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정낙조
친구여 나의 소망은, 자네는 웃을 테지만, 다정한 이들과 함께 높은 산의 골짜기, 휴식을 주는
깊은 평화, 하얀 봉우리들의 자랑스런 싱그러움, 끝없는 산행, 항상 되풀이하는 이런 등산에
대한 희망 없이는 더 나은 인생을 꿈꾸지 못할 것 같네.
--- 에밀 자벨, 「어느 등산가의 회상」에서
▶ 산행일시 : 2010년 11월 6일(토), 하루 종일 안개
▶ 산행인원 : 12명
▶ 산행시간 : 11시간 41분(휴식시간 포함, 점심식사와 이동시간 39분 제외)
▶ 산행거리 : 도상 21.86㎞(1부 13.45㎞, 2부 8.41㎞)
▶ 교 통 편 : 두메 님 25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0 : 25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3 : 58 ~ 05 : 25 - 임실군 청웅면 옥전리(玉田里) 모래재, 산행시작
05 : 53 - △417.7m봉
06 : 40 - 두만산(斗滿山, 520m)
07 : 14 - 무제봉(雩祭峰, 558m)
09 : 14 - 489m봉
10 : 00 - 535m봉
10 : 30 - 지초봉(芝草峰, 571m)
11 : 12 - 원통산(遠通山, △603.5m)
12 : 17 - 임실군 청웅면 사곡리(沙谷里) 평지, 1부 산행종료, 점심식사 후 이동
12 : 56 - 임실군 강진면 방현리(訪賢里) 수동, 2부 산행시작
14 : 02 - 임도
15 : 04 - 백련산(白蓮山, △754.0m)
16 : 14 - 712m봉(칠백리고지)
16 : 59 - △569m봉
17 : 45 - 임실군 운암면 운암리(雲岩里) 모시울, 산행종료
23 : 00 - 동서울 강변역 도착
1. 안개 자욱한 등로
▶ 두만산(斗滿山, 520m), 무제봉(雩祭峰, 558m)
한밤중 천지에 안개가 자욱하다. 고속도로도 내내 안개가 자욱했다. 03시 58분. 30번 도로 모
래재는 2차선이 빡빡하여 주차하기 어렵다. 고갯마루 넘어 상중산리마을까지 갔다가 우리 경
계하는 개 짖는 소리에 마을사람들이 다 깰까봐 다시 넘어 온다. 모래재마을 지나 고갯마루
근처 배추밭의 경운기 진입로를 발견하고 거기에다 차 댄다. 안개 속이라 전조등 후미등 켜고
히터 틀어놓고 취침한다.
05시 기상. 간단히 요기한다. 오늘 메뉴는 군고구마다. 헤드램프 돋우고 등로 찾는다. 역시 믿
을 건 나침반이다. 하마터면 반대방향인 백이산을 오를 뻔했다. 청웅면 번영회가 세운 ‘어서
오십시오’ 표지석 옆으로 난 희미한 소로를 발견한다. 성묫길이다. 사면 돌아 무덤 두 군데 지
나자 끊긴다. 무덤 위 잡목 숲 헤쳐 이내 능선 잡는다.
안개가 워낙 짙어 페츨 헤드램프도 뚫기 버거워하니 능선 마루금 꼭 붙들어 더듬는다. 산등성
이 올라 삼각점을 보고 △417.7m봉이다는 것을 확신한다. 갈담 470, 1984 재설. 날이 새고 아
울러 안개가 걷힌다. 우리가 운해 밖으로 나왔다고 짐작하고 산 정상에서 바라볼 경치가 궁금
하여 발걸음 서둔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수시로 안개가 출몰한다. 내 눈에 백태 낀 것처럼 갑
갑한 진행이다. 하루 종일 그랬다.
두만산 정상 표지판이나 산행 표지기조차 보이지 않으나 더 오를 데가 없어 두만산 정상인 줄
안다. 그렇다면 뒤로 70m 정도 되돌아가서 남진해야 한다. 아무 인적이 없다. 생사면 쓸어 묵
은 임도가 지나는 야트막한 안부로 떨어진다. 색다른 경치 있을까 무제봉 전위봉을 들렸다가
빈 눈으로 내리고 덤불숲 우거진 무제봉을 오른다.
번화치 넘어온 성수지맥이라 산행표지기가 여러 개다. 11개. 산이 높아서 구름이 산꼭대기에
감돈다고 하여 운제봉이라 하였으며 무제봉은 발음이 변화된 것이라고 한다(국토지리정보
원). 오늘은 확실히 그렇다. 박성태 씨의 ‘신 산경표’에 의하면 무제봉은 일제 때 제작된 지도
에는 雩祭峰(우제봉, 雩는 ‘기우제 우’)으로 썼다고 한다.
