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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 열린 문
성경 본문 : 요한 계시록 3장 8절
설교 자 : 박 한서 목사 <2024년 8월 4일 주일 오전>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우리는 매주 <요한 계시록>을 공부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 계시록> 3장 8절 말씀입니다.
8절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1) 칭 찬 -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1) 여러 견해.
① 선교의 문
<빌라델비아> 도시가
1세기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지역 이었다.
이것을 근거로 선교의 문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홀츠만 [Holtzamann], 알포드[Henry Alford], 클라크[Clarke],
왈부르드[J.F. Walvoord] 등이 지지한다.
② 천국의 문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놓았으므로 닫을 이가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
모리스. 래드. 마운스[R. H. Mounce], 리스트[Rist] 등이 지지한다.
래드[G. E. Ladd] : 문맥으로 볼 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절대적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하나님 나라의 문에 접근 할 수가 있다.
[반즈 성경주석 <요한 계시록>. pp. 75~76.]
모리스[C. L. Morris] : 메시아의 영광에 들어가는
입구라는 해석이 타당 하다.
[신약 주석시리즈 제20권 <요한 계시록>. p. 96]
③ 그리스도
양의 문이라는 말씀대로 그리스도로 해석한다.
<요한복음>10장 7절 말씀에
7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2) 저자의 견해.
문자적으로 <빌라델비아>가 교류의 중심지였듯이
예언적으로는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을
예표 하는 것으로 본다.
① 역사적인 의미
위치적. 행정적. 군사적. 인 입지 조건을 갖추었다.
② 복음적인 의미
<사도행전>이나 <바울>서신을 보면
'열린 문 = <선교>의 문' 이라는 등식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14장 27절-28절 말씀에
27절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28절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고린도 전서>16장 8절-9절 말씀에
8절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 물려. 함은
9절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고린도 후서> 2장 12절-13절 말씀에
12절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절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골로새서> 4장 3절 말씀에
3절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③ 예언적인 의미
18-19세기에 <미국>의 주도로 선교의 문이 활짝 열렸다.
교회사에서도 <헬라>문화를 전파하는 전초기지가 되듯이
예언적으로도 선교시대를 예표 하는 교회로 상징되었다고 본다.
열린 문이란?
⒜ 구원의 문이다.
<요한복음> 3장 18절 말씀에
18절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 예비처의 문이다.
<요한 계시록> 12장 6절.14절. 말씀에
6절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 이백 육십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14절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마태복음> 25장 10절 말씀에
10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 휴거의 문이다.
<마태복음> 24장 31절 말씀에
31절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7절 말씀에
17절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천국 문이다.
<요한 계시록> 22장 17절 말씀에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다윗>의 열쇠로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게 하신다.
사도 <요한>에게 열린 문의 축복을 주시고
<요한 계시록> 4장 1절 말씀에서 하늘의 문이 열렸다.
하나님이 특별한 역사를 주실 때 하늘의 문이 열린다.
<야곱>이 <벧엘>에서 잠을 잘 때 하늘의 문이 열렸다.
<신명기> 28장 말씀에서는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고 복을 주신다.
<이사야> 6장 1절-3절 말씀에
1절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절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절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사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을 때 하늘의 문이 열렸다.
<에스겔> 선지자도 계시를 볼 때 하늘의 문이 열렸다.
<말라기> 3장 9절-12절 말씀에
9절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십일조>를 바로 드리는 자에게
문을 열고 복을 주신다고 하였다.
<마태복음> 3장 16절 말씀에
16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렸다.
<사도행전> 7장 55절-56절 말씀에
55절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절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스데반>이 순교할 때 하늘이 열렸다.
이러한 예는 과거에 하늘의 문이 열렸던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도 열린 문의 축복을 주실 것이다.
열린 문의 축복과 가장 연관이 있는 것이 <다윗>의 열쇠다.
<다윗>의 열쇠가 있어야 문이 열리는 것이다.
하늘의 문이 열린다는 것은 영계가 열린다는 뜻이고 말씀이 열리게 된다.
따라서 <다윗>의 열쇠는 <다윗>왕국을 회복하는 천년왕국을 이루는
말씀과 진리를 말한다.
지금도 하늘의 문. 영계의 문. 말씀의 문. 진리의 문. 기도의 문.
전도의 문이 열린다. 다만 자신이 그 역사와 축복을 받지 못할 뿐이다.
2) 순 종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1) 작은 능력을 가지고.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으로
큰일을 행한 것에 대하여 칭찬을 받았다.
그러면 '작은 능력'이 무엇을 나타내는가?
<빌라델비아>교회가 지닌 신앙의 밑천은
'작은 능력'으로 불릴 만큼 연약한 것이었다.
이것은 <빌라델비아>도시에서 교회가 거의
영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작은 능력'은 성도들이 지닌 사회적인
여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을 처음 영접한 <빌라델비아> 도시는 상류층 출신이 아니라
하류층이자 빈민층 출신들이 먼저 예수를 영접하였기 때문이다.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는 이들이 복음으로 인해 변화 받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어려웠던 그 상황에서 '오직 예수'를
부여잡고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것을 칭찬받고 있다.
선교는 결코 돈 있고. 큰 교회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적어도 할 수 있고. 없어도 할 수 있다.
선교하는 기업과 가정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주신다.
그러므로 돈이 없어서 선교할 수 없다고 하지 말라. 능력이 없다고 하지 말라.
