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판 88만원 세대의 대담한 반란!
젊은 감독의 문제의식이 겨냥한 유럽의 현실에서 대한민국의 뜨거운 쟁점들을 만나다!
<퓨어>는 감독 리자 랑세트가 공언한 대로 “한 소녀의 사회문화적 계급상승을 주제로 한 영화”이다. 영화는 스웨덴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영화 속 현실은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공 카타리나(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에서 모차르트 음악을 접한 뒤 예술과 문학의 세계에 매료되어,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로 결심한 인물. 콘서트홀의 마에스트로 아담이 추천해주는 군나르 에켈뢰프의 시, 키에르케고르의 서적 등을 접하며 문화적, 예술적 감수성을 키운 그녀는 자신과 같이 문화소외지역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소개해주는 정규직 자리를 소망하지만, 용기와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단단한 벽에 부딪힌다.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천 유로 세대’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사회적 약자가 되어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리는 한편, 체제에 순응하여 어떻게든 경쟁에서 승리하라고 권고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을 함의하고 있다. 절박한 수습사원에게 자신의 기득권을 휘두르는 지휘자 아담의 모습과 용기 있게 도전하지만 비정규직 안내원 자리마저 박탈당하는 카타리나의 모습은 현재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 문제,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최근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을’에 대한 ‘갑’의 횡포 등을 떠올리게 하면서 생생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의 감동적인 클래식 선율과 쇼펜하우어, 부르디외, 키에르케고르, 에켈뢰프 등 수많은 사상가와 문학가의 글귀가 인용되는 풍성한 문화 코드 속에서 젊은 감독의 문제의식이 예리하게 드러난다. 신예 감독 리자 랑세트는 예술과 문학의 아름다운 세계에 매료된 소녀가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들을 갖기 위해 현실과 싸워나가는 과정을 강렬한 영상과 음악으로 담아내면서, 부르디외가 언급했듯이 계급만이 아니라 문화 취향까지 세습되는 세상에 반기를 들고 있다. 프랑스 ‘파리 마치’지가 “이 영화는 사회적, 문화적 장벽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혹한 보고서이다.”라고 설명한 것도 바로 그러한 맥락이다.
제2의 나탈리 포트만!
헐리우드 캐스팅 1순위의 무서운 신예, 알리시아 비칸데르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활동하며 이제 막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신예 감독이 자신의 장편 데뷔작에 알리시아 비칸데르를 캐스팅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프로메테우스>,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 등에 출연하며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스웨덴 여배우 누미 라파스를 자신의 초기 연극작품에 캐스팅했을 만큼,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데 남다른 감각을 지닌 리자 랑세트는 TV시리즈와 단편영화 몇 편에 출연한 것이 경력의 전부였던 ‘초짜 여배우’를 자신의 히로인으로 낙점했다. 그녀는 훗날 인터뷰에서 “비칸데르를 본 순간, 그녀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고 밝혔다.
랑세트의 모험은 성공적이었다. 알코올중독자 어머니와 도시 외곽에서 지난한 일상을 살아가다가 모차르트 레퀴엠을 우연히 듣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는, 성격과 감정의 변화가 변화무쌍한 캐릭터 카타리나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특유의 꿈꾸는 듯한 눈망울과 초조와 불안으로 흔들리는 눈빛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강렬한 포스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영화 관계자들은 풍부한 표정과 압도적인 존재감의 이 여배우에게서 <레옹>을 통해 혜성처럼 나타나, 스타성과 연기력을 동시에 인정 받은 헐리우드 명배우 나탈리 포트만의 신인 시절을 떠올렸다. 한편 예술을 향한 동경과 치명적 광기라는 소재 면에서는 <퓨어>를 <블랙 스완>과 필적할 만한 작품으로 손꼽으며, “아름다움의 순간이 어두운 비극으로 끝맺는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작품을 연상시킨다”(www.TheCoolist.com)고 덧붙였다. 2011년 베를린영화제는 “말괄량이에서 요부로, 부랑아에서 비서로 비칸데르가 영화데뷔작에서 보여준 변화무쌍한 모습은 관객을 완전히 최면에 빠지게 한다”고 평가하며, 이 ‘슈팅스타’(떠오르는 젊은 스타)의 출현을 환영했다.
