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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감사 (레 23:15-21)
우리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잘 될 때도 감사하고 어려울 때도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믿고 감사하는 우리가 됩시다.
어느 분이 나이가 먹어서 자꾸만 뭘 까먹는 것입니다. 방에 들어갔는데 왜 들어갔는지도 생각이 안 나고, 물건도 어디 두었는지 잘 생각이 안 나서 찾느라고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한번은 이 분이 어디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틀니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타고 온 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고, 갔었던 가게에도 연락을 했지만 틀니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틀니를 쓰던 분이 틀니가 없으면 얼마나 불편합니까. 그래서 필사적으로 틀니를 찾다보니 그 분의 입에 틀니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틀니를 끼고 틀니를 찾는 상황이 되어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지난 6개월 동안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복된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레위기 23장은 절기 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7가지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절기는 영원한 규례라고 하셨습니다. 레 23장에만 영원한 규례라는 말이 4번이나 나옵니다.
영원한 규례라는 말 때문에 오해를 해서 지금도 구약식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자를 보다가 실체를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골 2:16,17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구약 성도들이 지켰던 율법에서 자유했습니다. 율법에서 먹지 말라고 하는 것들도 감사하므로 먹었고, 구약식의 절기는 지키지 않았고, 월삭이라고 해서 초하루에 드리는 제사도 드리지 않았고, 안식일 대신 주일을 지켰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구약의 성도들이 지켰던 그런 것들은 그림자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실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으니 우리는 구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합니다. 구약의 절기를 통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히 8:5에서는 성막과 대제사장 제도 등을 다루면서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하늘에 있는 참된 형상을 보고 성막과 대제사장 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모세가 만든 모형이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본 하늘에 있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절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의 절기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절기가 담고 있는 영적 의미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것입니다.
유대인에게는 7대 절기가 있습니다. 이 절기는 여호와의 절기입니다. 그런데 7대 절기는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실체를 보여줍니다. 절기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7대 절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7대 절기를 순서대로 나열해 보겠습니다. 먼저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우리의 희생제물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두 번째 절기는 무교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교절에 무교병 즉 누룩이 없는 떡을 먹었는데, 여기서 누룩 없는 떡은 죄가 없으신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무교병을 먹은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살을 먹으며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절기는 초실절입니다. 초실절은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네 번째 절기는 오순절 혹은 칠칠절 혹은 맥추절이라고 합니다. 오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의 임무교대를 보여주는 절기입니다. 다섯 번째는 나팔절입니다. 나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리스도인들의 휴거를 의미합니다. 여섯 번째 절기는 속죄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속죄함을 받는 것입니다. 환난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초막절입니다.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농사가 끝난 후 곡식을 창고에 저장한 후에 지키는 추수감사절인데, 신앙의 알곡들을 천년 왕국 혹은 천국에 집어넣으시는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여호와의 7대 절기 중에 맥추절을 지킵니다. 한국교회가 맥추절을 7월 첫 주에 지키고 있는데 7월 첫 주에 맥추절을 지키는 이유는 지난 반년 동안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자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맥추절은 첫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제로 떡 2덩이를 하나님께 흔들어서 요제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양 7마리와 어린 수소 1마리와 숫양 2마리를 번제로 드렸습니다. 또 숫염소 1마리로 속죄제를 드리고 1년 된 어린 숫양 2마리로 화목제물을 드렸습니다. 제사장은 첫 이삭의 떡과 함께 2마리의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서 요제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날은 성회로 공포하였고 노동을 하지 않고 쉬었습니다.
오순절, 칠칠절, 맥추절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감사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더하십니다.
미국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절로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미국에서 유래된 절기입니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 중 반 이상은 굶어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있는 사람들마저도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국적으로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이때 한 농부가 이런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생각을 달리합시다. 비록 농사는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는 유럽에서 신앙의 자유를 잃고 얼마나 쫓겨 다녔습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신앙의 자유가 있습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그전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있습니다. 그러므로 금식대신 감사의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농부의 이 말은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금식기도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이 일이 추수감사주일의 기본 동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들에게 큰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많은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는 맥추절을 맞이하여 3가지 감사를 나누려고 합니다.
