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 ․ 다산 ․ 출세를 상징하며
밤송이 ․ 줄기로 천연염색도 합니다
밤나무
어느덧 가을이 다가와 고슴도치처럼 뾰족한 가시를 두른 밤송이가 하나둘 터집니다. 밤송이를 양발로 밟아서 까보면 안에 맛있는 밤이 들어있어요. 참나뭇과에 속하는 밤나무는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등 연평균 12도 이상의 북반구 온대 지역에 10여 종이 살아요. 한국, 중국, 일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이 주요 밤 생산국으로 꼽혀요.
밤은 단단한 껍질로 쌓여 있어 외부 충격을 잘 견디고 수송과 저장이 편한 데다 비타민 C, 비타민 B1, 식이섬유 등 영양가가 풍부해 식량 대용으로 사람들이 많이 재배해 온 구황작물이에요.
밤나무<사진1>는 산성 토양을 좋아해서 화강암 등 산성암이 많은 우리나라에 살기 적합하대요. 그래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도 조경 식물로 쓰였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시대 때도 나라에서 밤나무 보호에 각별히 신경 썼다고 합니다.
밤나무는 활용하기 매우 좋은 나무예요. 열매(밤·사진2)는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잎은 풍성하게 자라서 조경용으로 좋고, 꽃<사진3>에는 꿀이 많아요. 또 밤송이와 줄기, 잎은 천연 염색 재료로 활용할 수 있대요. 밤나무는 또 단단하고 타닌 성분이 많아서 잘 썩지 않기 때문에 제사상이나 위패 같은 가구와 건축 재료로도 많이 쓰여요. 신라 시대 유적인 경주 천마총의 핵심 시설 '목곽(木槨)'도 밤나무로 만들어졌답니다. 목곽은 관과 부장품 등을 넣는 상자 모양 시설이에요.
밤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도 많이 전해져요. 우선, 밤은 부귀와 다산을 상징해서 혼례 때 꼭 상에 올렸고요, 또 큰 밤송이 하나에 보통 밤 세 톨이 들어 있기 때문에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같은 높은 벼슬(출세)을 상징하기도 했대요.
조선 시대 대학자 이이(1536~1584)의 호 '율곡(栗谷)'과 관련된 설화도 전해집니다.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가 주막의 주모(스님이라는 얘기도 있음)에게 "아들이 크게 될 인물이지만,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대요. 그랬더니 주모는 "뒷산에 밤나무 1000그루를 심으라"고 했고, 이원수는 실제 밤나무 1000그루를 심었어요. 그래서 이이가 '밤나무 골짜기'란 뜻의 율곡이란 호를 갖게 됐다고 합니다.
'너도밤나무'와 '나도밤나무'라는 이름을 들어봤나요? 둘 다 이름에 밤나무가 들어가긴 하지만 밤나무의 종류는 아니에요. 울릉도에 사는 너도밤나무는 밤나무와 같은 참나뭇과에 속하는 친척뻘이고요, 나도밤나무는 나도밤나뭇과에 속하는 나무로, 잎 모양이 밤나무와 닮은 것 말고는 밤나무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나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