‘운명적인 만남’ 이후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전세계 감독들이 가장 즐겨 찾는 배우가 되었다. <로얄 어페어>에서 캐롤라인 왕비 역할을 맡아 덴마크어를 배우고, 조 라이트 감독의 <안나 카레니나>에서 완벽한 영국식 악센트를 구사한 바 있는 이 명석한 여배우는 2013년 첫 헐리우드 진출작 <일곱 번째 아들>과 위키리크스 사건을 다룬 영화 <제5부>를 선보일 예정이고, 이완 맥그리거 및 탐 크루즈와의 연기가 계획되어있으며, 현재는 리자 랑세트와의 두 번째 작품 <호텔>을 촬영 중이다.
더욱 대담하고 과감해진 21세기의 ‘로제타’,
힐링 트렌드와 멘토링을 비판하는 젊은 세대의 통쾌한 역습
영화 <퓨어>는 다르덴 형제의 대표작이자 1999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로제타>의 21세기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알코올중독자 어머니와 함께 근근이 살아가는 소녀가 주인공이라는 점, 거친 세상을 하루하루 버티기 위해 공격적이고 반항적인 태도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의 현실 등이 겹쳐지는 것은 물론, <퓨어>에서 카타리나를 물리적인 힘을 동원하여 강압적으로 해고시키는 장면은 수습 기간이 끝난 뒤 로제타가 공장에서 해고당하게 되는 장면을 또렷하게 연상시킨다.
또한 콘서트홀의 마에스트로가 카타리나에게 조언하고 충고하는 장면은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던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의 멘토링과 그에 대한 비판을 떠올리게 한다. 콘서트홀 비정규직 안내원으로 간신히 입사한 카타리나에게 유능한 마에스트로 아담은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를 인용하며 “용기만이 살 길이다!” 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그랬듯이 진정한 용기와 노력으로 인생의 수많은 장벽을 헤쳐나가라는 것이다. 학벌도 스펙도 집안도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스무 살 소녀는 이 말을 주문처럼 반복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리고, 아담과의 위험한 관계가 끝나자 곧 손에 잡힐 것만 같았던 밝은 미래는 허망하게 사라지고, 카타리나는 일자리에서 해고된다.
최근 서점가와 대학가를 휩쓸고 있는 자기계발서와 힐링 트렌드는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의 아픔을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사회구조적 문제는 도외시하고 청년문제를 개인의 마음가짐이나 노력의 문제로 환원시켰다는 부정적 평가도 존재한다. 감독 리자 랑세트는 “허위의 순수를 모독하고 찬란한 가식을 유린하다”라는 스웨덴 시인 군나르 에켈뢰프의 문구를 인용하며 ‘용기 있게 도전하면 이루어질 거야’라는 식의 헛된 희망과 위로를 건네는 현재의 사회상을 정면으로 도발하는 듯 보인다.
예술과 문학의 아름다운 세계를 갈망한 소녀,
계급만이 아니라 문화 취향까지 세습되는 세상에 반기를 들다!
문화적 취향마저 신분과 계층으로 구분되는 세상에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나서는 소녀의 인생분투기를 그린 영화 <퓨어>는 영화 속에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현대 사회의 문화적 계급화 현상에 대해서 직시한다. 부르디외는 저서 『구별짓기』를 통해, 자본이 주도하는 산업사회에서 문화적 취향이 계급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설명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취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분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 의해 구분된다. 과거에 혈통이 신분을 결정했다면, 지금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취미생활을 즐기느냐가 신분을 결정한다. 개인의 문화적 취향과 소비성향은 사회적 위치와 교육환경에 따라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름한 도시 외곽에서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카타리나는 “한창일 때 즐겨라. 남자들은 금방 식어.” 라는 천박한 조언을 건네는 알코올중독자 어머니와 “요새도 모차르트 듣는 사람 있나” 라며 TV 프로그램과 비디오 게임에만 몰두하는 남자친구가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우연히 모차르트를 듣고 시내의 콘서트홀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다양한 클래식 음악과 문학을 접하며 벅찬 감동을 느끼면서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힙합 음악과 패스트푸드를 즐기며 살아온 그녀의 세계와,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공간에서 와인을 즐기는 반대편의 세계 사이에 가로놓인 보이지 않는 벽을 실감하게 된다.
