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3장
하나님의 예언 말씀에 불순종하고 이집트로 간 '남은 자들',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 예고 1
(찬송 시편 32편 – 악보는 맨 뒷장에)
2023-6-19, 월
맥락과 의미
42-44장은 예언의 성취 속의 예언입니다. 마치 거울 속의 거울과 같습니다. 유다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통한 말씀에 불순종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바벨론 왕은 유다 땅에 유다 출신의 총독을 남겨 두어 관리하게 했습니다.
39-41장이 그 예언의 성취에 대해 말합니다. 그 심판이 성취되는 이야기 가운데 아직도 사태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남은 자들이 유대 땅에서 서로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41장).
42-44장은 남은 자들에게 유다 땅에 머물러 있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이집트로 가는 그 미련하고 전적으로 부패한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상 숭배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 때문에 왕과 귀족과 부유한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간 이야기의 부록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이집트 포로 생활로 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1-39장의 온 백성의 죄와 심판에 대한 예언이 다시 42-44장에서 남은 자들의 죄와 심판에 대한 예언으로 반복됩니다. 이 작은 예언 속의 적은 무리의 죄악은 사실은 더 큽니다. 끝까지 완전히 가루가 될 때까지 불순종하는 구약 교회 성도들의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의 불순종을 거울처럼 보고 회개하도록 합시다.
1. 남은 자들이 예레미야를 거짓말쟁이라 비방하며 이집트로 이주(1-7절)
2. 남은 자들이 이주한 다바네스에서 그 백성의 죄와 심판을 예언(8-13절)
1. 남은 자들이 예레미야를 거짓말쟁이라 비방하며 이집트로 이주(1-7절)
1-3절: 남은 자들이 예레미야에게 부탁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서 그분의 뜻을 알려 주십시오. 힘들어 보여도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42:6, 20)
하나님이 마침내 내려 주신 뜻을 백성에게 전달했습니다. 전달하면서 이미 예레미야는 너희가 너희 마음을 속였다(42:20)하고 그들이 불순종하리라는 것을 알고서도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도자 요하난과 함께 한 자들은 예레미야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거짓말하고 있소, 하나님은 ‘너희는 이집트에 거하려고 거리로 가지 말라’고 당신을 보내서 말하지 않았소.” 그리고 “바룩이 당신을 꼬드겨서 우리를 바벨론 사람의 손에 넘겨주어 죽이려 하고 있소.”
이 말을 하는 자들은 “교만한 자”(자드)라 말합니다. 신명기에서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이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치고, 사건을 판결할 때, 그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거역하는” 자들에 대해 쓴 말입니다(신 17:12, ‘무법하게’: 자돈). 그런 자들은 돌로 쳐 죽이라는 법을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여 이루어지지 않는, 거짓 선지자들이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신 18:22, ‘제 마음대로’: 자돈).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거역하여 받은 심판을 조금 면하고 남은 이 백성이 신명기 율법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그들은 예레미야를 율법의 기준으로 볼 때 거짓 선지자라 비난합니다. 예레미야를 “거짓말한다”(카샤르)고 비방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자들에게 “너희가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14:14, 27:15)에 쓴 말입니다.
예레미야의 신실한 동역자요 비서인 바룩이 예레미야를 “꼬였다”(수트)고 합니다. 이 말은 신명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형제자매 혹은 아내, 친구가 “너를 꾀어(수트) 이르기를… 다른 신들을 섬기자”고 말하면 동정심을 가지지 말고 단호히 죽이라고 했습니다(신 13:6-9절). 바룩이 자기 가족을 우상 숭배에 빠뜨려서 사형당할 자에 해당한다는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예레미야를 하나님께 보내고 다시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자기들에게 보낸다고 분명히 말해 놓고(42:6) 이제 와서는 하나님이 당신을 우리에게 보내지 않았다고 잡아뗍니다. 오히려 저주받을 거짓 선지자라고 비난합니다.
왜입니까? 자기들이 하고 싶은 행동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7절: 지도자 요하난과 군대장관들은 남은 모든 백성을 이집트 땅으로 끌고 갔습니다. “거느리다”(라카하, 6절)는 바벨론 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잡아서”(라카하, 39:5) 느부갓네살에게 끌고 간 것에 쓴 말입니다.
요하난은 백성과 함께 예레미야와 바룩도 포로를 잡아가듯이 이집트 땅 다바네스로 갔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자발적으로 갔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은밀한 뜻과 섭리를 따라서 하나님의 종을 함께 보내셨습니다. 그 지독하게 배반하는 백성 가운데서 신실한 종을 통해 계속 하나님 말씀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게 했습니다.
이 반역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성령님은 4절과 7절에서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남은 자들”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풍요롭고 군사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나라로 이사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게 행동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입니다.
