들은 그가 여자이며 레오노레란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때 법무대신 페르난도가 도착하고,
플로레스탄은 가까스로 죽음을 면합니다.
사태의 진상을 알게 된 법무대신은 "그를
구한 건 진실로 용기있는 아내" 라고 외치고,
전원이 부부의 고매한 사랑을 칭송하지요.
이렇듯 산고(産苦)를 심하게 치른
< 피델리오 > 를 보면,
베토벤은 다른 작곡가들의 낭만적인 오페라들과
달리, 두 가지의 숭고한 의미를 확실히 전달하려
했음이 분명합니다.
첫째로 진정한 '자유' 를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염원이요, 둘째로 남녀간의, 특히 부부간 '사랑의
승리' 메시지이지요.
이처럼, 지고지순(至高至純)의 부부애 속
인간 자유를 외치는 오페라 < 피델리오 > 는,
독일어 희가극 장르인 '징슈필(Singspiel)' 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짝을 바꿀 뻔 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 코지 판 투테 > 의 플롯에 원초적인
적대감을 갖고 있었던 베토벤은...
< 피델리오 > 를 통해 부부의 희생적인 사랑과
결혼이 지닌 불변의 위대한 가치를 노래하고자
했던 것이죠.
정작 자신은 여러 여성을 사랑했지만 끝내
결혼하지 못했는데도 말입니다
진지한 탈출극이기에 이 오페라의 주인공들이
소망하는 ‘자유’에 대한 갈망은 더욱 소중하게
울려옵니다.
바로 1막 ‘죄수들의 합창’(Prisnors' chorus)이
그러하지요.
잠시 뜰에 나와 햇볕을 쬐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작은 자유에도 감격한 죄수들의
코러스를 들으면 관객들도 자유의 가치를
온몸으로 느끼는 감동에 휩싸이게 됩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를 잇는 <피델리오> 가
있었기에 베버의 < 마탄의 사수 > 역시
등장할 수 있었으며,
아울러 그 다음 세대인 '바그너' 악극으로
이어진 독일 오페라의 적통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게지요.
사실 < 피델리오 > 는 안타깝게도 공연이
드문 오페라로 자리합니다만...
워낙 진중한 주제의 작품인데다 두 주인공의
캐릭터가 고결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대중적
인기도가 이에 못미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베토벤은 오페라 < 피델리오 > 를
통해,
모든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관습이나 국가나
교회나 관념에 종속되지 아니하고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지요.
이처럼 오페라 < 피델리오 > 엔 베토벤 특유의
자유 사상이 마그마처럼 분출되고 있기에,
종반부에는 '오라토리오'(Oratorio) 스타일의
대합창이 폭발합니다.
마치 '제9번 교향곡 합창' 의 피날레에서
인류에 대한 사랑을 외치는 것처럼,
그 맥락과 장대한 감동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죠.
드라마의 한정된 범위와 단순한 등장 캐릭터들
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은 서서이 커져가는 영적인 음악을 통해
<피델리오> 를 독창적인 마스터 피스로
승화시켰습니다.
하여, < 피델리오 > 야말로 작품에 대한
올곧은 해석이 본연의 빛을 발하는 공연의
오페라로 우뚝 서게 됐지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에서
빈 슈타츠오퍼가 펼쳐낸 < 피델리오 >.
오페라는 클라우스 구스의 독창적이고도
심오한 해석의 연출 아래,
소프라노 아드리안느 피촌카와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타이틀 롤 피델리오(레오노레)와
플로레스탄 역을 노래했습니다.
이어 간수장 로코 역에 베이스 한스 피터
쾨니히, 교도소장 돈 피차로 역으로 베이스
바리톤 토마츠 코니츠니,
마르첼리나 역엔 소프라노 올가 베제메르트나,
아퀴노 역에 테너 노르베르트 에른스트,
그리고 법무대신 돈 페르난도 역에는 베이스
세바스티안 홀레체즈의 출연진이 열연했지요.
또한 크리스티안 슈미츠가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로니 디트리히가 드라마 지도를
맡았습니다.
지휘자 프란츠 벨저 뫼스트와 빈 필하모니의
콜라보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하모니가 함께
했죠.
무엇보다도 감옥을 표현한 무대와 정치적
배경에 짙게 깔린 어두움이 사뭇 처연한
분위기로 다가왔습니다.
텅빈...적요(寂寥)한 흰색 무대 바닥을 향해
긴 세로의 장대한 검은색 직육면체가 서서히
내려오지요.
