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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기야 계약과 백성의 불복(8-11)
하나님과의 약속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깔보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께 한 약속 중 잊어버리고 지키지 못한 것이 있다면 지키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8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한 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 자유를 선포한 후에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9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 10이 계약에 가담한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각기 노비를 자유롭게 하고 다시는 종을 삼지 말라 함을 듣고 순복하여 놓았더니 11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8-11)
남 유다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야 했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자기 민족의 약자들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돌보기는커녕 그들에게 갑질하며 억압하고 탈취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남 유다는 바벨론 군대에 의해 모든 성읍들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바벨론에 성읍들이 점령을 당하자, 시드기야는 긴급 상황을 인지하게 됩니다(7). 위기에 빠진 시드기야 왕과 유다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는 일을 행합니다. 처음 네 절은 시드기야 왕 때 있었던 종의 해방과 관련한 특별한 사건을 보고합니다.
⑴ 계약의 소개(8-9)
시드기야 왕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나름대로 노력을 합니다. 먼저 이스라엘은 자기 동족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드기야 왕의 주도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 이 자유를 선포하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8).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하는 것이었습니다(9). 계약은 곧 실행에 옮겨졌습니다. 그 계약의 내용이 같은 민족인 히브리 남녀 노비를 모두 풀어 주어 자유롭게 하기로 하나님과 약속합니다. 시드기야의 이런 행동에 고관들과 백성들이 가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종들을 놓아 주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나라를 빼앗기면 수많은 종들도 필요 없습니다.
이 약속은 옛날 모세 때부터 7년마다 모든 종을 풀어 주던 율법과 관련이 있었습니다(신 15:12). 이것은 비록 종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학대해서는 안 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유롭게 풀어 주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⑵ 계약의 실천(10)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비를 자유롭게 하고 다시는 종을 삼지’ 않겠다고 계약에 참여한 자들은 그 계약에 따라 종들을 풀어주었습니다(10). 하나님께서는 불변하시고 진실하셔서 하나님과 맺은 약속은 꼭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자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시편 76: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⑶ 계약의 파기(11)
얼마 후에 계약에 참여한 자들이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자유롭게 놓아준 종들을 도로 데려다가 다시 종으로 부렸습니다(11). 사건의 과정만 평가 없이 보고하고 그 배경이나 동기에 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단락의 마지막 두 절을 통해서야 계약 체결과 파기의 배경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21)와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 성읍에 다시 오게 하리니’(22)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하다가 물러났음을 전제합니다.
37장 5절에 따르면 애굽의 바로 군대가 출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났습니다. 계약 체결이 바벨론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의 포위 공격과 관련됐다면 종을 해방하기로 계약을 맺은 동기와 목적이 비교적 분명해집니다.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① 군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종은 징집 대상이 아니지만 해방된 종은 자유민으로 징집 대상이 되기에 병력을 확충하기 위해 해방했을 수 있습니다. ②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주인은 종의 먹거리를 책임져야 했다. 평시에는 노동으로 되갚을 수 있었지만, 전시에는 주인에게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주인은 부족한 양식을 밭에 나가 일하지도 않고 노는 종에게 나눠 주어야 했습니다. ③ 종교적 측면에서 보자면, 여호와만이 바벨론 군대의 포위 공격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지켜주실 수 있기에 그분의 도움을 기대하며 계약을 맺었을 수 있습니다.
바벨론 군대에 포위당한 예루살렘의 형편과 계약을 주도한 왕과 적극적으로 참여한 예루살렘 백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군사적·경제적·종교적 요인이 모두 종을 해방하는 동기와 목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계약에 참여했던 자들은 목적이 달성되자 종을 해방하는 계약을 없었던 일로 하고 무시했습니다. 애굽의 개입으로 바벨론 군대가 철군하는 것을 보고 이들은 예루살렘의 안전이 확보됐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습니다. 바벨론 군대의 철군으로 노동력이 다시 필요해졌기에 이들은 자신들이 풀어주었던 종들을 다시 데려와 일을 시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시적으로만 계약을 지켰지 지속적으로는 지키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내내 지키지 않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니깐, 하나님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시드기야 왕의 개혁에 동참합니다. 유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순종한척하다가 시간이 지나서 환경이 좋아지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유다 백성(12-16)
우리는 ‘갑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성도들은 절대로 소유의 많고 적음에 따라 지체를 착취하거나 차별대우 그리고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유에 상관없이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신 것은 약자들을 관심과 돌봄으로 베푸셨습니다.
