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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인간의 예속 또는 감정의 힘에 관하여
서론
감정(정서)을 지배하거나 억제할 때에 인간의 무능력을 나는 예속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감정에 지배를 받는 사람은 자기의 권리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권리 아래 있으며 스스로 보다 좋은 것을 알면서도 보다 나쁜 것을 따르도록 종종 강제될 만큼 운명의 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제4부에서 이 원인을 구명하고 나아가 감정이 어떠한 선 또는 악을 지니고 있는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를 시작하기 전에 완전성과 불완전성 그리고 선과 악에 관해서 약간 언급하려 한다.(183쪽)
인간이 보편관념(universal idea)을 형성하여 집·건물·탑 등의 형태를 고안하고 어떤 사물의 형태를 다른 형태보다 더 좋아하기 시작한 다음에는 각자는 바로 그 사물에 대해서 미리 형성된 보편관념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완전하다고 하며, 반대로 그것이 제작자의 의도를 전적으로 완성하였다 하더라도 미리 파악해 놓은 형태와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불완전하다고 한다. (183-184쪽)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보다 많은 존재성 내지 소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 우리는 어떤 사물을 다른 사물보다 완전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사물에 한계·종말·무능력 등과 같은 부정을 포함하는 것을 귀속시키는 한, 우리는 그것을 불완전하다고 부른다. (...) 사물의 본성에는 그 동력인의 본성적인 필연성으로부터 생기는 것 이외의 어떠한 것도 속하지 않으며, 또 그 동력인의 본성적인 필연성에서 생기는 것은 모두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185쪽)
선과 악에 관해서도, 그것들이 사물 자체로 생각되는 한, 그 속에 있는 어떤 적극적인 것도 표시하지 않고, 사고의 양식, 즉 우리가 사물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형성되는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동일 사물이 동시에 선이었다가 악이었다가 또 선악의 어느 것도 아닌 중간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185쪽)
'선'이란 우리들이 형성하는 인간본성의 전형에 더욱더 접근하기 위한 수단임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악'이란 그 전형에 합치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아가서 우리는 인간이 이러한 전형에 보다 많이 접근하는 또는 보다 적게 접근하느가에 따라서, 그 인간을 보다 완전한 사람 또는 보다 불완전한 사람이라고 부를 것이다. (186쪽)
나는 '완전성'을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일반적으로 실재성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저마다의 사물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용하는 한, 완전성은 그 사물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그 사물이 지속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 확실히 사물의 지속은 그 자체의 본질에 의해서 결정될 수는 없다. (...) 오히려 개개의 사물은 그것이 보다 많이 완전한가 또는 보다 적게 완전한가에 관계없이, 그것이 존재하기 시작한 것과 동일한 힘을 가지고 항상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이 점에서는 모든 사물이 동등하다. (186쪽)
* '완전성'을 지속성과 무상성(無常性)과 관련지어 이해하지 않는 스피노자의 관점은 납득하기 어려움. (박희택)
정의
1. 선이란 우리가 우리에게 유익함을 확실히 아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186쪽)
2. 반대로 악이란 우리가 어떤 선한 것을 소유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186쪽)
3. 우리가 단순히 개체(개물)의 본질만을 주목할 때, 그 존재를 필연적으로 정립하거나 또는 그 존재를 필연적으로 배제하는 무언가를 발견하지 읺는 한, 나는 그것을 우연적이라고 한다. (187쪽)
4. 그 개체가 산출되어야 할 원인에 대해서 우리가 주의하는 경우, 그 원인이 그것을 산출하도록 결정되어어 있는가 없는가를 모르는 한, 나는 그 개체를 가능적이라고 한다. (187쪽)
5. 인간을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감정을 상반되는 감정이라고 해석하겠다. 즉 그것이 색욕과 탐욕과 같은 사랑의 종류에 속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이 경우는 본성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서 반대되는 것이다. (187쪽)
