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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직예수훈련원<교회/기도원/은사/능력/집회/기적/종말/환난/> 원문보기 글쓴이: 오직예수
나는 너희 징조다
에스겔 12장 1-28절
2013년 4월 1일 주일설교
설교자 : 곽노아 목사
영어 성경에는 징조가 Sign 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Sign은 곧 신호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들이 분명하게 깨닫고 알 수 있도록 보내주는 하나님의 신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마지막 때에 인간들이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징조를 즉 Sign을 10가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10가지 Sign 중에서 이 시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Sign 3가지를 살펴본다면 첫 번째 Sign은 사람의 미혹을 받지 말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것이라고 하였고, 셋째는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한 것처럼 이 시대 아주 강하게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Sign을 무시하고 산다면 우리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바 없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징조 즉 Sign을 보내주셨는데 에스겔을 통해서 보내주셨습니다. 에스겔 또한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Sign을 보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는 너희 징조다” 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할 수만 있다면 우리 모두 하나님의 Sign을 세상에 알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만약에 그런 자가 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Sign을 보고 깨닫는 자가 되어서 마지막 때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 너는 행구를 준비하고 이사하라.
(겔12:1-16)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네가 패역한 족속 중에 거하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3) 인자야 너는 행구를 준비하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이사하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 (4) 너는 낮에 그 목전에서 네 행구를 밖으로 내기를 이사하는 행구 같이 하고 저물 때에 너는 그 목전에서 밖으로 나가기를 포로되어 가는 자 같이 하라 (5) 너는 그 목전에서 성벽을 뚫고 그리로 좇아 옮기되 (6) 캄캄할 때에 그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며 얼굴을 가리우고 땅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내가 너를 세워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게 함이니라 하시기로 (7) 내가 그 명대로 행하여 낮에 나의 행구를 이사하는 행구같이 내어 놓고 저물 때에 내 손으로 성벽을 뚫고 캄캄할 때에 행구를 내어다가 그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니라 (8) 이튿날 아침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9)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 곧 그 패역한 족속이 네게 묻기를 무엇을 하느냐 하지 아니하더냐 (10)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예조라 하셨다 하고 (11) 또 말하기를 나는 너희 징조라 내가 행한대로 그들이 당하여 사로잡혀 옮겨갈지라 (12) 무리가 성벽을 뚫고 행구를 그리로 가지고 나가고 그 중에 왕은 어두울 때에 어깨에 행구를 메고 나가며 눈으로 땅을 보지 아니 하려고 자기 얼굴을 가리우리라 하라 (13) 내가 또 내 그물을 그의 위에 치고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그를 끌고 갈대아 땅 바벨론에 이르리니 그가 거기서 죽으려니와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 (14) 내가 그 호위하는 자와 부대들을 다 사방으로 흩고 또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15) 내가 그들을 이방인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중에 헤친 후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6) 그러나 내가 그 중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온역을 벗어나게하여 그들로 이르는 이방인 중에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나님은 에스겔의 영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예루살렘의 모든 타락을 낱낱이 보여주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타락을 본 에스겔 선지자는 이제 본격적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본문 12장부터 38장까지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말씀이 계속 강조되고 있는데 이것은 곧 에스겔이 자신의 소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첫 번째 징조를 보이도록 하셨는데 그것은 곧 낮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짐을 싸라고 하였습니다.
왜 에스겔이 이러한 이상한 행위를 해야만 했습니까? 그 답을 2절에서 해주고 있습니다. 패역한 족속이기 때문에 이러한 징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기 때문에 징조를 보이면 혹 생각이 달라질까 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그 어느 시대보다도 하나님이 징조를 많이 보여주고 계신 것은 이 시대가 패역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보고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 사람들이 외면하고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징조를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Sign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외면하고 무시한다면 그들은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무지한 자들입니다.
