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경 본문: 사무엘하 11:1–27 (참조: 창세기 3:6, 여호수아 7:21, 야고보서 1:14–15, 고린도전서 10:12)
핵심 명제: 성도의 가장 치명적인 영적 파선은 광야의 핍박이나 결핍의 때가 아니라 모든 승리를 쟁취한 번영의 안일(저녁 늦게 침상에서 일어남) 속에서 잉태되며, 마땅히 있어야 할 사명의 자리를 이탈한 자는 에덴동산의 타락 공식인 ‘보고(라아) 탐내어(하마드) 취하는(라카흐)’ 육신의 정욕에 함몰되어 끝내 간음과 살인 교사라는 극단적 자기 파멸의 늪으로 추락한다.
1. 서론: 승리의 정점에서 벌어진 침실의 파선
사무엘하 8장에서 10장까지의 다윗은 천하무적이었습니다.
동서남북 모든 대적을 정복했고,
하나님께서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으며(삼하 8:14),
원수의 손자 므비보셋을 왕의 식탁에 앉히는 헤세드의 절정을 보여주었습니다(10강).
그는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과 백성을 향한 공의를 한 손에 쥔, 흠잡을 데 없는 신정 국가의 이상적인 성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 영웅을 신격화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11장에 이르러, 구약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수치스러운 다윗의 영적 추락을 아무런 여과 없이 정면으로 폭로합니다: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리-테슈바트 하-샤나 레-에트 체트 하-멜라킴)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웨-다위드 요셰브 비-루샬람)" (삼하 11:1)
계절은 겨울 우기가 지나고 전쟁을 치르기에 가장 적합한 '봄철(테슈바트 하-샤나)'이었습니다.
왕들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최전선으로 출전해야 마땅한 사명의 계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부하 요압과 백성들만을 사지로 내몰고,
자신은 안락한 예루살렘 왕궁의 침상에 누워 뒹굴고 있었습니다: "웨-다위드 요셰브 비-루샬람(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더라)!"
영적 긴장이 풀린 다윗은 해 질 녘 어스름한 저녁때가 되어서야 부스스 침상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한 여인의 나체를 목격합니다:
"그 여인이 보기에 심히 아름다운지라(웨하-이샤 토바트 마르에 메오드)!" (삼하 11:2b)
골리앗의 거대한 창날도,
사울의 10년 추격도,
광야의 굶주림도 쓰러뜨리지 못했던 하나님의 사람 다윗.
그러나 그는 한 여인의 벗은 몸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간음은 거짓말을 낳았고,
거짓말은 은폐를 낳았으며,
은폐의 공포는 마침내 충신 우리야를 적의 칼날 앞에 고의로 던져 죽이는
'추악한 살인 교사'로 치달았습니다.
제11강은 사명의 자리를 이탈한 영적 나태, 에덴동산의 선악과 타락을 재현한 '봄-탐냄-취함'의 메커니즘, 햇사람 우리야의 눈물겨운 충성과 다윗의 비열한 편지 한 장, 죄를 은폐하려는 타락한 권력의 가증스러움, 그리고 성경 기자가 장엄하게 내리꽂는 하나님의 침묵의 판결문인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의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와예라 하-다바르)"의 영적 신비를 심층 해부합니다.
2. 본문 주해: 사명의 자리 이탈과 저녁 늦은 산책(1) 테슈바트 하-샤나(תְּשׁוּבַת הַשָּׁנָה): 왕들이 출전할 때 (삼하 11:1)
테슈바트 (תְּשׁוּבַת):
'슈브(돌아오다)'의 명사형으로, 계절이 순환하여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되는 봄철(Springtime)"을 뜻합니다.
팔레스타인의 겨울은 차가운 비가 쏟아져 군사 작전이 불가능했습니다. 따라서 풀이 자라 군마를 먹일 수 있고 길이 마르는 봄철은 모든 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전쟁터로 나가는 시즌이었습니다.
성경 기자의 날카로운 고발: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는데...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더라(요셰브)!"
'요셰브(앉아 있다, 거주하다)'는 안주와 게으름의 상태를 폭로합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전장에 있지 않고, 자신이 서지 말아야 할 편안함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비극의 진원지였습니다.