당분간 성수지맥 길이다. 그런데도 가시덤불과 잡목이 빽빽하게 우거졌다. 비산비야(非山非
野). 간벌하여 온갖 가시나무가 살판났다. 안개는 안개비까지 대동하였는지 풀숲이 축축하다.
바지자락은 젖어 휘감기고 살갗에 닿는 물기가 차디차다.
2. 등로
3. 조망
▶ 지초봉(芝草峰, 571), 원통산(遠通山, △603.5m)
떼알바인가? 485m봉 내리면서 멈칫했다가 외길임을 확인한다. 독도하는 재미 본다. 산간 ┼
자 갈림길 얕은 안부를 연속해서 지난다. 489m봉 오를 때는 더덕대형 펼친다. 아홉 수나 수확
한다. 배재 가기 전이다. 맨 앞장서서 길 뚫는 대간거사 님이 나뭇가지에 눈을 찔릴 뻔했다.
망막 1mm ~ 2mm 정도 벗어나 안쪽에 찔렸다. 상처 보는 사람이 더 아찔하다. 베리아 님은
평소 자기가 산신령 님에게 성심껏 고수레하여 그 덕을 본 것이라고 자찬하지만 나는 자당(慈
堂)의 기도발이라고 본다.
벌목지대를 지난다. 수종을 개량하려는 모양이다. 조망이 트이지만 사방은 온통 안개 또는 박
무로 가렸다. 배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난다. 535m봉을 내릴 때 독도에 조심하여야 한다. 지
도 믿고 Y자 지능선이 분기하는 가운데 사면으로 서슴없이 내려야 한다. 뚝 떨어지다 말고 살
붙은 능선이 나타난다.
지초봉은 약초인 지초가 많이 난다고 붙인 이름인데 사면 아무리 훑어도 그 비슷한 것도 없
다. 정상에는 ‘임실 지초봉 571m’ 이라 쓴 표지판을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쭈욱 내리면
임도가 지나는 새목재. 바로 능선으로 올라선다. 541m봉은 Y자 능선 분기. 왼쪽으로 간다. 완
만히 긴 오름의 끝이 덤불 무성한 원통산 정상이다.
원통산 정상은 오래전에 무덤을 이장한 것 같다. 삼각점은 갈담 317, 1984 복구. 여기서 성수
지맥은 남진하고 우리는 서진한다. 수북한 햇낙엽 와수수 지친다. 나지막한 봉우리 2개 넘고
다시 산을 가는가 싶게 오르면 397m봉이다. 소나무 숲길로 또 한 번 잔 봉우리 올랐다가 펑퍼
짐한 사면으로 냅다 내린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밤나무 밭이 아닌데 밤나무가 흔하고 떨어진
밤 또한 수두룩하다. 벌레 먹었을 것이라 예단하고 내버려둔다.
사곡리 평지(平地)마을 동구 밖 정자 옆에 점심자리 편다. 마을주민이 주차한 트럭을 우리를
위해 일부러 빼준다. 김치찌개 꽁치찌개 끓여 속 훈훈히 덥힌다.
4. 배재 주변
5. 갈담 주변, 백련산 가는 길에서
▶ 백련산(白蓮山, △754.0m)
2부 산행지로 이동한다. 옥정호(玉井湖) 보러 가는 것이다. 강진면 방현리 수동(水洞)마을로
들어간다. 외관으로 가정집에 ‘학석보건진료소’ 팻말이 주련처럼 붙어있다. 그 앞길에서 멈춘
다. 열 지어 마을을 관통하여 산기슭으로 접근한다. 배추밭 지나 마른 골짜기(식수보존지역
입산금지라는 안내판이 있다) 건너고 산자락 열두 구비로 도는 길 따른다. 암벽 바라보기 좋
은 585m봉을 오르지 않고 그 뒤편으로 간다.
지도상의 조치마을이다. 마을 앞산이 새의 부리 모양이어서 조치라 하였다(국토지리정보원).
지금은 흔적 희미한 조치마을이다. 왼쪽 마른 골짜기 거슬러 오른 뚜렷한 산길은 곧 끊기고
만다. 오른쪽 산기슭으로 덤빈다. 울창한 칡넝쿨 뚫고 가파른 사면 올라 능선 마루금 잡는다.
