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정리: 2001.8.26
11:45백무동-12:20첫나들이폭포-12:30지곡갈림길-13:15무명폭포-13:50내림폭포-14:05장군대-14:40장터목산장-15:30중식및출발-15:50망바위-16:15소지봉-14:20참샘-14:35하동바위-17:00백무동
오늘 산행은 예정되지 않았으나, 다행히 오전에 일을 일찍 마치게 되어 벙개로 10시에 광주에서 출발하여 지리산을 향한다. 당일 지리산행으로는 늦은 시간이다. 하지만 어떠랴. 늘 그리워하던 지리산인데. 백무동에 도착 시간은 12시. 해가 부쩍 짧아진 요즘 주능에서 최소한 오후 서너 시에는 하산해야 해서 짧은 루트로 산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백무동 주차장 아래 넓은 비포장 공터에 주차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차비를 받지 않았었는데 올해부터 4,000원씩 받으니 만만치 않은 요금이다. 백무동 주차장엔 많은 관광버스와 자가용이 즐비했으며 마지막 휴가를 즐기기 위하여 가족 단위로 휴가객들이 백무동계곡 아래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아직도 더운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광주에서는 백무동과 뱀사골, 화엄사와 피아골, 화개동천이 비교적 가까운 지리산 등산코스로 연결되어 자주 찾게 되는데, 백무동은 내가 가장 선호하는 코스이기는 하나, 이곳에 들어온 것은 거의 일 년 만이다.
산행 준비물을 점검하고 등산화 끈을 질끈 동여맸다. 매표소를 통과한다. 무슨 통계를 내려는지 입산자의 신상기록을 한다. 백무동 마지막 민박집 한양산장을 지나 좌측으로 오르는 하동 바윗길을 버리고 한신계곡 쪽으로 향한다. 하동 바윗길은 하산 코스로 생각을 하였다. 한신계곡에는 많은 피서객으로 붐비고 있다. 계곡의 물가에 앉아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있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고스톱을 치느라고 정신이 없는 모습들이다.
우측의 한신계곡을 따라 비교적 평탄하고 넓은 길이 첫나들이 폭포까지 계속된다. 요즘 들어 부쩍 입산 통제구역을 많이 다녀 한편으로는 양심에 꺼리지만, 이번 한 번만 하며 지리 산신께 선처를 구한다. 한신 지계곡으로 장터목산장으로 오르기로 한다.
한신 지계곡은 이름 그대로 한신계곡의 지류이다. 백무동에서 장터목으로 직등하는 루트이다. 사실 지계곡은 한신 주계곡보다 더 아름다운 선경과 비경을 지니고 있어 매혹적인 등산로이다. 이 루트는 94년 9월 직장 동료들과 다녀온 이후, 최근에는 오른 일이 없어 생소하나 그때의 기억을 더듬는다. 지난 98년 여름 지리산 집중호우 때 계곡들 대부분이 파헤쳐졌고 협곡의 한신 지계곡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동안 험로로 변했으며 산행을 통제 중이며 그 비경을 잃었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짙푸른 녹음 아래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니 첫나들이 폭포가 나온다. 한신계곡과 지계곡을 오르기 전 제일 처음 만나는 폭포이다. 그래서 첫나들이 폭포란 명칭이 붙었다. 폭포 주위에는 역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여흥을 즐기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매표소를 통과한 지 삼십 분도 못 되어 지계곡 갈림길에 섰다. 이곳에서 다리를 건너 오르면 세석산장으로 가는 길이다. 지계곡 들머리에는 입산 통제구역임을 선포하는 푯말이 쳐있고 이중으로 막아 놓았다. 다리를 건너 지계곡을 따라 올라가도 되지만, 지계곡 입구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서 눈에 안 띄게 이 길로 들어선다.
