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인간의 삶은 누구나 생로병사 이외에도 사람과의 갈등, 사회 속의 소외감, 사상과 이념 간의 고독 등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런 질곡으로부터 고통을 완화시키고 해방을 시켜주는 고귀한 활동이 종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게 만드는 가장 최고의 명약이다.
문학 역시 종교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 문학도 인간의 불완전성과 한계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방법론이며 최고수준의 정신활동이다. 바로 문학을 통해서 인간은 더욱 인간다워지고 성숙해질 수 있다. 문학은 삶을 투영하고, 그 삶은 문학을 반영한다. 때로는 문학보다 치열한 삶이 있는가하면 삶보다 리얼한 문학이 있다. 그런 까닭에 문학은 인생의 길잡이라는 말도 있다. 이처럼 문학은 우리 삶에서 종교와 함께 가장 밀접한 생의 반려자인 셈이다.
『레 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이다. 「위고」는 「세익스피어」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최고수준의 대가이다. ‘레 미제라블’은 ‘불행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이다. 이 소설은 법질서와 인간 중심의 인도주의적인 세계관 사이에서 인간의 원죄와 구원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 방향을 제시해 준다.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인 「장 발장」은 부모를 잃고 가난한 과부 누나의 일곱 아이들을 돌보며 지내던 중 어린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치다 체포되어 4년형을 받았다가 탈옥한다. 그러나 실패하는 바람에 추가 형을 받아 19년을 감옥에서 지낸다.
감옥에서 나왔지만 사람들은 전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음식도 팔지 않았고, 숙박도 거절했다. 한 아주머니의 권유에 따라 「장 발장」은 「미리엘」 신부를 찾아가고, 그는 친절하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한다. 왜 자신을 경계하지 않느냐는 「장 발장」의 질문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한 형제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충동적으로 신부의 유일한 귀중품인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잡혀 신부 앞으로 끌려온다. 신부는 “왜 가져가라는 은촛대는 가져가지 않았소?”라고 말하며 감싸준다. 그는 신부의 자비심에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이름을 「마들렌」으로 바꾸고 어느 도시에서 공장을 차려 큰 부자가 되는데 자신의 부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면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그 도시의 시장이 된다.
그러나 「자베르」 경감은 그의 정체를 의심하여 집요하게 파고든다. 경감은 원칙론자로 법률은 모든 사람에게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고 믿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장 발장」으로 오인되어 누명을 쓰고 벌을 받게 되자 「장 발장」은 스스로 법정에 나가 자신이 진짜라고 고백한다. 그는 곧 탈옥하여 파리로 숨어들어 예전에 자신이 도와주었던 여공인 「팡틴」의 딸인 「코제트」를 키우며 어느 수도원의 정원사로 일한다.
「코제트」가 자라 개혁적인 「마리우스」와 사랑을 하게 된다. 「장 발장」은 왕당파와의 시가전에서 총상을 입은 「마리우스」를 구하여 「코제트」와 결혼을 시킨다. 개혁파 속에 숨어 왕당파의 첩자 노릇을 하던 「자베르」 경감은 신분이 탄로나 처형당하게 되자 「장발장」이 남몰래 그를 풀어준다. 결국 「자베르」는 자신의 신념이 패배했음을 인정하고 센강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장발장」은 「코제트」와 「마리우스」에게 이런 유언을 남긴다. “벽난로 위에 있는 두 개의 ‘은촛대’를 너희에게 주마. 그것을 내게 주신 분이 지금 하늘에서 나를 보고 만족하실지 모르겠구나!”
이 소설은 프랑스어 원문으로 65만 5,478개의 단어로 쓰여 진 역사상 가장 긴 소설 중 하나이다. 한국어 번역본인 민음사의 『레 미제라블』도 5권 분량이다. 어휘도 엄청나게 풍부해 63만 단어 중에는 약 2만 개의 다른 단어들이 있다고 한다. 작가가 마치 영국에서의 「세익스피어」처럼 프랑스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유다. 그 위상은 현대까지 이어져 프랑스 국내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 한다.