흐릿한 인적은 왕대숲 지나 무덤까지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비지땀 흘린다. 고개를 암만 뒤로 젖혀도 공제선이 보이지
않는다. 쑥부쟁이가 도열하여 응원하는 묵은 임도로 올라선다. 멀리 임도 넘는 안부의 절개지
는 절벽이다. 하여 그리로 가지 않고 바로 오른다. 여기도 거의 수직사면이다. 가시덤불 비켜
흙모래 우르르 쏟아내며 한사코 긴다.
산중턱 암릉이 나온다. 바위틈 비집다가 슬랩 오른다. 다시 한차례 용써 주능선에 진입한다.
654m봉이다. 얼음물 막 들이켜 복장 한참 식힌다. 건너편 준봉이 백련산이다. 산봉우리가 흰
연꽃처럼 생겼다 하여 백련산이라 한다. 살짝 내렸다가 암릉을 왼쪽 밑으로 돌아 넘는다. 말
바위다. 왼쪽 슬랩에 매단 가는 밧줄잡고 오른 암반은 일류 경점인데 오늘은 아쉽게도 안개로
가렸다.
├자 갈림길 안부. 여기 이정표에 정상 0.2㎞이고 그 위 완만한 무덤에서 정상 0.1㎞이라는 이
수 믿고 냅다 갔다가 곱으로 숨차다. ├자 갈림길 안부에서 정상까지 실제로는 도상 0.4㎞다.
굵은 밧줄 달린 바윗길 올라 철계단 놓인 ┤자 갈림길에서 정상 0.05㎞. 백련산 정상은 암봉
이다. 무인산불감시시스템과 쓰러진 초소가 있다.
2등 삼각점(갈담 25, 1987 재설) 이유 있고 이 지역의 맹주답게 뭇 산 거느린 무제조망이 오늘
은 무망. 사방이 뿌옇다. 그래도 의식으로 정상주 분음한다. 경솔했다. 정상에서 내린다고 직
진하였다가 선두가 후미 된다. 되돌아 철계단 놓인 ┤자 갈림길에서 ‘칠백리고지 2.8㎞(아마
712m봉을 지칭하는 것 같다)’ 라는 방향표지를 따라야 한다.
외길. 쭉쭉 내린다. 667m봉도 암봉인데 왼쪽 산허리로 돌아 넘는다. 667m봉 내린 안부는 ┤
자 갈림길, 칠백리고지 1.0㎞. 평원처럼 간다. 산 빛이 화려하다. 곱게 물든 단풍 바라보면 얼
굴이 화끈거린다. 712m봉 정상. 지도 확인하지 않고 가다가는 직진하여 이윤으로 빠지기 쉽
다. 대간거사 님을 비롯한 선두 다수가 그리로 갔다. 악우애 발휘하여 속히 돌아오라 불러준
다. 나래산 방향은 오른쪽으로 확 꺾어야 한다.
612m봉이 준봉으로 보인다. 거기서는 옥정호가 보일 게다. 우르르 줄달음한다. 612m봉. 숲
으로 가려서도 옥정호가 보이지 않는다. 더 간다. 평원 길이다. △569.7m봉(삼각점은 갈담
431, 1984 재설). 여기도 숲으로 가렸다. 별수 없어 모시울로 하산한다. 소나무 몇 그루 남겨
두고 벌목한 사면으로 들어선다.
뜻밖이다. 시계 트이고 옥정호의 낙조를 감상한다. 유역면적 768㎢, 만수면적 26.5㎢, 하천
길이 212km, 총 조수량 4억 3천만 톤에 이른다는 옥정호가 둠벙만큼 보이지만 가느다란 소나
무가지 끝에 걸린 낙조가 가경이다. 그 낙조 쫓아내리다 등로 놓치고 가시덤불 속으로 빠진
다. 해 흐지부지 지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진다.
묵은 임도에 내려 가시덤불에서 풀려난다. 임도 따라 능선 마루금으로 이동하여 소나무 숲길
내린다. 모시울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이곳에 천마시풍(天馬嘶風, 하늘을 나는 말이 바람을
가르며 길게 우는 형상)의 혈맥이 있다고 모시울이라 하였다는데 엉뚱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
개 모시울은 무수울, 무수동으로도 부르며 무당이 살던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 하산도 동네 가로등 불 켠 때이다. 율치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메 님이 달려온다.
6. 백련산
7. 백련산 자락, 이윤 주변
8. 지나온 능선, 백련산 정상에서
9. 칠백리고지 가는 길
10. 단풍
11. 낙조
12. 낙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