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TV에서 짐과 쓰레기가 잔뜩 쌓인 집에서 생활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쓰레기들은 잡동사니가 전부여서 악취까지 풍겨 이웃 주민에게 피해를 안겨 줄 뿐만 아니라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는 주인공 일상마저 위협하고 있는 듯하였다. TV를 통해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불편했다. 주위에서 쓰레기와 쓰지 않는 짐을 치우라고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주인공은 선뜻 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 속 주인공은 초로의 아주머니였다. 카메라가 비추는 집안 곳곳엔 온갖 플라스틱 그릇들, 헌 우산, 깡통 등, 그 어느 것 하나 생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물건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물건에 대한 애착을 쉽사리 내려놓지 못하였다. 어찌 보면 이 또한 헛된 욕심이 아닐까 싶다. 긴 시간 동안 짐과 쓰레기로 인해 비좁은 환경 속에 살다 제작진의 끈질긴 설득에 마지못해 드디어 짐과 쓰레기를 치우게 되었다.
치우는 과정에서도 일반적으로 버려야 할 물건에 대해 광적인 집착까지 드러냈다. 짐을 치우는 자원봉사자와 제작진이 또 다시 주인공을 설득하기 위해 긴 사투를 벌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많은 쓰레기와 짐을 정리하고 비로소 쾌적한 환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 집에서 나온 쓰레기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결국 생활에 필요한 최소 물건만 남기고 쓰레기로 손상된 집을 깔끔하게 수리한 후 모처럼 행복해 하는 주인공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 내용을 시청할 때, 문득 2011년 동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이 떠올랐다. 그동안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던 일본인들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사들인 살림살이가 지진 때 집과 함께 무너져 탈출 시 수많은 짐으로 말미암아 출구를 찾지 못하자 많은 물건들이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반면 최소한의 물건만 갖추고 살아가는 집에서는 대지진 속에서도 신속히 대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이후 일본인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 혹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 남겨 두고 그 외의 것을 줄이는 '미니멀 라이프' 삶을 추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미니멀 라이프는 동 일본 대지진 이후 '단샤리(끊고 버리고 떠난다)'라는 이름으로 일본인의 생활양식 중 일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사사키 후미오의《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는 번역서가 국내 베스트셀러로 오르게 되며, 지난해부터 국내에서도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추세다.
이 사실 앞에 나도 모르게 가슴으로 손이 갔다. 올해의 화두로 다독을 하고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올해 들어 많은 양의 책을 구입하고 지난해 겨울부터 재봉을 배우고 있어 관련된 재료가 집에 자잘한 짐으로 하나 둘 쌓여가고 있다. 그 밖에 각종 미술, 공예도구와 재료, 교육 부자재를 비롯하여 여러 작품과 필요할 때 보기 위해 프린트해 놓은 텍스트 자료가 즐비하게 쌓여가고 있어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재봉틀을 구입할까, 여러 원단을 구입할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소유한 불필요한 물건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이즈막 깨달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민간 아파트 평당 분양가가 957만 원이라고 한다. 이로 보아 쓰지 않는 물건이나 짐으로 인해 평당 1000만원에 가까운 공간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집이 넓어도 불필요한 물건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비경제적인가.
그러면서도 재봉틀을 구입하고 싶은 욕심은 버리지 못했지만 불필요한 물건을 과감히 정리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버리는 기준으로 2년 동안 쓰지 않은 물건은 앞으로도 사용할 확률이 희박하다고 보면 된다. 공부하며 프린트한 텍스트 자료, 버리기 아까워 모아 둔 이면지 등을 먼저 정리했다.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고자 프린트했던 자료는 2년 동안 본 적이 없고, 이면지도 사용량이 매우 적어서 싹 정리를 했더니 커다란 택배 박스 한 박스를 가득 채운 용량이 나왔다. 훗날 행여나 필요할까봐 노심초사했지만 미련을 떨치고 그 한 박스를 버렸다.
그것을 버리고 정돈된 방 안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학창시절 법정스님의<무소유>를 읽은 적 있다. <무소유>에서는 ‘무엇인가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얽매이고 얽혀 있는 것이다.’ 라는 내용이 있다. 주위의 불필요한 것을 정리하는 것, 그것은 곧 비우는 삶의 시작이 아닐까. 물질적으로 많이 소유하는 삶보다 내면을 한껏 채워가는 삶을 지금이라도 실천해 볼까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