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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39) 사도초(佐渡抄) ①하
불석신명(不惜身命)
정의의 언론에 꿋꿋이 사는 투쟁
<본문> (어서911족 15행~912쪽 2행)
지난 문영팔년(文永八年) 태세신미(太歲辛未) 구월(九月) 십이일(十二日), 감죄(勘罪)를 당했는데, 그 때의 감죄(勘罪)의 양상(樣相)도 범상(凡常)치 아니하여 법(法)에도 없는 (중략)
니치렌(日蓮)은 이를 보고 생각하기를 평소에 항상 각오하던 바가 바로 이것이니라. 행복(幸福)한지고, 법화경(法華經)을 위(爲)하여 몸을 버리게 되다니 추(醜)한 목을 잘리게 된다면 모래를 금(金)과 바꾸고 돌로 옥(玉)을 사는 것과 같으니라.
<현대어역>
지난 문영 8년(1271년) 9월 12일에 감죄를 당했다. 그때의 감죄 양상도 법규정을 초월한 이상한 것이었다. (중략)
니치렌은 이를 보고 “평소에 생각하고 각오한 일이 이것이었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법화경을 위해 몸을 버릴 수 있어서. 이 더러워진 몸이 참수를 당한다면 모래를 황금과 교환하고, 돌로 옥을 사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지고”라며 불석(不惜)의 투쟁을
9월 12일 다쓰노구치법난, 그날 헤노사에몬노조 일당이 대성인을 체포하러 온 양상을 말씀하셨습니다. 단 한 사람 대성인을 체포하려고 무장병사 수백명을 동원했습니다. 일찍이 막부 전복을 획책한 모반자를 체포할 때 보다 더 삼엄했습니다.⑫
대성인이 “법을 초월한 이상(異常)함”이라고 표현하신 그 양상은 구태여 주위 사람들 눈에 띌 정도로 ‘보여주기 위한’ 효과를 노린 듯합니다. 어쨌든 압도적인 세력을 이용해서 불문곡직하고 억제하려는 마성적(魔性的)인 권력이었습니다.
대성인은 이 모습을 보고 거듭 ‘불석신명’의 기쁨을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거듭 생각하고 각오한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법화경을 위해 몸을 버릴 수 있어서! 모래를 황금으로 바꾸고 돌로 옥을 사는 것과 같지 않은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엄연한 모습이 바로 사자왕의 경애입니다. 그리고 이 성훈대로 투쟁하신 분이 창가(創價)의 아버지 마키구치 선생님이시고 나의 은사 도다 선생님이십니다.
이 두 분 선생님은 열린 언론의 광장인 ‘좌담회’를 각지에서 감행하고 ‘불석신명’의 실천을 관철했기 때문에 군부권력이 투옥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옥사하시고, 도다 선생님은 아주 쇠약하신 몸으로 출옥하셨습니다.
이 숭고한 사제(師弟)의 투쟁은 영원한 ‘학회정신의 보배’고 미래 영원히 비추는 ‘위대한 희망의 광원(光源)’입니다.
어느 날, 도다 선생님은 옥중투쟁으로 얻은 자신의 경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넓은 곳에서 큰대(大)자로 누워서 하늘을 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원하는 것이 바로 나온다. 남에게 주고 또 주어도 나온다. 끊이지 않는다. 자네들도 이런 경애가 되어라. 되고 싶으면 법화경을 위해, 광선유포를 위해 좁은 감옥에 들어가 보아라.”
그리고 “지금은 시대가 다르니까 감옥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지만, 광포를 위해 몸을 아끼지 말고 투쟁하라.”