6. 미래, 현재 그리고 과거의 것에 대한 감정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제3부 정리18의 주해 1과 2에서 이미 설명하였으니 그것을 볼 것. 그러나 더욱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는 시간적인 거리 역시 공간적인 거리와 마찬가지로 어떤 일정한 한계까지밖에 명확하게 상상하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 (...) 모든 대상을 말하자면 동일한 시간에 귀속시키는 것이다. (187쪽)
7. 우리들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도록 하는 목적을 나는 충동이라고 해석한다. (187쪽)
8. 나는 덕과 능력을 동일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바꾸어 말하면(제3부 정리7에 의해) 인간에 관계되는 덕이란, 인간이 자기 본성의 법칙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어떤 일을 하는 능력을 갖는 한 인간의 본질 내지 본성 자체이다. (187-188쪽)
* [한비자] 해로편 제1장의 관점과 상통함(180쪽의 주3 참조). (박희택)
공리
자연 속에는 그것보다 유력하고 더 강력한 다른 것이 존재하지 않는 개체(개물)는 없다. 어떠한 것이 주어져도 그 주어진 것을 파괴할 수 있는 더 강력한 다른 사물이 언제나 존재한다. (188쪽)
정리
정리1. 그릇된 관념 속에 포함되는 어떤 적극적인 것도, 참된 관념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참이라는 것만으로는 제거되지 않는다. (188쪽)
증명 : 오류(허위)는 타당하지 못한 관념이 내포하는 인식의 결핍에만 있다(제3부 정리31에 의해서). 그리고 그러한 관념에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적극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제2부 정리33에 의해서). 반대로 그러한 관념은 신에 관련되는 한 참이다(제2부 정리32에 의해서). 그러므로 그릇된 관념에 적극적인 것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은 만일 참된 관념이 나타나서 그것이 참이라는 것만으로 제거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참된 관념은 자기 자신에 의하여 제거되는 것이다. (188쪽)
상상은 참된 것이 나타나서 그것이 참이라는 것만으로 소멸하지 않고 도리어 제2부 정리17에서 명시한 것처럼, 우리가 상상하는 사물의 현재적 존재를 배제하는 보다 더 강력한 다른 상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소멸한다. (189쪽)
정리2. 우리는 다른 것에 의존함이 없이 자기 혼자서만 생각할 수 없는 자연의 일부분인 한에서 작용을 받는다.
증명 : 우리 본성의 법칙만으로부터 이끌어 낼 수 없는 어떤 것이 우리들 안에서 생겨날 때 우리는 작용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혼자서만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한 자연의 일부분인 한 작용을 받는다. (189쪽)
정리3. 인간이 자기의 존재를 계속하려고 하는 힘에는 한계가 있으며, 외적인 원인의 힘에 의하여 무한히 압도당한다. (189쪽)
정리4.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이 아님은 불가능하며, 또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변화, 곧 자기가 그 타당한 원인인 것같은 변화밖에 받지 않는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190쪽)
계 : 이 귀결로 인간은 필연적으로 언제나 격정에 예속되며, 또 자연의 공통적인 질서에 따르며 그것에 복종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연이 요구하는 만큼 그것에 순응한다는 것이다. (191쪽)
정리5. 각 개체의 격정의 힘과 그 증대, 그리고 그 존재에의 고집은 존재를 계속하려고 노력하는 우리의 능력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에 대비되는 외적 원인의 힘에 의해 규정된다.
증명 : 격정의 본질은 우리들의 본질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제3부 정의1 및 2에 의해서). 바꾸어 말하면 (제3부 정리7에 의해서) 격정의 힘은 우리들이 계속 존재하려고 노력하는 능력에 의해서는 규정되지 않고, 오히려 (제2부 정리16에서 명시한 것처럼) 필연적으로 우리의 능력에 대비되는 외적 원인의 힘에 의해서 규정되어야 한다. (191쪽)
정리6. 어떤 격정 내지 감정의 힘은 그 밖의 활동 또는 능력을 능가할 수가 있다. 그만큼 감정은 집요하게 인간을 따라다닌다. (191쪽)
정리7. 감정은 그것과 반대되고, 또 그 감정보다 더 강력한 감정에 의하지 않고는 억제되거나 제거될 수 없다. (191쪽)
증명 : 인간이란 정신에 관한 한, 정신이 그로 인해 자기의 신체에 대해서 이전보다 더 크거나 혹은 더 작은 존재의 힘을 긍정하는 관념이다(제3부의 끝에 있는 감정의 일반적 정의에 의해서). 그러므로 정신이 어떤 감정에 사로잡힐 경우 신체는 동시에 자기의 활동능력을 증대시키든가, 감소시키는 변화를 받는다. 나아가 신체의 이러한 변화는 힘을 그 원인으로부터 받는다. 나아가 신체의 이러한 변화는 (제4부 정리5에 의해서) 자신의 존재에 존속하려는 힘을 자신의 원인으로부터 받는다. 그러므로 이 변화는 그것과 반대의(제3부 정리5에 의해서) 그리고 그것보다 강력한(제4부 공리에 의해서) 변화를 신체에 일으키는 어떤 물체적 원인에 의존하지 않고서는(제2부 정리6에 의해서) 억제할 수도, 제거할 수도 없다. (191-192쪽)
