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져 있던 신앙의 명가 레갑가문(렘35:18-19)
2016.9.11 김상수목사(안흥교회)
현대인들은 ‘뽀대’라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뽀대난다’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폼난다’는 뜻이다. 동양계 특히 외형적인 체면이나 출세를 중시하는 한국인들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들로 사람의 성공여부나 존귀함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명품, 명차, 명품아파트, 명예 등 ‘명(名)’ 자 붙은 것들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신앙의 명품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명품들은 잠깐 피었다 지는 들풀과 같지만, 하나님 앞에서 명품 신앙은 영원한 것이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의 가정이 이와 같이 명품신앙, 신앙의 명가를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우리들이 어차피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했다면,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될만한 명품 신앙의 사람이 되고 신앙의 명가를 이루겠다는 소망을 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추석을 앞두고 성경 속에서 신앙의 명가를 이루었던 한 가문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들도 이러한 소망을 품고, 기도하기를 원한다. 성경에는 명품믿음으로 신앙의 명가를 이루었던 사람들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오늘 본문에는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숨겨져 있던 믿음의 집안이 하나 소개되고 있다. 이 집안의 이름은 바로 ‘레갑 가문’이다.
먼저 레갑가문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놀라운 축복의 내용부터 한번 살펴보자. 오늘 본문인 예레미야 35장 18-19절 말씀을 보라. 다함께 읽자.
“18 예레미야가 레갑 족속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준종하여 그 모든 훈계를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행하였도다 19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렘 35:18-19)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레갑자손에게 복을 주신다는 약속을 하시는데, 몇 십년, 몇 백년을 보장하는 정도가 아니다.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영영히”라는 표현을 쓰셨다면, 그것은 영원이 보장되는 것이고 변개될 수 없는 엄청난 것이다. 그런데 이 시간 분명하게 확신하는 것은 이 말씀은 분명히 구약시대 그 당시 그곳에서 레갑 자손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지만, 동시에 지금 이 시대, 이 시간, 여기에서 나와 우리 가문에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의심치 않고, 아멘하며 받아들이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주시는 축복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대체 레갑가문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기에 이처럼 놀라운 축복을 받았을까? 성경을 보면 놀랍게도 레갑족속의 조상들은 본래 유대인들이 아니었다. 민수기에 보면 이들이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속했던 겐족속((Kenites)으로(삿1:16), 광야에서 떠돌이 유목민 생활을 하는 족속들이다. 이들이 출애굽 이후에 광야에서 이스라엘에 합류했다. 그러니까 자존심 강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레갑족속은 그야말로 굴러들어온 돌같은 그닥 별볼일도 없는 사람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처럼 신앙의 명가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을 우리가 이 시간 영안을 열고 봐야 한다. 그것은 그들의 선조 요나답의 결단과 그 후손들에 대한 철저한 신앙교육이다. 그런데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레갑족속을 축복하시면서 그 근거로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준종하여”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레갑족속이 명품 집안이 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키(key)가 되는 인물이 바로 요나답(Jonadab)이라는 사람이다.
예레미야 35장 6-7절에 보면 레갑의 아들이었던 요나답은 바알숭배가 가장 극에 달했던 북왕국 아합왕 때, 바알숭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가족과 함께 광야로 가서 장막을 치고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그의 자손들에게 포도주를 금했고, 철저하게 신앙교육을 시켰다. 그 당시 요나답이 금했던 포도주는 단순한 포도주가 아니다. 그것은 이방신의 예식에 사용되었던 것이고, 또한 독주로 인해 당시 사회는 문란하기 그지없었다. 술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성도의 덕스러운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열왕기하 10장에 보면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서 아합왕을 몰아낼 때, 요나답은 예후의 편에 서서 바알의 세력들 진멸할 때 앞장섰다(왕상10장의 여호나답과 요나답은 동일인물). 이러한 레갑의 자손들이 유다말기에는 예루살렘으로 들어와서 우거하고 있었다(렘35:11).
