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샘과 참새 방앗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노랫말 가사도 있는데, 좋은 인연이라 함은
서로의 인생에 자연스럽게 등장하여 서로에게 의미있는 누군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우연한 만남은 없음’을 강조하지만,
인연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오고, 또한 저절로 가는 것 같다.
15년 전쯤, 나는 왕성했던 대외활동을 하루아침에 접고 가정에 충실하기로 했다.
아내는 승진 준비에 도서관을 전전하며 밤늦게 들어오고
애들은 손이 많이 가는 초등학생이었는데 대학입학 때까지 대략 십여 년 동안,
퇴근하면 바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주부의 쳇바퀴 생활을 하게 되었다.
1주일에 한 번 방문하시는 오선생님한테 빨래 개는 모습도 들켰다.
여자선생님으로 키가 나보다 크고, 애들을 시원스럽게 잘 다뤄서
개구쟁이 아들도 꼼짝 못하고 숙제를 해놓고 선생님이 오시길 기다렸다.
오샘 지도 덕분에 큰애는 의대를 갔고, 작은 애도 어렵다는 수리논술로 대학 문턱을 넘었다.
큰애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 집이 둔촌동으로 이사를 했으니,
샘과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하고 작별 인사를 드리며, 더는 뵙지 못할 것으로 여겼다.
헌데, 살면서 맺은 인연들은 잠시 떠났지만 다시 올수도 있다고 기대하는 게 좋겠다.
샘과는 딱 그만큼의 인연이라 단정했지만, 지금까지도 만남을 이어오고 있으니 말이다.
오샘과 다시 연락을 할 수 있었던 매개는 우리집 큰애였다.
딸내미가 종종 오샘 얘기를 해서 내가 샘께 안부전화를 드렸다.
오샘과의 끈을 잇게 해준 또 다른 매개는 카카오톡 SNS 계정이다.
대화하지 않고도 프로필을 통해 상대방의 근황을 대략 짐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키가 메뉴에 닿을 듯한 오샘) (중국여행 후에 드린 白酒도 보인다)
사실 오샘과 연극관람이라도 같이 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 프로필을 자주 보게 하였다.
어느 날인가 프로필 사진에서 빵집 사장님이 되셨다. 전화를 드리니 사실이었다.
개업 화분도 보내드리지 못해서 오샘에 대한 미안함이 한동안 가슴에 남아 있었다.
사람도리를 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으니 이것은 오르지 나의 게으름 때문이다.
그런 나태함으로 인해 빵집이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로 이전 개업했어도
한 세월 흐른 다음에나 알게 되었지만, 이제는 이웃처럼 자주 뵙는 기쁨이 쏠쏠하다.
빵집은 운동기구가 있는 근린공원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으니 일주일에 4번은 만난다.
샘도 보고 운동도 하게 된 나는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격으로 즐거움이 두 배이다.
그 집은 제빵제과 체인점이 아니라, 우리통밀을 원료로 이스트를 쓰지 않고,
누룩으로 빚은 막걸리에 담겨있는 천연 효모종으로 발효해서 빵을 만든다.
현대인의 소통도구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팔로우가 꽤나 많으며,
무공해 또는 유기농을 찾아 다니며 건강한 먹거리를 추구하는 친구들이 주된 고객이다.
(콩플레 내부 모습)
일, 월 ,화요일 3일은 휴일인데, 쉬는 날에 제빵 관련 출장 강연도 가끔 가신다.
토요일에는 문을 일찍 닫고 마음통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조출한 파티도 연다.
6월 하순에는 우리집 부부가 초대되는 영광도 있었다.
샘과 아내가 대화하는 도중에 나는 누룩막걸리를 세병이나 마셨다.
샘은 본인에게 역마살이 있다고 한다.
홀연히 스페인 산티아고 성지순례를 떠나시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열정이 대단하신데,
반면에 빵부스러기로 동네 참새 먹이까지 챙기는 섬세한 감성도 지녔다.
참새에게는 가게 앞마당이 방앗간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근처에 사는
고3 수험생을 위해 빵값을 계산해 놓으면 한번만 줘도 될 것을 여러 번 불러다 먹인다.
부르거나 찾아오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이집은 분명 사람들에게도 참새방앗간이다.
여기저기 이런저런 인연과 사연들을 간직한 사람들이 다가와서 쉬어가는 곳이다.
이번 여름에도 역마살이 도져서 가게 문을 3주간이나 닫고 또 훌쩍 떠나는 여행.
무인도나 다름없는 섬이라는데 어떤 두려움도 없으시니 역시 오샘답다.
여행기간 동안 참새는 내가 거두어야 할 것 같다.
오샘! 잘 다녀오시구요. 참새 먹이로 뭐가 좋을까요?
(가게 앞에서 빵조각을 먹는 참새들) (휴가를 떠난다는 안내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