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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풍경사진: F.64 풍경사진에서 현대문화풍경까지
20세기 풍경사진의 출발 F.64 Group
20세기 풍경사진은 크게 세 가지 모습으로 자리했다. 첫째는 낭만주의 풍경사진이고, 둘째는 모더니즘(근대주의) 풍경사진이고, 셋째는 포스트모더니즘(탈 근대주의) 풍경사진이다. 풍경사진의 변천은 무엇보다도 동시대적 상황과 사진 메커니즘의 발달에 따른 것이며, 여기에 예술사진에 대한 변화된 인식이 더해져서 시대에 따라 풍경사진의 모습이 달라져 왔다. 예컨대 20세기 중반에만 하더라도 "풍경사진"하면, 그것은 흑백사진이고, 자연을 대상으로 했던 자연풍경, 즉 랜드스케입(Landscape)사진으로서 대형카메라를 사용하여 아주 정교하교 세밀하게 자연의 장엄함을 담은 숭고한 흑백풍경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풍경사진의 전통은 193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출현한 <F.64 Group>에서 발원한 것으로서 1950년대까지 세계적인 풍경사진의 교과서가 되었다. 앤셀 애덤스, 에드워드 웨스톤, 이모젠 커닝햄 등 로키산맥과 시에라네바다 산맥 그리고 서부연안 포인트 로보스와 같이 미국 서부의 광활한 대자연의 자태를 드러내려 한 F.64 그룹 사진가들에게는 무엇보다도 8X10 이상의 대형카메라, 완벽한 구도, 샤프한 팬포커스, 뛰어난 디테일 그리고 눈부신 흑백 프린트를 최고 덕목으로 삼았다. 따라서 193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20세기 풍경사진의 전반부는 F.64 전통을 따르는 순수 자연풍경으로서의 풍경사진, 즉 대형카메라를 사용하여 대자연의 외경과 신비로움과 위대함을 예술의 정점으로 삼았던 풍경사진의 시대였다. 사진의 최고의 주제가 자연이었으며, 최고의 예술사진은 흑백으로 완벽하게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존 시스템(Zone System)은 자연을 빼다 놓기 위해서, 아니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실제보다 더 장엄하게 보이기 위해서 최고의 연주를 시도했던 흑백 프린트의 연주법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진가가 존 시스템을 창안한 앤셀 애덤스였고, 가장 예술적인 사진을 찍었다고 말해지는 에드워드 웨스톤이다. 흑백풍경사진은 이 두 사람에 의해 절정에 이르렀으며, 이들이 대상으로 삼은 소재는 미국 국립공원, 즉 요세미티 국립공원, 엘로스톤, 그랜드케년, 네바다사막, 콜로라도 강, 포인트 로보스 해변 등이다. 앤셀 애덤스는 "필름은 악보, 프린트는 연주"라는 말을 남겼던 프린트 신화 그 자체였다. 좋은 악보에서 좋은 연주가 가능하다는 신념은 그의 존 시스템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존 시스템은 피아노 건반의 흑과 백의 조화, 가장 검은 곳,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흰 곳, 가장 밝은 곳의 차이를 조화롭게 해주는 연주법이자 기교이다. 그는 노출을 재는 것을 피아노 건반을 조율하는 튠업(tune up)으로 보았으며, 그 과정에서 과학적 엄격성과, 수학적 확실성을 신봉했다. 노출계 없이 사진을 찍은 적이 없고, 트라이포드 없이 사진을 찍은 법이 없었다. 빛이 머문 공간과 시간에 추호의 오차도, 대충대충도 용납하지 않았다. 빛의 양과 필름의 감도 그리고 인화지의 관계를 수치를 통해서 뽑아낸 그의 흑백사진은 그 자체로서 예술이 되고도 남았다.
에드워드 웨스톤은 네바다 사막의 데스밸리를 소재로 하여 사막풍경을 많이 찍었으나, 그보다는 정물사진과 풍경 속의 누드사진으로 더 유명하다. 그것은 웨스톤이 애덤스와 성격을 달리하려 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는 먼 거리에서 광활하게 풍경을 담기보다는 풍경의 일부인 대상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매우 "즉물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웨스톤은 아주 작은 조개껍질, 피망, 양배추, 바나나, 버섯과 같은 것들을 통해 대자연의 신비감과 그 속에서 우주를 발견하려 했다. 웨스톤의 깊은 심도, 뛰어난 조형감각에 의하여 그것들을 매우 샤프하고 정교하게, 풍부한 디테일과 강력한 조형성이 드러났다. 전매 특허인 누드사진도 대자연 속에서 자연 그대로, 여성이 원초성을 드러내는 자연 그대로가 되도록 했다.
