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近代化 使命속에서의 先眞主와 後眞主 출세공사
怒濤와 같이 밀려오던 식민지 帝國主義의 한 복판에서 상제님의 천지공사의 東西洋 통일 世運판은 朝鮮과 중국(淸)이란 서로 다른 무대에서 孫中山-손문, 孫義庵-손병희 양 英雄은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서로 같은 行步를 하고 있었다. 3哨공사의 先眞主 주인공 손의암은 조선에서 상제님의 侍天主 염원의 東學을 중심으로 敎運(道運)의 大人出世를 예비하며 3.1 만세 운동을 일으키고, 한편 손중산은 상제님의 皇極神 공사를 계기로 西太后와 光緖帝가 冥府로 불러들여간 텅빈 主人없는 청국에서 3民主義를 내걸고 辛亥革命(1911)과 5.4운동(1919)을 일으킨다.
의암이 敎運(道運)의 대인출세(문왕도수 출현)의 길을 예비하는 3哨(招)公事를 직접적으로 맡았다면 손중산(中山)은 世運의 한 軸을 맡아 세상을 비빔밥으로 만드는 解寃의 이념전에 뛰어들어 조선의 바둑판을 五仙圍碁 애기판으로 조성하는 役割分擔을 각각했다.
손의암과 손중산은 각기 민권운동 기간 중 일본에 亡命한 시기도 같고 각기 同一한 時期에 귀국해 3.1운동과 5.4운동의 民權運動을 展開해 왕조시대의 낡은 정신을 일단 완전히 해체한다. 궁극적으로 손중산의 辛亥革命은 러시아革命이후 코민테른의 敎示에 의해 毛澤東 소비에트 중화인민공화국을 만드는 낙종물 역할을 했으며, 손의암의 3.1 民權運動은 추수도수인 文王의 度數 출현을 위한 낙종물 역할, 소위 갑오 갑진의 일초 이초의 관문을 이어 大人出世(문왕 숙구지 도수)를 위한 마지막 3초(哨) 관문 역할을 했다.
<보천교 교전>*이제 누구든지 몽둥이를 들어 그 머리를 치며 네 재능(才能)이 무엇이관대 부하(部下)들을 그다지 망(亡)치느냐고 꾸짖으면 대답(對答)하지 못하고 돌아가리라. 응종(應鐘)이 몽둥이를 들며 엿주어 가로되 내가 쫓아가서 그리하겠나이다. 가라사되 네가 진실(眞實)로 쾌남자(快男子)로다 하시고 또 가라사되 저희들은 다-구암(久庵)이오 이곳은 신암(新庵)이니 곧 도안(都安)의 집이니라. 이 때에 손병희(孫秉熙)가 호남지방을 순회하려다가 뜻밖에 예정을 변하야 돌아가니라.
<보천교 교전>*어든 사람이 였주워 가로되 조선말(朝鮮之末)에 이란(吏亂)이 있으리라 하오니 그렇하오리있가. 가라사되 손병희(孫秉熙)가 영웅(英雄)이라 장차(將次) 난리(亂離)를 꾸미리니 그 일을 일음이니 손병희(孫秉熙)가 선진주(先眞主)라 박절(薄切)하게 성(城)돌 밑에서 턱을 고이고 앉어서 역적(逆賊)을 도모(圖謀)함으로 성사(成事)치 못하리라.
손중산은 무신년(1908) 상제님의 백의군왕 백의장상 도수 공사로 인해 황극신(천자신)이 조선으로 넘어간 이후 신해혁명과 5.4 민권운동을 통해 낡은 왕조시대의 묵은 관념을 깨고 러시아 혁명으로 잉태된 코민테른의 혁명정신을 계승한 마오쩌뚱(모택동)의 대장정과 중화인민공화국 창설을 위해 자신의 정신을 계승한 장쩨쓰(장개석)의 국민당으로 하여금 먹이로 바친 셈이 되었다.
당시 상제님 천지공사의 구상은 조선과 청나라의 왕정복고가 목적이 아니고 상제님이 구상하시는 후천 용화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먼저 해원의 비빔밥으로 만들어야 했으며 이를 통해 평민인 ‘남은 못난 사람’ 즉, 남조선 민초가 후천역사의 주인공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상제님은 황극신(천자신)을 불러들인 후천 종주국 조선으로 하여금 백의군왕백의장상도수 공를 보시고 황극신(천자신)은 넘어왔으나 너희들이 혈심을 갖지 못해 장상신이 응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중성 대개벽경>*성도 물어 여쭈기를, “이번 공사에 뇌전이 크게 일어나니 어찌된 연고이나이까.” 말씀하시되, “천자신명이 서양으로부터 넘어오니 행차하는 규모가 너무 커서 가히 적막하게 처결하지 못하니라.” 말씀하시되, “천자신명이 지금 넘어왔지만 너희들의 혈심이 없어 장상신이 너희들 몸에 즐겨 응하지 못하노라.” 성도 물어 여쭈기를, “장상신이 즐겨 성도대중의 몸에 서로 응하지 못하게 되면, 성도대중은 능히 장상이 되지 못하나이까. 한 식경을 지나사 말씀하시되, ”마지막에는 마땅히 응함이 있노라.