계 : 감정은 정신에 관한 한,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신체적 변화와 대립하고 또한 그것보다도 강력한 어떤 변화의 관념에 의하지 않고서는 억제되거나 제거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그것보다 강력하고 또 그것에 반대되는 감정에 의하지 않고서는 억제되거나 제거될 수 없기 때문이다(제4부 정리7에 의해서). (192쪽)
정리8. 선이나 악에 대한 인식은 우리들이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한에서 기쁨이나 슬픔의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192쪽)
* 정리14와 연결됨. (박희택)
정리9. 감정의 원인이 현재 우리 앞에 있다고 상상(표상)한다면, 그것이 우리 앞에 없다고 상상할 경우보다 한층 더 강력하다. (193쪽)
정리10. 우리는 곧 나타날 것이라고 상상하는 미래의 대상에 대해서는, 그 출현의 시기가 현재로부터 좀더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상상하는 경우 훨씬 더 강하게 자극된다. 그리고 그다지 멀리 사라지지 않았다고 상상하는 대상의 기억은 그것이 이미 멀리 사라졌다고 상상하는 경우보다 한층 더 강하게 우리를 자극한다. (194쪽)
정리11. 우리들이 필연적이라고 상상하는 대상에 대한 감정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가능한 것 또는 우연적인 것, 즉 필연적인 것에 대한 감정보다 강하다. (194쪽)
* 정리11-13은 우연과 필연의 감정에 관한 정리임. (박희택)
정리12.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으나 가능한 것이라고 상상하는 대상에 대한 감정은 다른 존건들이 같다면, 우연적인 대상에 대한 감정보다 강하다.
정리13.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 우연적인 것에 대한 감정은, 그 밖의 다른 조건이 같다면 과거의 것에 대한 감정보다는 약하다. (195쪽)
정리14. 선과 악에 대한 참된 인식은, 그것이 참이라는 것만으로는 어떠한 감정도 억제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이 감정이라고 생각되는 한 감정을 억제할 수 있다.
* 정리8과 연결되며, '그것이 감정이라고 생각되는 한'의 '감정'은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일컬음. (박희택)
정리15. 선과 악의 참된 인식에서 일어나는 욕망은, 우리를 동요케 하는 감정에서 기인하는 다른 여러 가지 욕망에 의해서 압도되거나 억제될 수 있다. (196쪽)
정리16. 선과 악의 인식이 미래에 관계되는 한, 그 인식에서 일어나는 욕망은 현재에 있어서는 쾌적한 것에 대한 욕망에 의해서 훨씬 더 쉽게 억제되거나 압도될 수 있다.
증명 : 우리가 미래의 것이라고 상상하는 대상에 대한 감정은 현재의 것에 대한 감정보다 약하다(제4부 정리9에 의해서). 그러나 선과 악에 대한 참된 인식에서 생겨나는 욕망은, 비록 그 인식이 현재로는 선한 것에 관한 경우라 할지라도 어떤 격렬한 욕망에 의해서 압도되거나 억제될 수 있다(제4부 정리15에 의해서 그 증명은 보편적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식이 미래에 관계되는 한 그 인식에서 생겨나는 욕망은 현재에 있어 쾌적함을 주는 것에 대한 욕망에 의해 한층 쉽게 억제되거나 압도될 수 있을 것이다. (197쪽)
정리17. 선과 악의 참된 인식에서 생겨나는 욕망은 그 인식이 우연적인 것에 관계되는 한, 눈앞에 있는 대상에 대한 욕망에 의해서 더 쉽게 억제될 수 있다. (197쪽)
주해 : 이로써 나는 왜 인간이 참된 이성에 의해서보다 도리어 의견(opinion)에 의해서 움직이는가? 그리고 왜 선과 악의 참된 인식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며 빈번히 여러 가지 종류의 육욕에 사로잡히는가? 하는 원인을 설명하였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저 시인의 "나는 좀더 좋은 것을 보고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좀더 나쁜 것을 따른다"는 말이 나왔다. 전도자 솔로몬이 "지식을 늘리는 자는 근심을 늘린다"고 한 말도 같은 생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러므로 무지가 지보다 낫다든가, 감정의 지배에 있어서 어리석은 자와 식자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성이 감정을 지배함에 있어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할 수 없는가를 결정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본성의 능력과 함께 그 무능력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97-198쪽)
[주] '저 시인'은 로마의 3대 시인 중의 하나인 오비디우스를 말하며, 그의 [변신 이야기]는 스피노자의 애독서의 하나로서 이 책에 나오는 구절임. 솔로몬의 말은 [전도서] 1:18에 나옴. (248쪽)
정리18. 기쁨에서 생기는 욕망은 다른 조건들이 같다면, 슬픔에서 생기는 욕망보다 강력하다.