차원은 다르지만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무엇이 가장 훌륭한 죽음의 자세인가. 그것은 인민을 억압하는 자와 싸워서 총탄에 죽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투쟁이 없으면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한다. ‘국궁진췌(鞠躬盡瘁, 공경하고 조심하며 몸과 마음을 다해 힘씀)하여, 죽은 후에도 끊이지 않는다.’ 즉 마음과 몸을 다해 인민을 위해 이바지하고 죽을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창가사제의 ‘불이(不二)의 길’은 벗을 위해, 동지를 위해, 민중을 위해 한평생 몸을 아끼지 않고 이바지하는 데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
⑫ “료코가 모반을 일으키고 대부인 율사가 세상을 소란케 하다가 체포당한 것보다도 더 심하였느니라. 헤이노사에몬노조는 대장으로서 수백명의 병사에게 갑의를 입히고 두건을 쓰고 눈을 부릅뜨며 고함을 질러댔다. 대체로 이 사건의 내막을 생각하건대 태정입도가 천하를 잡고서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한 것과 흡사하니 예삿일로는 보이지 않더라.”(어서 9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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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어서 912쪽 4행~7행)
니치렌(日蓮)이 대고성(大高聲)으로써 말하기를 참으로 가소(可笑)롭도다. 헤이노사에몬노조(平左衛門尉)가 발광(發狂)하는 꼴을 보라. 그대들은 지금 일본국(日本國)의 기둥을 쓰러뜨리고 있노라고 호통쳤더니 상하만인(上下萬人)이 당황해 보였느니라.
니치렌(日蓮)이야말로 감죄(勘罪)를 당하니 겁낼 터인데도 그렇지가 않고 사태(事態)가 뒤집혔으므로 이번의 일이 부당(不當)하다고 느꼈음인지 병사(兵士)들의 안색(顔色)이 변해 버리더라.
<현대어역>
니치렌은 대단히 큰 소리로 말했다. “참으로 가소롭다. 헤이노사에몬노죠가 발광하는 꼴을 보라. 여러분은 지금 일본국의 기둥을 쓰러뜨리려고 한다.”고 호통을 쳤더니 거기에 있던 상하만민이 모두 당황한 듯 보였다.
니치렌이 감죄를 받고 있어 겁을 먹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므로 ‘이런 체포는 잘못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병사들이 안색을 바꾼 모습이 자세히 보였다.
‘일본국의 기둥’ 다운 대확신
대성인의 위대한 경애를 앞에 두고, 권력의 마성이 광분한 본질과 그 한계를 명백히 드러낸 장면입니다.
헤이노사에몬노조의 부하인 쇼우보가 대성인의 주머니에 있던 법화경 제5권을 빼앗아 대성인의 얼굴을 세 차례 때리고, 병사들이 초암에 침입해서 법화경 경전을 흩뿌리고 짓밟으며 몸에 둘둘 마는 등, 이상하게 행동했습니다.⑬
이 모습을 본 대성인은 “참으로 가소롭도다. 헤이노사에몬노조가 발광하는 꼴을 보라. 그대들은 지금 일본국의 기둥을 쓰러뜨리고 있노라.”라고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그 소리에 병사들은 당황했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강의에서 “부처님이 태연자약하게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 소리가 울려 생명력이 약한 무리는 움츠렸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성인이 바로 ‘일본국의 기둥’이라는 확신에 찬 선언은 다른 어서에서도 배독할 수 있습니다.
<보은초(報恩抄)>에는 “지난 문영8년9월12일에 헤이노사에몬 및 수백인에게 향하여 이르되, 니치렌은 일본국의 기둥이니라. 니치렌을 죽인다면 일본국의 기둥을 쓰러뜨리는 것이 되느니라 등 운운.”(어서 312쪽)
또<사도초>에는 “니치렌에 의하여 일본국의 존망(存亡)은 결정되리라. 비유건대 집에 기둥이 없으면 지탱할 수 없고 사람에게 혼이 없으면 사인(死人)이니라. 니치렌은 일본사람들의 혼이로다.”(어서 919쪽)라고 씌어 있다.
창가학회는 대성인의 이 마음을 받들어 일본의 광선유포와 세계광선유포를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러므로 “학회와 창가의 청년이 ‘일본의 기둥’ 그리고 ‘세계의 기둥’이 되노라!”라는 큰 확신을 품고 전진합시다.
