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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국어를 가르친단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어도 산속 양지쪽에 자리 잡은 놈들은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잎눈과 꽃눈을 갈무리하여 통통하게 살찌우고 새 세상으로 뛰쳐나갈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내 어릴 때 외할머니는 겨우내 갈무리해 두었던 갈치가 돔방돔방 들어간 설 지나고 먹을 김칫독을 헐어 맛이 잘 들었는지 확인하고 봄의 전령이 오기 전 시골 아이들의 건강을 책임질 것들에게 사랑을 확인했다. 보리쌀, 콩, 강냉이 한 됫박씩 담아서 깡통을 길게 늘어서 줄 지우게 만들고 연신 ‘뻥’ 소리와 함께 한 자루 가득 담겨지는 박상(튀밥)과 엿을 묻혀 만들어낸 엿콩(강정)이 새해맞이의 참모습이었다. 할머니 먼 나라 가신 까까머리 중학생이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이 듬뿍 담긴 선물이었지.
이즈음쯤이면 국왕은 부귀와 장수 등 갖가지 내용을 담은 그림을 그리게 하여 벼슬아치들에게 한 해 동안의 안녕과 길운을 축원하며 세화(歲畵)를 하사하여 새해맞이를 하였고 민간에서도 이를 본떠 갖가지 그림들을 서로 나누어가지며 가정과 개인의 안녕을 기원했다. 요즘 옥션이니 아트페어니 여러 곳에서 그림에 대한 관심(솔직히 말해서 그림에의 투자 혹은 투기)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형국이지만 아마도 그 시절 도화서 화공이나 시중의 화가들의 연중 가장 바쁜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많을 때는 연말 세화를 도화서 화공 1인당 20~40여장을 그렸다는 기록이 있음으로 보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었지 싶다. 그래도 훈훈한 정과 희망과 소망이 담긴 선물이 아닌가.
요즘 선물은 굴비니 갈비세트니 수 십 만원은 기본이고 온갖 귀한 과일 등을 선물한다고 야단법석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선물코너를 가득 채우고 있은 놈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부담이 팍팍 오도록 한다. 원래 선물이라는 것을 별로 하지도 받지도 않은지라 크게 개의치는 않지만 그래도 쓴웃음이 실실 나오는 것은 왜일까. 올해는 아마도 선물 중에 제일은 영어공부에 관한 어떤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공부하는 아이가 있는 집에 선물로 책가도 병풍 한 폭이 제일이었지 않나 싶다. 요즘으로 바꾸어보면 책가도에 영어교육과 관련된 모든 것-영어사전, 테이프, 디브이디, 영어책, 토플, 토익, 영어학원수강증, 영어유치원 등등을 그려 선물하면 아마도 굿 일 것이다.
나날이 영어교육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인수위에서 연일 영어경진대회라도 열리는 모양이다. 아침인사가 ‘굿모닝’, ‘하와이유’ 란다. 국정을 논하는 회합과 나랏일에 자국어를 쓰지 않고 영어를 쓰는 것이 무슨 자랑거린지, 그야말로 해외토픽 감이다. 나랏말싸미 달라 새로이 만든 훈민정음이 다시 천대받기 시작한 것이 아닌지. 한 세기 전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식민화된 영토에서 우리말글을 못쓰게 강압하더니 1세기가 지난 지금의 위정자들은 알아서 모두 영어를 모국어로 쓰잔다. 만 원짜리 오른쪽에 앉아계신 세종대왕님의 심사가 매일 편치 않을 듯싶다. 일제 때 선각자들은 우리 말글을 살리기 위해 학교를 짓고 말글과 역사를 가르쳤다. 이제 21세기 선각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학교를 지어야 할까. 아님 야학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국어를 영어가 가르치면 미술은 누가 가르칠까. 영어 짧은 사람은 그림도 그리기가 어렵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난다. 비록 지금 미국이라는 거대 제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영원하리란 생각되지 않는다. 만약에 수년 앞에 중국 패권이 강화되어 제국화 되면 우리국민은 또 중국어를 모국어처럼 써야 되지 않을까. 그때는 미술은 누가 가르칠까? 그때가 되면 중국어를 배워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우기는 우스운 세상이 올까?
최수환 (조형예술가, 문화나눔 옻골)
첫댓글 올해 들어와 아이들 글쓰기와 독서에 대해 공부를 좀 하고 있어요. 조그만 관심의 눈만 있어도 지금 상황이 참 심각하다 싶긴 한데요 그에따라 여기 적서 애쓰시는 국어말^^ 사랑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습도 많이 보이더 라고요. 요지경이지만 그래도 공부하면서 많이 느끼고 우리아이,주변아이들 시선 닿는 데로 챙겨야 겠다는 각오^^가 생기더군요. 맞죠?
으음~~ 조금조근한 황줌마와 잘~어울리는 일들인거 같아.. 근디 도서관에 그린 이뿐 동화벽화는 언제쯤 날라다줄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