2. 남은 자들이 이주한 다바네스에서 그 백성의 죄와 심판을 예언(8-13절)
8-9절: 이집트에서 하나님은 행동과 그 행동에 대한 해설을 통해 예언하게 하십니다. 다바네스에 있는 ‘바로의 집’ 어귀의 벽돌 밑에 돌을 감추라고 합니다.
다바네스는 이집트의 국경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러나 바로의 궁전은 이집트 남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바로가 사용하기에 적절한 거처 혹은 바로의 지방관리가 거주하는 집이었을 것입니다.
10-13절: 이제 해설하며 예언합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서 “만군”은 모든 군대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과 권세를 말합니다.
그 하나님이 바벨론 왕을 이 이집트로 “불러오실”(샬라흐: 보낸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냈던”(샬라흐)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이집트로 내려간 백성에게 그 이집트로 그들이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보내십니다.
바벨론 왕은 이집트 우상의 신당(신들의 집)에 “불을 놓을”(사랴프) 것이요, 벧세메스의 석상(세운 신상)을 깨뜨릴 것입니다. 바벨론 왕은 예루살렘의 왕의 집과 백성의 집을 “불살랐듯이”(샤라프- 39:8), 이집트 우상의 신당을 불사를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듯이(39:8), 이집트 우상을 깨뜨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죄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는 하나님의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통해 ‘남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44장은 하나님의 남은 백성이 하나님의 끈질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다시 유다로 돌아가지 않고 완고하게 이집트에 있으면서 더 적극적으로 이집트의 신들을 숭배하는 더욱더 슬픈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800여 년 전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구출하신 우상숭배의 땅, 그 노예 나라에, 하나님의 자유인, 그분의 자녀들이 제 발로 종처럼 걸어갔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칼빈 목사님이 잘 말했듯이 사람들의 마음에 죄악과 반역이 얼마나 깊이 뿌리 잡고 있는지 보여 줍니다.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구약 교회의 ‘복받은 남은 자’들의 죄악은 신약교회 성도들의 죄악 된 본성을 비춰 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용서 받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 전에는 사람의 마음은 모든 죄악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미 이 은혜를 받은 우리들은 괜찮다고 교만하지 맙시다. 구약 성도, 다른 교회, 다른 사람들과 우리를 비교하면서 교만해지지 맙시다. 작은 죄라도 어서 회개합시다.
구약 성도의 이야기를 들려준 히브리서는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3:12-13) 자신을 항상 스스로 권면합시다. 가족과 성도들을 서로 격려하고 권면합시다.
죄인을 사랑하며 친구가 되신 예수님(마 9:13)처럼 그 지독한 죄악으로 나가는 백성들에게 끝까지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를 본받읍시다. 목사는 인내와 사랑으로 말씀을 전하고, 모든 성도도 그 말씀에 순종할 뿐 아니라 서로를 권합시다.
배반하는 백성들에게 계속 진리의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와 바룩이 거짓말쟁이, 하나님의 백성을 구렁텅이에 빠뜨리며 우상 숭배하게 만드는 자와 같다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말씀 전하는 자로서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잃지 않고 담대히 복음 전하도록 기도합시다. 각자가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 때문에 거짓으로 비방을 당해도 참고 나갑시다. 칼빈 목사님의 위로의 말씀을 들읍시다.
“하나님의 종들이 가장 큰 정직함을 보이고 있을 때조차도, 극도의 비방들에 항상 노출되어 왔음을 우리는 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의롭게 행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 다음에 나쁜 소문을 들을 때, 그것들을 인내로 견뎌야 하는 것을 어렵거나 새로운 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실로, 악한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행합니다.
또 우리는 바울이 말했듯이 악한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고후 11:12 ‘기회를 찾는 자들의 기회를 끊어’를 말하는 듯합니다- 번역자).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직무를 신실하게 행한 다음에, 여전히 개들이 우리에게 짖는다면, 우리가 많은 비난들과 범죄혐의를 받는다면, 그것들을 인내로 견디는 법을 배웁시다. 우리는 바룩이 극도로 신뢰가 없고 잔인하다는 비난을 받았음을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행해야 합니다.”(칼빈 예레미야 43:3에 대한 주석, 영어판을 번역).
예레미야와 바룩이 당한 비방을 칼빈 목사님과 종교 개혁기의 목사들이 똑같이 당했기 때문에 ‘우리’라고 말합니다. 앞서간 복음의 종들과 사도들 그리고 그리스도 자신이 복음의 선포와 선한 삶 때문에 비방을 당했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0-25)
이 시대에 우리가 목사로서 성도로서 당하는 고난도 다른 사람들과 성도를 영혼의 목자 되신 그리스도께 이끄시는 일에 쓰이는 것이니 고난받는 일을 “아름답다”고 바로 알고 기뻐합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선을 행했는데, 아무 잘못이 없는데 부당하게 비난받은 적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어디에서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
※ 유튜브에서 “정영철 시편 32편”을 검색하여 들으며 연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