(2) 저녁때에 침상에서 일어남 (삼하 11:2a)
"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와예히 레-에트 하-에레브 와야캄 다위드 메-알 미쉬카보)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삼하 11:2a)
레-에트 하-에레브 (לְעֵת הָעֶרֶב): 해가 뉘엿뉘엿 지는 황혼 무렵.
백성들은 암몬의 랍바 성벽 밑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피 흘리며 칼을 휘두르고 있던 바로 그 시간에,
왕 다윗은 대낮부터 침상(미쉬카브)에 누워 낮잠을 자다가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부스스 일어난 것입니다.
게으름은 마귀의 거룩한 작업장이다:
영적인 무장해제, 육신의 지나친 포만감과 나태함은 사탄이 가장 침투하기 좋은 영적 무균실을 제공합니다.
다윗은 적군과의 전투에서는 승리했으나, '자기 육체의 게으름과의 싸움'에서는 완벽하게 패배하고 있었습니다.
3. 핵심 원어 강해: 라아(רָאָה) $\longrightarrow$ 하마드(חָמַד) $\longrightarrow$ 라카흐(לָקַח)
왕궁 옥상(지붕 테라스)은 성읍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가장 높은 감시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시원한 저녁 바람을 쐬던 다윗의 눈에 한 장면이 걸려들었습니다: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와야르 이샤 로헤체트 메-알 하-가그 웨하-이샤 토바트 마르에 메오드)" (삼하 11:2b)
{וַיַּ֥רְא\ אִשָּׁ֛ה\ רֹחֶ֖צֶת\ מֵעַ֣ל\ הַגָּ֑ג\ וְהָ֣אִשָּׁ֔ה\ טוֹבַ֥ת\ מַרְאֶ֖ה\ מְאֹֽד׃}
{"와야르 이샤 로헤체트 메-알 하-가그, 웨하-이샤 토바트 마르에 메오드"}
성경 신학의 눈으로 볼 때, 사무엘하 11장 2–4절의 진행 과정은 창세기 3장 6절의 에덴동산 선악과 타락, 그리고 여호수아 7장 21절의 아간의 범죄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죄의 3단계 파멸 공식'을 그대로 밟아갑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류 타락의 3단계 공식 비교
| 단계 | 에덴동산의 하와 (창 3:6) | 여리고성의 아간 (수 7:21) | 왕궁 옥상의 다윗 (삼하 11:2–4) |
| 1단계: 시각적 응시 | 나무를 본즉(와테레, רָאָה) | 아름다운 외투를 보고(와에레, רָאָה) | 여인의 목욕함을 보니(와야르, רָאָה) |
| 2단계: 내면적 탐욕 | 먹음직하고 탐스러운지라(네흐마드, חָמַד) | 마음에 탐내어(와에흐메뎀, חָמַד) |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니(샤알, שָׁאַל) |
| 3단계: 육체적 탈취 | 열매를 따서 먹으니라(와티카흐, לָקַח) | 그것들을 가졌나이다(와에카헴, לָקַח) | 여인을 데려와 동침하니라(와이카헤하, לָקַח) |
(1) 라아 (רָאָה, 보다): 응시의 죄
우연히 눈에 띄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인의 나체를 넋을 잃고 '지속적으로 뜯어보며 응시(Lustful Gaze)'했습니다.
"여인이 보기에 심히 아름다운지라(토바트 마르에 메오드)!"
10강(사무엘 16:7)에서 하나님은 다윗을 택하실 때 "사람은 외모(에이나임)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말씀하셨건만,
이제 다윗은 하나님의 눈이 아닌 '정욕에 눈먼 육신의 시선(에이나임)'으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2) 하마드 (חָמַד $\longrightarrow$ 샤알, שָׁאַל): 정욕의 구체화 (삼하 11:3)
다윗은 신하를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신하의 대답은 다윗의 양심에 울리는 강력한 3중 경고음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바트-엘리암)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에쉐트 우리야) 밧세바가 아니니이까(하-로-조트 바트-셰바)" (삼하 11:3)
바트-엘리암: 엘리암은 다윗의 최고 모사이자 지략가인 아히도벨(Ahithophel)의 아들이었습니다(삼하 23:34). 즉, 밧세바는 왕궁 최고 충신의 손녀였습니다.
에쉐트 우리야: 그녀는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습니다.