증명 : 욕망은 인간의 본질 자체이다(감정의 정의1에 의해서).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제3부 정리7에 의해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므로 기쁨에서 일어나는 욕망은 기쁨의 감정 자체에 의해서 촉진되거나 증대된다(제3부 정리11의 주해에 있는 기쁨의 정의에 의해서). (198쪽)
주해 : 이성은 자연에 대립되는 것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성은 각자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기의 이익, 자기의 참된 이익을 추구하는 것, 그리고 인간을 좀더 큰 완전성으로 참되게 이끌어 가는 모든 것을 욕구하는 것, 일반적으로 말해서 각자가 전력을 다해서 자기의 존재를 있는 힘껏 보존하도록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전체가 그 부분보다 큰 것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참이다(제3부 정리4를 볼 것). (198-199쪽)
다음에는 덕은 (제4부 정의8에 의해서) 자기 고유의 본성적인 법칙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그리고 각자는 자기에게 고유한 본성의 법칙에 따라서만 자기의 존재를 보존하려고 노력하므로(제3부 정리7에 의해서), 이것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첫째로 덕의 기초는 자기 고유의 존재를 보존하려는 노력 자체이며, 행복은 인간이 자기의 존재를 보존할 수 있는 데에 있다. 둘째로 덕은 그 자체를 위하여 추구되어야 할 것이며, 덕보다 가치 있는 것, 덕보다 우리들에게 유익한 것, 그것 때문에 덕이 추구되어야 하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로 자살하는 사람들은 무력한 정신 소유자이며 자기의 본성과 모순되는 외적 원인에 전적으로 정복당하는 사람이다. (199쪽)
이성에 지배되는 인간, 바꾸어 말하면 이성의 지도에 따라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원하지 않는 어떠한 것도 자기를 위해서 원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은 공평하고 성실하며 단정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199-200쪽)
정리19. 각자는 자기가 선 또는 악이라고 판단하는 것을 자기의 본성의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욕구하고 또는 기피한다. (200쪽)
정리20. 각자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면 할수록, 바꾸어 말하면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많이 그것을 달성할수록 그만큼 유덕하다. 반대로 각자는 자기의 이익을, 바꾸어 말하면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는 일을 등한히 하는 한 무력하다. (200쪽)
증명 : 덕이란 인간의 능력 자체이며, 인간의 본질에 지나지 않는다(제4부의 정의8에 의해서). 즉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하는 노력에 의해서만 규정된다(제3부 정리7에 의해서). 그러므로 각자는 자기의 존재를 보존하려고 노력하고, 또한 그것이 가능하면 할수록 그만큼 유덕하다. 따라서 (제3부정리4와 6에 의해서)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는 일을 등한히 하는 한 무력하다. (200-201쪽)
정리21. 어느 누구도 생존하고 행동하고 생활하는 것, 바꾸어 말하면 현실에 존재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는 행복하게 살고 선하게 행동하고 선하게 생활하는 것을 바랄 수 없다. (201쪽)
정리22. 어떤 덕도 이것(즉 자기보존 노력)보다 우선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201쪽)
