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
[시편 78:41]
시편77편과 78편은 한 쌍이다.
시편 77편에서는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시편 78편은 역사를 회고하며,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배역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이 은혜로 인도해 주셨음을 밝힌다.
이것을 다음 세대와 앞으로 올 모든 세대에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4~7)이다.
개역성경 4절을 보자.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이러려면,
바르게 기억하여 바르게 전해야 한다.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바르게 기억하는 것'이다.
왜곡된 이해와 기억을 전하면, 전하는 이와 전달받는 이 모두 불행해진다.
2024년 10월 27일,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광란의 잔치를 벌였다.
하나님은 끝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지만, 전제조건이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이 모임을 찬동하는 어느 목사는 '이 집회의 이전과 이후, 한국교회가 달라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래, 달라질 것이다.
집회 이후에는 그런 집회를 옹오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류의 교회는 더는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없어 쇠퇴할 것이다.
교회들은 마치 버려져 맛을 잃은 소금, 꺼져버린 등불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죄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광야시절 자주 하나님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하나님께서는 더는 참지 못하시고 진노를 터뜨리셨다.
그러면, 잠시 돌이켰다가 다시 반역하고, 진노하시고, 다시 보듬어 주시고...
혹자는,
하나님께서는 결국,
은혜를 거두지 않으실 것이라고 장밋빛 미래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의를 행하는 이들, 하나님을 시험하는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대다수는 늘 그런 식으로 불의한 삶을 합리화시켜주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탕자의 비유)'만 안아주실 수 있다.
먼 지방으로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고, 거기를 천국으로 여기고 사는 이들에게 아버지 품은 없다.
그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기르고,
슬기로운 손길로 그들을 인도하였다(72).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이들에게나 따르지 않는 이에게나 한결같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교회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나님을 시험하던 자들이 한결같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기억하라.
회개하고, 돌이키라.
그러면 혹시라도 다시 보듬어주실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