12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3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기를 14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칠 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 줄 것이니라 그가 육 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15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 16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12-16)
하나님의 계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유다 백성들의 파렴치한 행태를 여호와께서 당신께 대한 불순종으로, 특히 여호와 신앙의 초석에 속하는 출애굽과 언약의 시각에서 고발하신다(13). 종의 해방이 출애굽과 언약의 목표로 제시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년에 동족 히브리 종들을 모두 해방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종 되었던 데서 해방되어 한 형제가 된 운명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⑴ 말씀의 계시(12)
처음에는 주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종들을 성전에 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물로 쓰일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사이를 지나게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쪼개진 송아지처럼 죽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⑵ 조상들의 불순종(13-14)
이스라엘 백성들이 히브리 종들을 놓아주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그래서 적군인 바벨론을 예루살렘 에워쌌던 애굽 군대들과 싸우도록 예루살렘에서 군대를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눈앞에서 적 바벨론이 사라지자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풀어 주었던 종들을 다시 데려다가 종으로 삼았습니다.
출애굽이 종을 해방하는 사건이라면, 종의 해방이 곧 ‘너를 애굽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출애굽기 20:2; 신명기 5:6)께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언약을 맺으며 이르기를’은 마치 종의 해방과 관련해서 언약을 맺은 것 같은 인상마저 줍니다. 많은 율법 가운데 하나인 종의 해방에 관한 규정이 언약 준수의 척도가 됩니다. 일곱째 해에 종을 자유롭게 놓아주라는 명령을 어긴 것이 곧 여호와께 대한 불순종이요 언약 위반입니다. 종의 해방에 관한 규정을 준수하지 않음으로써 조상들은 언약을 파기했고 더 나아가 출애굽 전통마저 무시했습니다(14).
⑶ 현 세대의 불순종(15-16)
이제 시선을 과거에서 현재로 돌립니다. 여께서 먼저 ‘너희의 돌이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십니다(15). 시드기야의 계약에 따른 종의 해방이 여호와 보시기에 ‘바른 일’이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는 계약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체결됐음을, 곧 여호와께서도 계약에 참여하셨음을 보여줍니다. ‘너희의 선조’로부터 돌이켜 바른길을 가는 듯 했지만,'너희'도 결국에는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여호와 앞에서 맺은 계약을 폐기하고 그분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16). 이들은 신실함이 없는 거듭 돌이키는 자들이었습니다. 조상들의 불순종에서 ‘돌이켜’ 여호와 보시기에 바른 일을 행한 자들이 이제는 바른 일에서 ‘돌이켜’ 자유롭게 놓아준 종들을 끌어다가 ‘다시’ 종으로 부립니다.
이렇게 변질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께서 다시 징계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행동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과 같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지만, 어려움이 지나가고 난 후에,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심판에 대한 경고(17-22)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회개하도록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회개를 거부하면 뒤따르는 결과는 참혹한 심판입니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17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18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19곧 송아지 두 조각 사이로 지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20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 21또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그의 고관들을 그의 원수의 손과 그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넘기리라 22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 성읍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의 성읍들을 주민이 없어 처참한 황무지가 되게 하리라(17-22)
이처럼 약속을 변심하는 유다 백성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도 변심 하십니다. 약속을 뒤집는 유다 백성들을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무서운 심판을 준비하십니다.