4-7절까지 주목해서 보면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행구를 어떻게 준비하라고 하였는지 3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낮에 행구를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행구는 포로로 잡혀있는 자의 짐꾸러미인데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들을 의미합니다. 옷과 담요와 약간의 음식과 취사 도구들과 개인적인 물품 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에스겔은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낮에 행구를 준비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에스겔이 갑자기 짐을 싸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둘째는 저물 때에 집 담벽에 구멍을 뚫고 짐을 옮기라고 하였습니다. 성벽은 곧 집의 담벽을 가리킵니다. 에스겔은 집에 대문이 있었지만 하나님 명령대로 담벽에 구멍을 내어 그 구멍으로 짐들을 꺼냈습니다.
셋째는 밤에 짐을 어깨에 메고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밖으로 옮겨 놓은 짐을 어깨에 메고 얼굴을 가리우고 땅만 보고 어디론가 다급하게 도망가는 사람처럼 떠났습니다.
4-7절까지 보면 “목전”이라는 말이 5번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하되 반드시 사람들이 보는 목전에서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에스겔이 이상한 행동하는 것을 낮에서 부터 밤까지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에스겔의 행동을 보고 사람들은 비웃는 자도 있었을 것이고, 무관심으로 지나쳐 버리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징조를 보고 이러한 세 가지 유형의 모습을 사람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형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까?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의 Sign을 보고 비웃거나 무관심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의 Sign을 비웃거나 무관심한 자들에게 그 날에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자신의 Sign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기를 바랬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깨닫지 못한 백성들에게 에스겔은 설명까지 해주었습니다.
8-16절까지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에스겔의 이상한 행동을 본 백성들은 그 다음날 에스겔에게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의문을 가진 그들에게 에스겔은 자세히 설명을 하여 주었습니다.
10절을 보면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예조라” 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이 한 행동은 장차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어 양식이 끓어지면 백성들이 성벽의 구멍을 뚫고 밤에 몰래 도망칠 것이라는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이러한 행동은 B.C 592년 6월 이후에 행해진 것으로 보이는데(겔8:1) 그로부터 6년 후인 B.C 586년에 이 모든 일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유다 왕 시드기야와 군사들은 밤중에 성벽의 구멍을 뚫고 성의 동남편 두 성벽 사이로 얼굴을 싸고 변장하여 몰래 도망치다가 성읍을 포위하고 있던 바벨론 군사의 추격을 받아 왕은 붙잡히고 호위 군사들은 뿔뿔히 흩어지거나 죽임을 당했습니다.
붙잡힌 시드기야 왕은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끌려갔고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과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는 날 까지 감옥에서 지내다가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은 미리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자신의 하나님의 징조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선지자의 말을 외면했습니다. 깨닫기 쉽게 징조를 통해 보여주었지만 믿지 아니했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느냐” 라고 관심은 보였지만 비웃음으로 끝났습니다. 더 이상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습니다.
15절 말씀을 주목해보세요. “내가 그들을 이방인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중에 헤친 후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후에야”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6절 말씀도 주목해보면 하나님의 심판을 목격한 몇 사람을 살려두어서 그들이 자백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라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라는 말씀이 약 57번 기록되어 있는데 에스겔서에서만 50번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전하고자 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쓰임 받고 위대한 선지자들이지만 에스겔은 특별히 더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당하고서야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큰 일을 당하고 난 후 그때서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는 무지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고 살아가기 위해서 자연을 통해서 얼마나 깨닫게 하고 계십니까? 이 봄에 산들이 파랗게 변하는 것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곳곳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타락되어져 가는 것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징조인데도 모르고 무관심하게 덤덤하게 살아간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했던 그 고통을 똑같이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왜 Sign을 보내주시지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귀가 있어도 듣지 않으니깐 혹시라도 Sign을 보여주면 보지 않을까? 듣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인데 이 Sign 마져도 외면한다면 참으로 무지한 자들이고 패역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행구를 싸서 떠났던 에스겔처럼 오늘날도 우리가 언제 짐을 싸서 떠나야 할지 모르는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너무 안주하지 말고 깨어있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너는 떨면서 식물을 먹고 물을 마셔라.