실험극을 방불케하는 괴기한 앰비언트
사운드가 매 장면 장면마다 깔립니다.
덕분에 아리아와 레치타티보간에 의도적(?)인
휴지(休止)가 오묘하게 생성되는 가운데...
선과 정의의 상징 '레오노레의 그림자'
(shadow : 나디아 키첼레 분)와,
악과 불의의 화신 '피차로의 그림자'(폴 로렌거
분)를 형상화한 두개의 캐릭터가 등장하지요.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간단하지만 임팩트있는
무대 디자인은 처음부터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아울러 무대 앞쪽에는 여자 두명이 보이고
뒤쪽으로 남자 두명의 그림자가 암유적으로
비춰지는 연출은,
무대를 양분해 실제 인물과 그림자 캐릭터를
대비시켜 극의 서사를 이끌어가게 해주죠.
l. '피델리오 서곡 Op.72-c'
사랑의 승리와 환희를 예고하는 서주부와
격정적이고 당당한 선율의 코다로 이루어진
서곡으로,
자유스럽고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명쾌한 교향악적 울림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빈 슈타츠오퍼
(1978)
https://youtu.be/NA3bi_evCZk
- 아서 아놀드 지휘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
https://youtu.be/VW9KLKST6y4
ll. 1막 : 사방이 높은 벽인 감옥의 마당
교도소안의 뜰...
아퀴노는 간수 로코의 딸 마르첼리나에게
구혼을 하지만 그녀는 새로온 조수
피델리오에게 마음이 끌려 그의 청혼에 그저
시큰둥하기만 합니다.
1. 2번 '오, 당신과 함께 이뤄질 수 있다면'
(O, war' ich schon mit dir vereint)
아퀴노의 구애를 거절한 뒤 마르첼리나가
피델리오와의 사랑이 이루어질 때를 생각하고
행복해하며 부르는 아리아죠.
2. 3번 4중창 '참으로 이상한 일이구나'
(Mir ist so wunderbar)
딸과 피델리오가 맺어졌으면 하고 내심
바라는 로코, 이에 속으로 기뻐하는
마르첼리나, 당황스러워하는 레오노레
(피델리오), 절망의 가슴앓이를 토로하는
아퀴노...
각자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네 사람의
엇갈리는 심정이 절묘하게 아우러집니다.
- 군둘라 야노비츠, 루치아 팝,
만프레드 융비르트, 아돌프 달라포자
: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빈 슈타츠오퍼
/ 오토 센크 연출
https://youtu.be/A9l1wKCv9nE
3. 3번 '돈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네'
(Hat man night such gold beineben)
로코는 피델리오에게 자신의 딸과 결혼하라고
권유하며, 결혼해 행복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아리아 '남자가 돈이 없으면' 을
부르죠.
그러자 피델리오는 "사람에게 돈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라고 화답하며,
로코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지하 감옥의 일을
돕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4. 5번 3중창 : 로코, 레오노레, 마르첼리네
로코가 "사실 지하 감옥에는 2년 전부터
중요한 정치범이 수감돼 있어 고참인
나 혼자서만 출입하도록 소장이 엄명을 내렸다"
고 말하자,
그 죄수가 남편이라는 걸 직감한 피델리오는
자신이 들어갈 수 있도록 소장의 허락을 꼭
얻어달라고 부탁하지요.
이에 마르첼리나는 피델리오와의 결혼 승낙도
함께 받아달라고 말합니다.
세 사람은 각자의 목적이 달성된다고
생각하며 다같이 소리높여 자신들의 기쁨을
노래하지요.
5. 7번 '아,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Ha, welch' ein Augenblick!)
'부당하게 감금된 죄수들이 많다는 보고를
듣고 법무대신이 직접 시찰하겠다' 는 내용의
서류를 보고 크게 놀라는 교도소장 피차로...
다급해진 그는 법무대신이 오기 전에 투옥 중인
정적 플로레스탄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긴박하게
부릅니다.
영문을 모르는 병사들은 "무슨 큰 일이 있는
모양이다" 라며 소장의 처사에 복종하겠다는
합창으로 답하죠.
- 바리톤 팔크 슈트루크만 과 합창
https://youtu.be/9rcMI2Cfvbw
피차로는 로코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돈지갑을 던져주며 플로레스탄을 죽일 것을
명하지만...
로코는 자신의 책무가 아니라며 응하지
않습니다.
급기야 피차로는 그에게 구덩이만 파 놓으면
자신이 직접 해치울 것이라고 이르지요.