수풀이 우거진 산비탈을 양손으로 헤치고 지계곡의 계류를 바라보고 올라가서 곧 계류를 만난다. 지계곡 계류에도 역시 많은 사람이 몰려 있다. 여기서 등산로가 끊기는 듯하지만, 당황하지 말고 약간의 인내심을 갖고 계곡을 따라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우측으로 길이 열려 있어 그 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몇 년 동안 출입통제 구역으로 잡아 놓았기 때문에 등로가 가물가물하며 희미하다. 표지기도 적은 편이며, 최근 들어 산행한 산꾼들이 없어 표지기의 색깔이 누렇게 변색하여 익숙하게 눈에 들어 오지도 않는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비탈 길을 올라가다 계류를 건넌다. 지리산의 숨은 속살을 지키려는 듯, 맑은 물과 빼어난 계곡의 장관이 이어진다.
지계곡 갈림길에서 50여 분 올라가니 무명폭포를 만난다. 해발 1,050m의 고도에 있는 이름 없는 폭포. 그 높이가 20m 정도에 2단으로 멋진 바위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이 멋진 폭포의 이름이 무명폭포라니. 왜 굳이 무명폭포라 했을까. 한신계곡은 지리산에서 폭포가 제일 많은 곳이라 그에 걸맞지 않은 이름을 갖게 되었다. 거침없는 시원한 물줄기와 하얀 물거품을 토해낸다. 무명폭포를 우회하여 오른다. 시원한 계류에 얼굴을 담그고 물을 마셔 입안을 상쾌히 헹군다. 조그만 수통에 약간의 물만 받았다.
이 지계곡의 흐르는 물은 거의 장터목산장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이어지는데, 따라서 물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지리산의 유일한 코스이기도 하다. 십여 분 올라가다 다시 계류를 건넌다. 칠선골과 마찬가지로 주능에 도달할 때까지 계류를 십여 차례 건너야 하니, 역시 비가 많이 오는 날의 지계곡 산행은 금물이다. 가는 길목엔 간혹 산죽과 너덜도 만난다. 길가에 쓰러진 크고 작은 풍도목도 만난다. 북쪽의 음지에는 고사리와 이끼들이 무성하고, 화려한 색채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독버섯들도 보인다. 하지만 등산로 자체는 그리 험로는 아니다. 얼마 후 연하봉에서 흘러온 물과 만나는 작은 계곡 못 미쳐 또 폭포를 만나는데 천령폭포이다. 20여m의 와폭이다.
지금의 시각은 오후 1시 40분. 지계곡이 Y자 모양으로 다시 갈라진다. 계곡 좌측은 장터목으로 오르고, 오른쪽은 연하봉과 촛대봉 쪽으로 갈라지는 골짜기이다. 오른쪽 골짜기로 치고 올라가면 과연 주능의 어느 지점에 도달하게 되는지 궁금하다. 언제 이곳도 가봐야 할 거 같다. 계곡 좌측 길을 따라 십여 분 올라가니 해발 1,150m의 내림 폭포가 반긴다. 표지판을 보니 장터목 3Km, 백무동 7Km. 하지만 좌측의 내림폭포를 바라보며 미끄러운 바위로 조심해서 올라 바라본 이정표에는 장터목 2Km, 백무동 4.2Km로 표기가 되어있어 거리 차이도 크게 나서 어느 것이 맞는지 헷갈렸으나 주능선의 공제선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져 온다. 이 깊고 깊은 북향의 지계곡은 저녁 시간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비가 오면 낭팬데 투덜거리며 부지런히 능선을 향해 치고 오른다. 다행히 길을 헷갈리지 않고 잘 찾을 수 있었다.