1. 필요를 채워주심에 감사
무교절이나 초막절은 1주일 동안 지켰는데 맥추절은 하루만 지켰습니다. 그 이유는 맥추절 때가 보리추수를 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추수 때에 1주일간 절기를 지키면 곤란하니까 하나님께서 하루만 지키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배려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리추수를 하는 이 시기에 맥추절을 지키며 ‘추수를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라는 감사의 고백을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노력해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허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잘 된다고 하나님을 버리면 결국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을 잘 섬기면 결국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셨던 것처럼 점점 강성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소가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농사철이 되면 소 주인은 동네 사람들에게 소를 하루씩 빌려주어 수월하게 일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농사짓는 집에서는 그 집에서 소를 배당하는 날 부지런히 논을 갈아야 했습니다.
그 마을에 믿음 생활을 잘하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에는 이분이 소를 배정받은 날이 하필이면 주일이었습니다. 그는 소 주인을 찾아가서 다른 집에 먼저 소를 빌려주고 그 집과 소 빌리는 날을 바꾸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절당하였습니다. 이분은 이제 선택을 하여야 했습니다. 예배를 그만 두고 논을 갈 것인가? 아니면 예배를 드리고 금년 농사는 포기할 것인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농사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로 작정하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예수 믿더니 돌았나봐.” 그분은 결국 논을 갈지 못 하고 호미로 콩을 심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이 더욱 심하여졌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돌 수가 있는가?”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뭄이 계속 되었습니다. 논의 모가 말라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농부들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끝내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논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습니다. 그 해 논 농사는 모두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콩 농사는 풍작을 이루었습니다. 이 걸 본 동네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다고 고백하며 많은 이들이 교회로 돌아 왔습니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립시다. 함께 합시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2. 말씀을 주심에 감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신 후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가 오순절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맥추절, 오순절이 되면 율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는 성경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맥추절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저를 따라서 합시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셔서 감사한 이유 몇 가지를 나눠봅시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삶의 기준을 잡아주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있어야 할 곳과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다림줄을 사용하면 내가 있어야 할 곳인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인지 알고, 내가 해야 할 일인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인지 알게 됩니다.
몇 년 전에 만취한 운전자가 대형트럭을 운전하다가 고속도로에서 중안선을 넘어서 달려오던 버스와 충돌했습니다. 그 사고로 15명이 세상을 떠났고 18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운전기사가 술에 취하니 넘어서는 안 될 중앙선을 넘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인생의 중앙선을 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대형사고 들이 터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중앙선을 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인생의 중앙선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중앙선을 모르니 중앙선을 마구 넘나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중앙선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은 인생의 대형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안전한 것입니다.
무엇이든 있을 곳에 있어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자의 머리카락은 아름답습니다. 남자도 머리발입니다. 머리카락이 없으면 나이도 들어 보이고 인물도 더 죽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머리카락은 머리에 있어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머리카락이 밥 속에 들어있으면 밥맛이 떨어집니다. 머리카락이 국 속에 들어있어도 국맛이 떨어집니다. 머리카락은 머리에 붙어있어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알아야 합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을 알게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길을 보여주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시 119:105에 보면 주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길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길만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생업의 길도 보여줍니다.
