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햇불 낙지 잡는 체험을 꼭 하고 싶다고 하였다. 아니 오래 전부터 해 보고 싶은 일이라고 말하였다. 몇 번째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친구에게 좋은 추억을 갖게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 집이 동네 갯벌을 임대해서 여러 차례 햇불 낙지를 경험한 나로서는 조금 마음을 쓰면 되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가던 날이 장날이다.'라는 말은 어젯밤 사태를 예견하는 딱 들어 맞는 표현이다. 옛말은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는 신념은 나이들어 갈수록 시행착오 속에서 뼈에 사무치게 되새기곤 한다. 옛사람의 지혜를 공감하고 좌절하고 도전을 두려워하며 그래저래 나이들어 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친구의 버킷리스트를 채워줄 선의는 몸과 맘의 피로 속에 깊은 낙심을 하였다.
햇불 낙지를 하려면 조수간만의 차를 고려해야 한다. 햇불 낙지는 밤 시간 때 썰물이 발목에 차는 지점에서 바닷물을 따라 내려가며 물 위에 이동하는 또는 밤마실 나온 낙지를 손으로 잡는 아니 줍는 방법이다. 날씨나 바람의 세기를 잘 고려하면 양동이 가득 채울 수도 있지만 날씨나 기온에 따라 갯벌을 서너 시간 헤매고도 헛탕을 치기 일수다.
밀물과 썰물은 섬에서 태어난 나조차도 헷갈리는 개념이다. 밀물은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는 현상으로 물이 찰 때 또는 물이 들어올 때를 뜻한다.밀물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표현은 기억하기 좋을 듯도 하다. 그렇다면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갔다는 표현도 비유적으로 좋을 듯하다. 썰물은 밀물의 반대 개념으로 조수간만의 차이로 해수면이 하강하는 물이 빠지는 현상을 의미하는 단이다. 밀물의 정점이 만조라면 썰물의 정점은 간조이다. 바다는 하루는 두 번 씩 밀물과 썰물이 반복된다.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이유는 지구, 달, 태양 사이의 당기는 힘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런 이유 때문인지 날씨가 흐린 날은 간조가 줄어들어 갯벌에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기도 한다. 그만큼 바다는 날씨와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다. 어제는 해와 동시에 간조가 진행되어서 그나만 썰물 때 중에서 햇불 낙지를 하기 좋은 날이었다.
일주일 전 친구의 간절함을 듣고 남편과 상의해서 친정 동네 바다로 햇불 낙지를 잡으러 가자고 했더니 친구는 뛸 듯이 기뻐하였다. 하지만 바람이 불거나 갯벌 물이 흐려지면 햇불 낙지의 수확량은 장담할 수가 없다. 어젯밤은 딱 그런 날이었다. 바람의 파고가 10미터나 되는 허탕을 감당해야 하는 날씨였다.
하지만, 10여 만원이나 들여서 갯벌 일꾼 수중작업복과 랜턴 등 여러 장비를 구비했다면서 착용한 모습을 찍은 친구의 설렘 가득한 사진을 받아 보는 순간 약속한 일이니 추진을 할 수밖에 없었다. 2박 3일 밤낚시를 하고 와서 수확량도 장담할 수 없으니 진짜로 가고 싶지 않다는 남편까지 설득해서 밤길 운전의 두려움마저 누르고 친구들과 남편을 태우고 고향 바다로 향하였다.
불길한 예감은 매번 빗나가질 않는다. 새로운 작업복을 착용한 친구와 나는 갯벌을 걷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특히, 남편의 새 작업복을 착용했던 나는 발사이즈 맞지 않았던 탓인지 발과 장화가 따로 놀았다. 갯벌에서 발이 빠져서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계속 빠져들었다. 의욕이 넘쳤던 친구는 어찌저찌 앞으로 나갔지만 바다 한가운데서 뒤쳐져 옴짝달짝도 하지 못하고 서있었다. 발을 빼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이 갯벌 속으로 발이 들어갔다. 이러다 밀물이 들면 사람이 죽을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마저 들었다.
한두 번 갯벌에 옴짝달짝 못하는 나를 위해 친구의 구출이 있었지만 안되겠다 싶어 낙지 잡는 것을 포기하고 두 발이 아닌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서 겨우 갯가로 빠져 나왔다.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들어간 시간과 나온 시간을 확인해보니 1시간이 걸렸다. 갯벌과의 사투만 1시간하고 포기를 한 것이다. 인생에 매번 포기를 하였지만 이번 포기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체력적인 문제와 정신적인 문제 사이에서 나 자신에게 위로를 해야할 지 실망을 해야할 지 선택지를 찾지 못했다. 너무 지치고 힘이 들었다.
생에 처음 한 햇불 낙지의 수확량을 너무 초라했다. 참꼬막 한 개를 엉금엉금 기다가 잡은 나와 친구 두 사람이 2시간 동안 갯벌을 다니면서 잡은 양은 한 사람 양동이도 채울 수가 없었다. 네 사람이 전부 합쳐야 작은 소라 몇 개, 키조개 두 개, 낙지 한 마리가 전체 수확량이었다. 낙지잡이 고수가 다 되었다고 큰소리를 쳤던 남편 조차 수온이 너무 낮아서 오늘은 힘들겠다면 3시간만에 철수를 하고 말았다.
모두가 힘이 들고 지쳐있었는데 집으로 오기 전 숨도 돌릴 겸 차에 둘러앉아 친구가 준비해 온 쌍화차, 커피, 방울토마토를 마시며 친구는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햇불 낙지 소득이 없는 것에 미안해하는 우리 부부와 달리 친구는 자신의 체험을 되새기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똑같은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느라 내 감정까지 돌보지 못하고 미안해하고 힘들어만 하였던 나였다.
친구와 함께 온 또다른 친구는 다음에는 절대 오지 않겠다고 하는데도 내 친구는 햇불 낙지를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고 하였다. 상황이 바뀌거나 다른 것도 아닌데 우리는 스스로 감정을 불러와서 갯벌 위에 서서 앞으로 나가지도 되돌아서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그 상황에 매몰될 때가 있다.
처음 햇불 낙지를 하기로 결정했던 순간의 선의와 호의를 생각해 보면 서로서로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낙지를 잡아서 이사람 저사람 나누어주겠다고 여러 친구들에게 공약을 하였다는 친구의 호언장담에 어이없어 하며 웃었던 결과를 받아들였어도 따로 물질적으로 우리가 주문을 받은 것도 아니고 나눌 수 있는 기쁨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거워하였던 그 선한 마음을 체험하였던 밤이다.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해석을 긍정적으로 할 수는 있다. 평가나 판단보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끌어내는 삶의 체험과 경험을 볼 수 있는 마음을 불러내도록 정리해 보려고 한다. 갯벌을 만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엉금엉금 기어나와도 스스로 밖으로 나온 나를 대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았으니 말이다.
날씨 좋고 바람 잔잔한 날 친구에게 다시 햇불 낙지를 가자고 하면 어떨까? 생각만으로 벌써 웃음이 나온다. 아침 일찍 친구는 밥상에 올린 소라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왔다. 어젯밤은 생각만해도 미소가 나온다면 흐믓해한다. 참, 사랑스러운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