자연풍경에서 사회풍경으로
풍경사진이 자연풍경에서 사회풍경으로 모습을 대체하기 시작한 시기는 50대 중반 무렵이고, 보다 확실하게 이제 "풍경"하면 자연풍경이 아니라 사회풍경(Social Landscape)으로 인식하게 했던 때는 60년대 중반부터이다. 풍경이 자연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지칭한다는 말은 곧 풍경의 대상이 자연에서 사회로 옮겨왔다는 것을 뜻한다. 즉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자연풍경보다 시시각각 변할 뿐만 아니라 삶의 중차대한 관심사로 자리하게 되는 사회의 모습이 더 사진에서 중요한 소재가 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60년대부터 이제 "풍경"하면 그것이 자연풍경을 말하는 것인지, 사회풍경을 말하는 것인지 혹은 정치적 풍경을 말하는 것인지 구별해서 써야한다는 것은 사진도 이제 과거처럼 자연이 주요 소재가 아니라 사회가 더 주요 소재로 자리하고, 예술사진도 사회풍경을 소재로 한 사진이 더 중요한 예술적 소재로 자리하게 되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60년대부터 풍경사진이 어떤 이유 때문에 자연풍경에서 사회풍경으로 옮겨지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 전후 급격하게 변모한 정치적, 사회적 상황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빈부격차, 흑백갈등과 같은 사회 구성원들의 경제적, 문화적 혼란 때문이다. 세상이 편안하고 삶이 그렇게 빠르지 않았던 시대에는 자연이, 자연스러운 환경이 삶의 주요 무대이자, 생의 중심, 관조의 대상이었는데, 세상이 빠르고 변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여 빈부의 격차, 삶의 불평등, 계층 간의 위화감과 차별이 나타나게 됨으로써 이제 사람들에게는 순수자연보다는 당면하고 있는 삶의 풍경, 사회풍경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소재로 작용하게 되었다.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된 60년대부터 사진에서의 풍경은 이제 자연풍경에서 "사회풍경"으로 자리바꿈을 하게 되었다. 많은 사진가들이 오늘 못 찍어도 되는 사진, 오늘 못 찍어도 내일, 내년, 혹은 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찍을 수 있는 사진적 소재보다도 지금 당장 찍지 않으면 사라지는 소재, 지금 당장 카메라에 담지 않으면 말해질 수 없는 사건과 상황을 더 중요한 시대적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풍경이 자연풍경에서 사회풍경으로 옮겨졌을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카메라가 대형에서 소형으로 바뀌었다는 것과 사건중심, 뉴스중심의 결정적 순간이 주요한 사진미학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사진의 퀄리티보다는 뉴스가치, 순간포착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는 포토 저널리즘, 퍼스널 다큐멘터리 사진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진가가 50년대 로버트 프랭크, 윌리엄 클라인, 60년대 리 프리드랜더, 게리 위노그랜드였다. 이들 사진가들은 보도사진가도 아니고 정통 다큐멘터리 사진가도 아니었으나, 이제 이들 사진가들은 사진에서의 풍경이 오로지 예술로서 즐기고 감상하는, 편안하게 다가서는 자연풍경이 아니라 급격한 사회적 환경, 이에 따라서 사진가도 이제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인사이더로서 시대의 당사자가 되는 사회풍경이 더 중요한 사진적 소재임을 깨닫게 된다.
사회적 풍경의 주요 소재는 소외계층의 삶이었는데 주로 농촌지역, 노동자, 흑인, 여성, 기형인, 장애자들이 대상이 되거나, 쓸쓸하고 공허한 도심풍경, 상가, 상점, 황량한 도로, 텅빈 도심, 그곳을 어슬렁거리는 실직자들이나 동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이전의 풍경사진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때도 자연풍경의 사진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제 예술로서의 풍경사진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자연풍경보다는 삶의 문제가 절실한 사회적 풍경이 더 예술적이고 미학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소외풍경, 삶의 뒤안길을 비추는 풍경이다 보니 풍경사진의 형식성도 대형 카메라에 의한 깨끗하고 정교한 사진에서 초점이 맞지도 않고 노출도 맞지 않고 구도 또한 정교하지 못한 흔들리거나 기울어진 사진도 "심상사진" 혹은 "심상풍경'이라는 이름 하에 용인되었다.
흑백풍경에서 컬러풍경으로
70년대에 들어서면 풍경사진은 새로운 모습으로 또 한번 옷을 갈아입는다.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바뀌게 되는데 하나는 흑백풍경에서 컬러풍경으로 바뀐다는 것과 사회풍경에서 문화풍경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먼저 사진의 표현방식이 흑백사진에서 컬러사진으로 바뀐다는 것은 무엇보다 컬러 탤리비전 등장, 인스턴트 폴라로이드 카메라 출현, 그리고 보다 간편해진 컬러 프로세스의 간편성을 말할 수 있다. 즉 70년대는 전 세계가 이제 컬러의 시대로서 풍경을 컬러로 보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풍경의 소재도 변화하게 되는데 정치적 이슈, 사회적 이슈를 주요 사진적 소재로 삼았던 데서 실생활에 가까운 문화적 이슈, 의식주 문제와 연계된 도시적, 경제적 이슈가 70년대 풍경사진의 주요 소재로 자리하게 되었다.
