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무아, 무상, 고의 진실을 밝힘
앞의 글(아잔차 스님의 본성)에 대한 보충 글을 씁니다.
앞의 글에서 설명한 (“설혹 내 마음속에 있는 청정하고 고요한 절대 자리를 찿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의 뇌가 만든 환각이라고 결론 내리고, 절대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던 부분을 다시 보완합니다.)
왜냐하면,
이 짧은 글을 읽고 본성론(힌두교)과 연기론(석가모니)의 차이를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보완합니다.
즉 본성론의 나와 우주가 합일된 브라만(불성)을 석가모니는 “그것 또한 마음이 만든 환영”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무아, 무상, 고, 를 주장하시면서,
설혹 “영원하고 절대적인 브라만”이라 할지라도 그것 또한 내 뇌가 만든 환각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절대적 청정하고 고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인간의 업으로 재해석하기 때문에 그것은 “인간의 환각”이라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더 강조하지만,
아무리 오염 없는 깨끗한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그것은 인간 업으로 재해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설혹 우주에는 절대적 진리는 있을까? 하고 질문할지도 모릅니다만, 절대적 진리는 우리 인간이 볼 수 없습니다.
설혹 절대적 진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이 인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업으로 세상을 재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아, 무상, 고, 라고 하신 것입니다.
(무아 무상 고는 이런 의미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우리 인간은 절대로 [순수]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의 업으로 재해석하여 오염시킨다는 의미입니다.
또다시 말하지만,
이 우주에는 “진실이라는 것”이 있을까? 하고 묻는다면,
석가모니는 어떻게 대답하실까?
그것은 “모른다”입니다. 즉 우리 인간이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인간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정말 굉장한 안목입니다.
어느 누구도 손댈 수 없었던 영역을 석가모니가 정확히 결론 내린 것입니다.
정말 역사적인 판단입니다.
어떤 성인도 할 수 없었던 영역입니다.
인도에서 브라만이라는 절대적인 청정한 영역이 있다고 했고,
그것을 온 국민이 모두 믿고 따랐던 2600년 전에,
유일하게 석가모니는 그것에 반기를 들고 부정했던 것입니다.
“절대 자리”는 없다고 선언하고
무아 무상 고를 주장하시면서 불교라는 새로운 가르침을 펴셨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석가모니는 “절대 자리는 절대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불교인 들이 간과하고 불성이니 주인공이니 하고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주이신 석가모니가 그렇게 힘주어 외쳤던 일을 그 제자들이 부정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입니다.
이것은, 교주이신 석가모니의 진심을, 이렇게 알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거듭 말씀합니다만,
석가모니의 진심은 중생의 보통 머리로는 정말 알기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2600년이라는 긴 세월을 흘러오면서도, 반복해서 시행착오를 하는 제자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후손들은, 석가모니의 이 진심을 깊이깊이 마음속에 새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