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술년(숙종32년) 1706년 5월 15일 청대일기에서
죽은 그대가 땅에 들어가기 하루 전날에 슬프고 쓰라린 마음으로 한 잔 술로 전을 드리며
영전에 고하오.
인생이 이와 같이 애통하고 원통하단 말이오.산 나이 28세로 죽은 뒤 한 점의 혈육도 남기지
못했으니 애통하고도 원통하오.세상에 어찌 다시 이와 같은 인생이 있겠소.
세상에는 진실로 요절하는 자도 있고, 장수 하는 자도 있으며,세상에는 또한 자식이 없이
죽은 자도 있지만,요절하고 장수하는 자도 간혹 후사를 두고,자식이 없이 죽은 자도 간혹 장수를
누리건만,지금 그대는 어느 한 가지도 없소.
아! 슬프다.세상에 어찌 다시 이런 애통하고 원통한 인생이 있겠소.
나와 그대가 부부가 된 지 지금까지 10년인데 자식 하나 낳았지만 세 살에 요절했으니,그때 그대의
연약한 애간장은 이미 다 녹아 없어졌을 것이오.그길로 병을 얻어 여러 해를 앓으며 고질이 되었소.
매번 너그럽고 좋은 말로 온갖 위로를 하며 완괘되어 다시 슬하에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기를
밤낮으로 바랐으나,그 뒷로 영영 태기가 끊어졌소.6년 동안 빈 방에 서로 마주 앉았을 때,
그대가 간혹 비탄에 잠겨 한숨을 쉬며 눈물을 흘리며 아직도 나이가 젊으니 훗날 어찌 사내든
딸이든 없겠소 라고 하면서,이번 달에 없으면 다음 달을 기다리고,올해 없으면 내년을 기다리며
서로 위로하며 지내고 서로 의지하며 살았소.지금은 끝나 버렸으니,누구와 위로하며 지내고
누구와 의지하며 살겠소.
초봄에 한 번 병이 들었을때,증세가 태기와 같아서 서로 기쁘하며 다행으로 여기고,이 뒤로는
다시 다른 근심이 없으리라 여겼소.비록 병세가 위중했으나 흔한 증세쯤으로 보여 생사에는
터럭만큼도 염려한 적이 없었고,그대도 아마 죽음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오.
그 뒤 얼마 되지 아니하여 갑자기 불구(죽음)에 이르렀으니,저 푸른 하늘이시여,이 무슨
잔인한 일입니까.죽은 자는 원통한 마음을 품고 산 자는 의지할 데가 없으니, 아! 슬프다.
이 무슨 잔인한 일인가.이 무슨 잔인한 일인가.비록 세월이 갈지라도 마음은 더욱 슬플 것이니
소용없는 슬픈은 몸을 상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생각하여 억지로 웃으며 말하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려고 애쓰나,지극한 고통이 골수에 사무쳐 줄곤 생각나며 잊혀지지 않소.
한밤중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남몰래 애를 태우며,잠자리에 간혹 흘린 눈물 자국이 남아
있으니,끝없는 이 고통은 죽은 뒤에야 그칠 것이오.이 인생이 어찌 차마 잊을 수 있단 말이오.
아! 슬프오.
지난해 장인의 삼년상이 끝나자 장모도 연로하여 병이 깊어졌소.장모께서 항상 믿고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그대 형제가 있기 때문이었는데,갑자기 변고를 당하였으니,자애로운 마음씨에
어찌 마디마디 간장이 끊어 지지 않겠으며,지하에서도 한이 남아 또한 눈을 감을 수 없을 것이오.
그렇지만 그대가 지하로 돌아가 그대의 아버지를 모시고,또한 곁에는 따르는 한 자식이 있을 것이니
저승의 혼령이 즐겁고 편안하여 다시는 이러한 경상을 알지 못하지 않겠소?
내일이면 집에서 십 리쯤 되는 초동언덕(산북면 화장리)에 장사 지낼 것이오.이곳은 나의 고조 증조 조부 삼대가
계시는 선영이오.
외로운 혼령이 방황하며 갈 곳이 없는 일은 아마 면하게 될 것이오.훗날 나도 죽으면 그대와
한 무덤에 들어가 외로운 혼령이 의지할 수 있게 하겠소.
나의 마음은 유감이 없으나 모든 여러 가지 일은 반드시 마음을 다하여 처리하고,그대의 정숙한
자질과 명민한 재주와 자상하고 온화한 마음이 통달 -원문빠짐-후세에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바요. 아! 모든 일이 이제 그만이오.이 인생이 그대의 옛날 면목을 서로 볼 수
있는 길이 없으니,혹시 꿈에서라도 자주 와 주겠소.
나 지아비는 길게 통곡하며 영결하오.혼령이여 아시겠소? 만약 아는 것이 있다면 반듯시 차마
서로 영결은 못할 것이오.눈물이 넘쳐흘러 이밖에 다시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소.
혼령이여 부디 흠향하소서.
장모께서도 슬픈 글로 애도했다.한밤중에 큰비가 한참동안 내렸다.이때의 낭패스럽고 걱정되는
마음은 차마 말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었다.닭이 운 뒤에 비는 그쳤으나 하늘은 흐려 개지
않았으니 어찌하겠는가.자시(밤11시~오전1시)에 파빈하고,인시(오전3시~5시)에 발인하여
오시(오전11시~오후1시)에하관했는데,날이저물기 전에 일을 마치고 반혼했다.
만사가 더욱 아득하며 매우 참담하고 가련했다.슬픈으로 목이 메여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다행스러운 것은 비가 내리려다가 끝까지 내리지 않아 아무 탈 없이 일을 마친 것이다.
첫댓글 선조 청대 할배의 인품이 보이는 일기 내용입니다 ~~~~
哀哉 哀哉 嗚呼痛哉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