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예언 2 (창49:8-12)
(요약)
유다가 받은 축복은 장차 메시아에 관한 예언 그대로이다. 그리고 그가 영적 장자의 복을 받았다는 점에서 예수 안에 주시는 온갖 신령한 은혜의 예표가 된다. 즉 성도는 유다의 복과 같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생명의 은혜를 받았고 승리와 권능과 영혼의 평안과 기쁨과 만족 및 내세 천국의 은혜를 받았다. 이렇게 유다가 복을 받은 것은 자기희생적인 결과이다. 이처럼 신령한 복은 예수님의 희생의 결과임과 아울러 목숨을 바쳐 믿는 성도의 희생적인 신앙이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강해)
본문은 넷째 아들 유다에 대한 야곱의 축복입니다. 유다에 대한 축복은 대단히 큰 축복입니다. 얼마나 큰 복인가? 장차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복을 받은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유다가 자기를 희생하고 가족들의 생명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공동체를 파괴하는 일을 했다면 이런 축복이 주어질 리가 없습니다. 이처럼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안일을 내던지고 주님께 헌신할 자를 찾고 계십니다. 이런 성도에게 주실 은혜는 참으로 큽니다.
그 예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좌우편의 영광을 구했을 때 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잔이란 고난을 뜻합니다. 희생 없이 어찌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목숨 바쳐 섬긴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창세기 43장을 보면 유다 역시 그랬습니다. 유다는 베냐민을 애굽에 데려가 곡식을 사서 가족을 구하려고 할 때 아버지에게 자기 식구들을 담보로 잡히면서 책임을 지겠다고 했고, 44장을 보면 애굽에서 베냐민이 요셉에게 잡혔을 때도 자신이 대신 잡혀 있겠노라고 자청했습니다. 얼마나 멋진 마음입니까? 하나님이 크게 쓰실 수 있는 영적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이런 생명 내건 희생적인 믿음을 하나님은 보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희생적인 신앙을 가질 때 유다의 복을 받습니다. 유다의 복은 곧 예수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예수 안에서 모든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복을 얼마나 누리고 있느냐 하는 것인데 그것을 누리려면 복음에 대한 믿음과 아울러 유다처럼 희생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딤후2:11-12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죽는다고 하니까 너무 두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를 죽이려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진정 죽어야 할 것은 내가 세상에 대해 죽어지고 더욱 하나님 말씀을 위해 순종함으로 죽어져야 합니다. 안일을 깨고 몸 드려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몸 드려 하나님을 섬길 때 가장 큰 복 그 복은 성령의 복인데 성령 충만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유다의 복은 영적 장자의 복으로 이 복은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신령한 모든 복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유다의 복은 성령 충만의 복입니다. 초대교인들이 박해를 이기고 자기를 이기며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길 때 성령 충만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럼 하나님께 몸 드리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요?
1.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집니다.
8절에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했습니다. 유다라는 이름이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유다의 이름이 그래서가 아니라 그는 형제들에게 찬사 받을 만큼 희생했기 때문에 찬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모든 형제들이 유다에게 순복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희생적으로 몸 드리면 성령 충만하게 되고 성령 충만하면 우리 마음 전체가 자동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게 되고 그 뜻대로 살아진다는 교훈입니다. 영권 앞에 순복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래서 롬6:19에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 받기 전에는 율법 아래서 내적 갈등 속에서 살지만 성령이 임하시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격 전체가 순복하게 됩니다. 갈등이 사라집니다. 환경까지도 변합니다. 주님이 모든 삶을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자나 깨나 신앙생활 잘해야 합니다.
2. 몸 드려 섬기면 승리를 누리게 하십니다.
8-9절에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사자는 용맹스럽고 힘센 동물의 왕으로서 정복의 상징입니다. 이러한 사자의 축복을 주셨다는 것은 예수 안에서 우리 성도들이 모든 악과 사단과 저주와 세상을 정복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기에 우리는 그 공로 힘입어 세상을 이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하셨고, 요일5:18에는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굉장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원수가 만지려고 하고 세상에서 쓰러질 때가 많습니까? 그것은 믿음에 서지 않았거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성령입니다. 이 두 가지가 잘 되어야 합니다.
기드온 300명 용사와 같이 한 손에 칼 들고 한 손에 불을 들어야 하는데 칼은 말씀이고 불은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승리를 얻었다고 믿을 뿐 아니라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여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이 말씀과 성령의 수레바퀴가 잘 굴러가야 신앙생활이 잘 됩니다. 성령 충만 받아보세요. 악과 사단과 저주와 세상을 다 이기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3. 영적 권능을 받습니다.
10절에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여기 홀과 치리자의 지팡이는 동이어로서 왕권을 상징하는 휴대용 지팡이입니다. 이것을 가진 사람이 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팡이를 주신다는 말씀은 왕권이 유다 자손에게서 끊어지지 않고 계승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약속은 남쪽 유다의 멸망으로 끊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히 이어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성령 받으면 영적 권세가 임합니다. 행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랬지 않습니까? 초대교회도 오순절에 성령 충만 받자 모두 권능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안에 있는 왕권이에요.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안에서 왕이에요. 보이는 나라는 다스리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스리는 왕입니다.
그런데 그 권능이 어떤 권능입니까? 여기 “실로가 오시기까지” 라고 했듯이 실로는 ‘평화의 시기’나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받은 권능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래서 온전한 평화의 세상이 오기가지 성령의 권능 받아 예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권능입니다. 그러므로 은사활용이 잘 이루어질 때 복음전도는 급속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권능은 내가 변하는 것이고 또 가장 큰 권능은 내 전도를 듣고 타인이 변하는 것입니다. 이 권능이 성령 충만할 때 주어집니다.
4. 몸 드려 섬기면 영혼의 평안과 기쁨과 만족이 있습니다.
11-12절에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했습니다.
여기 나귀가 나오는데 전 국민이 나귀를 타고 다닐 정도면 오늘날로 치면 마이카시대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나귀를 포도나무에 맨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디를 가든지 포도나무가 있을 만큼 온 나라에 풍요로움이 있을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도 옷을 빨고 포도주로 눈이 붉게 되며 그리고 우유로 이가 희게 된다는 것은 그 만큼 평화와 번영과 부요와 번영이 시대가 온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이 예언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예표일 뿐 더욱 완전한 성취는 내세 천국은 물론, 현재도 예수 안에서 성령 충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성령 충만 받으면 그렇게 평안할 수 없습 니다. 성령 충만 받으면 마음에 넘치는 부요와 번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다가 받은 축복은 예수님의 예표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예수 믿고 성령 충만 받아 누리는 예수 안의 우리 성도들의 계속 되는 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 유다의 복을 다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복을 누리기 위해서 성령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 육신의 안일에 빠지지 말고 목숨 바쳐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은 가만있어서는 임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내 몸과 마음과 정성과 성품과 힘과 목숨 드려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온갖 신령한 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