하나님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신다.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가
주님께 넘어가면 5.000명이 먹고 남았다.
<빌라델비아>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
가장 열심히 선교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① 작아야 한다.
⒜ <다윗> :
<사무엘 상> 16장 6절-13절 말씀에
6절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8절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9절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절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절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절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절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 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 <바울> :
<고린도 전서> 15장 9절 말씀에
9절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② 능력을 가져야 한다.
<사무엘 상> 17장 32절-49절 말씀에
32절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33절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절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35절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36절.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절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 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38절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절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40절.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 가니라.
41절 블레셋 사람이 방패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 가니라.
42절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43절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44절 그 불레셋 사람이 또 다윗 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45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절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절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8절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절.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 지니라.
③ 실천해야 한다.
<요한복음> 14장 23절 말씀에
2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작은 능력은 <마태복음> 7장 21절-23절 말씀과 같이
귀신을 쫓거나 병을 고치거나 예언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능력이 아니라
<요한 계시록> 11장 3절-6절 말씀과 같이
다시 예언할 때 <엘리야>와 <모세>에게 주셨던
두 증인의 권세를 주시는 것이다.
내 말을 지키며
<요한 계시록> 1장 3절 22장 7절 말씀은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를 의미하며.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받을 복에 열린 문의 축복도 포함된다.
<요한 계시록> 3장 10절 말씀은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고 하셨다.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욥>과 같은 인내를 가져야 한다.
<야고보서> 5장 11절 말씀에
11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욥>과 같은 인내는 참는 인내요
견디는 인내며 기다리는 인내를 말한다.
참는 인내는 <야고보서> 5장 7절 말씀같이 농부같이 참아야 하며.
견디는 인내는 <마태복음> 24장 13절 말씀같이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
기다리는 인내는 <하박국> 2장 1절-3절 말씀같이
정한 때를 기다려야 한다.
지킨다는 것은 말씀이 내게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잘 간수하라는 것이다. 잘 간수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꿀같이 먹고<요한 계시록> 10장 8절-10절 말씀을
마음 판에 새겨야 한다.
<잠언> 3장 3절 말씀에
3절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하박국> 2장 1절-3절 말씀에
1절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2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절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고린도 후서> 3장 3절 말씀에
3절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성도가 먹지도 않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은 말씀을 어떻게 지키겠는가?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 운동하면서 마음 판에 새겨지고
그 말씀을 잘 간수하는 것이 지키는 것이다.
서론적인 계시의 수준은 말씀이 무조건 좋아서 따라가며.
목록적인 계시의 수준은 말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기에
아는 척하게 된다.
본론적인 계시의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아는 척하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고 깊이 있는 진리를 사모하게 된다.
그러나 반복적인 계시의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말씀의 응용력이 생기게 되어 자유자재로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된다.
말씀을 들게 될 때 끝난 뒤에 놓친 것. 필요 이상으로 말한 것.
잘못한 것.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었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말씀을 전할 때 더 완벽하게 전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향상할 수 없다.
말씀의 내용을 외울 정도로 공부해야한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집회를 빠지면 안 된다. 말씀을 전하더라도 그 안에 생명이 있어야 한다.
죽은 말씀은 아무리 전해도 의미가 없다.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다.
그런데 복음과 다른 것을 전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2)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다.
주님이 칭찬은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작은 능력으로 예수의 말씀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이름을 지켰던 것을 볼 수 있다.
이 교회 성도들은 내적으로는 예수의 말씀을 지켰고. 외적으로는
예수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 W.C.C 가 배교하는 행위를 한다.
출발은 선교가 명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를 목적으로 하는 혼합주의다.
선교는 '오직 예수' 그 이름을 전하는 것이다.
<잠언> 30장 9절 말씀에
9절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 이니 이다.
<요한복음> 14장 21절-24절 말씀에
21절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절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 나이까
2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절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고린도 후서> 12장 9절-10절 말씀에
9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절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라.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빌라델비아>교인들을 칭찬하신 내용이다.
세상에서 아무런 힘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만 보고 가는 길이란
정말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의 말씀만 쫓아갔던 <아브라함>의 신앙이다.
<창세기> 12장 1절- 4절 말씀에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절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 오 세였더라.
'지키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에테레사스'(*)는 반의적인
강조 표현으로 문자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켰다'를 의미한다.
이는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유대인>들이 가하는 시련과 온갖
유혹 가운데서도(9절) 진리의 편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았음을 시사한다.
주의 말씀을 들은 사도들 중에서 예수 이름을 배반한
<가룟 유다>와 <베드로>가 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였다.
<사무엘 상> 15장 22절-23절 말씀에
22절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다.
하나님이신 말씀을 버렸기에 하나님을 버린 것이요
예수 이름을 배반한 것이다.
인 맞은 종으로 예정된 사람이라면 절대로 말씀을 버릴 수 없다.
그렇기에 말씀을 버리는 사람은 인 맞은 종이 아니다.
한 지파에 12.000씩 열두 지파 144.000은
모두 함께 해야 다시 예언을 할 수 있기에
말씀. 생각. 사상. 이 통일 되는 것이다.
될 일의 말씀을 공부하면 말씀을 통해서
오직 예수의 사상이 생기게 된다.
말씀에 먼저 무장이 되는 사람이 있고.
사상이 먼저 무장되는 사람이 있다.
말씀과 사상이 동시에 무장이 되는 사람도 있다. <아멘>