우아한 클래식과 진지한 철학을 향유하는 계급과 MTV, 아메리칸 아이돌, 리얼리티 쇼를 즐기는 계급이 양분되어 있는 듯한 세상에서 사회적 신분과 계층에 따라 세습되는 것은 자본만이 아니라 문화 취향까지 포함된다. 자본주의 미디어 산업 하에서 리얼리티 쇼, 오디션 서바이벌 등에 길들여지는 세대의 현실과 고급 문화를 향유한 세대들의 가식과 위선을 대비시키면서 <퓨어>는 세상의 전복을 꿈꾸는 듯하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스무 살 소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소녀의 영혼을 뒤흔들었던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의 감동적인 클래식 선율!
우연히 듣게 된 모차르트의 음악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게 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퓨어>는 음악이 스토리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 장면에서 인상적인 음악을 선사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카타리나의 클로즈업과 함께 등장하는 곡은 쥘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곡>이다. 원래는 오페라 <타이스>의 간주곡이었던 이 오케스트라 곡은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서 바이올린 독주곡으로 편곡되어 더욱 유명해진 곡이다. 마치 어둠 속에 머물던 카타리나에게 비추는 한 줄기 빛처럼 흐르는 아름다운 음률은 그 뛰어난 서정성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클래식 공연을 처음 보러 간 카타리나가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는 장면에서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장중하게 흐르면서 관객을 압도하며, 콘서트 홀 복도에서 카타리나가 듣게 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중 ‘아리아’는 현악 3중주로 편곡되어 카타리나의 눈물을 글썽이게 만들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답게 연주된다.
그 밖에도 영화 <아마데우스>의 도입부에 삽입되었던 모차르트의 <교향곡 25번 G단조, K.183> 1악장과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2악장 등 귀에 익은 유명한 클래식 곡들이 예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퓨어>의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지휘자 아담이 완벽을 추구하며 연습했던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의 2악장은 카타리나가 점점 더 클래식 음악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곡으로 영화 속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면서 우아한 멜로디와 웅장하고 역동적인 전개로 감정을 고조시킨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비롯하여 영화 속의 클래식 연주는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맡았으며, 합창에는 ‘프로 뮤지카 챔버’ 합창단이 참여하였다.
카타리나의 심경을 대변하는 의미심장한 가사가 인상적인
스웨덴 락그룹 T.S.O.O.L의 ‘세컨드 라이프 리플레이’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켈리 클락슨의 팝 음악, 스눕 독의 힙합을 듣는 사람들과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듣는 사람들의 세계가 양분되어 있는 듯, 신분과 계층에 따라 문화예술적 취향이 극명하게 갈린 세상에서 반대편으로 건너가려고 애쓰던 카타리나가 좌절을 겪었을 때 흐르는 음악은 The Soundtrack of our Lives (이하 T.S.O.O.L)의 <세컨드 라이프 리플레이 Second Life Replay>이다. 카타리나의 절망과 혼란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듯한 의미심장한 가사가 담긴 이 곡은 “오늘 나를 죽였네. 두 번째 삶을 위해 나는 나를 죽였네.”로 시작하는 시적인 가사와 몽환적인 사운드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엔드 크레딧에 한 번 더 등장하는 이 곡은 데이비드 듀코브니 (<X 파일>) 주연의 미드 <캘리포니케이션>에도 삽입된 바 있다.
T.S.O.O.L 은 1995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결성된 락 밴드로 롤링 스톤즈와 이기 팝 등 60, 70년대의 락과 펑크의 영향을 받은 음악 스타일을 독창적으로 펼쳐내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으며 2003년에는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얼터너티브 앨범 후보에 올랐고, 영국 밴드 <오아시스>와 미국 투어 공연을 함께 하기도 하였다. 쓸쓸함이 묻어나는 서정적인 기타 선율로 시작하여 하드록의 강렬한 사운드로 고조되는 T.S.O.O.L 의 <세컨드 라이프 리플레이>는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사로 견디기 힘든 삶의 절망감과 동시에 절박함이 깃든 희망을 노래한다. 마치 <퓨어>를 위해서 쓰여지기라도 한 듯 카타리나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는 이 곡의 의미심장한 노랫말은 관객들의 마음 속에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클래식을 처음 접한 소녀의 감동을 그대로 전하는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에서 애절한 가사의 록 음악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퓨어> 사운드트랙은 관객들로 하여금 카타리나의 감정에 깊이 몰입하게 하면서, 황홀하고 매혹적인 음악 여행을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