70년대 가장 중요한 풍경사진은 "도시개발풍경"이었다. 즉 인간에 의해 변모된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은 풍경사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는 대형 카메라, 중형카메라 소형카메라가 모두 동원된 시기였으며, 그 가운데 하셀블라드, 마미아 6X7, 제자 브로니카와 같은 중형 카메라가 새로운 이미지 포맷의 중심으로 등장한 시기였다. 예컨대 자연으로서 산과 땅을 소재로 삼은 작가들은 대형 카메라를 선호했고, 사회적 일상을 소재로 삼은 사진가들은 소형 카메라를 선호했으나, 문화풍경을 관조적으로 다가선 사진가들은 중형카메라를 선호했다. 그러나 이들의 풍경사진은 압도적으로 컬러사진이었고 상당수의 작가들은 직접 자가현상, 자가인화를 했다.
그래서 70년대 풍경사진의 특징을 말할 때 "인공적 풍경", "인공적 컬러", "인공적 소재"라고 말한다. 이제 자연풍경은 더 이상 순수 자연풍경이 아니었다. 도시개발을 위하여, 신도시를 위하여, 새로운 도로, 새로운 주거환경을 위하여 과거에 순수자연이었던 지형(地形)이 택지화되고, 공단화되는, 인간에 의해 인공적 변모되는 인공풍경이었으며, 그것을 표현한 컬러도 자연에 가까운 자연색의 컬러사진이 아니라 사진가에게 반영된, 주관화된 인공색, 그리고 소재가 자연물이 아닌 공산품이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컬러가 인공적 소재, 인공적 컬러 풍경사진이 유행하는데 앞장서게 되었다. 이제 컬러사진 하면 자연에 가까운 컬러사진이 아니라 사진가 저마다 창조적인, 사진가의 컨셉에 부합하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컬러 풍경사진이 만들어졌고, 사진의 소재도 이제 자연 속에 인공물이, 반대로 인공 속에 자연물이 들어서거나, 자연과 인공으로 구별되지 않는 인간에 의해 변모되고 꾸며지는 모든 소재가 새롭게 사진의 소재가 되었는데 비교적 문화적 풍경에 속하는 사진들이었다.
많은 사진가들이 문화적 풍경을 대상으로 컬러사진을 제작했는데 우리는 이들이 70년대 제작한 컬러 풍경사진을 "뉴컬러사진(New Color)"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사진가가 윌리엄 이글스톤, 조엘 메이어로위츠, 윌리엄 크리스천베리와 같은 작가들이었으며, 이들은 특히 소도시 풍경, 교외풍경을 아주 강렬한 색감으로 표현했다. 주로 대형과 중형 카메라를 이용했으며, 엑터컬러 필름으로 자가현상, 자가 C-프린트 인화를 했다.
모던풍경에서 포스트모던풍경으로
80년대 풍경사진은 특별히 어떠한 풍경이 고정화되거나 표현방법도 한가지 특징만을 선호하거나 고정되어 있는 풍경사진이 아니었다. 자연풍경에서 인공풍경에까지, 초자연에서 환경문제에 이르기까지, 대도시풍경에서 농촌풍경까지, 동식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대지에서 도심 아스팔트까지 모든 소재들이 풍경사진의 소재가 되고 또한 그 표현의 방법에 있어서도 흑백, 컬러, 디지털 이미지까지 자유자재로 활용, 구사되었다. 이 모든 것은 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문화현상. 즉 혼성적이고, 절충적이고, 탈 중심적인 사회 문화적 현상이 사진에도 밀려들어와 "이것이 풍경사진"라고 할 수 없도록 풍경사진에 대한 종래의 개념을 해체시켰다. 이제 사진가들은 대자연 앞에서 순수자연의 색을 취할 수고 있고 조작 변형할 수도 있게 되어, 컬러로 찍어 다양한 프로세스에 의해 색을 변형시키기도 하고, 이미지를 변형시키기도 하며, 심지어는 다른 표현매체의 힘을 빌어 표현하기도 한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풍경사진, 과거와 같은 전통적인 풍경사진이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상적 풍경, 모조적 풍경이 더 큰 풍경사진의 소재가 되거나 표현의 중심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우리는 80년대 이후의 풍경사진을 새로운 현대풍경(Contemporary Landscape) 혹은 "뉴 랜드스케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대문화사회를 반영하는 뉴 랜드스케입은 이제 풍경사진이 더 이상 고정화될 수 없게 하고, 색의 표현, 이미지의 사실성과 진실성마저도 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진실성보다도 표현성을, 예술성보다도 시대성을, 존재성보다는 유희성을 더 선호하고 관심을 가지는 게 우리시대 풍경사진의 모습이다. 이제 풍경사진에 소재의 제한성이 없고, 표현의 절대성이 없다면 남은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도 풍경사진이라고 말할 것인가?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세상 중심에 있고, 디지털 카메라, 디지털 이미지가 이미지의 중심으로 자리한 시점에서 이제 풍경사진의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자리하며, 풍경사진은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지고 모습을 달리할 것인지 우리 모두에게 숙제이기도 하다.
진동선, 사진평론가(상명대학교평생교육원 강의요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