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광우 바이오그라피 8)
[에피소드17]
미국에 있는 동안 둘째누나에게서 들은 재미교포들에 대한 얘기들을 모아 보았다. 올해 60세인 J아주머니는 한국의 명문 E대학을 졸업하고 홍콩에 직장을 얻어갔다. 거기서 거주하던 미국인과 결혼했고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런데 아들이 고교 졸업반 때 남편이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요양원에 입원했다. 아들은 공부를 잘해서 동부의 명문 예일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의 월스트리트에 있는 금융회사에 취직했다. 그런데 아들은 어느 날 조깅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요절하고 말았다. J아주머니는 요양원에 있는 남편을 돌보며 일찍부터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그동안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 사무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은퇴했는데, 스트레스로 인해 신경안정제를 매일 복용하고 있다.
절망 밖에 없는 그녀의 현재 유일한 소망은 그녀의 남편과 그녀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슬픔 많은 세상을 떠날 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본향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편이 죽을 때까지 남편을 돌보면서 편안하게 그의 눈을 감겨 주기를 소원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있는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에서 온 유학 온 젊은 목사부부에게 특별히 많은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주었다 한다.
누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올해 43세인 K여사는 한국에서 명문 K대를 졸업하고 한국에 체류하던 미국인과 결혼하여 시카고로 이주해 왔다. 그녀는 성격이 과격한 편이고 우울증이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이러한 성격의 K를 점차 싫어하게 되었다. 남편은 마침 다니던 회사의 중국 지사에 근무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성격이 온순한 현지 여성과 교제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K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편지를 발송했다. K는 이 편지를 읽고 격분했다. 그녀는 남편을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게 되었다. 그녀는 총을 구입하여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은 이혼수속을 밟기 위하여 그녀를 만나러 왔다. 그녀는 남편과 심한 말다툼 끝에 준비한 권총으로 남편을 쏘아 죽였다.
그녀는 지금 교도소에 있으며 정신감정을 신청하여 교도소에서 정신병원으로 이송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1차 법적심리에서 사격연습을 한 사실이 발견되는 등 살인의 고의성이 있다고 판정되었고, 현재 재심을 신청하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딸 둘은 그녀의 미국인 시동생이 시카고에서 돌보고 있다. 첫째 딸은 대학에 재학 중이고, 둘째는 고교생이다. 비극적인 가정이었다.
또 한 가정은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남편이 한국에 있는 연구소 소장으로 가게 되어 부부와 딸이 한국에서 살고 있는 K부인의 가정이다. 남편은 나의 매형과 S대 공대와 버클리대 동문이었다. K부인의 큰아들은 미국 센프란시스코에서 정신과의사로 있고, 둘째는 샌디에고에 있는 법무법인에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의 명문 E여대를 나온 부인은 누나와 2년 아래로서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다. 수년전에 L부인은 한국에 와서 영어학원을 하며 힘들게 벌은 돈과 남편의 월급을 모은 돈 10억여 원을 전부 남편에게 집을 사라는 용도로 건네주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 돈을 잠시 친한 친구에게 빌려 주었는데, 불행히도 회수불능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부인은 가슴을 쳤고 부부가 말할 수 없는 충격을 겪었다. 한동안 절망하기도 했지만 K부인과 남편은 크리스천답게 고난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받아들이며,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며 신앙으로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여동생이 다니는 한인교회의 60중반의 여 집사님은 30년 세월을 오직 남편과 세탁소에서 함께 일했다. 그동안 자녀들도 잘 키우고 이제 제법 살만해 졌는데 불행히도 중증 암에 걸렸다. 젊은 시절 몸을 아끼지 않고 너무 고생하다보니 어느새 몸이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죽음을 기다리면서 병실에 문병 온 목사님을 오히려 위로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목사님에게 히브리서 13장 12~14절,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왜냐하면 여기에 우리는 영구한 도성을 가질 수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을 펼쳤다. 그리고 주님이 자기를 위해서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언덕에서 처형당하신 것을 얘기하며 감사의 눈물을 한없이 흘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극한적인 고통을 당한 그리스도에 비하면 자신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녀는 고통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깊이 일치하고 연대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2천 년 전 예수의 처형과 자신의 처지를 깊은 신앙으로 연결시키며 죽음의 초극(超克)과 장차 올 미래의 소망을 담아내었다. 그녀는 얼마 후 기쁨과 평화로운 마음으로 조용히 임종을 맞이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임종이었다. 이제 그녀의 소망은 천국에서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이루어졌을 줄 믿는다.
[에피소드18]
시카고에 있는 동안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C라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여러 번 걸려왔다. 토론토로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그는 캐나다 동부관광을 시켜 주겠다고 하였다. 여러 번 전화가 오고 정을 주기에, 거리도 가깝고 해서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토론토는 시카고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토론토 공항에서 그는 나를 픽업하여 집으로 데려 갔다. 집에 가니 부인은 한국에 가고 없었다. C는 나를 데리고 미국 최 동북부 도시 버팔로우와 인접한 국경지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 주면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해가는 코스로 차를 진행했다.
