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2013년) 블루베리를 키운 후, 첫 소출이 조금 나왔다.
그런데 새들이 달겨들어 많이 앗아갔다.
까치와 참새 따위가 주로 날아드는데,
까치는 소리를 외치면 그래도 염치를 알아 도망가는 흉내라도 낸다.
하지만 참새는 오불관언 못 들은 척한다.
달려가 코앞에 이르러서야 못 이기는 척 날아간다.
내가 뒤돌아서면 조금 있다 다시 나타나 제 일이라는 듯,
블루베리 열매를 축내는데 열중한다.
그렇다면 내 매운 손속 맛을 네가 맞이하여야 하겠구나.
이리하여 여름 내 관련 자료를 구하고,
둔한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보았다.
그래 몇 가지 생각들을 추려내었다.
새들도 동물인지라,
의당 오감(五感) 육근(六根)을 가졌다.
새 쫓는 방법이라고 뭐 특이한 것은 없다.
내 천하를 돌아다니며 새 쫓는 방법들을 구해보았으나,
눈을 속이고, 귀를 나무라는 정도가 대종을 이룬다.
허수아비를 세워 저 녀석들의 눈을 속이고,
꽹과리를 두들겨 귀를 아프게 하며,
폭죽을 터뜨려 겁박하는 것이,
양(洋)의 동서를 꿰고,
고금(古今)을 둘러,
변치 않는 수법이더라.
혹간 마음이 모진 이들은,
죽이는 약을 놓고, 총을 동원하여 살상(殺傷)을 마다하지 않는다.
내 비록 비린 고기를 먹지 않는 중도 아니며,
마음이 바르고 어여쁜 인간은 못된다한들,
차마 저 짓은 하지 못하겠다.
난 밭흙에서 나온 벌레도 죽이지 않고 밭가로 옮겨 놓는,
지극히 소심하고 조촐한 위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재물이 많은 이들이 하듯,
온 밭을 그물로 씌우는 짓도 못하겠다.
도대체가 온 하늘을 무엇인가로 덮을 정도로,
나는 마음이 강퍅(剛愎)스럽지 못하고,
매사 겁약(怯弱)한 졸장부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게 설치하는데 평당 10,000~12,000원 정도가 든다 하는데,
농민이 이 짓하려면 차라리 공장을 세우고 말지,
나는 이런 구차한 짓거리에 영 흥이 일지 않는다.
천라지망(天羅之網)이라.
성긴 것 같지만 하늘에 쳐진 그물엔 하루살이일지라도 다 걸리고 마는 것.
天網恢恢 疎而不失(천망회회 소이불실)라 하지 않던가?
하늘은 보이지 않는 그물로,
천도를 밝히었는데,
사람들은 보이는 그물로 하늘을 가리려 들다니,
참으로 잔망(孱妄)스러움이 뉘와 겨룰 짝이 없구나.
그러함인데 새는 쫓아야겠고,
아무리 다리품을 팔아도 마땅한 방책은 쉬이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 한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중국인들이 레이저포인터로 새를 쫓는다고 한다.
포를 쏘고(放砲), 총소리를 내고(放銃),
이젠 이도 마음에 차지 않으니까 빛을 쏘아대겠단(放光) 소리다.
반짝이는 색색이 필름(防鳥彩帶) 따위는 이젠 애들 놀이감에 불과하다.
새들도 영악하여 저 따위 것엔 이내 익숙해지고 만다.
빛을 집속한 것이 레이저다.
강한 빛을 새들 눈에 맞추면 놀라 도망간다는 것이렷다.
이에 대하여는 필요시 차후 후속 글에서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이 정도에서 빗겨간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내가 그동안 연구한 바로는
이들 육근에 기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중국민항국 자료를 들여다보니까,
그 가짓수가 손으로 모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聽覺, 視覺, 捕殺, 化學, 生態, 佔位, 雷達
청각, 시각, 포살 ....
이리 가짓수가 많다는 것은,
거꾸로 생각해보면 마땅한 묘책이 없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저것들을 거의 낱낱이 훑어보았지만,
일득일실(一得一失),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을 뿐,
툭 불거져 튀어난 방책을 찾아낼 수 없다.
자, 이제 어찌할 것인가?
