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게 보이는 농산물 한 가지로도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 브랜드 고구마 '날씬이'로 대박을 터뜨린 전북 익산이 그런 곳이다. 익산 지역에 넓게 산재한 황보밭을 농민들이 지혜를 모아 가장 적절하게 활용한 좋은 예다. 익산은 '날씬이 고구마'의 품질을 높여 '명품'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공동 재배, 공동 분배를 원칙으로 하는 계약재배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
지난 5월 농수산 홈쇼핑TV에는 조금 별난 상품이 등장했다. 어느 동네에서나 인근 시장에 나가면 언제든 살 수 있는 고구마였다. 그러나 홈쇼핑TV에 등장한 고구마는 드물게 ‘날씬이’라는 브랜드까지 달고 있었다.
TV를 보던 많은 소비자는 과연 고구마가 홈쇼핑의 상품이 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약 20분에 걸친 방송시간 동안 준비했던 700상자가 모두 팔려나간 것이다. 말 그대로 매진이었다. 홈쇼핑 방송 관계자들조차 깜짝 놀랄 정도였다.
전북 익산의 명물 ‘날씬이 고구마’가 날개 돋친 듯 팔리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전통 농작물인 고구마가 익산에서 이처럼 유망한 작물로 새롭게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익산에서는 현재 전체 농가 2,000여 가구 중 고구마 재배 면적이 1만 평 이상인 대 농가를 중심으로 고구마를 생산하고 있다.
익산에서도 ‘날씬이 고구마’ 주산지로 이름 높은 삼기농협 조병하 상무는 “삼기농협 관할에서 올해만 70여 농가가 총 190만여 평에 고구마를 재배해 1일평균 10톤, 연간 총 생산량 9,000여 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상무는 “익산의 농가 대부분이 고구마 작목회를 조직해 더 좋은 고구마를 생산하게 될 것”이라며 “2006년까지 공동 재배와 공동 분배를 원칙으로 하는 계약재배를 통해 안정적인 사업으로 유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구마 브랜드 시대를 연 익산은 날씬이 고구마의 홍보와 판매를 위해 생산 농민은 물론 시장까지 적극적으로 나섰다. 채규정 익산시장은 지난 7월2일 2차 홈쇼핑 판매장에 직접 출연해 날씬이 고구마 소개와 함께 품질 보증에 나서기도 했다.
채 시장은 “익산을 대표해 시장이 직접 특산품을 소개함으로써 소비자에게 믿음을 주는 계기가 됐다”며 “익산 고구마의 맛과 품질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좋은 기회였다. 앞으로도 날씬이 고구마의 명품화와 유통 판로를 개척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생산량 10톤, 연간 9,000여 톤 수확
익산은 내친김에 시 차원에서 날씬이 고구마의 명품화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익산시는 이미 1998년 공동 브랜드 심의를 제출했고, 2000년 상표출원등록, 2004년에는 상표등록까지 마쳤다. 이후 익산시 관내 6개(삼기·이리·황등·금마·함열·낭산) 농협 조합원 공동으로 작목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날씬이 고구마 연합사업도 시작했다.
삼기농협 조병하 상무는 “개별적으로 고구마를 재배, 수확·판매하던 농가들을 설득해 익산 고구마를 생산에서 판매까지 공동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그 시스템 중 대표적인 성과가 2004년 12월 280여 평의 부지에 6억4,000여 만 원을 투자해 고구마 공동 선별장을 건립한 것이다.
공동 선별장 건설 이후 첫 고구마가 생산된 지난 3월, 공동 선별장이 문을 열자 익산 농민들이 하나 둘씩 몰려들어 날씬이 고구마 연합사업에 동참하고 나섰다. 이 공동 선별장은 주로 익산 삼기지역 농민들이 고구마를 시장에 출하하기에 앞서 크기·색상·형태별로 선별하고 포장해 저장하는 곳이다.
공동 선별장이 문을 열던 날은 삼기면 외에 인근 5개 면 지역 농민이 함께 고구마 생산 강화를 다짐하며 ‘익산고구마연합사업단’을 출범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날 농민들은 “고구마 생산 농가들의 부푼 꿈을 이루기 위해 날씬이 고구마의 품질 향상에 더욱 연구하고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쌀 생산으로는 타산이 맞지 않는 개답지(1960년대 개간한 논)에까지 고구마 재배를 확대함으로써 쌀의 적정 생산량에 기여해 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 이전에 익산에서는 소비 촉진을 위해 고구마를 활용한 가공식품 개발에도 나섰다. 2003년에는 고구마를 이용한 피자를 개발해 소비자들로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를 시발로 관련 기업들이 케이크·빵·과자·아이스크림·우유 등으로 고구마를 활용한 제품을 잇달아 상품화했다. 또한 고구마가 맛이 좋은 것은 물론 건강식이자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부각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도 살아났다.