우리야(Uriah): 다윗을 위해 목숨을 바치던 전설적인 '다윗의 37인 용사(삼하 23:39)' 중 한 명이자, 지금 랍바 최전선에서 다윗을 위해 피를 흘리고 있던 충신이었습니다.
이 보고를 들었을 때 다윗은 즉각 멈추어야 했습니다: "아! 충신의 아내로구나! 내가 잠시 미쳤었구나!"
(3) 와이카헤하 (וַיִּקָּחֶהָ, 취하다): 선을 넘은 권력의 폭력 (삼하 11:4)
그러나 정욕에 눈이 먼 다윗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처럼 돌진했습니다: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와이카흐)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와이쉬카브 임마흐)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삼하 11:4)
와이카흐 (וַיִּקַּֽח):
6강(사무엘 8:11–17)에서 사무엘이 경고했던 바로 그 단어, 백성들의 것을 "빼앗는(Take, 라카흐)" 폭군의 독재적 행동이었습니다.
다윗은 왕의 절대 권력을 휘둘러 남의 아내를 강제로 왕궁 침실로 끌고 들어왔습니다.
성경은 십계명의 제7계명("간음하지 말라")과 제10계명("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을 단칼에 짓밟아버린 성왕의 처참한 영적 추락을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4. 깊은 내면 해부: 임신 통보와 은폐 공작
얼마 후, 밧세바로부터 비밀 전령이 당도했습니다.
그녀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다윗의 뒤통수를 쇠망치로 후려갈기는 청천벽력 같은 단 세 마디였습니다:
"내가 임신하였나이다(하라 아노키)!" (삼하 11:5)
{הָרָ֖ה\ אָנֹֽכִי׃}
율법(레 20:10, 신 22:22)에 따르면 유부녀와 간음한 자는 남녀를 막론하고 돌로 쳐 죽이는 '사형'에 처해져야 했습니다.
국가 통치자로서의 도덕적 권위가 하루아침에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질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다윗은 이 자리에서 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치밀하고 비열한 '인간적 은폐 공작(Cover-up Operation)'을 가동합니다.
1단계 은폐: 최전선에서 우리야를 소환함 (삼하 11:6–8)
다윗은 요압에게 밀사를 보내어 전장에서 싸우고 있던 우리야를 예루살렘으로 특별 휴가인 양 불러들였습니다.
다윗은 전황을 묻는 척 연기를 한 후, 우리야에게 달콤한 호의를 베풀었습니다:"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레흐츠 라글레이카)" (삼하 11:8a).
왕의 식탁에서 음식을 하사하여 그의 뒤를 따르게 했습니다.
다윗의 속셈은 뻔했습니다:
"우리야가 집에 내려가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면, 뱃속의 아이가 우리야의 아이인 것처럼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것이다!"
5. 핵심 원어 강해: 샬롬(שָׁלוֹם)을 파괴한 다윗 vs 언약궤를 지킨 우리야
그러나 다윗의 간교한 술책은 햇사람(Hittite, 이방 헷 족속 출신의 귀화인) 우리야의 서슬 퍼런 충성심 앞에서 단번에 산산조각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야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와이트카브 우리야 페타흐 베이트 하-멜렉... 웨로 야라드 엘-베이토)" (삼하 11:9)
이튿날 아침, 우리야가 집에 가지 않고 차디찬 대궐 돌바닥에서 잠을 잤다는 보고를 받은 다윗은 초조해졌습니다:
"네가 길에서 돌아왔거늘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10절).