(겔12:17-20)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8) 인자야 너는 떨면서 네 식물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네 물을 마시며 (19) 이 땅 백성에게 말하되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거민과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그들이 근심하면서 그 식물을 먹으며 놀라면서 그 물을 마실 것은 이 땅 모든 거민의 강포를 인하여 땅에 가득한 것이 황무하게 됨이라 (20) 사람의 거하는 성읍들이 황페하며 땅이 황무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 번째 행동을 하게 하시면서 징조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두려움으로 떨면서 식물을 먹고 마시라는 명령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Sign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앞으로 예루살렘에게 처하게 될 상황인데 백성들이 너무도 두려워 식물을 먹어도 두려움 속에서 먹고, 물을 마셔도 근심 가운데서 마시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성읍은 B.C 588년에 포위되어 3년 동안 성이 가뭄과 기근 속에서 허덕였습니다.
(왕하25:1-3) “시드기야 구년 시월 십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사면으로 토성을 쌓으매 (2) 성이 시드기야왕 십 일년까지 에워싸였더니 (3) 그 사월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진하였고”
그 때 예루살렘 성 안에서는 자식을 잡아먹고 친구를 잡아먹는 비참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백성들은 외면했습니다.
(렘19:9) “그들이 그 대적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핍을 당할 때에 내가 그들로 그 아들의 고기, 딸의 고기를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고기를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
에스겔 4장에서 보았지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기근에 대한 예언을 하셨고 에스겔에게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섞어서 390일 동안 먹되 음식물을 저울에 달아서 하루 20세겔만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20세겔이면 230g 정도 되는 극히 적은 양인데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하루에 20세겔만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물도 하루에 6분의 1힌 정도만 먹으라고 하였는데 0.6리터 정도의 적은 물로 하루를 산다는 것은 곧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에스겔에게 하라는 것은 예루살렘이 마지막 심판 때 그러한 가뭄과 기근 속에서 멸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Sign 이었습니다.
3월22일 워싱턴포스트ㆍ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미 국가정보국(DNI)은 공개 보고서를 통해 “물이 국가 간 분쟁에서 무기화할 가능성이 있으며 더 나아가 테러리스트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물부족이 가장 심각한 나라라고 발표했습니다. 전 세계는 10년 안에 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이 마지막 때 징조 중 하나인 “처처에 기근이” 있겠다는 말씀과 일치하기도 합니다. 또한 계시록 6장에서 셋째 인이 떼어질 때 세상에 기근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도 예루살렘 성처럼 이 땅에도 무서운 기근이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에스겔을 통해 Sign을 보내주셨던 것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은 Sign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예루살렘이 기근 속에서 허덕이다가 멸망 받았던 것처럼 이 세상도 무서운 기근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할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예언하고 있는데 아무리 인간이 “아니다” 라고 말할지라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계시록은 “장차 될 일”을 기록한 말씀들입니다. 그 누구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반드시 속히 이루어질 일들입니다. 아무리 거짓 선지자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 있는 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은 절대 멸망하지 않고 우리들은 속히 해방될 것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의 이미 계획된 스케줄은 바꾸지 못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거짓 선지자들의 말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말이었고, 선지자들의 말은 실망과 근심을 주는 말 이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은 지금은 듣기 좋을지 몰라도 그 말은 하나님과 영원히 멀어지게 하는 악한 세력의 미혹의 소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의 모습으로는 하나님 자신과 함께할 수 없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고통의 시간을 통해 다시 새로워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또한 어떤 고통의 시간을 통해 새로워져야 합니다. 오직 예수 안에 살면서 당하는 고난은 고난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심판은 속히 이루어질 것이다.