기둥이 굵고 강하면 건물은 반석 같습니다. 청년의 결의가 깊고 강하면 미래의 희망은 큽니다.
지금까지 여러 번 말했는데, 제가 젊을 때 도다 선생님께 “왜 불석신명의 신심이 소중한가요?”를 질문한 일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지구상에서는 전쟁으로 서로 죽인다. 경제는 약육강식이며 사람을 반드시 행복하게 만든다고 말할 수 없다. 정치, 과학, 교육, 종교도 인간이 지닌 업(業)이라고나 할까, 사회는 복잡하고 모두 모순투성이다. 만인의 행복을 위한 근본적인 길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가운데 대성인불법만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숙명전환 할 수 있는 길을 명시하셨다. 상락아정(常樂我淨)과 영원히 소원만족 할 수 있는 궤도를 가르쳐 주셨다. 이 이상으로 궁극적인 인생의 길은 없다. 그래서 신심만은 목숨을 걸어도 후회가 없다.”
“묘법을 위해 사는 인생이 얼마나 명랑한가.” 대성인은 권력의 마성과 싸우며 후회 없는 인생의 본질을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뒤를 잇는 것은 창가의 사제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청년 여러분입니다!
◇
⑬ “그런데 헤이노사에몬노조의 제일의 부하인 쇼우보라고 하는 자가 달려들어 니치렌이 회중(懷中)한 법화경의 제오의 권을 끄집어내어 얼굴을 세번 때리고 욕하며 산산이 찢어 던졌느니라. 또 구권의 법화경을 병사들이 찢어 던지고, 혹은 발로 짓밟고, 혹은 몸에 두르고, 혹은 마룻바닥 방바닥 등, 집안 이삼간(二三間)에 흐트러지지 않은 곳이 없었느니라.”(어서 9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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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어서 912쪽 10행~15행)
일장(一丈)의 도랑을 건너지 못하는 자(者)가 어찌 십장(十丈), 이십장(二十丈)의 도랑을 건널 수 있을소냐, (중략)
이백오십계(二百五十戒)의 사람들 백천인(百千人)이 모여서 칠일(七日) 이칠일(二七日) 재촉하여도 비는 내리지 않는데다가 대풍(大風)마저 불었단 말인가, 이것으로써 알지어다, 그대들의 왕생(往生)은 이루지 못하리라고 책망(責望)하였더니 료칸(良觀)이 울었던 일, 사람들에게 빌붙어서 참언(讒言)하던 일, 일일이 말하였던 바, 헤이노사에몬노조(平左衛門尉) 등(等)이 편을 들어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침묵(沈默)해버린 일들은 번거로워서 쓰지 않겠노라.
<현대어역>
<료칸(良觀)이 기우(祈雨)할 때, 대성인이 료칸에게 사자(使者)를 보내서 전달한> “일장의 도랑을 건너지 못하는 자가 어찌 십장, 이십장의 도랑을 건널 수 있겠는가.(중략)
이백오십계를 수지(受持)한 사람들이 백천인이 모여서 일주일, 이주일 동안 하늘을 책망하여 기원했는데, 어째서 비가 내리지 않을 뿐 아니라 게다가 대풍마저 분단 말인가. 이것으로 여러분은 왕생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책망하고, 료칸이 운 일 그리고 료칸이 (이 패배에 원한을 품고 고관의 부인들) 사람들에게 아첨해 참언한 일, 이런 사실을 하나하나 확실히 말하니, 헤이노사에몬노조 등이 료칸의 편을 들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문이 막혀 머리를 떨구고 만 일은 번거로워서 여기에는 쓰지 않는다.
박해자의 본질을 갈파한다
대성인이 헤이노사에몬노조와 병사들에게 제종(諸宗)의 잘못과 료칸의 실태, 특히 기우의 대참패를 말씀하신 장면입니다. 대성인이 자세히 말씀하시니 어떤 사람은 왁자그르르 웃고, 어떤 사람은 분노에 사로잡혔습니다.⑭
대성인의 ‘말의 힘’ ‘언론의 힘’은 삼엄한 수라장(修羅場)에서도 자유자재입니다. 병사들을 매료시킨 양상이 눈에 떠오릅니다.