2시가 되어 도착한 곳이 일명 장군바위 또는 장군대. 널따란 암반이 계곡 아래로 근사하게 뻗었고, 이곳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함양폭포. 그 위의 넓은 안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백무동계곡과 마천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십 명이 앉아서 휴식을 취해도 될 만큼 평평한 반석으로 되어있다. 정말 경치가 멋진 곳이다. 이젠 장터목산장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대략 30여 분만 치고 올라가면 된다. 이 높은 곳에 아직도 물소리가 들려 오니 대단한 계곡이다. 지금까지의 오름 길은 그리 힘겹지 않았는데 주능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도 예상외로 된비알은 나오지 않는다. 산장 근처의 주능에선 산님들의 외치는 소리, 말소리가 들려 온다. 여기서 약간 긴장을 한다. 계속 오르다가는 낭패다. 국립공원공단 직원이나 다른 산님들의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
지계곡을 오르면서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굴리지 않았다. 반달곰도 만나지 않았으며, 다람쥐만 두어 마리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엄연히 이곳은 야생동물과 반달곰 보호구역이며 통제구역이다. 지금까지 보통 이곳을 험로로 입산을 통제했었는데 올봄에 가내소폭포-장터목과 칠불사-토끼봉 구간 2곳이 반달곰 보호지역으로 추가 지정받았다. 이윽고 슬쩍 연하봉 쪽으로 우회하여 눈앞에 나타난 것은 장터목산장. 이곳에는 과거 텐트를 쳤던 야영지가 많았었는데,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노력으로 수풀을 이식하여, 과거 흔적이 조금밖에 남지 않고, 예전의 상태로 원상 복귀가 되고 있다.
장터목산장에 도착하니 2시 40분. 12시에 백무동 매표소를 지났으니, 이곳까지 불과 2시간 40분이 걸렸다. 안전시설이 없는 험준한 루트였으나 된비알이 적어 휴식 시간도 없었다. 장터목에서 사위를 살핀다. 서쪽을 바라보니 희미한 반야봉과 서북 능선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덕두산, 바래봉, 세걸산, 만복대. 그리고 노고단. 중북부 능선의 삼정산과 영원령, 명선봉도 보인다. 남쪽을 바라보니 중산리계곡과 구곡산까지 이어지는 황금능선과 주산의 모습도 보인다. 최근 장마철의 거듭되는 산행에 가스와 구름이 차올라 별다른 조망은 하지 못했었다.
장터목 산장은 많은 산님들로 오늘도 붐비고 있다. 천왕봉, 중산리, 세석평전, 백무동 등 갈 길은 모두 다를 것이다. 점심을 먹는다. 아까 휴게소에서 김밥 도시락을 사면서 국수 한 그릇을 먹었는데, 에너지를 다 소비하고 뱃속이 촐촐하여 시장기를 느낀다. 점심을 먹고 한참을 머문 후 시간을 보니 3시 30분. 이윽고 하산 시간이다.
세석평전에서 한신계곡으로 하산하려 잠깐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시간이 부족하다. 오랜만에 하동 바윗길을 찾는다. 하동 바윗길은 가장 뻔질나게 천왕봉을 오르던 코스였는데, 최근에는 다른 곳을 다니느라 챙기지 못했다. 당일 산행으로 올라온 산님들은 보통 하동 바윗길로 하산한다. 하동 바윗길은 자잘한 돌길로 유명한데 하산길에 주의하여야 한다. 발을 잘못 헛디디어 삐끗하거나 넘어질 수 있다. 또 많은 산님이 무릎을 다치기도 하는데 쌍 스틱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망바위를 지나 소지봉에 도착하였다. 소지봉은 별로 특징이 없는 평탄한 맨땅으로 되어있어, 많은 사람이 소지봉의 이름과 위치마저 모르고 지나다니기 일쑤인데 이곳에서 칠선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산님은 거의 없다. 드디어 돌길이 시작된다. 참샘에도 많은 산님이 휴식을 취하고 있어 패스한다. 철다리를 건너 근사한 하동 바위를 지나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니 이내 곧 백무동 야영장이다.
장터목에서 백무동까지 하산 시간은 불과 1시간 30분. 너무 빨리 내려왔나? 백무동 야영장과 상점 앞에는 산행을 끝내고 뒤풀이하는 산님들이 술잔을 부딪치며 즐기고 있다. 홀로 산행을 다니는 나는 사실 그러한 시간을 갖는 그들이 무척이나 부럽다. 식당 살구나무집에 앉아 막걸리 한 병과 파전을 찢어 먹고 시간을 보낸다. 오늘의 산행 시간은 오름길 2시간 40분, 하산길 1시간 30분, 역대 지리산행 중 짧은 총 4시간 정도의 산행이었다. 막걸리 한잔에 행복의 파도가 밀려온다. 그리고 지리산에 취했던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