주인공인 「장 발장」 외에도 거의 모든 등장인물에 대한 배경과 실상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830년대를 전후로 하여 빵을 훔친 탈옥수, 부모에게 학대당한 아이, 산업 발전과정에서 처절하게 사회 밑바닥 끝까지 버림받은 여직공, 전쟁터에서 이유도 모르고 죽어간 장병들, 「나폴레옹」 지지자라는 이유로 왕당파인 다른 가족에게 의절당한 청년, 사기꾼 부모 때문에 콩가루가 된 가족,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야심찬 젊은이들의 좌절, 평생을 농노처럼 겨우 목숨을 부지했던 민초들, 그리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직무 수행을 했으나 결국은 거대한 사회변혁의 조류에 휘말려 자살의 길을 택한 경찰 등 프랑스의 많은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Les Misérables)' 들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되고 있다.
현재에도 존재하는 그들의 서술만 따로 떼 놔도 한 편의 소설이 될 수준으로 서술이 방대한 분량이다.
이러한 서술은 정교하게 구성된 작가의 의도에 따라 가장 중요한 「장 발장」과 「코제트」를 중심으로 그들 주변의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어떻게 살았는지를 극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어쨌든 다양한 인물들 덕분에 문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 생활 모습 등을 알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특히, 워털루 전투장면은 오히려 정통의 전쟁사보다 생생하다. 마치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나폴레옹」과의 전투과정을 묘사한 장면과도 흡사하다. 현장답사로 확인을 했던 위대한 작가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아무리 이 사회를 오직 법의 기준으로 이끌어가려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바로 숭고한 신의 사랑과 자비 없이는 법의 집행도 한낱 물거품일 뿐이다. 사회발전이 늦으면 늦을수록 가장 고통을 많이 받는 계층은 사회약자계층이다. 자본주의의 장점이 많이 있으나 모두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한다. 물론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라고 일갈하면 더 할 말이 없다.
일찍이 「마르크스」 학문 연구가 막혔던 이 땅에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그 참된 의미를 천착한 학자가 바로 영국에서 공부한 「김 수행」 전 서울대교수이다. 당시까지 금서였던 『자본론』 3권을 연구하여 한글판 『자본론』 5권으로 번역한 서적을 출간하였다. 이미 사회,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공산주의는 자유민주주의에 패배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는 90년대 초에 『자본론』을 소개하였다.
그는 2015년에 사망하기 직전에 쓴 『자본론 공부』에서 보다 진일보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 책은 『자본론』에 대한 깊은 분석을 통해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하면서 현재의 자본주의 문제점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지를 제시하였다.
얼마 전에 지인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두 분이 동시에 추천을 해준 책이 MIT 경제학과 교수인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와 하버드 정치학과 교수인 「제임스A. 로빈슨(JAMES A.ROBINSON)」이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였다. 이 책은 오늘 날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국가 간 소득 불평등 문제를 매우 심도 있게 다루었다. 매우 예리하고 정확한 분석으로 빈부의 차이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였다. 한마디로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적인 정치·경제 제도가 발전과 번영을 불러오고, 지배계층만을 위한 수탈적이고 착취적인 제도는 정체와 빈곤을 낳는다는 것이다.
포용적인 제도는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유인을 제공한다. 국가실패의 뿌리에는 이런 유인을 말살하는 수탈적 제도가 있다.
저자들은 경제적 번영의 길을 가려면 무엇보다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도를 만드는 것은 정치이고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결국 한 나라의 진정한 가치는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지론이다.
어쨌든 「위고」의 소설은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에 대한 사회고발적인 주제를 풀어낸 소설이다. 인류가 생존하는 한 이런 문제는 공존할 것이다. 하지만 구성원 모두가 약자와 가난한 이웃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포용하고 구제하는 활동을 병행한다면 이 사회는 더욱 번창하고 인간다운 품격을 유지할 것이다. 한편 우리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말이 일치하는지 조세정의 차원에서 면밀히 살펴볼 일이다. 소수에게 독점적으로 집중, 세습되는 자본구조 역시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절대빈곤계층의 퇴치에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대대적인 보호망을 구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각지대에서 소리 없이 죽어가는 생명이 구제를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악습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념을 벗어난 인권에 관련된 인본문제이기도 하다. 국가나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를 당해 인간 이하의 삶을 영위한다면 이는 정상적인 국가라고 할 수가 없다. 소설을 통해 우리 현실에 대한 자각이 필요한 이유다. 오히려 애완동물만도 못한 생활이 어찌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있겠는가!
(2024.6.23.작성/6.26.발표)
※순수한 개인의 관점이니 그냥 스치는 느낌으로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