그런데 갑자기 전방에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앞에 가던 차 여러 대가 심한 폭설로 미끄러져 나뒹구는 장면이 보였다. 내 생전에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광경은 보지 못했다. C와 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조심조심 차를 몰아 국경지대에서 코스를 바꾸어 아래로 내려와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눈이 많이 내린 지역은 스노우 벨트(Snow belt)지대라 불리며 항상 폭설이 내리는 위험한 곳이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경관이 좋은 캐나다 쪽에서 구경했다. 폭포에 인접한 동굴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장관을 보았고 굉음을 들었다.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 한인식당에서 우리는 갈비구이와 맥주를 먹으며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C는 나를 위해서 캐나다 동부 패키지 여행을 준비했다. 몬트리올, 오타와, 퀘벡을 돌아보는 코스였다.
첫 번째 방문지인 몬트리올에는 한인식당이 딱 한군데만 있었다. 몬트리올에는 또 오래되고 굉장히 규모가 큰 성요셉 대성당이 있었다. 거기에는 캐나다에서 전설적인 인물인 앙드레 신부의 흉상과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다.
두 번째 여행지인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의 정부청사 광장에는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꽃이 타고 있었다. 오타와에 있는 한 가톨릭 성당은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결혼식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해졌다.
세 번째 여행지인 퀘벡은 프랑스인들이 90%이상 사는 곳이었다. 시내 중심가에는 약 3백년된 프랑스식의 고색창연한 호텔이 서 있고, 그 왼쪽광장 옆으로 유명한 로렌스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변을 따라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둡고 쓸쓸하게 보였다. 저녁 무렵 겨울의 로렌스 강은 내 눈에는 다소 창백하게 보였고, 슬픔의 강물처럼 느껴졌다. 세상의 외로움이란 외로움은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예부터 이한치한(以熱治熱), 이한치한(以寒治寒)이라고 했던가! 오히려 창백하고 스산한 겨울의 로렌스 강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것을 느꼈다. 짙은 고독을 통해서, 오히려 나의 내면의 고독이 씻겨 나가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나올 것 만 같은데도,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예전에 황량한 겨울 해운대 백사장을 혼자서 쓸쓸하게 걷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갑자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이 여행을 준비하신 것을 느꼈다. 돌이켜보니 내가 아내의 주식투자 실패로 인해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각했을 때, 주님은 K선배를 통해 위기를 막아주셨고, 또 개척교회 목회를 포기한 나의 한없이 허전하고 적막한 마음을 위로하시기 위해 이 여행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언젠가 본 여행가이드북에 바로 이곳 겨울 로렌스 강이 세계 50대 겨울 여행지에 선정되어 있었다. 60대로 보이는 다정한 프랑스인 부부가 팔짱을 끼고 지나가기에 불란서어로 인사를 하고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불란서인 중년신사는 나의 불란서 인사에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해가 넘어가면서 강 건너편 대안으로 따사로운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지는데, 그 광경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치 그 모습은 험악한 세상에 비춰지는 주님의 따뜻한 사랑의 빛처럼 느껴졌다. 호텔 바로 옆에 오래된 불란서 풍의 카페에 들어갔다. 실내는 전구대신 백 개가 넘는 양초가 타고 있는 시적인 풍경이었다. 벽에는 온갖 종류의 와인과 위스키 병이 놓여있었다. 도수 높은 위스키 한잔을 마셨더니 속이 찌르르 했다. 문득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라는 서러운 시가 생각났다.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한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돌아오는 길에 불란서식 뷔페 식당에, 들렀다. 크랩(Crab)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서 실컷 먹었다. 크랩을 너무 많이 먹다보니 불란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크랩이 귀한 음식인데 캐나다에서는 어획량이 풍부해 싸고 흔한 것 같았다. 저녁도 불란서식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웰던(Well-Done)의 개념이 미국과 달랐다. 불란서식 웰던은 검게 타서 나왔다.
여행을 잘 마치고 C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C는 토론토 시내 구경을 시켜 주었다. 부유한 개인이 살던 왕궁과 같은 집도 구경했고, 차이나타운 및 시내 명소를 관람했다. 이민 온 은행 노조위원장출신이 영업하는 생선가게에 가서 굉장히 큰 캐나다산 광어 한 마리를 샀다. 그날이 마침 12월 31일이었다. C의 부인이 한국으로부터 돌아와서, C부부와 같이 제야의 밤을 토론토에서 조용하게 보냈다. 광어회를 안주로, 험하게 보냈던 한해를 마감하는 술잔을 기울였다. 이번 여행이야말로 세상 풍파에 좌절하여 의기소침해 있는 부족한 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제공해 주신 귀한 위로여행이었다.
(강광우 자서전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