우리야의 입에서 터져 나온 대답은,
침상에서 간음을 저질렀던 다윗의 양심을 단칼에 베어내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거룩하고 비장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우리야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하-아론 웨-이스라엘 웨-예후다 요쉐빔 바-수코트)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알-페네이 하-사데 호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웨-아노키 아보 엘-베이티 레-에콜 웨-리쉬토트 웨-리쉬카브 임-이쉬티)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하이-야훼 웨-헤이 나프쉐카) 하니라" (삼하 11:11)
{הָאָ֧רוֹן\ וְיִשְׂרָאֵ֣ל\ וִֽיהוּדָ֗ה\ יֹשְׁבִ֣ים\ בַּסֻּכּוֹת֮}
{וְאֵיךְ\ אָב֧וֹא\ אֶל־בֵּיתִ֛י\ לֶאֱכֹ֥ל\ וְלִשְׁתּ֖וֹת\ וְלִשְׁכַּ֣ב\ עִם־אִשְׁתִּ֑י}
{"하-아론 웨-이스라엘 웨-예후다 요쉐빔 바-수코트... 웨-에이크 아보 엘-베이티...!"}
다윗 왕과 햇사람 우리야의 극적 대조
| 구분 | 성왕 다윗 (삼하 11:1–4) | 햇사람(이방 귀화인) 우리야 (삼하 11:11) |
| 신분 | 이스라엘의 통일 군주, 언약의 성왕 | 이방 헷 족속 출신의 하급 장교 |
| 머문 장소 | 안락한 예루살렘 왕궁의 침상 | 흙먼지 날리는 거친 궁궐 문간 돌바닥 |
| 언약궤를 향한 태도 | 궤를 잊고 자신의 육체적 정욕을 채움 | "언약궤가 들판 텐트(수코트)에 머물고 있거늘!" |
| 전우를 향한 태도 | 부하들을 사지로 내몰고 부하의 아내를 범함 | "내 전우들이 들판에 진 치고 있거늘 어찌 내가 즐기리이까!" |
| 영적 실존 | 육신의 정욕에 눈먼 영적 간음자 | 말씀과 언약에 목숨을 건 참된 예배자이자 전사 |
우리야는 이방인이었으나, 그의 심장은 다윗보다 훨씬 더 거룩한 하나님의 언약궤로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시 상황에서 군인들이 성관계를 금해야 한다는 성결의 법(신 23:9–14)을 목숨 걸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무릎을 꿇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2단계 공작으로 나아갑니다.
우리야를 불러 잔치를 베풀고 술을 억지로 먹여 만취(와예샤케레후)하게 만들었습니다(13절).
이성을 잃게 하여 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려는 교활한 수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우리야는 끝내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고 부하들의 막사 곁에 쓰러져 잤습니다.
6. 살인 교사: 피 묻은 편지와 요압의 암살 (삼하 11:14–25)
술책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다윗의 내면에서 잠자고 있던 사탄의 살기가 마침내 마수를 드러냅니다.
이튿날 아침, 다윗은 자신의 서명이 담긴 어명 서신 한 장을 써서 봉인한 후,
놀랍게도 그 편지를 바로 그 충신 우리야의 손에 쥐여 요압 사령관에게 보냅니다: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와이크토브 다위드 세페르... 와이쉴라흐 베-야드 우리야)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야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하비우 에트-우리야 엘-물 페네이 하-밀하마 하-하자카 웨-샤브템 메-아하라이브 웨-닉카 와야모트) 하였더라" (삼하 11:14–15)
{הָבִ֣יאוּ\ אֶת־אוּרִיָּ֗ה\ אֶל־מ֧וּל\ פְּנֵ֛י\ הַמִּלְחָמָ֥ה\ הַחֲזָקָ֖ה}
{וְשַׁבְתֶּ֣ם\ מֵאַחֲרָ֑יו\ וְנִכָּ֖ה\ וָמֵֽת׃}
{"하비우 에트-우리야 엘-물 페네이 하-밀하마 하-하자카, 웨-샤브템 메-아하라이브, 웨-닉카 와야모트!"}
(1) 자기 사형 집행문을 들고 뛰어간 충신
우리야는 다윗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이 국가의 중대한 군사 기밀을 자신에게 맡겼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사형 집행문이 담긴 피 묻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최전선 랍바 성벽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배신 중 이보다 더 잔인하고 비열한 배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2) 요압의 계산과 성벽 앞의 학살
살인자 요압(삼하 3장의 아브넬 암살범)은 왕의 추악한 의도를 즉각 알아차렸습니다.
요압은 군사적으로 가장 위험한 랍바 성벽 바짝 앞으로 우리야와 용사들을 진격시켰습니다.
성벽 위에서 암몬 군사들이 쏜 화살과 맷돌이 쏟아져 내렸고,
명령대로 군사들이 뒤로 후퇴하자, 햇사람 우리야는 영문도 모른 채 적들의 집중 표적이 되어 비참하게 칼에 맞아 시체가 되었습니다(17절).
다윗의 죄악을 감추기 위해, 우리야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충성스러운 다른 용사들 여러 명까지 억울한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3) 다윗의 위선적인 조전(弔電) (삼하 11:25)
전사 보고를 들은 다윗은 요압에게 태연하게 전령을 보냈습니다: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하-헤레브 토칼)! 너는 이 일로 염려하지 말라!"