6. 9번 '악한이여! 어디로 가느냐?
(Abscheulicher! Wo eilst du hin?)' -
'오라, 희망이여(Komm, Hoffnung)'
마침내 지하 감옥에 내려온 레오노레는
두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다...
피차로의 악행으로 인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토 '악한이여 어디로
가느냐' 로 포효합니다.
곧이어 반드시 남편을 사지에서 구출해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노래하지요.
"내 지친 몸을 비춰주는 희망이여, 오라
마지막 남은 별빛이 사라지지 않게 해다오.
아, 오라. 아무리 멀더라도 그가 있는 곳까지
비춰다오. 사랑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주리.
마음 속의 힘이 시키는대로 따르리.
또한 절대로 흔들리지도 않으리.
남편을 사랑하는 진실한 마음이 내게 용기를
주고 있으므로.
오, 그대여. 나는 진실한 사랑을 위해 모든 걸
견뎌왔네.
악당이 당신을 족쇄로 묶어 놓은 곳으로
갈 수만 있다면...그대를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을텐데!"
- 소프라노 귀네스 존스
: 칼 뵘 지휘 베를린 슈타츠오퍼(1970)
https://youtu.be/ebXNo_J0Yz4
7. 10번 '죄수들의 합창 : 오,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Prisoners' Chorus : O, Welche
Lust!)
레오노레는 로코에게 허락을 받아 감옥 문을
열고 수감된 죄수들이 뜰에 나와 일광욕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죄수들은 밝은 햇빛을 받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기뻐하지요.
" 자유의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이 큰 기쁨!
오직 자유 속에서만 우리의 생명이 있네."
하지만 남편 플로레스탄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로코는 지하감옥으로 레오노레를 데려 가겠다고
하면서도, 뛸듯이 기뻐하는 그녀에게 "그 죄수는
한 시간이면 매장될 것이다" 라고 귀띔해주죠.
"그러면 이미 죽었냐" 고 묻는 레오노레에게
" 죽이는 건 교도소장이며 우리는 무덤을
팔 뿐이다" 라고 답합니다.
그때 화가 난 피차로가 나타나 "허락없이
죄수들에게 햇빛을 쐬게 했다" 며 로코를 크게
질책하지요.
로코가 국왕의 '명명축일(Namensfeier :
Name Day)' 을 맞아 그리했다고 변명하자,
피차로는 어쨌든 죄수들을 재수감하고
플로레스탄의 무덤을 어서 파라고 독촉합니다.
-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빈 슈타츠오퍼
https://youtu.be/RhMdMD9tXB0
- 오토 클렘페러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합창
https://youtu.be/7eQW09z3TwU
- 베르겐 & 리투아니안 국립오페라(2013)
: 감독 오스카라스 코르수노바스,
앤드류 리튼 지휘 베르겐 필하모니
https://youtu.be/ReSwAZ8jNyQ
lll. 2막 1장
: 차마 인간이 있을 곳이 아닌...지하 감옥
8. 11번 서주와 플로레스탄의 아리아
아주 느린 선율로 풀어지는 현악기와 팀파니의
앙상블은 장중하고 비통합니다.
그 길고 극적인 서주를 뒤로 하고 통한(痛恨)의
테너 아리아가 시작되죠.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차거운 돌바닥에 앉아 있는 플로레스탄...
그는 절망을 토해내듯 비통한 레치타티보
'신이여, 이곳은 왜 이리도 어둡습니까?
(Gott, welch dunkel hier?)를 외칩니다.
하지만 그의 비탄은 이 오페라 최고의 드라마틱
아리아 '세상의 아름다운 봄날에도'(In des
lebens fruhlingtagen)로 고통스럽게
옮겨지죠.
가혹한 역경 속에서도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으며 사랑하는 연인에게 위로받고
싶은 심정을 절절하게 노래하는 플로레스탄...
지난 인생의 봄날을 떠올리며 자신의 운명을
의연히 받아들이려고 하던 그는,
장미꽃 속에서 레오노레와 같은 모습의 천사가
나타나는 환상을 봅니다.
흥분한 플로레스탄은 이내 쓰러지고 말지요.
"내 인생의 봄날에 모든 기쁨이 사라져
버렸네.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했건만 그 대가는
쇠사슬이라네.
아무리 힘들어도 모든 고통을 참아내고
불명예스러운 최후를 받아 들이리라.
내 의무를 완수하였기에 마음 속엔 달콤한
위안이 깃드네.
달콤한 위안! 의무! 그래, 나의 의무를 다했어!