과연 더 이상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가?
그렇다면, 내 둔함을 무릅쓰고,
빼어난 것을 새로 만들어낼 수는 없겠음인가?
난, 허수아비, 바람개비, 채색띠 따위는 아예 시도도 하지 않았다.
물론 바람개비는 내가 최근에 고안한 방법이 따로 있어,
차후 시도를 해볼 생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기존의 방법들은 한 눈에 보아도 도시 미덥지 않아,
공연한 수고를 굳이 지불할 이유가 없었다.
2011년도엔 두더지가 밭에 등장하였다.
이도 조사를 해보니까 천 가지 만 가지 방법들이 떠돌더라,
그중 거기 바람개비를 이용한 기법이 있었지만,
그 때도 나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겨우내 연구하여 다음해 봄에 두더지 퇴치기를 밭에 설치를 하였다.
그 이래 밭에 두더지는 열 중 아홉은 없어졌다.
직접 내게 찾아와 기술을 배워간 이가 몇 몇이 된다.
이 방법은 차후 내가 소개할 새 쫓는 기구로 동시 퇴치가 가능하다.
원리는 얼추 가까운 양 싶지만,
채비 장비는 사뭇 다르다.
농사라는 것이 작물을 키우는 것도 녹록치 않은 일이지만,
가외로 닥치는 문제들도 그리 만만치 않다.
특히 나 같은 초보 농부는 전부 처음 겪는 일이라,
일변(一邊) 놀라고, 일변 즐기면서,
공부를 해나가고 있다.
도대체가 예전엔 새 소리를 즐겼을 줄 만 알았지,
저들이 농작물을 해할 줄 어찌 알았겠는가?
내가 겨우내 골방에 틀어박혀 조류 퇴치기를 만들었지만,
문득 문득 떠오르는 생각의 파편들이 나를 편치 않게 한다.
도대체가 농사라는 것이 무엇이관대,
타자의 생명을 괴롭히고 죽이는 일에 열중하여야 한단 말인가?
봄에 밭을 갈아엎으며, 그 안에 사는 무수한 벌레를 죽이고,
여름엔 죽음의 제초제를 뿌리며 풀을 아작을 내며,
농약을 뿌려 뭇 생령들을 결딴을 낸다.
가을엔 힘들여 맺은 열매들을 한 톨까지 빼앗아,
제 집 창고에 갖다 쌓는다.
발뺌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고로 나는 초생재배라 저 짓을 하지 않는다.
농약도 비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블루베리는 더욱 이런 나를 응원하고 있다.
블루베리를 키우게 된 인연이 복되고 고맙다.
이러고들 살고 있는데,
거기 보태 이젠 새까지 쫓으려고,
내 이리 열중하고 있고뇨.
이 자괴감이 스믈스믈 올라오는데,
더욱 기가 찬 것은,
이 가운데서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음이니,
도대체가 나는 어이 생겨먹은 위인인가 말이다.
괴물!
그래,
내 마음에 조그마한 촛불을 밝히며,
원(願)을 하나 세웠다.
내가 이번에 개발한 조류 퇴치기가 혹여 효과가 좋다 하여도,
무작정 퍼뜨리지는 않으리라.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준 흥부처럼,
마음이 고운 분들이거나,
내게 호떡 몇 개라도 사주신 분들이 아니고는
수월케 내놓지는 않으리라.
참회의 기금을 만들어,
새들이나 가여운 동물들을 위해 사용하리라.
이런 꿈을 꿔본다.
내가 조류 퇴치를 한다고 이리저리 고민한 흔적들,
거쳐 온 과정들을 글로라도 남겨 보고를 하려 함은,
그간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보다 바람직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생각날 때마다 시리즈로 엮어,
그간의 경과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다만 아직 공부가 설익고 준비가 충분치 못한 바,
미처 가지런히 다듬지 못하고,
어수선한 모습으로 찾아뵙게 될 것이다.
이는 또한 부족한 이의 모습이라 여기시고,
과히 흉보지 마시길 부탁드린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보탠다.
우리 시골 동네에만 새가 많은가?
조류 피해에 대한 하소연을 블루베리 카페에선 별반 접한 기억이 없다.
이 까닭이 궁금하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