그는 국가를 위한 전사인 양 포장하며, 자신의 피비린내 나는 살인을 거룩한 전쟁의 불가피한 희생으로 둔갑시켰습니다.
7. 핵심 원어 강해: 와예라 하-다바르(וַיֵּ֧רַע הַדָּבָ֛ר) — 하나님의 침묵의 심판
우리야가 죽었다는 비보를 들은 밧세바는 남편을 위하여 소리 높여 애곡했습니다(26절).
그리고 장례의 애도 기간이 끝나자마자,
다윗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을 보내어 과부가 된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왔습니다: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와티히-로 레-이샤 와텔레드-로 벤)" (삼하 11:27a)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완벽한 해피엔딩이었습니다.
전사한 충신의 불쌍한 과부를 왕이 거두어 왕비로 맞아들인 자비로운 군주처럼 보였습니다.
임신한 아이는 합법적인 왕궁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을 것입니다:
"완벽하게 끝났다! 내 명예도 지켰고, 왕좌도 안전하다!"
그러나 사무엘하 11장의 마지막 문장은,
인간의 모든 완전범죄의 기만을 번개처럼 내리치시는
‘온 우주의 감찰자 여호와 하나님의 무서운 사형 선고문’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의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와예라 하-다바르 아쉐르-아사 다위드 베-에네이 야훼)" (삼하 11:27b)
{וַיֵּ֧רַע\ הַדָּבָ֛ר\ אֲשֶׁר־עָשָׂ֥ה\ דָוִ֖ד\ בְּעֵינֵ֥י\ יְהוָֽה׃}
{"와예라 하-다바르 아쉐르-아사 다위드 베-에네이 야훼"}
{"그러나 다윗이 자행한 그 모든 일(다바르)은, 여호와의 두 눈(에이나임)을 찢어놓을 정도로 악하였더라!"}
(1) 라아 (רָעַע 와예라): 썩어 냄새나는 악
원어적 의미:
'산산조각이 나다', '부패하여 역겨운 악취를 풍기다(Displeased, Evil)'.
다윗은 사람들의 눈(에이나임)을 가리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신하들도 속았고, 백성들도 속았습니다.
그러나 불꽃같은 눈으로 인생의 중심을 감찰하시는 '여호와의 눈(베-에네이 야훼)'은 1초도 속일 수 없었습니다.
다윗의 백향목 침실 위에, 하나님의 서슬 퍼런 공의의 진노의 벼락이 장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8. 구속사적 절정: 흠 없는 신랑이신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
존 칼빈과 찰스 스펄전, 알렉산더 화이트와 마틴 로이드 존스는 다윗의 이 처참한 간음과 살인 교사를 강해하며, "가장 위대한 인간 성왕이라 할지라도 한순간에 괴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인간 육체의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그리고 "영원토록 죄가 없으시며 교회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참된 신랑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장엄하게 조명합니다.
| 첫 번째 성왕 다윗 (삼하 11장) |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복음서와 에베소서) |
| 사명의 자리(전장)를 이탈하여 침상에 머뭄 |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겟세마네와 십자가의 최전선으로 가심 |
| 남의 아내를 육체의 정욕으로 탐내어 빼앗음(라카흐) | 죄로 더러워진 음녀 같은 우리를 신부로 삼으시기 위해 자기 몸을 주심 |
| 충신 우리야의 피를 흘려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 함 |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무죄한 보혈을 십자가에서 흘리심 |
|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을 착취하고 죽음에 이르게 함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막 10:45) |
| 여호와의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진노를 촉발함 | 아버지의 보시기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 3:17) |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 역시 정욕의 유혹 앞에 언제든 살인마로 돌변할 수 있는 아담의 타락한 피를 이어받은 연약한 죄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다윗에게 머물지 않으시고,
다윗의 무너진 침실 너머에서
영원한 흠 없는 왕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처럼 게으른 침상에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라는 가장 치열한 인류 구원의 전장 한복판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주님은 다윗처럼 남의 것을 빼앗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영적으로 간음하여 사탄의 노예가 되었던
더럽고 추악한 우리를 거룩한 신부로 맞이하시기 위해,
에베소서 5장 25–27절의 선언대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사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의로운 우리야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불의한 우리를 살리기 위해
가장 의로우신 당신의 몸을 골고다 십자가의 제단 위에 화목제물로 내어놓으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 군주의 모든 한계와 죄악을 씻어내시고
우리를 영원한 의의 나라로 통치하시는 '우리의 영원하고 완전한 참된 왕'이십니다.