아, 내가 부드럽고 살랑거리는 미풍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무덤이 밝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미 향기에 둘러싸인 천사가 옆에 서서
나를 위로하는 것이 보이네.
그 천사는 내 사랑 레오노레로 보이는구나.
천사는 자유로운 세상인 천국으로 나를
인도하네."
-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 프란츠 벨저 뫼스트 지휘 빈 슈타츠오퍼
(2015)
https://youtu.be/QZYOCJKI1i8
- 테너 제임스 킹
: 칼 뵘 지휘 베를린 슈타츠오퍼(1970)
https://youtu.be/2cuXO2N2Crw
< 피델리오 > 의 영상은 10종 이상이
존재하지만 최고의 DVD는 1970년 연출작
베를린 도이치 오퍼 스튜디오판을 꼽지요.
기본적인 연출과 무대는 구스타프 루돌프
셀너의 베를린 도이치 오퍼 프로덕션으로
이뤄졌습니다.
지극히 유장한 칼 뵘의 템포도 이 오페라의
깊은 작품성을 잘 살려내고 있지만,
이 영상물 최고의 미덕은 미국 출신의 테너
제임스 킹의 놀라운 가창력을 실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바그너 테너로 유명했던 킹은 단단하고
묵직한 소리에 비극적인 면모까지 불어넣어
헬덴 테너(Helden Tenor : 영웅 역할의 테너)
스타일에 가장 어울리는 가수였죠.
플로레스탄의 아리아 '신이여, 이곳은 왜
이리도 어둡습니까!' 에 담긴...
그 비극적인 울림과 그런 가운데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 표현력은 킹 이후의 모든 헬덴 테너를
뒤로 물러서게 만듭니다.
그의 아내 레오노레 역은 웨일즈 출신의
소프라노 귀네스 존스가 노래하지요.
존스 역시 바그네리언으로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소프라노인데, 그 이전의 과도기에
가장 빛을 발한 역이 바로 레오노레였습니다.
더스틴 호프만이 감독 데뷔한 영화
< 콰르텟 - Quartet >(2012)에 출연하기도
했던 귀네스 존스...
그녀는 극 중 은퇴 음악가를 위한
비첨 하우스의 도도한 터줏대감으로...
새로이 입주한 숙명의 라이벌 '진 호튼'
(메기 스미스 분) 과 미묘하게 맞서는 원로
소프라노 '앤 랭리' 역을 잘 살려냈습니다.
영화의 피날레 갈라콘서트에선 푸치니 오페라
< 토스카 > 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Vissi d'arte, vissi d'amore) 를 불렀지요.
9. 14번 '그 놈을 죽이리라!'(Er sterbe !)
피차로가 복수자를 자처하며 플로레스탄을
칼로 찌르려고 하자,
레오노레는 온몸으로 남편을 감싸며 차라리
아내인 나를 먼저 죽이라며 극렬하게 맞섭니다.
피차로가 "좋다. 둘 다 죽여주마!" 라며 달려들자
레오노레는 권총을 꺼내들어 피차로를 겨누죠.
그때 지상의 탑 위에서 법무대신이 오고 있다는
팡파르 소리가 들려옵니다.
피차로는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가고 로코와
레오노레 부부는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지요.
- 크리스티나 루드비히, 제임스 킹
발터 베리, 요제프 그라인들
: 아르투르 로더 베를린 도이치오퍼(1963)
https://youtu.be/8gtaBWc0rTY
10. 15번 2중창 '오, 말할 수 없는 이 기쁨'
(O, namemlose freude)
둘만 남은 플로레스탄과 레오노레가 뜨겁게
감격어린 포옹을 하며,
기적같은 재회의 2중창 '말할 수 없는 기쁨' 을
노래합니다.
플로레스탄은 아내의 영웅적인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신의 은혜를 찬미하지요.
- 군들라 야노비츠, 르네 콜로
: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빈 슈타츠오퍼
https://youtu.be/rLRMTD3eY5w
11. '레오노레 서곡 제3번 C장조, Op.72-b'
서두에서는 '피델리오 서곡' 이 연주되는게
보통입니다만...
곡의 음악적 구성력이나 역동적인 박진감이
뛰어난 '레오노레 서곡 제3번' 을 2막이
열리기 전에 연주하는 것이 관례화됐었죠.
한데... 1904년 빈 슈타츠오퍼의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가 레오노레 서곡 제3번을
마지막 2막 2장 16번 곡 앞에서 연주한
이후로는,
이 부분에서 연주하는 것이 더욱 보편적인
경우가 되었습니다.
