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를 포함하여 불교는 대체적으로 너무 깨달음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또 깨달음만 이루면 만사가 저절로 해결되는 줄 안다.
사회적 책임은 망각하고 내 고뇌 해결과 나의 해탈 등 내 개인의 문제에만 몰두한다. 일부 불교 수행법은 그 자체가 사회적 책임보다 내 개인적 성취만이 목적인 듯 보이기까지 한다. 그 결과 오늘날 불교는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깨달음이라는 신기루를 쫓아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깨달음은 넘치는데, 넘치는 깨달음은 못 보고 없는(?) 깨달음만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화엄경은 ‘깨달음은 없다(覺者無所覺 是佛真妙法)’고 말하고, 유마경에서 천녀는 “깨달은 게 있는 사람은 증상만이 있는 이(若有得有證者卽於佛法 爲增上慢人)”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화엄경은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이미 깨달음이 ‘이루어진 세계의 이야기’다. 화엄세계는 깨달음이 넘친다. 깨달음이 돌멩이처럼 흔하다.
십행·십회향 등은 우리가 알고 있듯 깨달음의 단계[位階]가 아니라 사실은 이미 깨달음을 이룬 중생들이 사는 구체적 모습이다. 화엄세계는 이미 아상, 중생상 같은 것은 없다. 무량불의 무념행, 무주행만 있을 뿐이다.
화엄경에는 깨달음이 이미 이루어진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수없이 많이 설해진다.
화엄경 전반에 걸쳐 닦지 않으면서 닦고(無修而修) 짓지 않으면서 짓는(無作而作) 세계를 설명하며, ‘중생을 보아도 중생이라는 생각이 없고, 분별을 하면서도 분별한다는 생각이 없다’는 식의 말들이 많은 곳에서 수없이 나오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깨달음 너머 세계의 이야기이다. 화엄법계는 이미 깨달음이 넘치고 있다. 그 넘치는 깨달음을 꺼내 쓰는 것이 보현행원이다.
첫댓글 불교가 점점 일반인들에게 멀어지는 이유 두 가지 - 다른 여러 이유는 일단 차치하고!
1. 내 문제에만 집중(타인에게는 별 관심이 없음)
2. 현실적이지를 못함
그 외에도 난해한 용어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강성용교수나 자현스님 같은 분의 출현으로 개선되고 있는 듯.
화엄 불교는 보현행에서 보듯, 타인에의 관심이 무지~~~ 많음
또, 굉장히 현실적임.
현실 중시가 화엄 불교의 특징 중 하나
서양 위빠사나의 대가 잭 콘필드는 “내가 인도와 아시아 지역에서 만난 수많은 위대한 스승 가운데 어느 누구라도 미국에 데려다 놓고 집과 두 대의 자동차와 배우자와 세 명의 자녀들과 직업을 갖게 하고 보험금과 세금을 지불하면서 살게 한다면… 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허우적거릴 것이다.”라는 75세 된 어느 수피 교단 서구 지도자의 말을 인용하여 수행의 효과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https://youtube.com/shorts/SG1yJ-DzO9A?si=0P054WsW0e5qB3ma
위의 진우스님 숏츠를 올려주신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