(겔12:21-2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2)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뇨 (23)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속담을 그치게 하리니 사람이 다시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 속담을 못하리라 하셨다 하고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날과 모든 묵시의 응함이 가까우니 (24) 이스라엘 족속 중에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라 (25)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패역한 족속아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26)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7)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말이 그의 보는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 그가 먼 때에 대하여 예언하는도다 하나니 (28)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않을지니 나의 한 말이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에게 보였던 두 가지의 징조를 통해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심판을 지체치 아니하고 속히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흔히 사용되는 속담이 있었는데 그 두 가지 속담을 하나님을 말씀하시면서 반드시 더 이상 더디지 아니하고 이루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속담은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21-25절)
다시 말해서 이 말은 “선지자가 예언한 말은 세월이 지나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라는 것입니다. 이 말 속에는 선지자들에 대한 불신과 비웃음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대한 깊은 뜻을 모르고 이러한 속담까지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더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 만든 속담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23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 속담을 그치게 하리니 사람이 다시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 속담을 못하리라”
24절도 보세요 “이스라엘 족속 중에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하리라”
그리고 25절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아니하고 심판을 내리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세상이 심판 당하고 이 세상이 없어질 것을 믿으십니까? 2천 년 전부터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세상은 심판 당하실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자 사람들은 의미하기 시작하였고 믿지 못하고 있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자들은 계시록은 영적인 사건을 기록한 것이지 실제로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떠들고 있기 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고 계심을 모르고 있는 무지한 자들의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이러한 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이미 예언하셨습니다.
(벧후3:3-4)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예수님이 마태복음 24장에서도 악한 종의 기준을 “주인이 더디온다” 고 하는 주장하는 자들이라고 언급을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 재림이 더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 한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25절 말씀처럼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오실 것입니다.
(히10:37)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계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오늘날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볼 때 예수님 오실 때가 심히 가까워오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들은 주의 종들은 이 놀라운 소식을 알려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신랑이 오신다” 할 때 열 처녀가 모두 깨어났던 것처럼 오늘날 이 시대에 잠자던 자들을 깨우칠 수 있는 복음은 “예수님이 곧 오신다”는 복음을 전할 때 깨어날 것입니다.
더디게 오신다고 재림이 없는 것이 아니고,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더디게 오신 만큼 이제 속히 그 날이 우리 앞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깨어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 속담은 선지자들의 묵시는 먼 후일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앞에 속담에 비하면 이 속담은 상당히 믿음 있는 자의 말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먼 훗날에 이루어질 것이므로 지금은 편안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속담 또한 선지자들을 불신하고 있고 하나님 말씀을 불신하고 있는 말입니다. 어떤 의미로 보면 앞에 말보다 더 무서운 말입니다.
선자지들의 말을 아주 정면으로 불신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예언에 대해 아주 부정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예언이 먼 미래에 일어날 것이므로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방관자의 태도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 나하고는 상관없으므로 회개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고 현실에 만족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고 예수 믿는 자들 중에 이런 자들이 많습니다.
예수님 재림을 외쳐도 자신들 시대에도 오지 않을 것이니깐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무서운 심판을 외쳐도 자신들 시대에는 오지 않기 때문에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는 알았지 둘을 모르고 있는 무지한 자들입니다. 종말과 심판이 역사적 종말과 심판만 있나요?
오늘 밤에라도 나를 데려가면 그 사람에게는 종말과 심판은 바로 오늘밤입니다. 종말과 심판이 나와 상관없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역사적 종말과 심판도 분명히 있지만 개인적인 종말과 심판도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 날이 지체하지 않고 오늘밤이라도 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시대에 예수님 재림이 없을 것이라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습니까? 장담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세월이 너무 빠릅니다. 함부로 헛된 생각하지 마시고 깨어있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에스겔을 통해서 이러한 징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바벨론 포로로 있는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고 바벨론 땅에서 7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야한다는 사실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에스겔 선지자의 말보다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더 믿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거짓 선지자들이 백성들에게 듣기 좋은 말로 미혹 했겠습니까?
우리 속담에 “듣기 좋은 말은 아무리 들어도 싫지 않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듣기 좋은 말만 들은 사람이 올바른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어린 아이에게 “잘한다 잘한다” 칭찬만 한다고 그 어린아이가 올바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자란 어린아이는 올바른 인생을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직언(直言)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충신의 직언이 그 나라의 명운을 가른다”는 말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종이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면 세상을 향해 직언을 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직언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12장 본문 속에만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라는 말씀이 5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사람들이 비웃던지 말던지 외면하던지 말던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향해 이 시대 하나님이 보여주신 Sign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오직 예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