정리23. 인간이 타당치 못한 관념을 가짐으로써 어떤 행동이 결정되는 한, 그 사람은 절대로 덕에 따라 행동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가 인식(타당한 인식)함으로써 행동이 결정될 때에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202쪽)
정리24. 참으로 덕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은 이성의 지도에 따라 행동하고, 생활하며, 자기의 존재를 보존하는 일(이 세 가지는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원리에 따라서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202쪽)
정리25. 어느 누구도 남을 위해 자기존재를 보존하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203쪽)
정리26. 우리들이 이성에 따라 추구하는 모든 노력은 인식하는 일 뿐이다. 그리고 정신은 이성을 사용하는 한, 인식에 도움이 되는 것 말고는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203쪽)
정리27. 우리는 인식에 실제로 도움이 것만이 선이며, 인식을 방해할 수 있는 것만이 악임을 확실히 안다. (204쪽)
정리28. 정신의 최고선은 신의 인식이며, 정신의 최고의 덕은 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증명 : 정신의 완전한 덕은 인식하는 데 있다. 그런데 정신이 인식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은 (우리가 지금 증명한 것처럼) 신이다. 그러므로 정신의 최고의 덕은 신을 인식하는 것 또는 신을 아는 것이다. (204쪽)
[주] 정신의 힘을 완전히 구현하는 것은 정신의 덕이며, 이것은 또한 신을 인식하는 일이다. 신을 아는 것은 최고의 인식이며, 그것은 신의 개념적 파악에 그치지 않고 체험과 행위를 통하여서 신을 인식하는 일이다. 즉 인식은 동시에 행위이다. (248쪽)
정리29. 그 본성이 우리의 본성과 전연 다른 개체(개물)는 우리의 활동능력을 촉진하거나 억제할 수 없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어떠한 사물도, 만일 그것이 우리들과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에게 선이나 악이 될 수 없다. (204-205쪽)
정리30. 어떠한 사물도 그것이 우리의 본성과 공통적으로 가지는 것으로 인하여 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악이 되는 경우 그것은 우리와 대립한다. (205쪽)
정리31. 어떤 대상이 우리의 본성과 일치하는 한, 그것은 필연적으로 선이다. (206쪽)
정리32. 인간은 격정(열정)에 지배되는 한 본성에 있어 일치한다고 말할 수 없다. (206쪽)
정리33. 인간은 격정(열정)이라는 감정에 동요되는 한 본성에 있어서 서로 다를 수 있으며, 그러한 동일한 인간도 격정에 의하여 동요되는 한 가변적이며 불안정하다. (207쪽)
정리34. 인간은 격정이라는 감정에 의해서 동요되는 한, 서로 대립될 수 있다. (207쪽)
정리35. 인간은 이성의 지도에 따라서 생활하는 한, 본성에 있어서 언제나 필연적으로 일치한다. (208-209쪽)
계1 : 이성의 지도에 따라 생활하는 인간보다 더 유익한 개체는 자연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계2 : 저마다의 인간이 자기에게 유익한 것을 가장 많이 추구할 때 인간은 서로에게 가장 유익하다. (209쪽)
정리36. 덕을 따르는 사람들의 최고의 선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되며,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이를 즐길 수가 있다. (210쪽)
정리37. 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추구하는 선을 타인을 위해서도 추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욕구는 그가 가지는 신에 대한 인식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더 클 것이다.