스티브 스코브는 아홉 번이나 직장을 잃고 암담한 상황에서 고민하다가 대성한 백만장자를 찾아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까? 저는 직장을 아홉 번이나 잃었습니다.” 그 성공한 백만장자가 말했습니다. “성경 잠언을 매일 한 장씩 읽으시오. 그러면 2년 안에 사장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될 거요. 매일 잠언 한 장씩 읽으면 5년 뒤에 큰 성공자가 될 거요.” 마침내 그는 그대로 해서 10개의 대회사를 거느린 기업의 총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부자학 31장’을 책으로 써서 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길에 빛을 비추어주기 때문에 성경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바른 길, 승리의 길, 성공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정결해주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요 15:3에 보면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일어준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시 119:9에 보면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깨끗한 행실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가 복음화 된 이유를 아십니까? 로마는 황제를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황제숭배를 받아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핍박하던 로마가 복음을 받아드리고 기독교국가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든 기독교인 젊은이들의 성결한 생활 때문이었습니다. 로마가 타락했고 타락이 극에 달하여 동성애나 혼전 성관계는 일반적이었습니다. 로마의 귀족들은 자기 자식들은 타락했지만 배우자는 깨끗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핍박했지만 기독교인들이 순결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식들을 기독교인들과 결혼을 시켰고 귀족들과 결혼한 기독교인들이 자식을 낳아서 거룩하게 키우다보니 로마가 기독교화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시대를 보면서 이 시대의 희망은 거룩한 성도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타락하고 모두가 악을 행할 때 그루터기와 같은 기독교인들이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산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마저 세속화된다면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듭시다. 그리고 말씀 안에서 삽시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고 가정이 사는 길이고 나라가 사는 길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은 병든 인생을 수술해주시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히 4:12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습니다. 사람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도 하고 병든 부분을 수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인생이 변화된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환경을 수술하기도 합니다. 시 107:20에 보면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을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처한 상황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있는 상황입니다. 그가 만난 환경을 태풍을 만나 배로 비유합니다. 거대한 파도 앞에서 침몰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셔서 그를 구원해주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서 그가 당한 환경에서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서울대 출신의 유명한 작가 한 분이 눈병으로 시력을 잃게 되었는데, 의술로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습니다. 그 당시 건성으로 교회를 다니던 그의 마음에 ‘내가 시력을 완전히 잃기 전에 성경을 한 번 다 읽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성경을 다 읽을 때까지는 제 시력을 지켜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경을 읽는 동안에 눈이 점점 밝아지고 깨끗하게 치료된 것입니다. 의술로 고칠 수 없는 병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술한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김성문 형제, 김수영 자매의 아들 주환이가 열이 38도 넘게 올라서 찬물 속에 들어가서 놀게 했는데 예배를 드리는 중에 열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수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수술 칼과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 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3. 성령강림을 감사
맥추절은 다른 말로 오순절입니다. 우리는 오순절 하면 당연히 성령강림을 생각합니다. 행 2장에서 성령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 불같이 바람같이 임하셨습니다. 그때가 바로 오순절입니다. 우리는 맥추절을 맞이하여 성령을 부어주심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로 믿음이 생겼고, 거듭났습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를 성전 삼으시고 믿음의 사람들 속에 계시며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저는 롬 8장을 좋아한다. 롬 8장에서는 우리의 신앙생활과 성령님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해방 된 것은 성령의 법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승리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제가 롬 8장에서 제일 좋아하는 말씀은 26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저를 따라합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간구해주시고 우리의 모든 상황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저는 워치만니의 책을 여러 권 읽었습니다. 워치만니의 글 중에서 제가 참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성령의 안배하심’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성령님은 내가 주님을 닮아가고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도록 우리의 모든 환경을 안배하십니다. 좋은 일도, 어려운 일도,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형통도, 불통도 적당하게 안배하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성령의 안배하심을 이해하면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떠난 한 여자 선교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악성 위궤양을 앓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때가 되어 떠났습니다. 그런데 선교지로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본부에서 선교 지원금 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 동안 선교사님은 아무 활동도 못하고 매일 보리죽만 먹으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그렇게 고생을 하며 지내고, 그리고 한 달 뒤, 선교 지원금이 도착하여 육 개월 동안 활발히 선교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본국으로 돌아와 선교보고를 하면서, 한 달 동안 선교비가 오지 않아 보리죽만 먹었던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건강을 지켜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고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선교 보고가 끝나자 한 의사가 그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선교사님은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예, 그렇지요!” 그런데 이분의 이야기는 그런 뜻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때 보리죽만 드셨기 때문에 살아나신 겁니다. 선교사님의 악성 위궤양은 본국에 있으면 절대 못 고칩니다. 왜냐 하면 먹을 게 많아서, 그런데 그 곳에 가서 한달 동안 굶다시피 보리죽만 먹고 살았는데, 악성위궤양은 안 먹으면 낫는 병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서 그 병을 낫게 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집의 개들도 보면 아프면 안 먹습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치유가 됩니다. 그 때에 이 선교사가 깨달았습니다. 사실 선교비가 오지 않은 한 달 동안 얼마나 원망했겠습니까?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하나님 정말 나를 사랑해서 이곳에 보냈습니까?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안배하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하십시오, 필요를 채워주심을 감사합시다. 말씀을 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그리고 성령님이 오셔서 함께 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심을 감사합시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