9. 목회적 적용과 묵상(1) 사명의 자리를 이탈한 '게으름(나태)'을 피눈물로 경계하라
인생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고난의 광야가 아닙니다.
모든 시험이 끝나고, 사업이 안정되며, 삶이 편안해져 "이제 좀 쉬어도 되겠다"며 팔짱을 끼고 늦잠을 잘 때입니다.
당신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 사역의 최전선을 떠나 게으름의 옥상을 거닐고 있지 않습니까?
사명의 자리를 이탈하는 순간, 마귀는 당신의 눈앞에 치명적인 유혹의 덫을 펼쳐놓을 것입니다.
영적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마십시오.
평안할 때일수록 더욱 깨어 기도하십시오.
영적 나태함을 방치하면, 10년 동안 쌓아 올린 신앙의 탑이 하룻밤 사이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게 될 것입니다.
(2) "보는 것(라아)"을 주의하고 시선의 문을 단속하라
다윗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고,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응시하다가 정욕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24시간 밧세바의 목욕 장면과 같은 음란하고 세속적인 이미지의 폭격을 맞으며 살아갑니다.
욥의 거룩한 결단을 배우십시오: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욥 31:1)!"
시선의 문을 단속하십시오.
죄는 눈을 통해 영혼의 지성소로 파고듭니다.
부정한 유혹의 영상과 이미지가 보일 때, 지체하지 말고 즉각 시선을 돌리고 도망치십시오(딤후 2:22).
당신의 눈을 말씀과 십자가의 거룩함에 고정할 때, 흑암의 정욕은 당신의 영혼을 틈타지 못할 것입니다.
(3) 죄를 '은폐'하려 하지 말고 십자가 앞에 즉각 '자복'하라
다윗의 진짜 비극은 밧세바와의 하룻밤 실수보다, 그 죄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충신을 살해했던 '은폐의 과정'에 있었습니다.
성도가 죄를 짓고 나서 그 죄를 내 힘으로 감추고 수습하려 들면,
죄는 암세포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여 결국 온 영혼과 가정을 집어삼킵니다.
사람들의 눈을 속였다고 안도하지 마십시오.
성경의 서슬 퍼런 일갈을 두려워하십시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의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완전범죄는 우주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 큰 파멸로 치닫기 전에, 은폐의 가면을 찢고 십자가 보혈의 제단 앞에 당신의 추악한 죄를 그대로 쏟아놓으십시오.
감추는 자는 망하지만,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얻게 될 것입니다(잠 28:13).
10. 결론: 침묵의 장막을 찢고 찾아온 하나님의 사자
사무엘하 11장의 막이 내리며,
다윗의 왕궁에는 짙은 어둠과 죽음의 침묵이 내려앉았습니다.
다윗은 죄를 성공적으로 은폐했다고 믿었습니다.
밧세바는 그의 아내가 되었고,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약 1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다윗은 겉으로는 여전히 거룩한 왕의 옷을 입고 예배를 집례하고 재판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시편 32편 3–4절이 고백하듯,
죄를 숨기고 침묵하던 그 1년 동안 다윗의 내면은 지옥이었습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그리고 마침내 사무엘하 12장의 문이 벼락처럼 열립니다.
1년간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Nathan)’을 다윗의 백향목 궁전으로 파송하십니다.
가난한 자의 유일한 암양 새끼를 빼앗아 손님을 대접한 부자의 파렴치한 비유를 들려준 후,
의분을 터뜨리는 위선적인 다윗의 심장 한복판을 향해
선지자 나단이 내리꽂은 인류 역사상 가장 날카로운 영적 비수:
"앗타 하-이쉬(אַתָּה הָאִישׁ)!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라!"
그리고 왕관을 벗어 던지고 차디찬 바닥에 엎드려
침상이 눈물에 띄도록 피를 토하며 부르짖었던 성왕 다윗의 상한 심령의 참회록(시 51편):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제12강: “당신이 그 사람이라”와 침상의 눈물 — 상한 심령의 참회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