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그랬어
권 순 경
‘아이구, 눈 부셔.’
햇살에 눈이 부시다. 하필이면 이렇게 쨍쨍한 햇살아래 산책을 나왔을까. 집에서 볼 때는 이만큼 강렬하지 않았는데 불덩이 같은 해를 보며 원망을 쏟아낸다.
베란다 화분에 깍지벌레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자리하고 앉았다. 연약한 카랑코에에 달라붙어 진을 빼내고 있다. 작은 잎사귀가 새로 달릴 때나 꽃봉오리 하나가 벙글 때를 놓치지 않고 언제 왔는지 하얗게 붙어 있다. 자라지도 못한 채 시들어가는 꽃잎을 보며 애가 쓰여 마침내 칼을 들었다.
식물 살충제를 쓰면 벌레를 없앨 수 있겠지만 집 안에서 살충제를 뿌린다는 것이 조금 찝찝했다. 한두 번 친다고 단번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썩 내키지 않는다. 아침마다 돋보기를 쓰고 이쑤시개로 잎 사이를 샅샅이 뒤져 잡아내기로 했다. 그것도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돋보기를 쓰도 눈이 침침한데 깍지벌레는 움직이지도 않고 솜처럼 먼지처럼 살며시 붙어 있어서 찾아내기도 어렵다.
반쯤 굽힌 허리는 10분도 안 돼 꺾어질 듯한 통증이 오고 고정된 자세로 버티고 있자니 무릎이 후들거린다. 일보 후퇴하여 하루에 5분만 전쟁을 치르고 다음 날까지 휴전하기로 했다.
아침마다 칼을 들이대는데도 깍지벌레의 심술은 여전하다. 살피지 못한 잎에 어느새 숨어 있거나 옆에 있는 꽃기린의 가시에도 거침없이 올라타 있다. 5분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비웃기라도 하듯 호야 화분에도 침범하여 반질반질한 호야 잎 뒷면에 감쪽같이 매달려 있다.
‘이제 그만하지. 이만큼 했으면 되지 않았냐.’
패전의 전운이 슬슬 감돈다. 하지만 칼을 들었으니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미물에 항복할 수는 없다. 더구나 저 놈은 화초들에게 제멋대로 옮겨 다니며 심통을 부리고 있으니 마땅히 응징을 해야 할 터이다. 한 달이 다 되어가도 깍지벌레는 퇴진을 하지 않고 나는 지쳐간다. 깍지벌레가 옮겨 다니는 화분마다 뒤쫓아 가며 허겁지겁 칼을 휘두르지만 비웃듯 더욱 악랄하게 세를 불려간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늘 존재한다. 가끔씩 누가 가해자인지 헛갈릴 때가 있지만 미묘한 차이를 느끼게 하며 위치를 정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가해자의 자리에서 으스대지는 않았는지, 피해자라 착각하며 심통을 열어놓지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남편이 버럭 화를 낼 때마다 속으로 비웃으며 보이지 않게 조롱한 것도, 엄마라는 권위로 아이들의 꿈을 조종한 것도 가해가 아니겠는가.
사람들과 소소한 충돌이 있을 때 억지로 내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온갖 합리화를 하며 밀고 나간다. 승전도 패전도 없는 일상의 전쟁터에서 하잘 것 없는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일순간 치열해진다. 별 것도 아닌 것에, 조금만 양보하면, 남의 입장을 아주 조금만 헤아리면 되는 것을 왜 그랬을까. 한동안 찜찜하게 자기반성을 하다가 ‘세상살이가 다 그래’ 통 크게 스스로를 용서하고 곧 잊어버린다. 자의든 타의든 때때로 가해를 하면서, 혹은 피해자가 되기도 하면서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눈도 뜨지 못하게 부시던 햇살이 어느새 식어가고 옷깃으로 파고드는 찬바람이 한기를 느끼게 한다. 집에 갈 때까지는 햇살이 있어주면 좋겠다며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구름에 가리고 시간에 쫓기며 넘어가고 있다. 햇살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내게 또 가해를 하는가.
나는 하염없이 투덜거리며 겨우 돋아나는 별꽃의 새싹을 보지 못했다. 무심결에 힘차게 뭉개며 종종걸음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