사실 아합왕 시대에 요나답이라는 평범한 개인이 당시 사회적으로 거대한 우상숭배의 쓰나미를 거스리고 반대방향으로 치고 올라가기로 결단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결정이다. 그러나 그는 비록 광야에서 가난하게 살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의 길에 더 큰 가치를 두었다. 그는 세상적인 부(富)나 명예나 안락함을 유지하기 위해 성도로서 자존심과 품위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 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 자신의 몸과 삶으로 본을 보였다.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신앙교육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였고, 속도가 아니라 올바른 방향이었다. 이런 요나답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
레갑가문의 경우에서 보듯이 과거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명품 크리스천이나 신앙의 명가가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출신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다. 또 그들이 사는 지역이 도시인지 광야인지, 시골인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부자인지 가난한지도 문제되지 않는다. 이것은 다윗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이 레갑자손들에게 보신 것은 그들의 조건이나 껍데기가 아니라, 그들의 지키고자 했던 순수한 믿음의 중심이다. 이것은 바꿔말하면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들이 우리의 가문이나 지역에서 요나답같은 순수한 믿음의 결단과 충성을 한다면, 얼마든지 우리들도 신앙의 명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실 그 옛날 레갑족속 요나답이 살던 시대나 유다말기나 또는 지금 우리들이 사는 이 시대나 동일하게 요나답처럼 성도답게 산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바보처럼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바보는 거룩한 바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바보다. 한번 되어 봄직한 바보가 아닌가? 사람들의 눈에는 바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본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존심’이고, ‘하나님의 자랑거리’다. 소년 목동 다윗이나 욥같은 인물들이 다 하나님의 자존심이고 하나님의 자랑거리였던 명품신앙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하나님의 자랑거리인가? 하나님의 걱정거리인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예전에 유명했던 영화배우 남궁원씨를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남궁원씨(본명 홍경일)가 지금은 송파구에 있는 어느 교회의 원로장로님이고, 그 부인 양춘자씨는 권사님이다. 남궁원장로님 가정의 천재자녀교육법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꾀나 유명한 이야기다. 그들은 슬하에 1남 2여를 두었는데, 다들 미국의 콜롬비아와 하버드 등의 명문대학을 졸업했고, 지금은 사업가와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남궁원장로님의 아들인 홍정욱군은 서울 노원에서 국회의원을 한 바도 있다. 홍정욱군은 유학시절에 하버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을 뿐 아니라 졸업할 때 3개의 상을 받는 영예를 얻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 양춘자권사님이 밝힌 그 가정의 천재교육 비결은 "성경과외공부"였다. 전도사님을 초빙해서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시켰고, 어떤 때는 목사님을 초청해서까지 성경공부를 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경공부는 아이들이 유학 갈 때까지 계속 했으며, 방학 중에 귀국을 하면 또다시 성공경부를 시켰는데, 그것이 이 집안의 전통이 되어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남궁원장로님의 가족과 후손들의 가정도 여전히 진행 중(ing) 이지만, 지금까지의 과정만으로도 우리들에게 어느 정도는 중요한 영적인 깨달음의 단서를 주기에 충분하다. 남궁원장로님의 가정이 우리들에게 도전을 주는 것은 그들은 믿음의 명가가 되기 위해서 결단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뭔가 작은 것에서 부터 실행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적인 명예나 명품, 전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의 명품과 명가를 이루는 일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들이 우리 집안에서 또는 가문과 지역에서 믿음의 요나답이 되자. 내가 우리 집안의 요나답이 되어서 신앙의 명가를 한번 이루어 보겠다는 신앙적인 결단을 하고, 결심한대로 실행해 보자. 돈 몇푼, 세상쾌락 때문에 성도로서 자존심과 명예와 품위를 버리지 말자. 요나답처럼 자녀손들에게 신앙의 본을 보이겠다고 결심하자. 그래서 하나님의 자존심이 되는 성도,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는 성도, 하나님 보시기에 뽀대나는 신앙의 명가를 이루자.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이 시간 우리의 결심을 고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자. 주님이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