- 프란츠 벨저 뫼스트 지휘 빈 필하모니커
: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빈 슈타츠오퍼(2015)
https://youtu.be/oodMxBMM0Dw
- 칼 하인츠 스테펜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2013)
https://youtu.be/yByM7gWweD4
lV. 2막 2장 : 감옥의 큰 광장
12. 16번 피날레 합창 : '만세, 만세, 만세
행복한 날이여!'(Heil, Heil, Heil sei dem tag!)
병사들이 정렬한 가운데 법무대신 돈 페르난도가
관리들을 거느리고 등장하지요.
그는 죄수들 중에서 오래전 죽은 줄 알았던
친구 플로레스탄을 보고 깜짝 놀라며
쇠사슬을 당장 풀어줄 것을 명합니다.
로코의 고발로 피차로는 체포되지만...
피델리오가 레오노레임을 알게 된 마르첼리나는
낙담하지요.
수많은 군중들이 사랑하는 남편을 구한
아내이자,
정의를 실현한 용감한 여성 레오노레를
찬미하는 합창을 합니다.
" 연약한 여자, 그러나 강한 아내의 정절과
고귀한 사랑이 모든 걸 구원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프레스토가 대합창으로
어우러지면서 환희의 피날레를 장식하지요.
- 세이지 오자와 지휘 빈 오페라축제, 2005
https://youtu.be/ehTJHtbizIY
- 李 忠 植 -
첫댓글 < 피델리오 > 는 레오노레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남편 플로레스탄을 구해 낸다는
내용의 오페라로,
즉, 여자의 헌신적이고 충성스런 절개와
애정이 이 작품의 핵심 주제인 것이죠.
'피델리오' 는 영어로 'fidelity'...
곧 '충실하다' 는 뜻으로,
'배우자에게 충실하다' 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지조 있는 남자' 라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용감하게
희생을 자청하는 레오노레의 모습은,
베토벤이 평생 이상으로 삼았던
전형적인 여성상이었던 게지요.
<피델리오> 는 '자유와 사랑의 승리' 라는
가치를 구현하여 베토벤의 이상주의에
한 획을 긋게 됩니다.
오페라 < 피델리오 > 에는 3가지 다른
판본이 존재하지요.
그 만큼 베토벤으로서는 힘들게
완성한 작품이어서 그랬는지...
< 피델리오 > 를 '슬픈 아이(Child of
sorrow)'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처럼 치열한 개정작업을 거친 오페라
< 피델리오 > 에는,
1805년 초연 때 연주된 '3막 오페라' 의
서곡인 '레오노레 서곡 제2번 C장조,
Op.72-a',
1806년 개작 후 상연된 '2막 오페라' 의
서곡인 '레오노레 서곡 제3번 C장조,
Op.72-b',
그리고 1814년 다시 마지막으로 개작한
후 상연된 '2막 오페라' 의 서곡인
'피델리오 서곡, Op.72-c' 이 있으며,
아울러 1832년 베토벤 사후 출판된
유작의 '레오노레 서곡 제1번 C장조,
Op.138' 까지 총 4개의 서곡이 있죠.
베토벤 사후에 <피델리오>를 연주하는데
새로운 관례들이 생겨났는데,
1841년 오토 니콜라이는 '레오노레 서곡
제3번' 을 2막 시작 직전에 연주했습니다.
1849년에 칼 안슬츠는 2막의 마지막
장면사이에 넣어 연주했는데...1904년에
말러는 이 전통을 따랐지요.
한편 코트리드 바그너는 '레오노레 서곡
제3번' 을 오페라가 끝난 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1.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1번 C장조,
Op.138' - 데이비드 부소 지휘 엠파이어
챔버 오케스트라
https://youtu.be/XHz2gqZ7J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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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2번 C장조,
Op.72-a'
- 스타니슬로 스크로바체프스키 지휘
프랑크푸르트 라디오심포니 오케스트라
(hr-Sinfonieorchester)
https://youtu.be/od8DrdiMA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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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3번 C장조
Op.72-b'
- 프란츠 벨저 뫼스트 지휘 빈 필하모니커
: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빈 슈타츠오퍼(2015)
https://youtu.be/oodMxBMM0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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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베토벤 '피델리오 서곡, Op.72-c'
-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빈 슈타츠오퍼(1978)
https://youtu.be/NA3bi_evCZ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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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3번 4중창 '참으로 이상한 일이구나'
(Mir ist so wunderbar)
- 군둘라 야노비츠, 루치아 팝,
만프레드 융비르트, 아돌프 달라포자
: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빈 슈타츠오퍼(1978)
/ 오토 센크 연출
https://youtu.be/A9l1wKCv9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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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4번 '아, 어인 순간이냐!'