앞서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상제님은 3초공사와 대인출세 공사에서 先眞主 인 3哨(招) 주인공 손의암 다음에 都安 세 살림의 문을 활짝 열 文王도수의 주인공인 대인-後眞主가 出世하는 공사를 보셨다. 상제님은 이 後眞主에 대해 義庵은 구암이지만 後眞主는 신암이라 평하고, 都安의 도수 主人인 안내성 성도에 대해 운암강수 만경래 세 살림도수를 부치시고, 피난동 안씨재실 천하 水氣 돌리는 공사를 보시고, 안중근의사를 통해 이등박문 제거공사를 보시며 伊藤博文을 二等方文이라 칭하시고, “이제 장차 천하의 난국을 바로 잡으려면 가히 일등방문(一等方文:일등처방문)을 쓸 것이오, 이등방문(二等方文:이등처방문)을 쓰는 것이 불가하노라.” 하시며 都安 세 살림 지도자로 安씨 姓을 일등處方文으로 정해놓았음을 오성산 말뚝 세 개 박는 공사로 천하에 質定하신다.
<이중성 대개벽경>*내성을 명하사 몽둥이로 마루장을 치게 하시며, “이제 병독에 걸린 인류를 건지려면 일등방문이 여기 계신데, 이등방문이 어찌 머리를 들리오?” 하여 꾸짖으라 하시고 말씀하시되, “이제 장차 천하의 난국을 바로 잡으려면 가히 일등방문(一等方文)을 쓸 것이오, 이등방문(二等方文)을 쓰는 것이 불가하노라.” 이 말씀에 일본 총리 이등박문(伊藤博文)이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살해되었다는 소문이 들리니라. (1909. 10. 26) 성도 물어 여쭈기를, “지금에 이등방문(二等方文)을 폐하사 어찌 공사를 집행하심에 내성을 쓰나이까.” 말씀하시되, “안(安)씨 성을 쓰노라.” 성도 물어 여쭈기를,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죽이니 이등방문(二等方文)이 이등박문(二藤博文(1841.10.16-1909.10.26):이토오 히로부미, 원명은 하야시 도시스케(林利助), 요시다쇼인(吉田松陰) 문하제자)이 되나이까.” 말씀하시되, “이등박문이 일을 하는 것이 지지부진하니(일본의탁 근대화 공사), 천운은 시급한데 민정이 더딤을 한하노라.”
-曰 今 將正天下之亂局 可用一等方文 不可用二等方文 此曰 日使伊藤博文 於哈爾賓 爲安重根之所殺 有聞 弟子 問曰 今 廢二等方文 何用乃成乎 曰 用安姓 弟子問曰安重根 殺伊藤博文 二等方文 爲伊藤博文乎 曰 伊藤博文之作事 遲遲不進 天運 時急 民情 恨晩-
<증산도 道典>*하루는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들 각자 호가 있느냐?” 하시매 모두 자기의 호를 아뢰니 “그러하냐?” 하시고 종이에 글자 두 자를 쓰시어 손으로 가리시고 내성에게 이르시기를 “눈을 감고 보라. 이 글자가 무슨 자냐?” 하시니라. 내성이 본시 글을 모르는 데다 눈까지 감으라 명하시니 알 길이 없어 주저하는데 상제님께서 “얼른 말하라!” 하고 호통을 치시거늘 순간 내성이 자신도 모르게 “공경 경(敬), 일만 만(萬) 두 글자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는지라.
<증산도 道典>*상제님께서 “그러면 그렇지. 아따 저놈 ‘무식영웅’이라!” 하시고 손을 떼시니 과연 ‘경만(敬萬)’이란 글자가 쓰여 있더라. 이어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운암강수(雲岩江水)가 만경래(萬頃來)라. 김만경(金萬頃) 뜰을 가지고 천하사 세 번 못하겠느냐.” 하시고 “너희들 내성이한테 ‘경만장, 경만장’ 하면서 세 번씩 외우라.” 하시니 성도들이 모두 명하신 대로 하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내성에게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세상 사람들이 너를 우러러 존경할 것이다.” 하시니라.
3哨(招) 끝 대인출세 공사에 의해 민권운동으로 조선왕조의 묵은관념을 무너뜨린 손 의암 先眞主 이후 태모님의 잠자는 개를 깨우는 무진년(1928) 구월도 宿狗地공사에 의해 안운산 태사부님이 운암강수 만경래 경만장 세 살림의 초복도수를 일으키기 위해 後眞主로 일어나 해방이후 보천교 2변 교운을 재건하게 된다. 태사부님은 다시 文王의 유리羑里 유폐도수인 말점도 20년 도수로 隱伏해 계시다가 74년 起頭하여 10년간의 과도기를 거치며 道局을 키워 84년 본격적인 첫살림 初伏도수를 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