이에 발맞춰 익산의 고구마 재배 농가들은 앞다퉈 생산과 판매 혁신을 모색했다. 식품 가공용 고구마 생산뿐 아니라 가정에서 식용으로 구매하려는 개인소비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인 것이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날씬이’라는 상표의 브랜드 고구마다. 정세환 삼기농협 조합장은 “흔히 날씬이 고구마 하면 쭉쭉 뻗은 날씬한 고구마를 연상한다”며 “그러나 날씬이는 웰빙 시대를 맞아 고구마를 많이 먹어도 날씬함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에서 만든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익산시는 고구마의 브랜드화 이후 철저한 품질관리를 통해 1㎏당 1,300원 하던 고구마 가격을 1,500원으로 올려 받을 수 있었다. 이후 본격적인 날씬이 고구마 사업에 나서 익산시 농가 소득은 전체적으로 약 10% 가량 늘어났다.
첫 홈쇼핑 판매, 품질보증으로 고객 신뢰 얻어
익산지역은 미륵산 인근을 중심으로 광활한 황토밭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예부터 이 황토밭을 이용한 마(麻)의 주생산지로 유명했으며, 여기서 백제 30대 왕인 무왕 서동(薯童)의 전설도 유래했다. 이런 토질에 알맞은 기후까지 더해져 익산은 고구마 재배의 최적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특히 황토밭에서 자란 고구마는 다른 지역 고구마보다 맛이 뛰어나다. 조 상무의 말이다.
“전국에 유통되는 고구마 종순(種筍) 중 70%가 익산이 원산지입니다. 한마디로 전국에서 재배하는 고구마 종자는 대부분 같다는 말이죠. 그런데 맛과 품질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바로 땅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익산 땅은 황토가 대부분이죠. 이는 물을 유난히 싫어하는 고구마 재배 특성과 딱 맞아떨어집니다. 여기에 마사토(일종의 모래흙)가 섞여 있어 물 빠짐을 더 좋게 해줍니다. 이렇다 보니 익산 고구마가 다른 지역의 고구마보다 맛과 품질에서 앞설 수 있는 겁니다.”
가을 고구마는 보통 9~10월에 수확한다. 그리고 약 8개월 동안 저온저장을 해 이듬해 6~7월에 주로 판매한다. 하지만 날씬이 고구마는 일반 고구마와 달리 판매 시기가 조금 빠르다. 저장법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날씬이 고구마는 9~10월 두 달간 수확해 저온저장이 아닌 상온저장을 통해 앞서 말한 대로 한 달 빠른 5월에 판매를 시작한다. 이로 인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다른 지역 고구마가 판매되지 않는 기간에 홈쇼핑 판매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조 상무의 설명은 길었다.
“대부분의 농가가 15도를 유지하는 저온저장을 합니다. 하지만 저온저장한 고구마는 여름의 무더운 온도에 적응하기 힘듭니다. 쉽게 말하면 기온차를 느낀 고구마가 사람처럼 감기에 걸리는 거죠. 고구마의 품질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익산에서는 생산한 고구마를 20~25도를 유지하는 상온에서 저장합니다. 겨울이나 봄에는 다시 온도 조절을 통해 고구마의 품질을 철저히 관리합니다. 그래서 익산 날씬이 고구마는 5월에 판매해도 문제가 없죠. 그 이점을 최대한 살려 그때 홈쇼핑 판매를 시작했고, 한 달간의 품질보증을 통해 소비자에게 신뢰를 준 까닭에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은 것입니다.”
익산의 고구마 재배 농가들은 품질 유지를 위해 터널 재배, 부직포 재배 등 독특한 방식을 동원해 재배부터 출하까지 고구마의 성질에 맞는 온도 등 최적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날씬이 고구마는 ‘맛으로 승부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생산농민·익산시·농협 등이 삼위일체되어 생산에서 소비자의 손에 들어갈 때까지 품질 관리에 온갖 신경을 쏟고 있다.
익산시는 나아가 고구마로 특화된 지역 농업클러스터 구축에 나섰다. 익산시청 기획예산과 이석구 과장은 “이를 위해서는 지역 농민, 농업기술센터, 농협,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며 “로하스(건강과 환경이 결합한 소비자들의 생활 패턴)와 간편함을 지향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고구마 세척 설비와 저장고를 더욱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날씬이 고구마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우리 고유의 종자 확보와 개량된 품종의 안정적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현재 전국 소요량의 70% 이상 종순을 공급하는 만큼 경쟁력 제고에 힘쓰고 있다”고 이 과장은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지속할지 섣불리 예상할 수는 없다고 익산의 고구마 생산 농민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 과장은 “지금처럼 모든 농가와 관계자들이 합심해 좋은 상품을 내놓는다면 어디에서도 따라오지 못할 맛과 품질의 고구마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자료 : 코리아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