⑴ ‘너희’의 심판(17)
하나님께서는 돌려보냈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바벨론 왕이 그들을 공격하여 성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당신 이름을 더럽힌 ‘너희’의 불순종에 책임을 물으신다. ‘자유를 선포하다’(17)를 두 번 사용해 상응하는 징벌을 선언합니다. 제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라는 명령을 듣지 않은 자들에 맞서 여호와께서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동포에게 자유를 주지 않은 자들을 칼과 전염병과 기근이 자유롭게 치도록 허락하십니다. 세상 모든 나라에 공포의 대상이 될 정도로 심판은 혹독하게 집행됩니다.
⑵ ‘그들’의 심판(18-22)
유다 백성들이 형제들에게 선포한 자유를 실행하지 않았으니 하나님께서도 이 백성에게 행할 언약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유다 백성에게는 전쟁과 굶주림과 무서운 병들이 그들을 자유롭게 찾아들도록 허락 하십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계약 조인에 따른 제의적 의식과 언어유희를 활용해 계약을 어긴 자들에게 멸망의 심판을 선언합니다(18-19).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사이로 지나가며 맺은 계약을 내버린 자들을 여호와께서 모두 쪼개진 송아지처럼 만드실 것입니다. 계약 체결 의식을 위해 두 조각으로 가른 송아지의 운명이 계약을 파기한 자들의 운명이 됩니다. 계약을 조인할 때 행하는 이 의식(참조, 창세기 15:10,17)은 계약을 위반하면 조각난 짐승처럼 쪼개짐을 당할 것을 맹세하는 일종의 자기 저주 의식입니다. 조각난 송아지 사이로 ‘지나가며’ 규정의 준수를 의무로 받아들인 자들이 바로 계약을 ‘어긴 자들’입니다. 계약에 ‘가담한’ 자들(10)이 계약 안에 머물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버렸습니다.
시드기야가 주도한 계약이 15절에서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맺은 계약으로, 18절에서는 ‘내 계약’으로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계약의 증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계약의 당사자가 되십니다. 시드기야의 주도로 이루어진 계약 위반은 여호와의 계약을 위반한 것이기에 그분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징벌의 방식과 멸망의 철저성에 초점을 맞춰 심판을 선언합니다(20). 여호와께서 계약을 어긴 자들을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겨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활용해 내 계약을 어긴 자들을 남김없이 진멸하십니다. 전면적인 파국입니다. 들판에 버려진 수많은 시체를 날짐승과 들짐승이 뜯어 먹지만, 그것들을 쫓아내고 시체를 지켜줄 사람이 없습니다(참조. 7:33; 16:4).
시드기야 왕과 그의 고관들에게 주어지는 심판의 말씀으로 일부를 제외하고 20a절과 거의 문자적으로 일치합니다(21). 계약을 주도한 시드기야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집니다.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는 주전 588년에 유다를 돕기 위해 애굽의 군대가 출정한 사건과 관련된 언급입니다(참조. 37:5). 애굽 왕 호프라(Hophra)가 원정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바벨론 군대는 일시적으로 예루살렘의 포위를 풀었습니다. 결과는 물론 바벨론 원정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바벨론 군대는 일시적으로 예루살렘의 포위를 풀었다. 결과는 물론 바벨론의 승리였습니다.
다시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선포합니다(22). 마음이 ‘변하여’ 자유롭게 놓아준 종들을 ‘끌어다가’ 다시 종으로 부린 자들에 맞서(11; 참조 15-16) 여호와께서도 철군한 바벨론 군대에게 명령하여 성읍에 다시 ‘오게’ 하십니다. 이제 중도에 철군하는 일은 없습니다. 예루살렘은 불길에 휩싸이고(참조 39:8), 유다 성읍들은 폐허가 됩니다.
회개의 열매가 없으면 참 회가 아닙니다. 벗어나야 할 것에는 벗어나고 매여야 할 것에는 매이는 것이 회개입니다. 둘 사이에 걸쳐 있는 것은 참된 회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격성을 무시한 채 그분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은 회심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모습이 변해야만, 하나님께서도 성도들을 향한 모습이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맺은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지킬 수 있도록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형편에 따라 바꾸는 믿음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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