(Ha, welch ein Augenblick!)
- 바리톤 팔크 슈트루크만 과 르네 파페
카리차 마틸라 & 합창
: 제임스 레바인 지휘 메트오페라(2000)
/ 위르겐 플림 연출
https://youtu.be/9rcMI2Cfv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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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9번 '악한이여! 어디로 가는가?'
(Abscheulicher! Wo eilst du hin?) /
'오라, 희망이여(Komm, Hoffnung)'
- 소프라노 기네스 존스
: 칼 뵘 지휘 베를린 도이치오퍼(1970)
https://youtu.be/ebXNo_J0Y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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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10번 '죄수들의 합창 : 오,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Prisoners' Chorus : O, Welche
Lust!) -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빈 슈타츠오퍼
https://youtu.be/RhMdMD9tX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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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10번 '죄수들의 합창 : 오,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Prisoners' Chorus : O, Welche
Lust!) - 오토 클렘페러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합창 : 마튜 슈와츠 비주얼 아트
https://youtu.be/7eQW09z3Tw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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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1장 지하 감옥 : 11번 서주와 아리아
'신이여, 이곳은 왜 이리도 어둡습니까?
(Gott, welch dunkel hier!)...
'인생의 아름다운 봄날에도'(In des
lebens frulingtagen)
-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 프란츠 벨저 뫼스트 지휘 빈 슈타츠오퍼
(2015)
https://youtu.be/QZYOCJKI1i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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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1장 14번 '그 놈을 죽이리라!'
(Er sterbe !) - 크리스티나 루드비히,
제임스 킹, 발터 베리, 요제프 그라인들
: 아르투르 로더 베를린 도이치오퍼
(1963)
https://youtu.be/8gtaBWc0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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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1장 15번 재회의 2중창 '말할 수 없는
기쁨'(O, namemlose freude)
- 군들라 야노비츠, 르네 콜로
: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빈 슈타츠오퍼
(1978)
https://youtu.be/rLRMTD3eY5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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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2장 피날레 합창 :
'만세, 만세, 만세, 행복한 날이여!
(Heil, Heil, Heil sei dem tag!)
- 세이지 오자와 지휘
비엔나 오페라축제(2005)
https://youtu.be/ehTJHtbizI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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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1장 지하 감옥
11번 서주와 아리아
'신이여, 이곳은 왜 이리도 어둡습니까'
(Gott, welch dunkel hier)...'세상의 아름다운
봄날에도'(In des lebens frulingtagen)
- 테너 제임스 킹
: 칼 뵘 지휘 베를린 도이치오퍼(1970)
https://youtu.be/2cuXO2N2C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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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의 토대에서 출발한 프랑스
대혁명과 함께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를
담은 연극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죠.
베토벤은 그 가운데 프랑스 구출극
(救出劇) < 레오노레 또는 부부애 -
Leonore, ou l'amour conjugal > 를
오페라 소재로 택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재에서 베토벤이 핵심으로 생각했던
것은 사실 ‘부부간의 신의와 사랑’ 보다는,
‘독재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는 투쟁’ 였다고
볼 수 있죠.
베토벤의 휴머니즘 이상을 담은 <피델리오>
1막은 교도소 뜰에서 시작합니다.
2막은 플로레스탄이 갇혀 있는
지하 감방이죠.
쇠사슬에 묶여있는 플로레스탄은 하루에
빵 한 조각과 물 한 잔밖에 받지 못해
탈진 상태이죠.
이때 피차로의 명령으로 플로레스탄을
죽여 파묻을 구덩이를 파야 하는 로코와
레오노레가 지하로 내려옵니다.
레오노레는 이 수감자가 자기 남편임을
확인하고 괴로워하다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빵 한 조각을 건네주지요.
플로레스탄은 자기 아내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이 낯선 젊은이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죠.
이 오페라에서 가장 안타깝고 가슴 저린
장면입니다.
헌신적인 용감한 아내 '레오노레
(피델리오)' 역을 노래하는 드라마틱
소프라노 아드리안느 피총카...
플로레스탄 역의 드라마틱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에 비해 나이가
들어보이는 지라(실제 6살 연상),
몰입을 저해하는 점이 좀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