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사유] <5-70>
고행은 수행이 아니다
인도의 종교가 <베다>에서부터 발전한 사실은 누구든지 다 아는 일이지만, 그 기원이 서력기원 전 1300년경에 있었던 일이고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탄생한 서력기원 전 6세기경에 와서는 많은 변화 발전이 생겼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학자들은 이 인도의 종교가 다른 고대민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니미즘(animism: 자연현상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심지어 무생물까지 모두 생명이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적인 성격을 그 밑바닥에 가지고 있었다고 믿고 있는데, 고대의 인도인들은 자기네들의 생활이 위협을 받거나 또는 혜택을 입을 때, 그러한 자연현상을 마치 살아 있는 것으로 보고 그것을 신으로서 존숭하며 또 자기들 안에도 무슨 영묘한 존재가 숨어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를 예사로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생각하는 능력이 강한 사람들은 신(神)을 존숭하는 태도에서부터 더 나아가 이러한 신비로운 힘을 우주의 최고 원리인 브라만(梵)이라고 부르고, 또 사람들 각자 속의 영묘한 힘에 대해서는 이를 아트만(我 또는 實我)이라고 이름 지어 이 브라만과 아트만 사이의 관계를 깊이 생각해 보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브라만은 아트만의 근거이고, 아트만은 브라만의 현현(顯現)이라고 하여 범아일여(梵我一如)란 깊은 사상이 제시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사람들의 심성과 우주의 신비의 문을 열어 헤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도 사람들이 기꺼이 신봉하는 사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인도 사람들의 전통적인 종교적 태도는 모두 범아일여를 실현하기 위한 수행으로 쏠렸고, 그와 같은 수행의 길은 대체로 두 가지 큰 조류(潮流)로 나타나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에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 2대 조류의 하나는 선정을 닦는 길이요, 또 다른 하나는 고행을 일삼는 길이었는데, 외면적인 것으로 산란하기 쉬운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감각의 세계에 끌려들어 좀처럼 거기서 헤어나기가 어려운 것이기에 마음을 억눌러 뛰쳐나가지 못하게 하고, 조용히 자기 자신을 반성해 갔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안에 신을 보고, 신에 접하는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여 인도의 요가(瑜伽禪定)는 시작되어 왔는데, 인도의 직업적 종교가였던 브라만 승려들은 흔히 뜨거운 태양 빛을 피해 숲속에 앉아 이와 같은 禪定에 종사하기를 좋아한 사람들입니다.
또 신을 보고, 신에 접하는 또 하나 다른 길로서 고행이 행해졌는데, 원래 고행의 원어는 타파스(tapas)라고 하여 열(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열에 의해 물건이 생기므로 물건을 생성하는 힘을 이렇게 불렀던 것인데, 나중에 열로써 죄를 태워 없애버리는 뜻으로 쓰이어 그것이 고행의 뜻이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열의 작용을 신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 베다 종교의 고전 <우파니샤드>같은 데에는 나타나 있는데, <우파니샤드>에서는 이 고행이 신을 보고 신에 접하는 해탈을 얻는 행위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인도에는 이와 같은 고행주의자가 매우 많았는데,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의 소위 육사외도라는 이단적 사상가들 가운데의 네 사람까지가 고행주의자였다는 것을 보면 그때 사정을 잘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고행주의에 관해서 지적해 두어야 할 두 가지 사실이 있는데, 그 첫째는 고행주의자들이 죄를 물질처럼 생각했다는 것인데, 즉 죄를 고행으로써 태워 없앤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와 같이 태워 없앤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물로 씻어 없애도 좋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그리하여 하루에 세 번씩 거룩한 물로 목욕을 해서 죄를 씻어버린다는 의식도 행해지게 되었습니다. 또 둘째로는 고행을 통해 육체와 싸운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인도 사람들에게는 아니미즘적인 생각이 있었으므로 영혼과 육체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하고 영혼은 자유로운 것, 육체는 부자유한 것, 또 영혼은 깨끗한 것, 육체는 더러운 것, 이렇게 대체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영혼을 육체에서 해방시켜야 된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육체에 고통을 주는 일이 종교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풍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런 고행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어떤 때는 개처럼, 소처럼, 또 박쥐처럼 살아가는 그런 식의 방법도 고안되었다 합니다. 이리하여 흔히 선정을 일삼는 사람들은 그 선정으로 생기는 일종의 황홀한 경지를 깨달은 천지라고 생각하게 되고, 또 고행을 일삼는 사람들은 고행으로써도 영혼의 자유는 얻어지지 않으니까 목표를 미래에 두고 그냥 부지런히 그것을 계속 하던가 또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흔히 하지 못하는 일을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여 그것으로써 명리를 얻어 보는 등 옆길로 쏠리는 일이 많게 되었습니다.
둘 사이가 매우 심하게 거리가 있거나 서로 반대되는 일을 양극단 [兩極端]이라고 하는데, 찬성과 반대, 전통과 타성, 쾌락과 고행 이런 대표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언어입니다. 부처님 출가 당시 인도의 사상계는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로 양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쾌락주의의 덧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고행을 선택하게 됩니다. 당시 수행자들 대부분은 고행을 선택했습니다. 고행은 주로 육체를 괴롭히는 방식이었는데, 극단적인 단식이나 숨을 참는 것, 가시침대에 눕거나 뙤약볕 밑에서 뜨거움을 참는 것 등이었습니다. 고행자들이 이러한 극단적인 수행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주로 구원을 받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싯다르타 태자도 6년간의 고행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던 궁극적인 행복, 즉 깨달음을 얻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고행자 싯다르타 태자는 그토록 염원하던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싯다르타 태자는 고행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미련 없이 고행을 포기하게 됩니다. 전통에 입각해 기존의 질서를 철저하게 지켜가며 고행을 선택했지만, 그것의 한계를 명확하게 깨닫게 된 싯다르타 태자는 6년간의 금욕적인 고행을 멈추고 새로운 수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새로운 수행의 원천은 어렸을 때 부왕을 따라 농경제에 갔다가 사과나무 아래에서 명상에 잠겨 경험했던 깊은 행복감을 떠올리며, 신체적 고통을 통하여 영혼의 정화를 기대했던 잘못된 수행방법을 잊고, 싯다르타 태자는 어릴 때의 경험을 되짚으며 행복을 토대로 한 중도의 수행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출가수행자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두 개의 극단이 있습니다. 그 두 가지 극단이란 무엇인가. 하나는 관능이 이끄는 대로 애욕의 기쁨에 탐닉해 욕망과 쾌락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는 어리석은 범부들이 찬탄하는 것이며 출가인의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 무익한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의 육체를 스스로 괴롭히는 것에 열중해 고통에만 빠지는 것이다. 이것은 심신이 모두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다. 이는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출가자가 하는 것이며 출가인의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는 무모한 것입니다. 수단이나 방법이 목적이 되는 경우 이것을 극단이라 하는데 수행자라면 응당 이 극단을 떠나야 합니다.
2565. 8. 15 종진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