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1948년에 태어나 1970년 11월 13일 '기준법을 지켜라' 외치고 분신하셨다.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참담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하여 노동법을 공부하고 노동실태를 조사해 노동부 등에 진정했으나 당시 박정희 정권의 반노동자 정책은 기만과 탄압으로 일관했다.
그는 자신의 차비로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점심을 굶는 것을 위해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집까지 2시간 넘게 걸어다니는 등 오로지 노동자와 함께 하려 했다.
그의 분신 또한 노동자들의 참담한 현실과 이를 개선할 어떠한 방법이 없자 마지막으로 선택한 길이 었다.
다음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한 듯한 시기에 쓴 일기이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바치마...
내 마음의 결단을 내린 이 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 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 전태일, 1970년 8월 9일의 일기 -
<노무현>
1946년에 태어나 2009년 5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2년 12월 대통령으로 당선돼 5년 동안 재임했다.
80년대말, 90년대에 국회의 깜짝 스타이기도 했다.
한때 노동자들을 위해 변호사로서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 재임시절 친 자본 정책으로 일관했다.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굳건히 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정책보고서에 기초해 경제정책을 펼쳤다.
이라크 파병을 강행해 '김선일'씨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도 겪었다.
12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구속시켜 역대 대통령중 가장 구속을 많이 시킨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비정규직법을 강행통과시켰으며, 한미FTA를 강력추진했다.(한미FTA 교섭을 담당했던 김현종은 지금 삼성으로 영전해서 가있다.)
참여정부의 이름도 삼성에서 붙여준 이름이나 다름없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닥아준다했지만 비정규직의 피눈물을 쏟게 했다.
2003년에는 배달호, 이용석, 김주익 등 수많은 노동자들이 분신 등 자결로 저항하게 했고, 2005년에는 경찰에 의해 하중근 건설노동자가 죽임을 당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리고 현 이명박 정권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고 있는 '공공부문 선진화'를 위한 발판도 노무현 정권이 마련해 놨다.
지금 이명박 정권이 공공부분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노동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만든, 그래서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만든 모든 법, 제도와 정부지침을 만든 장본인도 노무현 정권이다.
노동자, 민중을 위해 목숨까지 아까워 하지 않았던 전태일 열사. 노동자, 민중을 도탄을 빠뜨리고 양극화를 부추긴 노무현. 과연 이들이 함께 할 수 있고 만날 수 있을까?
아마도 전태일 열사가 살아 있었다면 노무현 정권을 상대로 투쟁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통합진보당 인사들은 전태일과 노무현이 꿈꾸던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다.
전태일과 노무현이 꿈꾸던 세상이 무엇이건데...
과연 같은 꿈을 꾸기나 했을까?
나는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기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진정 진보를 자처하고 통합을 원한다며 솔직했으면 한다.
그리고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극복하겠다고 노력하겠다고 솔직했으면 한다.
그 어떤 것으로도 특정 인물에 대해 미화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사기를 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정말 짜증난다.
전태일 열사를 더 이상 팔아먹지 않았으면 한다.
자본가들이 마치 환경을 팔아먹고, 희망과 꿈을 팔아먹듯이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과 너무도 닮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