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UB이 3.0으로 진화했다.
전자책과 웹페이지의 경계가 없어질 때가 온다. 전자책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이펍(EPUB)이 제대로 구현되면 이 상상은 현실이 된다.
EPUB(electronic publication)은 국제디지털출판포럼(IDPF)이 제정한 전자책 기술 표준이다. 전세계 전자책 서점 대부분이 이 형식을 채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리디북스, 네이버북스, 올레e북 등 주요 전자책 서점이 EPUB으로 제작된 전자책을 판다.
초기 EPUB은 e잉크 디바이스용
EPUB 3이 나오기 전, 전자책은 흑백 e잉크 전자책 단말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cc) Kullman at Wikimedia.org)
국제디지털출판포럼은 2007년 EPUB 규격을 발표했다. EPUB은 CSS와 HTML, 자바스크립트로 책을 표현하는 기술 표준이다. 본문, 이미지, 제목을 책처럼 보이도록 포장하는 기술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EPUB의 가장 큰 특징은 텍스트 크기를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기능이다. 전자책 단말기든, 스마트폰이든, 태블릿PC든 각 기기의 화면크기에 맞춰 가장 알맞은 크기로 글자를 보여준다. 또 이미지, 삽화 등을 넣을 수 있고 저작권 보호를 위한 복제방지기능(DRM)을 적용할 수도 있다. EPUB에는 서지정보와 목차를 표현할 공간도 들어 있다. 종이책을 그대로 디지털로 옮기는 데 충실한 것이다.
최근까지도 EPUB 전자책은 소설이나 시, 에세이와 같은 책이 많았다. EPUB으로 이미지를 넣고 글자색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었지만, 이런 특징은 널리 쓰이지 못했다. 아마존 ‘킨들’을 비롯한 전자책 서비스가 흑백 화면인 e잉크 전자책 단말기를 중심으로 했기 때문이다. 흑백 화면에서 굳이 그림이나 사진, 색을 넣을 필요는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문제집이나 잡지, 전문서적, 교과서와 같이 편집•디자인이 화려한 책은 EPUB으로 제작되는 사례가 드물었다. PDF나 HWP, DOC 등 문서파일로도 시중에 나온 종이책과 다름없는 문서를 만들 수 있지만, EPUB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네이버캐스트 [EPUB] 참조)
EPUB 3, 웹에서 표현 가능하면 전자책으로도 만들 수 있어
EPUB은 2011년 3.0버전이 발표되면서 큰 전환기를 맞았다. EPUB3은 이전의 EPUB 규격이 e잉크 전자책 단말기를 염두에 둔 것과 달리,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보급되는 상황에서 발표됐다. 종이책을 디지털로 옮기는 수준인 EPUB과는 분명 시작부터 달랐다.
EPUB3의 핵심은 웹문서로 표현하는 걸 전자책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방문하는 웹사이트 중 화려하게 꾸민 페이지가 EPUB3 기술을 이용하면 전자책이 될 수 있다. 메뉴 단추를 누르면 숨겨진 단추가 뜨는 것도 EPUB3 전자책에서 구현할 수 있다. 배경 이미지 위에 글자를 얹은 디자인도 가능하다. 텍스트 파일(TXT)과 크게 다르지 않던 이전과는 크게 다른 변화다.
EPUB3의 주요 특징(자료출처: ‘IDPF 초청 전자출판물 표준화 워크숍’ 자료집-전자출판표준화포럼 국제분과 작성)
EPUB3의 등장으로 흑백 단말기로 보던 전자책이 색, 소리, 영상을 얻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 편집•디자인이 조금 복잡하면 PDF 형식으로 전자책을 만들곤 했는데, 앞으로는 EPUB 전자책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화면을 누르면 그림이 움직이고 소리가 나오는 동화책 앱(앱북)도 EPUB 전자책으로 만드는 데 문제가 없다.
잘 만들어진 EPUB3 전자책은 '와이어드'나 ‘씨네21’의 아이패드 잡지 못지 않을 것이다. 빌 맥코이 IDPF 사무총장은 EPUB3을 공식 발표하기 전 2011년 7월4일 한국에서 열린 ‘IDPF 초청 전자출판물 표준화 워크숍’에서 "EPUB3 킬러 콘텐츠는 잡지, 다양한 레이아웃과 멀티미디어를 내장한 신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씨네21’ 아이패드 앱 모습. 위와 같은 기능을 담은 EPUB 잡지도 제작 가능하다.
잡지나 신문, 동화책은 이미 별도 앱으로 제작돼 애플 앱스토어나 뉴스스탠드, 구글플레이와 같은 앱장터에서 유•무료로 팔린다. EPUB3이 다양한 기능을 갖춰도 모바일 앱만큼 독자에게 만족을 줄까. 앞서 말했듯이 EPUB3은 웹에서 구현 가능한 것이면 전자책으로도 표현하게 한다. 모바일 앱도 마찬가지다.
EPUB과 모바일 앱은 이제 기능의 비교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럼, 같은 책을 EPUB 전자책과 모바일앱 중 어떤 형태로 만들어 파는 게 좋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빌 맥코이 IDPF 사무총장에게 들어보자.
“퍼블리셔는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어 여러 플랫폼과 기기에 확산하고 싶어합니다. EPUB3은 상호교환성을 갖춘 표준입니다. 담당자가 바뀌고 소프트웨어가 바뀌어도 큰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공개된 표준을 따르는 게 유리합니다.
앱은 안드로이드폰, 아이폰, 윈도우폰 등 운영체제, 단말기에 따라 최적화해 만들어야 한다. EPUB 전자책은 어디에서나 열리는 웹페이지처럼 한 번 만들면 다양한 단말기와 운영체제에서 전용 뷰어로 열어서 보면 된다는 얘기다. 내로라하는 게임과 경쟁해야 하는 앱 장터보다 독자가 어느 정도 확보된 서점에서 다른 책과 경쟁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관건은 뷰어와 콘텐츠
EPUB3이 2011년 발표되고 2년째를 맞았다. 2013년 5월 기준으로 전자책 서점에서 앱북 못지 않게 잘 만들어진 EPUB 전자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EPUB3을 뒷받침할 서점의 전자책 뷰어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탓이다. 서점 뷰어마다 EPUB 특징을 구현하는 정도도 다르다. 상황이 이러하니 출판사도 EPUB 3의 주요 특징을 담은 전자책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EPUB3은 HTML5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이전의EPUB보다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지만, 결국 EPUB 뷰어를 만드는 건 HTML5 웹브라우저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됐다. EPUB3의 특징이자 장점이 EPUB3이 퍼지는 데 기술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EPUB 전자책으로 구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면서 이를 뒷받침할 뷰어도 더 많은 기능을 갖춰야 한다. HTML5를 기반으로 하는데 아직 HTML5로 만들어진 웹사이트조차 드물다. HTML5 저작도구도 널리 쓰이는 상황이 아니다.
EPUB3이 장점을 많이 갖고 있긴 하지만 보급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배경이다. 한동안 2.0과 3.0 중간에 있는 콘텐츠가 유통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IDPF가 발표한 EPUB 3 규정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가 번역한 EPUB 3 규정IDPF가 EPUB 3 뷰어로 제안한 샘플 뷰어 ‘리디움’ (크롬 웹브라우저에서 작동한다.)EPUB 3의 특징을 구현한 샘플 파일 보기
발행2013.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