* 레비나스의 '타자의 철학'과 동일한 명제임. (박희택)
증명1 : 인간은 이성의 지도에 따라서 생호라하는 한 인간에게 가장 유익하다(제4부의 정리35에 의해서). (211쪽)
증명2 :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 추구하고 사랑하는 선을 타인도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면, 더욱더 그것을 사랑할 것이다(제3부 정리31에 의해서). (212쪽)
주해1 : 단순한 감정만으로, 자기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타인도 사랑하도록 애쓰며 또 자기의 생각대로 타인이 생활하도록 노력하는 사람은, 본능적으로만 행동하는 것이며, 그 때문에 남에게 미움을 받는다. (...) 우리들이 이성의 지도에 따라서 살아가는 데서 나타나는 선을 행하려는 욕망을 나는 '도의심'이라고 한다. 이성의 지도에 따라서 생활하는 인간이 다른 사람과 우정을 맺으려는 욕망을 나는 '단정함'이라고 한다. 이성의 지도에 따라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칭찬하는 것을 나는 '단정하다'고 한다. 그리고 반대로 우정을 맺는 데 방해되는 것을 나는 '비열하다'고 한다. (...) 참된 덕과 무능력과의 차이는 위에서 말한 것으로부터 쉽사리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참된 덕이란 이성의 지도에 따라서만 생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능력이란 인간이 자기의 외부에 있는 사물에 수동적으로 이끌리고 또 외부의 일반적인 상태가 요구하는 것을 하는 것처럼, 외부의 사물로부터 결정되는 것에만 존재하며, 그 자신만으로 생각된 자기 자신의 본성이 요구하는 사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212-213쪽)
주해2 : 법률과 자기 보존의 힘에 의해서 확립된 이 사회를 '국가'라고 하며, 국가의 권능에 의해서 보호되고 있는 사람들을 '국민'이라고 한다. (...) '죄'란 불복종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국법에 의해서만 처벌된다. 반대로 복종은 국민에게 '공적(公賊)'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 때문에 국민은 국가의 여러 권익을 누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기 대문이다. (...) 자연상태에서의 '정의'라든가, '불의'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은 무엇 하나 일어나지 않는다. (214-215쪽)
정리38. 인간의 신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극받도록 하는 것, 또는 인간 신체를 외적인 물체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극하는 데 적합하게 하는 것은 인간에게 유익하다. (215쪽)
정리39. 인간 신체의 각 부분의 운동과 정지의 비율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은 선이다. 그리고 반대로 인간 신체의 각 부분을 서로 다른 운동과 정지의 비율을 갖도록 하는 것은 악이다. (216쪽)
정리40. 인간의 공동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 혹은 사람들을 서로 화합해서 생활하도록 하는 것은 유익하다, 반대로 국가에 불화를 가져오는 것은 악이다. (217쪽)
정리41. 기쁨은 직접적으로는 악이 아니라 선이다. 한편 슬픔은 직접적으로 악이다. (217쪽)
정리42. 쾌활함은 결코 도에 지나칠 수 없으며 언제나 선이다. 이에 반해 우울함은 언제나 악이다. (217쪽)
정리43. 쾌감은 과도해질 수 있으며 또한 악일 수 있다. 그러나 고통은 쾌감 또는 기쁨이 악인 한에 있어 선일 수 있다. (218쪽)
정리44. 사랑과 욕망은 과도해질 수 있다. (218쪽)
주해 : 탐욕·명예욕 · 정욕 등은 일반적으로 병(정신병)으로 간주되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역시 정신착란의 일종이다. (219쪽)
정리45. 증오는 결코 선일 수 없다. (220쪽)
정리46. 이성의 지도에 따라서 생활하는 사람은 가능한 한 자신에 대한 타인의 미움, 노여움, 경멸 등을 거꾸로 사랑이나 관용의 마음으로 갚도록 노력한다. (221쪽)
정리47. 희망과 공포의 감정은 그 자체로 선일 수 없다. (221쪽)
정리48. 과대평가와 경멸의 감정은 언제나 악이다. (222쪽)
정리49. 과대평가는 과대평가되는 사람을 쉽사리 교만하게 만든다. (222쪽)
정리50. 연민은 이성의 지도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가 악이며 무용하다.
증명 : 연민은 (감정의 정의18에 의해서) 슬픔이다. 따라서 (제4부의 정리41에 의해서) 그 자체로는 악이다. (222쪽)
정리51. 호의는 이성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일치되며, 또 그것으로부터 생겨날 수가 있다. (223쪽)
정리52. 자기만족은 이성에서 생겨날 수가 있다. 그리고 이성에서 생겨나는 이 만족이야말로 존재할 수 있는 최고의 만족이다. (224쪽)
정리53. 겸손(자기비하)은 덕이 아니다. 즉 이성에서 생기지 않는다.
