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1월의 독립운동가 및 6·25전쟁 영웅 선정 -
작성일: 2019-12-26 13:50:35
‘조국 독립과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기억합니다.’
□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2020년 ‘1월의 독립운동가’ 정용기 선생을 선정·발표하였으며,
□ 또한,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살신성인 정신을 실천한 2020년 ‘1월의 6·25전쟁영웅’ 박평길 육군 병장을 선정·발표하였다.
○ 2020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및 6·25전쟁영웅은 관련기관 및 개인 등의 추천을 받아 내외전문가로 구성된「선정위원회」에서 공적을 심층 논의하여 선정하였으며, 선정된 인물의 희생과 공훈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매월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홍보할 계획이다.
붙임
1. 2020년 ‘1월의 독립운동가’ 정용기 선생 공적서
2. 2020년 ‘1월의 6·25전쟁영웅’ 박평길 육군 병장 공적서. 끝.
붙임 1 1월의 독립운동가 정용기 선생 공적 내용
○ 정용기(1862.12.13~1907.9.2) 선생은 경북 영천 출신이다.
○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의 침략 책동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자 고종은 시종관(侍從官) 정환직을 불러 의병을 일으킬 밀지(密旨)를 내렸고, 부친 정환직은 고종의 밀지를 받들어 그날 관직에서 물러났다.
○ 부친 정환직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 1906년 1월경 ‘영천창의소’를 설치하고, 권세가(勸世歌)를 지어 일본인들이 들어와 문명과 종사가 무너지는 것이 을사 5적들 때문임을 지탄하고, 충성심 있는 의사들이 의병을 일으켜 역적들과 왜적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대한독립만세의 기치를 들고 모두 함께 의병으로 나설 것 등을 호소하였다.
○ 1906년 영남지역에서 1,000여 명의 의병이 모였으며 선생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진호를 ‘산남의진(山南義陣)’으로 정하고 부대를 편성하였다. 선생은 신돌석 의진과 연합작전을 펴기 위해 진군하던 중 경주 진위대 간계로 대구감옥에 수감되어 4개월간 고초를 겪고 석방되었다. 그 사이 선생의 구속으로 구심점을 잃은 병사들은 상당수는 떠나버렸고, 남은 군사들도 사기가 크게 떨어져 해산하기에 이르렀다.
○ 4개월 동안의 고초와 시달림으로 몸을 안정시키고 있던 때에 대구에서 대구 광문사 사장 김광제, 부사장 서상돈 등이 국채보상운동을 일으켰다. 이 운동은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경북지역에서도 고령ㆍ성주ㆍ김천ㆍ상주 등 여러 지역에서 여러 관련 단체들이 조직되어 동참하였다. 영천지역에서는 ‘영천군 국채보상단연회’가 조직되었으며 선생은 회장으로 취임하여 영천지역 국채보상운동을 이끌었다.
○ 선생은 1907년 4월 의진을 다시 결성하여, 청하·영천·청송 등지로 진군하면서 일본군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여 적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후 관동으로의 북상 준비 및 각 지대와의 연락을 위해 각지로 의병들을 파견한 뒤, 본진 병력 150여 명을 이끌고 청하군 죽장으로 이동하여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1907년 9월 주요 의병들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 선생이 전사한 후 부친 정환직이 의진 총수를 맡았으나 일본군 영천수비대에게 잡혀 대구로 압송 중 영천에서 순국하였다.
○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붙임 2 1월의 6․25전쟁영웅 박평길 육군병장 공적 내용
○ 박평길 육군병장은 1925년 제주읍 이도리에서 태어났다.
○ 6‧25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참전을 결심하고, 부인과 자녀를 남겨두고 9월 1일 육군에 입대하였다.
○ 1950년 10월, 보병 제11사단 13연대 3대대 9중대 2소대에 편성되어 전북지역의 북한군 패잔병 주력부대를 분쇄하였으며, 1951년 4월에는 동부전선으로 이동하여 제9중대 2소대 분대장이 되었다.
○ 1951년 6월,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 564고지전투에서 적의 토치카(사격진지)에 쓰러지는 아군병사가 속출하자,
○ 박 병장은 적탄을 뚫고 총을 쏘며 돌격하여 대퇴부에 총탄을 맞아 부상을 당했으나 좌절하지 않고, 적의 토치카(사격진지) 근처까지 달려가 수류탄을 던져 적군 10여명을 폭사시키고,
○ 적군과 백병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적탄에 맞아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 한편, 정부는 박평길 병장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1951년 9월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박평길 육군 병장
(1925.7.28.∼1951.6.18.)
상훈 : 화랑무공훈장(’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