“일장의 도랑을…”이라는 말씀은 료칸에게 “눈앞의 일도 하지 못하면서 성불왕생(成佛往生) 등을 이를 수 있겠는가.”라고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료칸은 사람들이 “고쿠라쿠사(極樂寺)의 생불(生佛)”(어서 1416쪽)이라고 숭배했으나, 대성인은 그 추한 본성을 간파하셨습니다. 계율(戒律)을 소중히 하는 듯 보이면서, 실은 권력과 결탁해서 사리사욕에 욕심을 부렸습니다.
대성인은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에 “포견(布絹), 재보(財寶)를 모으고 이전(利錢), 차청(借請)을 업(業)으로 하니”(어서 476쪽), “길을 만들고 다리를 만드는 것은 도리어 사람의 한탄이니라. 이지마 나루터에서 무쓰라(六浦)의 관미(關米)를 징수하니 제인(諸人)의 한탄이 많고 각지칠도의 관소(關所)도 여행자의 괴로움은 오직 이 때문이며”(어서 476쪽)라고, 승려의 행동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실태를 밝히셨습니다.⑮
그리고 병사들 앞에서 료칸의 기우에 대한 실태를 폭로하셨습니다. 헤어노사에몬노조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권력을 발동한 포박의 장(場)이 일변해 대성인의 정의를 증명하는 언론의 장으로 바뀌어, 대성인이 압도한 전말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인간혁명의 진수’를
도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정의로운 언론전의 정신을 여러 번 가르쳐주셨습니다.
“대성인처럼 싸워야 한다.” “대성인 말씀대로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 그리고 “우리는 광선유포를 완수하고 자부심을 품고 영취산회(靈鷲山會)에 참석해 ‘창가학회원이 광선유포 하고 왔습니다.’라며 니치렌대성인을 배알하도록 신심합시다.” 라고 역설하셨습니다.
1957년, 도다 선생님의 서원성취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 치열한 ‘권력의 마성’과 싸움이 펼쳐졌습니다.
그런 와중인 1957년 7월 3일, 오사카경찰에 출두하려고 삿포로에서 오사카로 향하는 도중에 하네다에서 도다 선생님은 막 출판한 자신의 소설<인간혁명>을 주셨습니다. 열어보니 ‘인간혁명의 진수’라는 제호의 후기에 이렇게 써 주셨습니다.
“지금부터 참다운 인간혁명이다. 삼류강적(三類强敵)과 끝까지 싸워 삼장사마(三障四魔)를 타파해서 참다운 공덕인 인간혁명의 진수를 파악하기를 희망 한다.”
드디어 ‘인간혁명의 진수’를!
드디어 진짜 광선유포의 투쟁을!
나는 그날 도다 선생님께 물려받은 불타는 결의를, 이제 젊은 후계 여러분께 전력을 다해 물려드리고자 합니다.
◇
⑭ “십일 십이일 사이에 진언종(眞言宗)의 죄과(罪過), 선종(禪宗)·염불(念佛) 등, 료간의 기우가 허사가 된 일. 소상하게 헤이노사에몬노조에게 타일렀더니 혹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려 비웃고, 혹은 노(怒)하는 등 이러한 일들은 번거로우므로 쓰지 않겠노라.”(어서 912쪽)
⑮ 이지마의 나루터는 가마쿠라 자이모쿠자 해안 동남부에 위치한 항구다. 무쓰라는 미우라반도의 동쪽해안에 있는 가나자와항구로서 가마쿠라의 외항(外港). 모두 진언율종(眞言律宗)이 관할하고 있었으며 통행료 징수권을 부여했다. 또 도카이도 등 일본 각지를 연결하는 7개 주요도로에 관문을 설치하고 통행료를 징수하는 이권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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