증명 : 겸손은 인간이 자신의 무능력을 관조하는 데서 생기는 슬픔이다(감정의 정의26에 의해서). (...) 겸손, 즉 인간이 자기의 무능력을 관조하는 데서 생기는 슬픔은 참된 관조나 이성으로부터는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덕이 아니라 격정이다. (225쪽)
정리54. 후회는 덕이 아니다. 즉 이성에서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행위를 후회하는 사람은 이중으로 불행하거나 무능력하다. (225쪽)
주해 : 인간은 이성의 지도에 따라서 생활하는 것이 드물기 때문에, 이들 두 가지 감정, 즉 자기겸손과 후회 그리고 희망과 공포의 감정 역시 해악보다는 이익이 더 많다. (...) 아무런 두려움도 없다면, 어떻게 사회적 유대가 그들을 결속하고 통일시킬 수 있을 것인가? 민중은 두려움을 모를 때 두려워해야 할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이 소수의 이익보다는 사회의 이익을 고려해서 겸손, 후회, 순종 등을 그처럼 권장한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225-226쪽)
[주] 스피노자의 '공포'는 소심의 의미이며, '민중'을 스피노자는 인간이 단순히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는 뜻으로 사용하지 않고 인간이 왜 서로 화합해야 하느냐에 대해 무지한 인간의 집단으로 사용함. (248쪽)
정리55. 최대의 교만 또는 최대의 자기비하는 자신에 대한 최대의 무지이다. (226쪽)
정리56. 최대의 교만 또는 최대의 자기비하는 정신의 최대의 무능력을 나타낸다. (226쪽)
정리57. 교만(거만)한 사람은 추종하는 무리 또는 아첨하는 무리가 주위에 있는 것을 좋아하며, 관대한 사람이 주위에 있는 것을 싫어한다. (226쪽)
정리58. 명예는 이성과 모순되지 않으며, 이성으로부터 생길 수 있다. (228쪽)
정리59. 우리는 수동적인 감정에 따라 결정되는 모든 활동에, 그 감정이 없더라도 이성에 의해서 결정할 수 있다.
증명 : 이성에 따라서 활동하는 것은 (제3부 정리3과 정의2에 의해서) 우리의 본성, 단순히 그 자체만으로 생각되는 우리의 본성의 필연성에서 유래하는 활동을 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우선, 슬픔은 이 활동능력을 감소 내지 저해하는 한 악이다(제4부의 정리41에 의해서). (...) 다음으로, 기쁨은 인간의 활동능력을 방해하는 한 악이다(제4부 정리41과 43에 의해서). (...) 끝으로, 기쁨은 선인 이상 이성에 일치한다(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활동능력이 증대 또는 촉진되는 데 있으므로). (230쪽)
정리60. 신체의 모든 부분이 아니라, 그 일부분 또는 약간의 부분에만 관계되는 기쁨이나 슬픔에서 일어나는 욕망은 인간 전체의 이익을 생각지 않는다. (231쪽)
정리61. 이성으로부터 생기는 욕망은 결코 과도해질 수 없다. (232쪽)
정리62. 정신은 이성의 지도에 따라 사물을 파악하는 한, 관념이 미래나 과거 혹은 현재의 것에 관한 것이라 할지라도 동일하게 자극받는다. (232쪽)
정리63. 공포에 인도되거나 악을 피하기 위해서 선을 행하는 사람은 이성에 의해서 인도되지 않는다. (233쪽)
정리64. 악에 대한 인식은 타당치 못한 인식이다. (234쪽)
정리65. 이성의 지도에 따라 우리는 두 가지 선한 것 중 보다 큰 선에, 그리고 두 가지 악 중에서 보다 작은 악에 따를 것이다. (235쪽)
정리66. 이성의 지도에 따라 우리는 보다 작은 현재의 선보다는 보다 큰 미래의 선을, 그리고 보다 큰 미래의 악보다는 보다 작은 현재의 악을 추구할 것이다. (235쪽)
주해 : 감정이나 편견에만 이끌리는 사람과 이성에 이끌리는 사람과의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를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전자를 노예, 후자를 자유인이라고 한다. (236쪽)
정리67. 자유인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앟는다. 그리고 그의 지혜는 죽음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이다. (236쪽)
정리68. 만약에 인간이 자유롭게 태어났다면, 그들이 자유로운 동안에는 선악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236쪽)
정리69. 자유인의 덕은 위험을 회피함에 있어서도, 위험을 극복함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그 위대함이 나타난다. (237쪽)
정리70. 무지한 사람 사이에 생활하는 자유인은 가능한 그들의 친절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238쪽)
정리71. 자유인들만이 서로에 대하여 가장 감사할 수 있다. (238쪽)
정리72. 자유인은 결코 간교하게 행동을 하지 않으며 언제나 신의있게 행동한다. (239쪽)
정리73. 이성의 지도를 받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는 고독 속에서보다는 오히려 공동의 결정에 따라서 생활하는 국가 속에서 좀더 자유롭다. (240쪽)
* 이 정리가 스피노자의 정치론의 근거가 됨. (박희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