星友會 발행 [星友] 2014년 11월호 星友會 內實化에 進一步 - 대전지구 성우회 간담회에 참석하고 -
나는 1981년 예편 이후 단 한번도 성우회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문학과 군사학 분야 창작활동에 전념하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내 개인의 사정이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점 성우회 회원 여러분께 송구함을 느낀다.
2014년 10월 16일에 대전 계룡대에서 권역별 간담회 개최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 8월 중순쯤이었다. 일찌감치 소식을 전한 것을 헤아려 보면 이미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소식에 접하고 지금이야말로 성우회의 활성화와 내실화 그리고 회원 단결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간담회를 통해서 성우회 회원간 상호 침목을 다짐하고 회장단과 의사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한목소리로 우리의 주장을 각계 요로에 관철 시킬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의 간담회에서 김홍래 성우회장과 참석 장성들은 근간에 일어나고 있는 민감안 현안들에 대해 의견의 일치함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현안 가운데 장성들이 중요하다고 논의된 몇가지만을 예로 든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 북한의 동향이 심상치 않은데다 우리의 안보태세에 많은 문제가 잠재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와 한미연합사 문제는 그 가운데 핵심이었다. 이 두가지는 북한의 야욕을 억제 시킬 수 있는 필수 불가결의 열쇠나 다름이 없다. 이를 우리가 지킬수 있는 방편은 여러가지 있지만 우리 성우회 회원들의 일치된 주장과 마음가짐이 뒷바침 되어야 한다. 성우회 회원 하나하나가 각계각층 요로에 전령사로서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는 모든 언론들의 보도 행태에 관한 것이다. 물론 근간에 일어나는 우리 군의 과실에 대해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보도 행태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적군을 대하듯 악의적으로 보도되는 일부 언론의 실태에 참을 길이 없다. 아무리 자유민주체제하에서의 언론이라 해도 일부러 악의적으로 추축, 침소봉대하는 기사는 지나치다. 이 사안 또한 성우회원 하나하나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 국군이 겪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임은 당연하지만 결코 우리가 겪었던 과거의 문제점 보다 지나치거나 많다고 볼 수 없다. 여러 선진국 군대도 마찬가지다. 우리 국군에는 지금처럼 헐뜯을 게 아니라 사랑의 매로 다스려야 할 사안이다. 나는 현재의 우리 국군에 대해 높은 수준의 신뢰를 가지고 있다. 나는 늘 현재의 우리 국군을 산소로 비유하고 있다. 산소가 없으면 살수 없기 때문이다. 현 체제에서 초등학교로부터 중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폭력을 원천적으로 근절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 국군 또한 발랄한 젊음의 기상이고 보면 100% 근절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점에서 꾸준히 개선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끝으로 정부 당국에 대한 아쉬움이다. 지금 논의 되는 공군의 전력 증강에 관한 것이다. 차기 공군력을 위해 예산이 초과된다는 구실로 F35A 전투기 구입을 60대에서 40대로 줄인다고 한다. 현정부가 장차 공군 전력에 대해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4대강에 22조원을 쏟아 부운 정부가 3조원 증액이 아까워 20대를 줄인다는 것이 의아하다. 한나라당이나 한누리당은 이름만 다를 뿐 같은 보수 정당이다. 차세대 공군력 확보를 위해 F35A 전투기 도입을 60대로 원상회복해야 한다. 때늦은 뒷북질이지만 성우회와 재향군인회는 이 문제도 공론화 해야 한다. 이날 참석 회원 가운데 특히 공군 장성들은 모두 이 문제에 대해 아쉬워 했다. 성우회가 기획한 권역별 간담회는 매우 발전적이며 성우회 내실화에 진일보한 결정이라며 모든 참석 장성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나는 62년 간의 서울에서의 삶을 거두고 고향인 대전으로 영구 귀향했다. 국립현충원도 대전에 있으니 내 안식처로 대전을 선택한 것이다. 처음에는 여러가지 걱정이 되었으나 2년 동안 살고 보니 천국임을 느낀다. 서울에 비해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더 문화적이고 선진적인 삶에 놀라고 있다. 집값도 서울의 3분지 1이다. 더구나 내 마음의 고향인 육군본부가 대전 인근에 있어 더욱 정겹다. 앞으로 계룡대에서 전역 할 장성들이 대전을 중심으로 정착할 것이란 예측도 가능하다. 나는 금년 10월 3일. 계룡대 지상군페스티발에 인기작가로 초청 받아 [전쟁과 문학]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보람찬 시간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김홍래 성우회 회장의 영단으로 제1차 권역별 성우회 간담회를 대전에서 열어 불초 박경석을 첫 성우회 행사에 참석하게 한 것에 감사를 표한다. 그날 자리를 빛낸 회장단 모든 분께도 감사드린다. 2014년 10월 16일 오후 6시부터 9시 30분까지의 화기애애했던 만남은 나에게 행복한 시간이었으며 나는 결코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날 참석 장성들의 공통된 정감이었을 것이다.
박경석 육사생도2기 작가. 한국시문학평론학회 회장 한국군사학회 회장(역) 군사평론가협회 회장(역) |
첫댓글 星友會 홈 사이트에 게시된 박경석 칼럼이다.
나는 12.12군란 직후 1981년 7월 31일 정치군인과 결별 육군준장 8년차의 군복을 벗었다.
2014년 현재까지 33년간 단 한번 성우회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다. 정치군인의 영향하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4년 10월 16일, 성우회 출범 이래 최초로 대전 충남 권역별 성우회가 대전시 유성구 계룡스파텔에서 열렸다.
계룡스파텔은 내가 살고 있는 유성 자이아파트에서 불과 200미터 거리에 있는 국군호텔이다.
그 행사에 처음 참석했다.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한 김홍래 회장을 비롯해서 육,해,공,해병대 부회장을 포함 전체 임원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감동적인 김홍래 회장의 결단의 뜻에 따라 나는 금단의 벽을 허물었다.
星友會 발행 [星友] 2014년 11월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