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2,1-11; 1코린 12,3ㄷ-7.12-13; 요한 20,19-23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성령강림 대축일을 맞아 우리 노은동 본당 모든 교우들과 가정에 성령님의 축복과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이 은혜로운 날, 안타까운 소식으로 강론 말씀을 시작하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무척 존경하던 2년 선배 김성현 스테파노 신부님께서 어제 낮에 몽골에서 심장마비로 선종하셨습니다. 신부님은 1998년에 사제 서품을 받으셨는데, 로마에서 선교학을 공부하고 오셔서 신학교에서 선교학 강의를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당신이 배우신 것을 몸소 실천하시고자 2000년에 몽골 선교를 자원해서 떠나셨고, 그후 23년간 몽골에서 선교사로 사셨습니다. 신부님의 유지를 받들어 몽골에서 묻히신다고 합니다. 한국에 오신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묻히셨듯, 몽골 땅에 묻히는 것이 선교사로서의 삶을 완성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교구에서는 6월 2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에 대흥동성당에서 추모 미사를 봉헌한 뒤에, 신부님의 머리카락과 유품으로 교구 성직자 묘지에서 하관 예절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신부님은 2000년에 몽골로 가신 후 2007년에 수도 울란바토르에 항올 성마리아 성당을 설립했습니다. 많은 교우께서 모금으로 함께 해 주셨고 우리 성당에서 몇 년 전에 중고등부 주일학교가 몽골에 가서 이 성당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성당 건립 이후 본당을 관리하는 것은 선교사의 삶에 맞지 않다고 판단하셔서 200km 떨어진 초원지역으로 이주해서 유목민들의 천막에서 생활하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셨습니다.
한국에 들어오셔서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따시고 나서 ‘이제 교사 비자를 얻을 수 있다’며 환하게 기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신부님은 몽골인에게 선교하는 한국 신부가 아니라 몽골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고, 이는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본받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신학과 4학년 학생일 때, 수단을 입는 착의식을 앞두고 당시에 대학원 2학년이던 형님 방에 인사를 드리러 갔었습니다. 그때 제게 ‘미쉘 콰스트’ 신부님의 책을 인용하며 얘기해 주셨습니다. 콰스트 신부님은 교회를 건물에 비유하시며 ‘누구나 아름답고 근사한 기둥의 외벽이 되기를 바라지만, 정작 교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기둥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김성현 신부님은 저더러 ‘함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회를 떠받치는 사제가 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그래서 신부님은 23년간 몽골에 계시고 저는 14년간 신학교에 있었나 봅니다.
신부님은 한국에 나올 때마다 한국 교회가 변하고 있다며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요, 복음대로 살지 않고 맘몬 즉 자본을 섬기는 마음이 결합되어 있는 것을 자주 본다며 무척 안타까워하셨고, 특히 사제들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면서 매우 아파하셨습니다. 형님의 선종 소식을 들으며 그 생각부터 나는 것을 보면, 형님께서 몽골 사람들에게만 선교를 하신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에 그리고 한국 사제들에게 선교를 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복음대로 사는 삶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사제다운 삶인지를 몸소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오늘 1독서와 2독서에서 우리는 성령의 오심과 활동하심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두 독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성령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모두’입니다. ‘모두’와 ‘모든’, 이 말이 1독서에 네 차례, 2독서에 다섯 차례 등장합니다. 성령께서는 몇몇 특별한 사람들 안에서만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모든 사람 안으로부터, 세상 모두를 위해 활동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위로를 받고 싶어합니다. 성령의 은혜로 내 마음이 평화로워지기를 바랍니다. 분명 성령께서는 위로와 평화를 주십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내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참다운 위로와 평화는 다른 이에게 위로를 전하고 평화를 전할 때 함께 나누어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태석 신부님처럼 남수단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지는 못하더라도, 김성현 신부님처럼 몽골에 가서 삶을 바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의 현장에서 내 가족과 이웃에게 성령의 위로와 평화를 전하고, 내 이웃에게 말이 아니라 행동과 삶으로 복음을 전하기를 다짐하는 성령강림대축일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소서 성령님. 주님의 빛 그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주님 도움 없으시면 저희 삶의 그 모든 것 해로운 것 뿐이리라.…
굳은 마음 풀어주고 차디찬 맘 데우시고 빗나간 길 바루소서.”(부속가 중에서)
첫댓글 김성현 스테파노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김성현 스테파노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과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